동양고전종합DB

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제11장은 《노자老子》의 유명한 장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장은 바퀴, 그릇, 방, 창문은 물론 문 등의 형상을 통해 의 일정한 기능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가 갖는 효용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달리 말해서 이런 사례들은 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최고의 덕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판본板本에 따른 차이는 크게 없으나 죽간본竹簡本에는 이 장이 빠져 있다.
빈 중심과 가득 찬 주변으로 이루어진 구조(the structure of an empty and a full periphery)는 물질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는 물론이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기능한다. 성인은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린다고 가정되는데, 사회의 중심에 있는 성인 군주는 함이 없고 그럼으로써 국가가 잘 기능하도록 한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언제나 비어 있음 또는 없음이 있음과 가득 차 있음과 나란히 간다는 점이다. 비어 있음 혼자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심지어 그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중심이란 중심이 되게 하는 주변을 필요로 한다. 도가는 일방적으로 비어 있음 또는 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도의 한 가지 또는 중심적인 측면일 뿐이며 그것만을 분리하여 말할 수 없다. 비어 있음과 가득 차 있음이 함께해야 이로움을 낳고 완벽하게 사용될 수 있다.
왕필王弼은 다양한 비유적 표현이 등장하는 《노자老子경문經文에 비해 두 가지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하나는 가 인간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려면 에 의지하거나 혹은 무 자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는 실질적으로는 비어 있음[]의 의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왕필의 논리는 대연지수大衍之數에도 해당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수적인 의미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을 다스리고 거느린다.[이과통중以寡統衆]’는 사상과도 연결된다.
11.1 하나니 當其無일새 有車之用하고
서른 개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바퀴통이 비어 있기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곡轂(《고공기도考工記圖》곡轂(《고공기도考工記圖》
바퀴통이 서른 개의 바퀴살을 거느릴 수 있는 것은 〈그 바퀴통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以其無 能受物之故 統衆也
그 빈 곳으로 모든 바퀴살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거느릴 수 있다.
11.2 하나니 當其無일새 有器之用하고 鑿戶牖以爲室하나니 當其無일새 有室之用이라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니 그 그릇 속이 비어 있기에 그릇의 쓰임이 있고,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니 그 방 속이 비어 있기에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가 이로움이 되는 까닭은 가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注]木埴壁으로 所以成三者 而皆以無爲用也
나무와 찰흙과 벽으로 〈수레와 그릇과 방〉 세 가지를 완성하는 것은 모두 (비어 있음)를 쓰임으로 삼아서이다.
〈이것은〉 가 이로움이 되는 까닭이 모두 에 의지하여 쓰임이 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三十輻 共一轂 : 帛書本에는 ‘卅輻 同一轂’으로 되어 있다. ‘卅’은 ‘三十’과 뜻이 같다. 秦 始皇陵에서 발굴된 戰車의 바퀴살이 실제 30개로 되어 있는데, 河上公本에서는 바퀴살이 서른 개인 것은 ‘한 달의 날 수를 본받은 것[法月數]’이라 하였으니 참고할 만하다.
역주2 轂所以能統三十輻者 無也 : 王弼은 無의 쓰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쓰임은 ‘비어 있음[無]’으로부터 유래한다.
역주3 故能以(實)[寡]統衆也 :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거느린다는 말은 注41.13에서도 “나누면 많은 것을 거느릴 수 없다.[分則不能統衆]”고 하였다. 이것은 王弼의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漢의 鄭玄은 《周禮》의 ‘輪人’에 관한 注에서 ‘轂’에 대해 “바퀴통은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쓰이게 된다.[轂 以無有爲用也]”라 하였는데, 孔穎達은 疏에서 《老子》 11장과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역주4 (實)[寡] : 저본에는 ‘實’로 되어 있으나, 陶鴻慶이 ‘寡’의 잘못이라 校改한 이래, 일반적으로 이를 따르므로 ‘寡’로 바로잡는다.
역주5 埏埴以爲器 : 帛書本 甲本에는 ‘埏’이 ‘然’으로, 乙本에는 ‘燃’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許抗生(《帛書老子注譯與硏究》)은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진흙을 구워서 그릇을 만든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帛書本 整理者는 ‘燃’을 ‘埏’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역주6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 정세근은 《노장철학》에서 이러한 태도를 《莊子》와 비교하여 莊子가 ‘쓸모없는 것의 쓸모[無用之用]’를 강조한다면, 王弼은 ‘무의 쓸모[無之用]’를 강조한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王弼은 注40.1에서도 ‘有以無爲用(유는 무를 쓰임으로 삼는다.)’이라 하고 있다.
역주7 言(無者)有之所以爲利 皆賴無以爲用也 : 저본에는 ‘言無者有之所以爲利’라 하여 ‘無者’ 두 글자가 더 있는데 日本學者 波多野太郞은 《老子王注校正》에서 이를 衍字로 보았다. 樓宇烈과 바그너 또한 이를 지적하였는데, 注1.4에서 ‘凡有之爲利 必以無爲用’이라 하였고 또 注40.1에서 ‘有以無爲用’이라 하였으니 衍字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왕필이 ‘無’를 작용이나 쓰임새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논리가 드러나는 곳이다. 왕필은 ‘無’를 두 가지 차원에서 중시한다. 하나는 ‘大衍之數’를 설명하면서 50개의 산가지 가운데 하나가 작용의 중심인 하나[一]이며, 이 때문에 나머지 산가지가 모든 괘를 낳는 작용을 한다고 풀이하는 점에서 쓰임과 관련된다. 또 하나는 바로 ‘無’를 ‘비어 있음[虛]’으로 설명하면서 빈 곳에 다른 물건을 담거나 쓰임새가 있다는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無의 쓰임을 이끌어낸다. 이 모두에서 無가 존재론적인 虛無의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易學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用九(陽爻), 用六(陰爻)처럼 用은 역학의 세계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