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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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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의 많은 들이 물을 통해서 도에 대해 설명한다. 이 장에서는 도는 흘러 넘쳐서 어느 쪽으로든 흘러가는 물의 움직임에 비견하고 있다. 물의 흐름은 가장 ‘자연스러운(natural)’ 운동이다. 물은 늘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하며, 또한 전혀 힘들이지 않고 움직인다. 도의 운동 또한 어떠한 수고 없이 그렇게 일어나고, 또는 특정한 방향으로 가게 하는 추동력推動力(driving force)도 없이 일어난다. 자연과 물은 ‘저절로 그렇게[자연自然]’ 움직인다.
제34장의 둘째와 셋째 부분은 성인 즉 성인 군주의 행위를 도의 수고스럽지 않은 움직임과 관련시키고 있다. 도는 군주처럼 무위하는데 왜냐하면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본성)에 대해 어떠한 것도 강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특수한 의도나 특정의 기능이 없기에 도를 어떤 배타적인 역할과 동일시하게 되는 이름이 없는 채로 도는 남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편으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작다. 그것은 모든 적극적인 특징이 없으며 물과 같이 부드럽고 형태가 없다.
다른 한편 도가道家의 역설의 논리에 일치하게도, 특수한 자질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또한 도를 물과 같이 위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만물이 모두 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영양을 공급하는 물의 성질에 의존하며, 자연 속에서 만물은 ‘위대한’ 도를 따른다. 성인 군주는 이러한 모델에 따라 그의 사적인 뜻이나 의도적인 행동을 최소화한다. 자연의 진로에 따라 무위無爲함으로써 그는 자연의 길 또는 도가 방해받지 않고 진행하도록 한다.
34.1 大道 汎兮하여 其可左右
큰 도는 〈물처럼〉 넘쳐흘러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갈 수 있다.
[注]言道汎濫하여 無所不適하여 可左右上下周旋而用하니 則無所不至也
도는 〈물처럼〉 넘쳐흘러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위로나 아래로나 두루 돌고 돌면서 쓰이니,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34.2 萬物 恃之而生而不辭하고 하고 衣養萬物而不爲主니라
만물은 〈그 도에〉 의지하여 생성하는데도 잔소리하지 않으며 공적을 이루면서도 자기 것이라 이름하지 않고 만물을 입히고 기르면서도 주인 노릇 하지 않는다.
常無欲이라 可名於小
언제나 욕심이 없으므로 작다고 이름할 수 있다.
[注]萬物 皆由道而生이나 旣生而不知其
만물은 모두 이 도를 말미암아 생성되지만 이미 생성되고 나서는 그 말미암은 바를 알지 못한다.
故天下常無欲之時 萬物各得하나 道無施於物이라
그래서 〈1장에서 말하였듯이〉 천하天下 사람들이 언제나 욕심이 없을 때에는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으나 도가 만물에 베푸는 게 없었다.
名於小矣라하니라
그래서 “작다고 이름할 수 있다.”고 했다.
34.3 萬物歸而不 可名
만물이 〈그에게〉 돌아가는데도 주인을 알지 못하니 크다고 이름할 수 있다.
[注]萬物 皆歸之以生이나 而力使不知其所由이니 此不爲小 故復可名於大矣
만물은 모두 도에 돌아가서 생성하는데 〈도는 만물이〉 그 유래를 알지 못하게 하는 데에 힘을 쓴다. 〈따라서 이러한 도에 대해〉 작다고 하지 못하는 까닭에 다시 크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도와 같이〉 끝내 스스로 큰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루어 만물이 그에게 돌아가므로〉 자신의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큰일을 할 때에는 작은 것에서부터 하고, 어려운 일을 도모할 때에는 쉬운 것에서부터 한다.
역주
역주1 功成不名有 : 바그너는 ‘功成而不居’라 되어 있는 傅奕本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여기서는 바그너의 견해를 따르지 않았다. 經2.4, 經77.2에도 ‘功成而不居’라 하였고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러워 참조할 만하다.
역주2 (由所)[所由] : 저본에는 ‘由所’로 되어 있으나, 集注本에 따라 수정한 바그너의 견해에 따라 ‘所由’로 바로잡는다.
역주3 [其] : 저본에는 ‘其’가 없으나, ‘各得其所’는 왕필의 빈번한 표현이므로 ‘其’를 보충하였다.
역주4 (若)[而] : 저본에는 ‘若’으로 되어 있으나, 아래 經34.3과 대구를 이루므로 바그너의 견해에 따라 ‘而’로 바로잡는다.
역주5 [可] : 저본에는 ‘可’가 없으나, 이 부분은 經文의 인용이므로 ‘可’를 보충하였다.
역주6 (焉)[之] : 저본에는 ‘焉’으로 되어 있으나, 아래 注文에 ‘歸之’로 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之’로 교감한 바그너의 견해에 따라 바로잡는다.
역주7 (爲)[知]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아래 注文에 ‘不知其所由’로 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교감한 바그너의 견해에 따라 바로잡는다.
역주8 3) (爲)[於] : 經34.2에 ‘可名於小’라 한 것과 짝을 이루니 ‘於’가 맞다. 따라서 ‘於’로 바로잡는다.
역주9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 바그너는 왕필의 아래 注文에서 작은 것[細]에 주목하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이 때문에 성인이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큰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是以 聖人之能成大也 以其不爲大也 故能成其大]” 여기서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으나 바그너가 제안하는 의미의 취지를 반영하여 經文을 해석하였다.
역주10 爲大……於其易 : 이 부분은 經63.3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를 인용한 것이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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