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行術用明하여 以察姦僞는 趣覩形見하여 物知避之라
注
若六親自和하고 國家自治하면 則孝慈忠臣이 不知其所在矣요
제18장, 제19장은 통상적으로 인의仁義에 대한 부정적 언급 때문에 유가儒家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초간본에 의하면 그런 루머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일단 제18장은 초간본과 왕필본이 조금 다르다.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백서본帛書本을 저본으로 한 김홍경에 의하면 제18장은 제17장과 이어진다. 첫머리에 ‘고故’자를 붙인 점이 다르고, 군데군데 ‘언焉’자가 첨부되어 있으며, ‘국가國家’가 ‘방가邦家’로, ‘충신忠臣’이 ‘정신貞臣’으로 되어 있다. 종합하면 ‘고대도폐故大道廢, 언유인의焉有仁義, 지혜출智慧出, 언유대위焉有大僞. 육친불화六親不和, 언유효자焉有孝慈, 방가혼란邦家昏亂, 언유정신焉有貞臣.’으로 글자의 차이는 조금 있으나, 해석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 다음 구절에서는 효성孝誠과 자애慈愛가 나오게 된 이유, 충신이 있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노자는 ‘효孝, 자애로움, 충忠’ 등 유가에서 내세우는 인위적 가치가 나오게 된 것이 결국 화목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탓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유가를 비판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왕필은 ‘육친六親’을 ‘부자, 형제, 부부’라고 하고 《여씨춘추》에는 육친을 ‘부모, 형제, 처자’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육친은 ‘나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 6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가까운 피붙이들이 반목하는 상황이니 자연히 효를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숱하게 벌어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 왕필의 해석이 재미있다. 왕필은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샘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드러나 서로 숨을 내쉬어 적셔주고 서로 물거품을 뿜어주니, 강호 속에서 서로를 잊는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완전히 뒤집는다. “물고기들이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지내는 도가 있기 때문에 서로 적셔주는 덕도 생겨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장자가 ‘물거품’이라는 비유를 들어 ‘인의仁義’를 부정했다면, 왕필은 ‘서로 적셔주는 덕’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즉, ‘인의仁義’를 긍정하고 어질게 사는 사회가 기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注
무위無爲의 일을 잃고서 다시 지혜를 베풀고 선善의 기준을 세우니 이는 도가 물物로 나아간 것이다.
注
술수를 행하고 밝음을 사용하여 간사함과 위선을 살피는 것은 이미 〈군주의 마음이 가는〉 방향이 보이고 그의 행위 방식이 드러나서 만물(사람들)이 피할 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지혜가 나오면 큰 위선이 생겨나는 것이다.
육친六親이 불화하니 효도孝道와 자애慈愛가 있게 되었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忠臣이 있게 되었다.
注
매우 아름다운 이름은 크게 추한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른바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문에서 나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육친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와 부부 사이를 말한다.
만약 육친이 스스로 화목하고 국가가 저절로 다스려진다면 효도와 자애나 충신이라는 말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장자莊子》에서 말하는〉 ‘물고기들이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도’를 잃으면 서로 물기로 적셔주는 덕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