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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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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重爲輕根이요 靜爲躁君이라
是以重必爲輕根이요 靜必爲躁君也하니라
26.2 是以 聖人 終日行 不離輜重하며
[注]以重爲本이라 故不離하니라
26.3 雖有榮觀이나 燕處超然하나니
[注]不以經心也
26.4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이요 躁則失君이니라
[注]輕不鎭重也 失本 爲喪身也 失君 爲失君位也


제26장은 크게 보아서 군주가 따라야 하는 신중하고 무게 있는 행동[],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김홍경은 《노자》에서 이것이 ‘’의 통치술을 강조하는 신도愼到 사상을 담은 문헌인 《여씨춘추呂氏春秋》 〈신세愼勢〉와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역대의 학자들은 ‘치중輜重(물자를 실은 무거운 짐수레)’과 같은 표현에 착안하여 전쟁 중의 이동 상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또한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에서는 나라 무령왕武靈王(주보主父)의 사례를 들어 이 내용을 해석한다.
《노자》 제26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은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한비자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통제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무게 있다[]’고 하고 자신의 자리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을 ‘고요하다[]’고 한다. 무게가 있으면 능히 가벼운 자를 부릴 수 있고, 고요하면 능히 조급한 자를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노자》에서는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가 된다.”고 하였다. ‘나라[]’란 군주에게 〈전쟁 시에 군수물자를 실은 무거운 수레인〉 치중輜重이다. 그래서 “군자는 종일토록 길을 다녀도 치중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조나라의 무령왕〉 주보主父는 살아 있을 때에 〈둘째 아들 (혜문왕惠文王)에게〉 나라를 물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치중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북쪽의〉 와 〈서쪽의〉 운중雲中을 〈경략한 후에 돌아와서 큰 잔치를 벌이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초연하게 이미 조나라를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 주보는 만승의 군주이면서 자신의 몸을 천하에 가볍게 굴린 것이다. 권세를 잃는 것을 ‘가볍다[]’고 하고 그 자리를 떠난 것을 ‘조급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보는 생전에 유폐되어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에서 말하기를 “가볍게 처신하면 신하를 잃고 조급히 굴면 군주의 지위를 잃는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주보를 가리켜 한 말이다.
《한비자》의 《노자》 풀이는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통제력이 자신에게 있는 것[제재기制在己]”이 ‘무거움[]’이고, “권세가 없는 것[무세無勢]”이 ‘가벼움[]’이다. “자신의 지위(자리)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이 ‘고요함[]’이요, “자신의 자리(지위)를 떠난 것”이 ‘조급함[]’이다. 아주 단순하지 않은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있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떠나지 않는 것이 무거움이라면 권세나 세력을 잃고 자신의 지위나 자리에서 떠나거나 제 처지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가볍거나 조급한 행동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싶다. 《노자》가 염두에 두었던 상황은 이와 조금 다르다. 《노자》에서 말하는 상황은 ‘영관榮觀’과 ‘연처燕處’의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그것이 화려한 궁실이든 아니면 전쟁터에서 행군하던 중에 마주치게 되는 적의 진지와 망루를 눈앞에 둔 상황이든 초연함을 잃지 않는 것과 통한다. 왕필은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주석한다. “마음을 흩뜨리지 않는 것[불이경심不以經心]”일 뿐이다. 온갖 환락과 유흥이 즐비할 때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무거움이란 사실 초연함과 같은 것이고, 그래서 그는 가볍게 행동하거나 조급히 굴지 않는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고, 학문을 해도 굳건하지 않다. 충실함과 신의를 위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고, 잘못을 저지르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자왈子曰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학즉불고學則不固 주충신主忠信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논어論語》 〈학이學而〉)고 했다. 무거움이든 중후함이든 이른바 사회의 지도자나 리더에게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가벼운 사람보다는 신중하고 중후한 사람이, 조급하고 경솔한 사람보다는 초연하고 침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다. 심지어 위험한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노자》의 ‘무거움’이란 이렇게 왕필이 다시 긍정하듯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한 실위失位’이다. 하지만 공자의 무거움은 이로부터 조금 더 나아간다. 증자는 공자가 생각했던 무거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선비는 포용력이 있고 강인해야 한다.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 바로 자기의 책임이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다음에야 그칠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증자왈曾子曰 사부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 불역중호不亦重乎 사이후이死而後已 불역원호不亦遠乎]”(《논어論語》 〈태백泰伯〉) 책임이 무겁다! 인을 실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하에 대한 책임, 어쩌면 그것이 선비와 군자, 성인에게 무거움을 주는 것인지 모른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가 된다.
무릇 사물은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을 실을 수 없고, 작은 것은 큰 것을 진압할 수 없으며, 행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을〉 행하게 하고, 움직이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제재한다.
이러한 까닭에 무거움은 반드시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반드시 조급함의 군주가 되는 법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聖人은 종일토록 길을 다녀도 치중輜重을 떠나지 않고
무거움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전쟁 시에 군수물자를 실은 무거운 수레인 치중輜重에서〉 떠나지 않는다.
비록 영화롭게 호사를 누리며 살더라도 한가로이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들로 마음을 흐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차 만대를 부리는 주인이면서 어찌 그 몸을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겠는가.
가볍게 처신하면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굴면 군주의 지위를 잃게 된다.
가벼움은 무거움을 진압할 수 없다. ‘실본失本’이란 목숨을 잃게 된다[상신喪身]는 뜻이고, ‘실군失君’이란 군주의 지위를 잃는다는 뜻이다.


역주
역주1 凡物……靜必爲躁君也 : 왕필은 이와 동일한 주제를 《周易注》 恒卦에서도 다루고 있다. “무릇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가 되고, 편안함은 움직임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편안함은 윗사람이 처하는 곳이고, 고요함은 오래갈 수 있는 도이다. 괘의 가장 꼭대기 자리에 있고 움직임의 극치에 머물러 있으니 이러한 원리를 항상된 원칙으로 한다면 베풀어도 얻을 게 없다.[夫靜爲躁君 安爲動主 故安者 上之所處也 靜者 可久之道也 處卦之上 居動之極 以此爲恒 無施而得也]”

노자도덕경주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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