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絶學無憂
니 唯之與
가 相去幾何
며 美之與惡
이 相去若何
오 니라
注
夫燕雀有匹이요 鳩鴿有仇요 寒鄕之民은 必知旃裘라
20.3 衆人이 熙熙하여 如享太牢하고 如春登臺라
注
[注]言我廓然無形之可名하고 無兆之可擧가 如嬰兒之未能孩也니라
注
[注]絶愚之人은 心無所別析하고 意無所好欲하니 猶然其情不可覩라 我頹然이 若此也라
注
[注]無所欲爲하여 悶悶昏昏하니 若無所識이라 故曰 頑且鄙也라
注
[注]食母
는 生之
也
라 人者皆棄生民之本
하고 貴末飾之華
라
제20장은 유학儒學이 강조하는 ‘배움[학學]’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진다. ‘학學’을 한다는 건 결국 벼슬에 나아간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지 않을 때 공부를 해서 자기 자신을 진작시키고 명예를 드높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벼슬길에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즐거워하기만 한다. 큰 소를 잡아 잔치를 하고, 봄날 누대에 오른 듯이 들떠서 난리다. 환하고, 신나고, 빛나는 사람들 무더기 저편에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동떨어져 있다. 어깨도 좀 굽은 것 같고, 찬바람을 피하기엔 옷이 얇아 보이기도 하다. 옹알거리거나 웃을 줄도 모르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라 얼핏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세상사에 찌든 패잔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지니, ‘네’와 ‘아니오’가 서로 다른 것이 얼마이겠는가? ‘아름다움’과 ‘추함’이 서로 다른 것이 얼마이겠는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注
〈《노자》의〉 하편에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보태는 것이요 도를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배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능한 바를 보태어 자신의 지혜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장차 그러한 욕구가 없이 만족한다면 어찌 보태고자 하겠는가?
알지 못하더라도 〈행실이 법도에〉 맞는다면 어찌 진전시키고자 하겠는가?
무릇 제비와 참새에게도 배필이 있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에게도 짝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추운 지방에 사는 백성들은 반드시 털옷과 가죽옷을 지어 입을 줄 아는 법이다.
저절로 그러함이 이미 충분한데 〈거기에 무언가를〉 보탠다면 근심만 생길 뿐이다.
그러하기에 오리의 다리를 길게 잇는 것이 학의 정강이를 자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명예를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지혜를〉 진전시키는 것이 형벌을 두려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예’와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다른 것이 얼마이겠는가?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하는 것이니, 감히 그런 것을 믿고서 쓰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황량한 모습이 텅 빈 곳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注
세속과 서로 어긋남이 큰 것을 한탄한 것이다.
뭇사람들이 희희낙락하며 큰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봄날 누각에 오르는 것 같다.
注
뭇사람들은 칭찬과 재물에 〈곧잘〉 미혹되고 영화와 이로움에 〈곧잘〉 미혹되어 욕심을 부리며 마음으로 다툰다.
그래서 희희낙락하며 큰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봄날 누각에 오르는 것 같은 것이다.
나 홀로 담박하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기 같으며,
注
나는 마음이 텅 비어서 이름 붙일 만한 형체가 없고 나열할 만한 조짐이 없는 것이 마치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 같다고 말한 것이다.
몹시 지친 모습이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네.
뭇사람은 모두 남음이 있는데 나홀로 잃어버린 듯하니,
注
뭇사람들은 생각이나 뜻을 두어 가슴속에 차고 넘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래서 ‘모두가 남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나홀로 텅 비어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이 마치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한 것이다.
注
매우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것이 없고, 뜻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없으니 유유한 그 마음을 볼 수 없다. 나의 쓸쓸한 마음이 이와 같다.
注
〈마음이〉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것이 없으니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
나홀로 흐리멍덩하고, 세상 사람들은 잘도 살피는데
고고하여 〈산들바람처럼〉 그칠 줄을 모르는 듯하네.
注
이以는 쓰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일정한 자리가 주어져〉 쓰이기를 바란다.
注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어리석고 흐리멍덩하니 마치 아는 것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완고하고 비루하다.”고 한 것이다.
나홀로 다른 사람과 다르고자 하여 〈만물을〉 먹이는 어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注
식모食母란 삶의 뿌리이다. 사람은 모두 백성의 삶을 가능케 하는 그 뿌리는 버리고서 말단이나 꾸미는 화려함만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홀로 다른 사람과 다르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