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天得一以淸하고 地得一以寧하고 神得一以靈하고
谷得一以盈
하고 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
하나니 其致之
니라
注
故爲功之母不可舍也라 是以皆無用其功이면 恐喪其本也하니라
39.4 地無以寧이면 將恐發이요 神無以靈이면 將恐歇이요
谷無以盈
이면 將恐竭
이요 이요 侯王
이 면 將恐蹶
이라
故致數譽
면 無譽
니 不欲琭琭
玉
하고 珞珞如石
하니라
注
[注]淸不能爲淸이요 盈不能爲盈이니 皆有其母하여 以存其形이라
故淸不足貴하고 盈不足多하니 貴在其母나 而母無貴形이라
수적數的 상징으로서 ‘하나(one)’ 또는 ‘하나됨(oneness)’은 도道를 나타낸다. 도의 하나됨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사회의 영역 - 여기에는 신령(spirits)의 영역까지 포함된다. - 을 통합시켜준다. 이것은 이들 세 영역을 통일시키는 포용적 패턴으로서 도를 말하는 제25장과 공명共鳴한다.
둘째 부분은 말하는 의미가 아마도 이들 세 영역이 도의 패턴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 그리고 그것들은 도가의 역설의 규칙(the Daoist rule of the paradox)을 따르기 때문에 - 이들 세 영역은 그들이 하는 대로 기능할 뿐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이것은 특히 제6장에서 말하듯이 계곡이 비었음으로 인하여 만물이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군주가 비천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즉 ‘홀로 된 사람[고孤]’, ‘버려진 사람[과寡]’, ‘가진 게 없는 사람[불곡不穀]’이란 말은 고대 중국에서 군주들이 실제로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은 바로 자신들이 비어 있음 -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족친에만 편애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유대가 없으며(the lack of social bonds) - 또한 자신을 얽어매는 개인적 재산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비어 있음’으로 해서만 군주는 도를 드러낼 수 있고 또한 이렇게 하여 최고의 통치자가 되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낮은 것을 가장 높은 것으로 바꾸어주는 역설적인 전도顚倒의 규칙은 그들 지위의 토대가 된다.
마지막 부분은 도가적 군주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의 통치 방식을 부드러움(여성성)과 동일시하지 딱딱함(남성성)과 동일시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진술하고 있다.
注
석昔은 처음이다. 〈《노자》가 말하는〉 하나는 수數의 시작이자 사물의 궁극이다.
이 하나는 〈아래에서 논의되는 천天‧지地‧신神‧곡谷과 같은〉 각각의 물物이 주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물物은 각각 이 하나를 얻어 완성되는데 이미 완성되면 이 하나를 버리고서 그 완성된 것에 머무른다.
완성된 것에 머무르면 저들을 〈낳아준〉 어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 찢어지고 꺼지고 다하고 말라버리고 없어지고 넘어지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 안정되고, 신령은 하나를 얻어 영험해지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 가득 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장하고, 후왕侯王은 하나를 얻어 천하가 바르게 되니, 〈하늘‧땅‧신령‧계곡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를 〈얻어서〉이다.
注
〈하늘‧땅‧신령‧계곡이〉 각각 그 하나로 이와 같은 맑아지고, 안정되고, 영험해지고, 가득 차고, 생장하고, 바르게 됨에 이른다는 뜻이다.
하늘이 〈이 하나〉로써 맑게 됨이 없으면 장차 찢어질까 두렵고,
注
하나를 써서 맑음에 이를 뿐이지 맑음을 써서 맑게 되는 게 아니다.
하나를 지키면 맑음을 잃지 않지만 맑음을 쓰면 찢어질까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공을 이루는 어미를 버릴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모두 그 〈어미의〉 공적을 쓰지 않으면 그 근본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땅이 〈이 하나〉로써 안정됨이 없으면 장차 꺼질까 두렵고, 신령이 〈이 하나〉로써 영험함이 없으면 장차 그 영험이 다할까 두렵고,
계곡이 〈이 하나〉로써 가득 참이 없으면 장차 〈계곡의 물이〉 말라버릴까 두렵고, 만물이 〈이 하나〉로써 생겨남이 없으면 장차 없어질까 두렵고, 후왕侯王이 〈이 하나〉로써 고귀해짐이 없으면 장차 넘어질까 두렵다.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임은 낮춤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까닭에 후왕이 스스로를 일컬어 외로운 자[고孤], 버려진 자[과寡], 가진 게 없는 자[불곡不穀]라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천함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자주 〈스스로를〉 명예롭게 하면 〈오히려〉 명예가 없어지니 보옥寶玉처럼 반짝반짝 빛나거나 돌처럼 거칠게 〈그 빛을 그 안에 갈무리하여〉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注
맑음이 〈스스로〉 맑게 할 수 없고 가득 참이 〈스스로〉 가득 차게 할 수 없으니 모두 그 어미가 있어 그 형체를 보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맑음 〈그 자체는〉 귀하게 여길 만하지 못하고, 가득 참 〈그 자체는〉 많다고 여기기에 부족하니, 귀함은 그 어미에게 있으나 어미는 형체를 귀하게 여김이 없다.
〈이렇게 볼 때〉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임은 낮춤을 기반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자주 〈스스로를〉 명예롭게 하는 것은 이내 명예가 없어지는 법이다.
옥의 반짝거림과 돌의 거침은 그 몸뚱이가 형체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다할 뿐이다. 따라서 욕심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