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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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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數的 상징으로서 ‘하나(one)’ 또는 ‘하나됨(oneness)’은 를 나타낸다. 도의 하나됨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사회의 영역 - 여기에는 신령(spirits)의 영역까지 포함된다. - 을 통합시켜준다. 이것은 이들 세 영역을 통일시키는 포용적 패턴으로서 도를 말하는 제25장과 공명共鳴한다.
둘째 부분은 말하는 의미가 아마도 이들 세 영역이 도의 패턴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 그리고 그것들은 도가의 역설의 규칙(the Daoist rule of the paradox)을 따르기 때문에 - 이들 세 영역은 그들이 하는 대로 기능할 뿐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이것은 특히 제6장에서 말하듯이 계곡이 비었음으로 인하여 만물이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군주가 비천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즉 ‘홀로 된 사람[]’, ‘버려진 사람[]’, ‘가진 게 없는 사람[불곡不穀]’이란 말은 고대 중국에서 군주들이 실제로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은 바로 자신들이 비어 있음 -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족친에만 편애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유대가 없으며(the lack of social bonds) - 또한 자신을 얽어매는 개인적 재산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비어 있음’으로 해서만 군주는 도를 드러낼 수 있고 또한 이렇게 하여 최고의 통치자가 되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낮은 것을 가장 높은 것으로 바꾸어주는 역설적인 전도顚倒의 규칙은 그들 지위의 토대가 된다.
마지막 부분은 도가적 군주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의 통치 방식을 부드러움(여성성)과 동일시하지 딱딱함(남성성)과 동일시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진술하고 있다.
39.1 昔之得一者
옛날 하나를 얻은 것은,
[注]昔 始也 數之始而物之極也
은 처음이다. 〈《노자》가 말하는〉 하나는 의 시작이자 사물의 궁극이다.
各是一物之所以爲主也
이 하나는 〈아래에서 논의되는 과 같은〉 각각의 이 주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各得此一以成이로되 旣成而舍以居成하니
〈이와 같은〉 은 각각 이 하나를 얻어 완성되는데 이미 완성되면 이 하나를 버리고서 그 완성된 것에 머무른다.
居成則失其母 故皆裂發 歇竭滅蹶也
완성된 것에 머무르면 저들을 〈낳아준〉 어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 찢어지고 꺼지고 다하고 말라버리고 없어지고 넘어지는 것이다.
39.2 天得一以淸하고 地得一以寧하고 神得一以靈하고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 안정되고, 신령은 하나를 얻어 영험해지고,
谷得一以盈하고 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하나니 其致之니라
계곡은 하나를 얻어 가득 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장하고, 후왕侯王은 하나를 얻어 천하가 바르게 되니, 〈하늘‧땅‧신령‧계곡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를 〈얻어서〉이다.
[注]各以其一 致此淸寧靈盈生貞하니라
〈하늘‧땅‧신령‧계곡이〉 각각 그 하나로 이와 같은 맑아지고, 안정되고, 영험해지고, 가득 차고, 생장하고, 바르게 됨에 이른다는 뜻이다.
39.3 天無以淸이면 將恐裂이요
하늘이 〈이 하나〉로써 맑게 됨이 없으면 장차 찢어질까 두렵고,
[注]用一以致淸耳 非用淸以淸也
하나를 써서 맑음에 이를 뿐이지 맑음을 써서 맑게 되는 게 아니다.
守一則淸不失이나 用淸則恐裂也
하나를 지키면 맑음을 잃지 않지만 맑음을 쓰면 찢어질까 두려워하게 된다.
故爲功之母不可舍也 是以皆無用其功이면 恐喪其本也하니라
그래서 공을 이루는 어미를 버릴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모두 그 〈어미의〉 공적을 쓰지 않으면 그 근본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39.4 地無以寧이면 將恐發이요 神無以靈이면 將恐歇이요
땅이 〈이 하나〉로써 안정됨이 없으면 장차 꺼질까 두렵고, 신령이 〈이 하나〉로써 영험함이 없으면 장차 그 영험이 다할까 두렵고,
谷無以盈이면 將恐竭이요 이요 侯王 將恐蹶이라
계곡이 〈이 하나〉로써 가득 참이 없으면 장차 〈계곡의 물이〉 말라버릴까 두렵고, 만물이 〈이 하나〉로써 생겨남이 없으면 장차 없어질까 두렵고, 후왕侯王이 〈이 하나〉로써 고귀해짐이 없으면 장차 넘어질까 두렵다.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임은 낮춤을 기반으로 삼는다.
是以侯王 自謂孤寡不穀이라하니 非乎
이런 까닭에 후왕이 스스로를 일컬어 외로운 자[], 버려진 자[], 가진 게 없는 자[불곡不穀]라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천함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故致數譽 無譽 不欲琭琭하고 珞珞如石하니라
그러므로 자주 〈스스로를〉 명예롭게 하면 〈오히려〉 명예가 없어지니 보옥寶玉처럼 반짝반짝 빛나거나 돌처럼 거칠게 〈그 빛을 그 안에 갈무리하여〉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注]淸不能爲淸이요 盈不能爲盈이니 皆有其母하여 以存其形이라
맑음이 〈스스로〉 맑게 할 수 없고 가득 참이 〈스스로〉 가득 차게 할 수 없으니 모두 그 어미가 있어 그 형체를 보존하게 된다.
故淸不足貴하고 盈不足多하니 貴在其母 而母無貴形이라
그러므로 맑음 〈그 자체는〉 귀하게 여길 만하지 못하고, 가득 참 〈그 자체는〉 많다고 여기기에 부족하니, 귀함은 그 어미에게 있으나 어미는 형체를 귀하게 여김이 없다.
貴乃以賤爲本하고 高乃以下爲基
〈이렇게 볼 때〉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임은 낮춤을 기반으로 삼는다.
故致數譽 乃無譽也
그러므로 자주 〈스스로를〉 명예롭게 하는 것은 이내 명예가 없어지는 법이다.
玉石琭琭珞珞 體盡於形이라 故不欲也
옥의 반짝거림과 돌의 거침은 그 몸뚱이가 형체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다할 뿐이다. 따라서 욕심내지 않는다.
역주
역주1 (生) : 저본에는 ‘生’이 있으나, 바그너는 《世說新語》 〈言語〉의 劉孝標 注에 근거하여 ‘生’을 衍文으로 처리하였는데, 이를 따른다.
역주2 (皆) : 저본에는 ‘皆’가 있으나, 문맥이 자연스럽지 않아, 道藏集注本에 근거하여 ‘皆’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3 [一] : 저본에는 없으나, 樓宇烈이 道藏集注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는데 이를 따른다.
역주4 萬物得一以生 : 帛書本에는 이 구절이 없다.
역주5 [一也] : 저본에는 없으나, 바그너는 王弼의 注와 帛書 甲本에 의거하여 ‘一也’를 보충하였는데 논리적 맥락이 분명하므로 이를 따른다.
역주6 萬物……將恐滅 : 帛書本에는 이 부분이 없다.
역주7 無以貴高 : 바그너는 帛書本에 근거하여 ‘無以爲貞而貴高’라 하였으나 따르지는 않는다. 다만 바그너의 교감을 따르면 이 구절이 經39.2의 ‘天下貞’과 호응한다는 것은 분명하니 참고할 만하다.
역주8 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 《淮南子》 〈道應訓〉에서는 이 부분을 狐丘丈人과 孫叔敖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韓詩外傳》, 《說苑》 〈敬愼〉, 《列子》 〈說符〉 등에도 나온다. 《淮南子》에서 狐丘丈人은 작위가 높고, 관직이 크고, 봉록이 많아지면 질투, 미움, 원망이 커진다고 경계를 시킨다. 그러자 孫叔敖는 스스로 더 낮추고 더 겸손히 하고 더 베풀겠다고 답한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노자》의 이 구절을 인용한다.
역주9 此非以賤爲本耶 : 바그너는 帛書本에 근거하여 ‘是其以賤爲本也’로 바꾸었다. 의미상으로 차이가 없으므로 따르지는 않고 참고만 한다.
역주10 : 바그너는 傅奕本에 의거하여 ‘若’으로 바꾸고 있으나 의미 차이가 없어 참고만 한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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