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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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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은 죽간본竹簡本에는 없다. 이 은 주로 노자老子정치사상政治思想의 핵심을 드러낸 부분으로서, 《묵자墨子》 이래 능력 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다스리는 정치[상현尙賢]를 부정하고, 우민정치愚民政治를 옹호하는 것으로 무위無爲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자老子》의 문자文字를 그대로 풀이하는 주석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많은 주석자들은 능력과 역량에 맞게 관직과 직책이 주어진다면 상현尙賢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이해한다. 예컨대 하상공河上公은 세속에서 말하는 현명한 사람을 기용하는 것으로, 왕필王弼공자孔子가 말했던 소인小人을 배제하고 공정하게 능력에 맞는 관직과 직책을 부여한다면 사람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홍석주洪奭周는 능력과 직책이라는 명실名實이 일치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폐해라고 보며 오히려 상현尙賢치천하治天下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편 우민정책愚民政策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無知하고 무욕無慾하게 하라”는 구절에 대해 현대학자 묄러(Hans-Georg Moeller)는 노자老子의 이 문장文章이 현대 사회의 욕망 충족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만족의 기술을 주장한다고 보았다. “욕망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만족을 얻음으로써 충족시킬 수 있다. 일단 어떤 이가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람은 ‘자연적으로’ 먹고 싶은 욕망을 제거할 것이다. 사람들은 먹는 것을 통해 먹고 싶은 욕망을 간단히 제거한다. 사람들은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먹는다. 욕망은 사람이 만족할 만큼 먹지 않을 때에만 생겨난다. 아니면 다른 말로 욕망의 제거는 ‘만족의 정복(mastery)’ 혹은 ‘중단의 통제’의 결과이다. 도가道家의 성인들은 그들이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만족의 달인’들이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생겼다는 것은 만족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다는 징후이다. 오직 만족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욕망한다. 성왕들은 일반적인 만족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그들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다.”(《Daodejing》)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지 말아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한다.
하여 使民不爲盜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아 백성들이 도둑이 되지 않게 한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말아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한다.
’은 ‘능력[]’과 같다. ‘’은 이름을 아름답게 한다는 뜻이요, ‘’는 칭호를 높여준다는 뜻이다.
唯能是任이면 尙也曷爲
오로지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이 맡겨지면 숭상해서 무엇 하겠는가?
唯用是施하니 貴之
오로지 쓰일 만한 사람에게 관직이 주어진다면 귀하게 해서 무엇 하겠는가?
尙賢顯名 榮過其任이면 하며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고 그 이름을 현창하는 데 영화가 그 맡겨진 일보다 지나치면 아랫사람들이 다투어 〈윗사람과〉 경쟁하려 하고 능력을 비교하며 서로 이기려 들 것이다.
貴貨過用하니 貪者競趣
재화를 그 쓰임새보다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면 탐내는 사람들이 다투어 담을 넘어 상자를 샅샅이 뒤져 죽음을 무릅쓰고 도둑질하려 할 것이다.
故可欲不見이면 則心無所亂也니라
그래서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는다.
3.2 是以 聖人之治 虛其心하고 實其腹하며
이런 까닭에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은 비우게 하고 그 배는 채워주며,
[注]心懷智하고 而腹懷食이니
마음은 지혜를 품고 배는 음식을 담는다. 〈그 마음이〉 비어야 지혜가 들어차고 〈그 배가〉 차야 꾀가 없게 된다.
3.3 弱其志하고 强其骨하여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여
[注]이요 志生事以亂이라
뼈는 뜻이 없기에 골간이 되고, 뜻은 일을 벌여 어지럽게 만든다.
늘 백성들로 하여금 꾀가 없고 욕심도 없게 하고,
[注]
〈백성들의〉 타고난 참된 본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무릇 꾀 있다 하는 자들이 감히 무언가 하지 못하게 하니
[注]知者謂知爲也니라
‘꾀부린다[]’는 것은 〈자연에 거슬러〉 할 줄 안다는 것을 일컫는다.
3.6 爲無爲 則無不治니라
무위無爲를 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역주
역주1 不尙賢 使民不爭 : 저본, 河上公本에는 ‘尙’으로 되어 있으나, 帛書本에는 ‘上’으로 되어 있는데, 上과 尙은 通用하니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河上公에 따르면 ‘不尙’이란 “봉록을 주어 귀하게 하지 말고 관직을 주어 높이지 말라.[不貴之以祿 不尊之以官也]”는 뜻이다. ‘賢’은 ‘能’으로 王弼의 주석처럼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河上公은 “賢이란 세속에서 말하는 잘난 사람을 일컫는데, 이런 사람은 언변이 유창하고 문장이 화려하며 정도를 버리고 權道를 행하며 질박함을 버리고 꾸미기를 잘한다.[賢 謂世俗之賢 辯口明文 離道行權 去質爲文]”라고 보면서 ‘尙賢’을 반대한다. 그러나 王弼은 저마다의 능력과 쓰임에 맞게 일과 직책이 맡겨진다면 숭상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럴 경우 林希逸처럼 ‘尙’을 ‘자랑하다[矜]’의 뜻으로 보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풀이함으로써 관직에 등용되어 政事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洪奭周는 이를 名實의 문제로 보아 “다른 사람에게 정사를 맡겨 행할 때 그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스릴 수 없으니 어찌 현명함을 높이지 않겠는가? 무릇 천하를 다스리면서 현명한 자를 얻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이 실질을 구하려는 것이다.[夫爲政以人 非賢不乂 如之何其不尙賢也 盖治天下 而欲得賢者 唯其實之求]”라고 풀이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2 不貴難得之貨 :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河上公에 따르면 黃金이나 珠玉과 같은 ‘진귀한 보물[珍寶]’을 의미한다.
역주3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 저본에는 ‘民’이 누락되어 있으나, 다른 판본들에는 거의 ‘民’이 있다. 다만 帛書本과 河上公本에는 “使民不亂(백성들이 문란함에 빠지지 않게 하라.)”으로 되어 있어 ‘心’이 빠져 있는데 王弼의 경우 注文에 ‘心無所亂也’라 하였으니 ‘心’을 넣지 않을 수 없다. 樓宇烈과 바그너 모두 ‘民心’으로 보았기에 이를 따른다. 이와 달리 《淮南子》 〈道應訓〉에도 ‘民’이 없다. 이는 心亂의 주체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淮南子》 〈道應訓〉에서는 子佩와 莊王의 이야기를 통해 해설하는데, 이 故事는 《戰國策》 〈魏策〉, 《說苑》 〈正諫〉에도 보인다. 《淮南子》에서는 楚나라 令尹인 子佩가 성대한 酒宴을 준비하고 莊王을 초대하였는데 장왕은 가지 않았다. 자패가 그 까닭을 묻자 그 주연에 가게 되면 즐거움에 빠져 돌아올 생각조차 못하게 될까 두려워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고사를 소개하며 《노자》의 이 구절을 인용한다. 《회남자》가 군주에게 사치스러운 향락을 경계하는 의미로 풀이하는 반면, 《노자》는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귀중한 물건을 보이지 말라는 조언이다.
역주4 賢猶能也……則心無所亂也 : 經3.1에 대한 왕필의 해석은 역설적이다. 왕필은 먼저 賢이 능력[能]을 의미한다고 전제한다. 달리 말하자면 《노자》의 ‘尙賢’은 ‘능력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로 바꾸어 이해된다. 그리고 왜 《노자》가 ‘숭상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가에 대해서는 우회적인 논리로 회피한다. 즉, 《노자》의 언명은 ‘능력 있는 자를 숭상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혀진다. 다시 말해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지 말라’는 요구는 거꾸로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능력 있는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숭상하는 일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매우 교묘한 논리를 통해 《노자》의 원의와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왕필의 이러한 논리는 그가 몸담고 있었던 曹魏 정권의 모토였다. 왕필의 이러한 주석은 曹操의 다음 칙령에서 쉽게 이해된다. 조조는 建安 15년(210)에 적벽대전에서 孫權과 劉備의 연합군에게 참패를 맛본 시점으로부터 1년 남짓 되는 봄에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린다. “예로부터 천명을 받아 창업하거나 중흥을 이룩한 군주들은 하나같이 현인군자의 도움을 받아 그들과 더불어 천하를 다스렸다.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만약 그 인물됨이 반드시 청렴한 사람이어야만 등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齊나라 桓公이 어떻게 춘추의 霸者가 될 수 있었겠는가?……여러분은 나를 도와 밝게 살펴서 재능은 있으나 아직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주기 바란다. 오직 재능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라.[唯才是擧] 나는 그들을 중용하겠노라.”(《三國志 魏志 武帝紀》 ‘求賢令’) 왕필은 이와 같이 학술적으로나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노자》를 잇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노자》를 자유롭게 읽을 뿐이다. 이것은 《노자》와 일관된 흐름을 보이는 河上公注의 논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河上公注는 經3.4의 “使民不爲盜”에 대해, “윗사람의 교화가 淸靜을 지키게 되면 아랫사람 가운데 탐욕스러운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上化淸靜 下無貪人]”라고 함으로써 漢初 黃老學的 정치 이상을 잘 드러낸다. ‘청정’이란 역사 속에서 한초의 황로학적 이념을 대표하는 ‘淸靜無爲’를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河上公注에서 ‘常道’에 대해 “무위로써 정신을 기르고 無事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고 했던 언명은 바로 이와 같은 ‘청정무위’의 이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河上公注가 말하는 성인의 다스림으로서의 ‘治國’과 ‘治身’은 이와 같은 ‘청정무위’로 요약되는 황로학적 통치 이념이다. 河上公注의 성인은 황로학적 養生의 도를 실천하는 ‘제왕’이다. 이와 달리 왕필의 《老子注》의 성인은 오히려 《周易》의 大人이다. 이 대인은 자신의 사사로움을 없애고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국가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하는[物各得其所 則國之利器也](注36.2), 無私와 適用을 실천하는 성인이다. 그런데 《주역》 乾卦에 등장하는 대인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주역》 건괘에 등장하는 대인은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 九二의 대인과 九五의 대인이 서로 만나야 하는 운명이 지워져 있는 두 대인이다. 전통적으로 유가에서 찬양하는 가장 위대한 聖王이었던 堯에게는 舜이, 또 순에게는 禹가 ‘만나서 이로운’ 大人이다. 또한 공자가 가장 흠모하였던 인물이 왕이 아닌 재상 周公이었다는 점은 이러한 대인의 이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노자》 5장에는 천지를 풀무나 피리에 비유하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것은 곧 성인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앞서 왕필이 道, 天, 地, 王을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것으로서 네 가지 큰 것이라 규정한 것과 연관시키면, 왕 혹은 성인이란 모든 만물이 나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거대한 천지와 같은 존재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의 작용[用]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천지가 이름이듯이 왕 또한 이름인 것은 매한가지다. 이 거대한 인간 세상이 왕이라는 상징적 존재에 의해 대변되는 하나의 강역이라면 그 속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공존한다.
역주5 (何)[曷] : 저본에는 ‘何’로 되어 있으나, 樓宇烈과 바그너는 集注本과 《經典釋文》을 따라 ‘曷’로 고쳤다. ‘何’와 ‘曷’은 통한다.
역주6 (爲而常)[下奔而競] (校)[效]能相射 : 저본에는 ‘爲而常校’로 되어 있으나, 道藏集注本과 道藏集義本에 따라 바로잡는다. 陶鴻慶이 ‘唯能是任’으로부터 모두 4字의 句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각자의 능력과 자질에 맞는 일이 각자에게 주어지면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7 穿窬探篋 沒命而盜 : 王弼의 이 구절은 《論語》에서 小人을 두고 한 말을 염두에 둔 듯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겉모습은 매섭게 보이면서 속마음이 약한 것을 소인에 비유하자면 바로 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좀도둑과 같다.[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論語 陽貨》)
역주8 虛有智而實無知也 : 인간의 마음은 智가 깃드는 곳이고 배는 음식이 담기는 곳인데, 마음이 비워져야 지혜가 깃들고 배가 불러야 다른 생각을 품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바그너는 注10.4에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지혜로 하지 않는 것’은 ‘지혜를 버리는 것’과 같다.[治國無以智 猶棄智也]”는 문장을 근거로 ‘虛有智’는 ‘虛棄智’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板本에 따라 이 부분 뒤에 “마음이 비워지면 뜻이 약해진다.[心虛則志弱也]”는 注文이 있는 경우가 있으나 樓宇烈은 여러 판본에 이 구절이 보이지 않으며, 經3.3에 대한 陸德明의 《經典釋文》의 잘못이라 보았기에 注文에서는 생략하였지만 여기에 소개해둔다.
역주9 骨無(知)[志]以幹 : 저본에서는 ‘骨無’ 다음의 ‘志’가 ‘知’로 되어 있고 樓宇烈도 이를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바그너에 따르면 劉惟永集義本과 集注本을 근거로 ‘志’로 보았다. 제3장을 보면 經3.2 “虛其心 實其腹”과 經3.3 “弱其志 强其骨”에 대한 王弼의 注3.2와 注3.3은 구조적으로 유사한데, 이에 따르면 心을 부정하고 腹을 긍정하듯이 骨을 긍정하고 志를 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따라서 이를 따른다.
역주10 常使民無知無欲 : 帛書本에는 ‘常’이 ‘恒’으로 되어 있다. 이 문장은 통상 백성들을 無知하고 無欲하게 해야 한다는 老子의 愚民政策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역주11 守其眞也 : 王弼은 ‘타고난 참된 본성[眞]’을 지키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洪奭周는 《訂老》에서 王弼과 유사하게 “제각각 자신의 일에 부지런하고 제각각 자신의 역량에 따른다면 의식이 충족된다.[各勤其事 各服其力 則衣食足矣]”고 하면서 無知無欲한 상태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으로 풀이한다. 이는 王弼의 이해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역주12 使夫知者不敢爲也 : 저본, 河上公本은 이와 같으나 帛書本에는 “무릇 지혜로운 자가 감히 하지 않고 억지로 하지 않게 한다면 다스리지 못할 게 없다.[使夫知不敢弗爲而已 則無不治矣]”고 하였는데, 저본과 河上公本에서 無爲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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