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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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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其安 易持 其未兆 易謀
[注] 謀之無功之勢 故曰 易也라하니라
64.2 其脆 易泮이요 其微 易散일새
[注]雖失無入有 以其微脆之故 未足以興大功하니 故易也
此四者 皆說愼終也
不可以無之故而不持하고 不可以微之故而弗散也
無而弗持인댄 則生有焉하고 微而不散인댄 則生大焉이라
故慮終之患 如始之禍하면 則無敗事니라
64.3 爲之於未有하고
[注]謂其安未兆也
64.4 治之於未亂이라
[注]謂微脆也
64.5 合抱之木 生於毫末하며 九層之臺 起於累土하며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 敗之 執者 失之
[注]當以愼終除微하고 愼微除亂호대
而以施爲治之하고 形名執之하면 反生事原하여 巧辟滋作이니 故敗失也
64.6 是以聖人 無爲 故無敗 無執이라 故無失이라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니라
[注]不愼終也일새라
64.7 愼終如始 則無敗事
[注]好欲 雖微 爭尙爲之興하고 難得之貨 雖細이나 貪盜爲之起也하니라
64.8 學不學하고 復衆人之所過하니
[注]不學而能者 自然也 於不學者 過也
故學不學하고 以復衆人之所過하니라


처음 세 부분은 분명 앞의 제63장을 잇고 있다. 위험스러운 현상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예방과 초기의 반동이라는 점을 다시 지적하고 있다.
셋째 부분은 이와 같은 격률格率과 유사하게 이해되는 세 가지 대중적인 격언格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공통적이면서도 다소 다른 듯한 점이 있다. 이른바 아주 큰일을 할 때조차 작은 걸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초기의 징후를 잘 살피라는 경고라기보다는,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때조차도 큰일에 착수하라고 고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64장의 맥락에서 이러한 ‘대중적인’ 해석은 의도되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넷째 부분이 한 번 더 단언하고 있듯이 적극적 실천주의實踐主義와 거대 사업을 벌이는 것은 정말로 도가의 ‘무위無爲’의 전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은, ‘처음’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끝’에 대해서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진술하고 있다. 서민들은 종종 이러한 조심성이 없으며 오로지 성인만이 ‘끝내기의 대가大家(a master of endings)’라고 말하고 있다.
어떠한 행위에 있어서도 적시성適時性이 결정적이다. 나쁜 일이 보다 커지는 것을 반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일찍 조치를 취하는 것만큼이나 적절한 때에 과업을 완수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물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행동을 예방하고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행동해야만 한다면 적절한 때에 멈추기에 충분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전쟁 상황에서 처음의 성공 후에 승리감에 도취한 상태에서 계속 싸우는 것은 나중에 치명적인 패배로 이끌 수 있다. 모든 행동들은 나름의 적절한 시작과 끝이 있다.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놓친다면 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운행에 대해서도 또한 참이다. 계절이란 나름의 표준적인 길이를 갖는데 이것이 어긋나게 될 때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겨울의 혹한酷寒이 봄까지 지속되면 그해의 곡물 수확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적시성은 올바른 끝맺음만큼이나 매우 알맞은 시작에 의존한다. 순환하는 시간 진로에서 어떤 것의 끝맺음은 또한 새로운 어떤 것의 시작이다. 만약 사람이 그 끝을 놓치면 그 다음의 시작을 놓치는 것이다. 알맞은 끝맺음과 시작은 서로 의존한다.
편안할 때 유지하기 쉽고 아직 조짐이 드러나지 않은 때에 도모하기 쉬우며
편안할 때에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될 때에 망하는 것을 잊지 않으니, 이와 같은 일들은 아무런 공이 없는 형세에서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다.”고 했다.
무를 때 쪼개기 쉽고 작을 때 흐트러뜨리기 쉽기 때문에,
비록 를 잃고 로 들어갔으나 그것이 아직 작고 무른 까닭에 커다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그래서 쉬운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침을 신중히 함을 말한다.
없다고 해서 잡아두지 않아서는 안 되고 작다고 해서 흐트러뜨리지 않아서는 안 된다.
없다고 해서 잡아두지 않으면 있음[]이 생겨나게 되고, 작다고 해서 흐트러뜨리지 않으면 큰일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시작할 때 재앙을 걱정하듯 마칠 때의 우환을 걱정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아직 있지 않을 때 실행하고
편안할 때와 조짐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
아직 어지럽지 않을 때 다스린다.
작을 때와 무를 때를 말한다.
한 아름 되는 나무는 털끝만 한 〈작은 싹에서〉 자라나며 아홉 층이나 되는 누대는 바닥부터 쌓은 흙에서 세워지며 천 리의 먼 길은 발 아래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자연스러움에 거슬러〉 하는 자는 실패하고 〈형명形名으로〉 잡으려는 자는 잃는다.
마땅히 마침을 신중히 하여 작을 때에 제거하고 작은 것을 신중히 하여 어지러운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억지로 베풀어서 다스리고 형명形名으로 잡는다면 도리어 일의 근원을 낳아 교묘하고 편벽된 일이 더욱 일어난다. 그래서 실패하고 잃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억지로〉 함이 없으므로 패함이 없고, 잡음이 없으므로 잃음이 없다.
백성이 일을 할 때는 항상 일이 다 될 때쯤 잘못되게 마련이다.
〈잘못되는 것은〉 그 마침을 신중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을 신중히 하기를 시작할 때처럼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은 바라지 않기를 바라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좋아하고 바라는 것은 비록 작아도 다투고 숭상하는 〈풍조가〉 일어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비록 적어도 탐욕과 도둑이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배우지 않기를 배우고 뭇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을 돌이키는 것이니,
배우지 않았는데 능한 것은 자연이요, 〈이러한〉 배우지 않음을 넘어서는 것은 지나침이다.
그래서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뭇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능히 만물의 자연스러움을 도와 감히 〈자연스러움에 거슬러 억지로〉 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以其安不忘危 (持之)[其存]不忘亡 : 저본에는 ‘其存’이 ‘持之’로 되어 있으나 波多野太郞의 설에 따라 바로잡는다. 樓宇烈은 이 부분이 《周易》 〈繫辭傳 下〉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울까 하는 것은 제자리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하는 것은 생존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하는 것은 다스림을 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되어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子曰 危者安其位者也 亡者保其存者也 亂者有其治者也 是故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라고 한 데에서 가져온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바그너는 이 부분이 조금 다른 형태로 《老子指略》 4.1에도 “夫存者 不以存爲存 以其不忘亡也 安者 不以安爲安 以其不忘危也(보존되는 자는 보존됨을 보존됨으로 여기지 않으니 망함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한 자는 편안함을 편안함으로 여기지 않으니 위태로움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나오는데, 이에 근거할 때 ‘持之’는 ‘其存’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역주2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 《韓非子》 〈喩老〉에서는 子罕이 옥을 거절한 이야기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宋나라의 어느 시골 사람이 옥을 얻어 子罕에게 바쳤으나 자한은 받지 않는다. 시골 사람이 왜 귀한 사람이 귀한 보물을 받지 않느냐 묻자, 자한은 “당신은 옥을 보물로 여기지만 나는 당신의 옥을 받지 않는 것을 보물로 여긴다.[爾以玉爲寶 我以不受子玉爲寶]”고 답한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소개한 후 이것이 자한의 “옥을 바라지 않음[不欲玉]”이라 설명한다. 그리고는 《老子》의 이 문장을 인용한다.
역주3 (喩)[踰] : 저본에는 ‘喩’로 되어 있으나, 陶鴻慶의 설에 따라 ‘踰’로 바로잡는다.
역주4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 《韓非子》 〈喩老〉에서는 宋나라 사람과 列子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어느 宋나라 사람이 임금을 위해 3년이 걸려 상아로 나뭇잎을 만들었는데, 진짜 나뭇잎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공으로 송나라에서 俸祿을 받게 되자 이를 전해들은 列子가, “만일 天地가 3년 걸려서 나뭇잎 하나를 만든다면 식물 중에 잎 달린 나무 수가 적을 것이다.……한 사람의 힘만으로 일하면 后稷이라 해도 부족하고 자연을 따른다면 종들조차 여유 있게 된다.[使天地三年而成一葉 則物之有葉者寡矣……以一人之力 則後稷不足 隨自然 則臧獲有餘]”고 한 말을 소개하고, 《한비자》는 《노자》의 이 문장을 인용한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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