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구 : 이 구절에 대해서는 조선조 광해군 때의 학자인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채수(蔡壽)에게 무일(無逸)이라는 손자가 있었는데, 나이 겨우 대여섯살일 때, 채수가 눈이오는 가운데 무일을 등에 업고 가면서 한 구절을 읊었다. “강아지 달려가니 매화 꽃이 떨어지고〔狗走梅花落〕” 말이 떨어지자 마자 무일이 “닭이 걸어가니 댓닢이 이루어지네.〔鷄行竹葉成〕” 라고 대를 채웠다고 한다. 함박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을 때 눈 위에 강아지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이 꼭 매화꽃을 그려놓은 것 같고, 닭의 발자국이 대나무 잎을 그려놓은 것 같음을 말한 것이다. ※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조선의 문신, 자(字)는 응문(應文), 호(號)는 어우당(於于堂) 간재(艮齋) 묵호자(黙好子),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2년 진사(進士)가 되고, 158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하였으며, 1593년 문학(文學)이 되었다. 문장이 뛰어났으나 성품이 경박하여 스승의 책망을 받고 절교당하자 대북파(大北派)와 교유하여 중북(中北)의 영수(領袖)수가 되고 성혼이 죽은뒤 그를 모독하는 글을 써서 비난받았다. 선조 말년 황해도 관찰사, 좌승지, 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1612년 예조참판이 되고, 이어 이조참판에 전임했다. 폐모론(廢母論) 때 이이첨과 대립했으나 이에 가담하지 않아 1623년 인조반정 때 화를 면했으나 유응시(柳應時)의 고변(告變)으로 기자헌(奇自獻) 유경종(柳敬宗) 등이 반란을 일으킨 이괄(李适)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하여 체포되자 양주(楊洲)의 서산(西山)에 도피했다가 잡혔다. 이원익(李元翼) 김상헌(金尙憲)등의 문초에 모반사실을 부인하고, 앞서지은 상부사(孀婦詞)를 들어 인조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으나 마침내 처형되었다. 저서로는 《어우야담(於于野談)》《어우집(於于集)》등이 있다. 3, 4 구 : 비온 뒤에 땅을 비집고 뾰족이 나오는 죽순은 마치 송아지의 머리에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뿔과 같고, 고사리 순이 오그라진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의 주먹과 같다. 이 구절은 《백련초해》의 다음 구절에서 인용한 듯하다. 죽순초생황독각竹筍初生黃犢角 : 갖나온 죽순은 누런 송아지 뿔이요 궐아이작소아권蕨芽已作小兒拳 : 벌써 팬 고사리순 어린아이 주먹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