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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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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전추밀田樞密에게 올린 글
此文骨子 原自于襄陽書中來 而氣特雄이라
이 글의 골자는 원래 한유韓愈가 쓴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우양양于襄陽에게 준 편지)〉에서 유래되었으나 기세가 특히 우뚝하다.
天之 夫豈偶然哉
하늘이 나에게 자질資質을 부여해준 까닭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堯不得以與하고 舜不得以與하며不得奪諸舜하니 發於其心하고 出於其言하며 見於其事하여 確乎其不可易也니라
임금도 자질을 단주丹朱에게 부여할 수가 없었고, 임금도 자질을 상균商均에게 부여할 수가 없었으며, 고수瞽瞍는 또한 그것을 으로부터 뺏을 수가 없었으니, 그것은 그의 마음을 통하여 발휘되고 그의 말을 통하여 표현되고 그의 일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어서, 확고하여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聖人不得以與人하고 父不得奪諸其子하니 於此見天之所以與我者 不偶然也
성인聖人도 남에게 물려줄 수가 없고, 아버지도 그의 아들로부터 빼앗을 수가 없는 것이니, 여기에서 하늘이 나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夫其所以與我者 必有以用我也 我知之로되 不得行之하고 이면 天固用之어늘 我實置之
자질을 나에게 부여해준 까닭은 반드시 나를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니, 내가 그것을 알고서도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일러주지 못한다면, 하늘은 진실로 쓰려 하는데도 내가 실은 그것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其名曰棄天이라
이것을 ‘하늘을 버리는 것[기천棄天]’이라 부릅니다.
自卑以求幸其言하며 自小以求用其道 天之所以與我者何如인대 而我如此也
스스로 비하卑下하면서 그의 말이 사랑받기를 바라며, 스스로 작게 여기면서 그의 가 쓰이기를 바라면, 하늘이 나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까?
其名曰褻天이라
그것을 ‘하늘을 모독冒瀆하는 것[설천褻天]’이라 부릅니다.
棄天 我之罪也 褻天 亦我之罪也 不棄不褻而人不我用이면 不我用之罪也 其名曰逆天이라
‘하늘을 버리는 것’도 나의 죄이고, ‘하늘을 모독하는 것’도 나의 죄이나, 버리지도 않고 모독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나를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죄이니, 이것을 ‘하늘을 거역拒逆하는 것[역천逆天]’이라 부릅니다.
然則棄天褻天者 其責在我 逆天者 其責在人이니 在我者 吾將盡吾力之所能爲者하야 以塞夫天之所以與我之意하고 而求免夫天下後世之譏 在人者 吾何知焉이리오
그러니 ‘하늘을 버리는 것’과 ‘하늘을 모독하는 것’은 그 책임이 나에게 있고, ‘하늘을 거역하는 것’은 그 책임이 남에게 있는 것이니,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은 내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바를 다함으로써 하늘이 나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뜻에 보답하고, 온 천하와 후세 사람들의 비난을 면하려 하면 되나, 남에게 있는 일은 내가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吾求免夫一身之責之不暇어늘 而暇爲人憂乎哉
내가 일신一身의 책임을 면하려 하는 데에도 겨를이 없거늘 어느 겨를에 남을 위하여 걱정하겠습니까?
夫固知夫責之所在也니라
공자孔子맹자孟子께서 불우하실 때에는 길에서 늙어가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게을리 하거나 성내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기운을 잃지 않으셨던 것은 진실로 그 책임이 있는 곳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之徒 不足相與以有爲也 我亦知之矣 抑將盡吾心焉耳
위 영공衛 靈公노 애공魯 哀公제 선왕齊 宣王양 혜왕梁 惠王의 무리들은 서로 함께 큰 일을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공자孔子맹자孟子) 또한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나의 마음을 다할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吾心之不盡이면 吾恐天下後世無以責夫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 而彼亦將有以辭其責也
나의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는 천하와 후세 사람들이 위 영공, 노 애공, 제 선왕, 양 혜왕 등을 책망하지 못할까 두렵고, 그들도 그 책임을 변명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然則孔子孟軻之目 將不瞑於地下矣리라
그렇게 되었다면 공자와 맹자께서는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夫聖人賢人之用心也 固如此하니 如此而生하고 如此而死하고 如此而貧賤하고 如此而富貴하며 升而爲天하고 沈而爲淵하고 流而爲川하고 止而爲山 彼不預吾事 吾事畢矣
성인聖人현인賢人의 마음 씀은 진실로 이와 같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이와 같이 하면서 죽어가고, 이와 같이 하면서 빈천貧賤하게 지내기도 하고, 이와 같이 하면서 부귀富貴를 누리기도 하며, 올라가서는 하늘처럼 되고, 가라앉으면 연못처럼 되고, 흐르면 냇물처럼 되고, 멈추면 산처럼 되나, 그들이 나의 일을 간섭하지 않으면, 나의 일은 그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切(竊)怪夫後之賢者 不能自處其身也하여 饑寒困窮之不勝而號于人이라
제가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후세의 현명賢明한 사람들이 그 스스로 처신處身하지 못하여 굶주림과 추위와 곤궁함을 이겨내지 못해 남에게 소리쳐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嗚呼 使吾誠死於饑寒困窮耶 則天下後世之責리니 其身之責 不自任以爲憂하고 而吾取而加之吾身이면 不亦過乎
아아! 내가 진실로 굶주림과 추위와 곤궁으로 죽게 된다면 천하와 후세 사람들이 책임을 추궁할 대상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니, 저편에서 그들 자신들의 책임을 스스로 책임질 걱정을 하도록 하지 아니하고, 내가 그 책임을 취하여 내 자신에게 가한다면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洵之不肖 何敢亦自列于聖賢이리오
지금 저와 같은 못난 사람이 어찌 감히 또한 멋대로 성현聖賢의 대열에 들겠습니까?
이나 其心 亦有所甚不自輕者
그러나 저의 마음에는 매우 스스로를 가벼이 하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何則 天下之學者 孰不欲一蹴而造聖人之域이리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하의 학자學者들이 어느 누군들 한꺼번에 성인聖人경지境地에 이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나 及其不成也하여는 求一言之幾乎道 而不可得也
그러나 그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을 구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千金之子 可以貧人하고 可以富人이나 非天之所與 雖以貧人富人之權이라도 求一言之幾乎道 不可得也니이다
천금千金의 부잣집 아들은 남을 가난하게 할 수도 있고 남을 부유하게 할 수도 있지만, 하늘이 부여하지 않는다면 비록 남을 가난하게 하거나 부유하게 하는 권세權勢를 가졌다 할지라도,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은 구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天子之宰相 可以生人하고 可以殺人이나 非天之所與 雖以生人殺人之權이라도 求一言之幾乎道 不可得也니이다
천자天子재상宰相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하늘이 부여하지 않는다면 비록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 할지라도,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은 구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今洵用力于聖人賢人之術 亦已久矣
지금 저는 성인과 현인의 술법術法에 힘을 써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其言語其文章 雖不識其果可以有用于今而傳於後與否
저의 말과 저의 문장文章을 비록 지금 세상에 유용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후세에 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獨怪夫得之之不勞 方其致思于心也 若或啓之하고 得之心而書之紙也 하니
그러나 홀로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들을 터득하는 데에 수고를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사색思索을 하면 마치 누가 계도啓導해주는 듯하며, 마음속에 그것을 터득하여 그것을 종이에 쓰면 마치 누가 도와주는 듯한 것입니다.
夫豈無一言之幾于道者乎
그러니 어찌 에 가까운 것이 한마디도 없겠습니까?
千金之子 天子之宰相 求而不得者 一旦在己
천금의 부잣집 아들과 천자의 재상이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제게 있습니다.
其心得以自負하여 或者天其亦有以與我也
그러므로 제 마음에 그것을 지녔음을 자부하며, 하늘이 그것을 저에게 부여해준 까닭이 또한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집사執事익주益州에서 뵈었으나, 그때의 글은 얕고 좁아서 가소로웠습니다.
饑寒困窮 亂其心하고 而聲律記問 又從而破壞其體하니 不足觀也已
굶주림과 추위와 곤궁이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글의 성률聲律과 잡된 지식智識이 또한 뒤따라 그 몸을 파괴하고 있어서 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數年來 退居山野하여 自分永棄하고 與世俗日疏闊이라
이미 몇 년 이래로 산야山野에 물러나 살면서 영영 버려짐을 자신의 분수로 여기며 세속世俗과 날로 멀리 떨어져갔습니다.
得以大肆其力于文章하니 之淸深 之溫醇 之雄剛 之簡切 投之所向이면 無不如意
그래서 온 정력精力문장文章에 크게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경詩經》 작자들의 여유와 자유스러움, 《초사楚辭》 작자들의 맑음과 깊음, 맹자孟子한유韓愈의 온화함과 진실함,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의 빼어남과 강함, 손자孫子오자吳子의 간결함과 절실함에 향하려 하기만 하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게 되었습니다.
嘗試以爲 得聖人之經이나 其失也流而爲迂 聖人之權이나 其失也流而爲詐
일찍부터 생각하기에 나라 동중서董仲舒성인聖人경전經典을 터득했었지만 그의 잘못은 사실과 멀게 흘러간 것이요, 조조晁錯성인聖人임기응변臨機應變을 터득하였지만 그의 잘못은 삐뚤어진 길로 흘러간 것입니다.
有二子之才而不流者 其惟인저
이 두 사람의 재능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흐르지 않은 이는 가의賈誼라 할 것입니다.
惜乎 今之世 愚未見其人也
애석하게도 지금 세상에서 저는 그러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두 편의 책론策論을 지어 〈심세審勢〉‧〈심적審敵〉이라 제목을 붙였고, 글 열 편을 지어 〈권서權書〉라 하였습니다.
洵有山田一하니 非凶歲 可以無饑 力耕而節用이면 亦足以自老
제게는 산속의 밭 1이 있으니, 흉년凶年만 아니라면 굶주리지 않을 수 있고, 힘써 농사지으며 쓰는 것을 절약節約하면 스스로 늙기까지 살기에도 족할 것입니다.
不肖之身 不足惜이나 而天之所與者 不忍棄하고 且不敢褻也
이 못난 자신은 아까울 게 없으나, 하늘이 부여해준 것을 차마 버릴 수도 없고 또한 감히 더럽힐 수도 없습니다.
執事之名 滿天下하니 天下之士 用與不用 在執事
집사執事명성名聲은 천하에 가득 찼으니, 천하 선비들을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은 집사께 달려 있습니다.
敢以所謂策二道 權書十篇 爲獻하노이다
그러므로 감히 이른바 책론策論 2편과 〈권서權書〉 10편을 바치는 바입니다.
平生之文 遠不可多致 近以獻內翰歐陽公하니 度執事與之朝夕相從하야 議天下之事하니 則斯文也其亦庶乎니이다
평소에 지은 글은 멀어서 많이 보내드릴 수가 없으나, 〈홍범론洪範論〉과 〈사론史論〉 10편은 근래 내한內翰 구양수歐陽脩 공에게 바쳤으니, 생각건대 집사께서는 그분과 함께 조석朝夕으로 어울리시어 천하의 일을 의논하고 계실 것이니, 그 글들도 집사 앞에 펴지게 될 것입니다.
若夫言之可用 與其夫身之可貴與否者 執事事也 執事責也 於洵何有哉
그 말들이 쓸 만한 것인지, 또 그 몸을 귀하게 해줄 만한지 아닌지는 집사께서 결정하실 일이며 집사의 책임이기도 하니, 제가 어찌 관여할 일이겠습니까?
荊川曰 此書 本欲求知 却說士當自重이면 便不放倒架子
형천荊川(당순지唐順之)은 “이 글은 본래 알아주기를 구하고자 하면서도 오히려 선비가 자중自重하면 결구結構가 무너지지 않음을 말하였다.
而文字峻絶하고 豪邁不羈
문자文字준절峻絶하고 호방豪放하여 얽매이지 않았다.”라 하였다.
역주
역주1 上田樞密書 : 田樞密은 田況(1003~1061)으로 자는 元均이며, 그 선조는 冀州 信都(지금의 河北 冀縣) 사람이다. 이 글에 ‘有洪範論史論十篇 近以獻內翰歐陽公’이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嘉祐 원년(1056)에 지어진 것 같다. 이때 田況은 樞密院副使를 지내고 있었으므로 田樞密이라 하였다. 〈上歐陽內翰書〉와 같이 자기의 포부와 학문 및 문장 수양을 구구히 설명하면서 취직운동을 한 편지[干謁文]이다. 蘇洵은 고향인 四川省으로부터 서울로 멀리 떠나와 이러한 글들을 要路에 보내며 취직운동을 했던 것이다.
역주2 所以與我者 : 나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을 뜻한다. 여기의 자질은 특히 학문과 글의 재주를 가리킨다.
역주3 丹朱 : 堯임금의 아들로, 아둔하여 요임금은 임금 자리를 舜에게 물려주었다.
역주4 商均 : 舜임금의 아들로, 역시 어리석어 순임금은 임금 자리를 禹에게 물려주었다.
역주5 瞽瞍 : 舜임금의 아버지로, 순임금이 어렸을 적에 繼母와 함께 虐待한 것으로 유명하다. 《史記》 〈五帝本紀〉에 “舜의 부친 瞽瞍는 盲人이었다. 舜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瞽瞍는 다시 아내를 맞아들여 象을 낳았다. 象은 교만하였고 瞽瞍는 후처가 낳은 아들을 사랑하여 늘 舜을 죽이려고 하였다.……舜의 아비 瞽瞍는 무도했고 어미는 험담을 잘하였으며 象은 교만하여 모두 舜을 죽이려고 하였다. 舜은 언제나 恭遜하여 자식 된 도리를 잃지 않았다. 아우에게는 형의 도리를, 부모에게는 孝道를 다하여 그를 죽이려 해도 죽일 수가 없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역주6 不以告人 :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자질을 근거로 사람들에게 얘기해주지 않다. 곧 朝廷에 나가 政治에 참여하거나, 물러나 젊은이들을 가르치지 않음을 뜻한다.
역주7 孔子孟軻之不遇……夫固知夫責之所在也 : 《孔子家語》 〈在厄〉의 기록에 의하면, 孔子는 陳나라와 蔡나라에서 곤액을 당하였는데도 더욱 慷慨하여 講誦하였고 絃歌가 쇠하지 않았다. 孔子가 말하기를 “〈때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함은 때가 있고, 賢明하고 不肖함은 才能에 있다. 군자가 널리 배우고 깊이 꾀하여도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거늘 어찌 다만 나뿐이겠는가?”라 하였고, 顔回도 “세상이 나를 쓰지 않는 것은 통치자가 못나서이니 부자께서 어찌 근심하시겠는가!”라 하였다. 또한 《孟子》 〈公孫丑 下〉의 기록에 의하면, 孟子가 齊나라에 갔다가 쓰이지 않아 느릿느릿 떠나는데 尹士가 기뻐하지 않자 孟子가 말하기를 “내 어찌 이 小丈夫와 같이 군주에게 간하다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노하여 씩씩거리며 그 얼굴빛에 〈노기를〉 나타내어, 떠나면 하루 종일 갈 수 있는 힘을 다한 뒤에 유숙하는 것처럼 하겠는가?[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 而不受則怒 悻悻然見於其面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라 하였다. 이것이 모두 孔子와 孟子가 때를 만나지 못하여도 지치거나 성을 내지 않았으며, 부끄러워하거나 그만두지 않았던 예이다.
역주8 老於道途 : 韓愈의 〈進學解〉에서 나온 말로 “옛날 孟軻는 辯論을 좋아하시어 孔子의 道가 이 때문에 밝아졌으나 수레바퀴 자국이 온 천하를 돌다가 끝내 길에서 늙으셨다.[昔者孟軻好辯 孔道以明 轍環天下 卒老于行]”라 하였다.
역주9 不倦不慍不怍不沮者 : 不倦은 《論語》 〈述而〉에 보이니 “묵묵히 기억하고 배우면서 싫어하지 않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라 하였다. 不慍은 《論語》 〈學而〉에 보이니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면 또한 君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 하였다. 不怍은 《孟子》 〈盡心 上〉에 보이는데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에게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英才를 얻어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 하였다.
역주10 衛靈魯哀齊宣梁惠 : 衛 靈公의 이름은 元으로 春秋時代 衛나라의 임금이며 재위기간은 42년이다. 衛 靈公은 일찍이 孔子에게 陳法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는데 孔子는 배우지를 못했다고 대답하고 다음날 떠났다. 《論語 衛靈公》 魯 哀公은 이름이 蔣으로 春秋時代 魯나라의 임금이다. 孔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물었는데, 孔子는 “정치는 신하를 가려 뽑는 데 있다.”고 대답하였는데 魯나라는 등용하여 쓸 수가 없었다. 《史記 孔子世家》 齊 宣王은 이름이 辟彊이며, 戰國時代 齊나라의 임금으로 재위기간은 19년이었다. 梁 惠王은 戰國時代 魏나라 惠王으로 이름은 罌이며, 재위기간은 36년이다. 孟子는 전후로 齊나라와 魏나라로 갔으나 등용될 수 없었으며, 이는 《史記》 〈孟子荀卿列傳〉에 보인다. 蘇洵은 이 네 사람을 들어 비록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孔子와 孟子는 또한 그들에게 유세하여 그 마음을 다하기를 구하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역주11 必有在 : 반드시 있는 곳이 있다. 반드시 자기가 가난하게 살다 죽은 책임을 추궁할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역주12 : 책임을 질 사람이다. 자기를 任用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역주13 若或相之 : 어떤 존재가 자기 글 쓰는 것을 도와주듯 슬슬 잘 쓰인다는 뜻이다.
역주14 曩者 見執事于益州 : 益州는 지금 四川省의 고을 이름으로, 蘇洵은 그 고장 사람이었다. 《續資治通鑑》 권51 皇祐 2년(1050)의 기록에 의하면 “知益州 田況을 불러 御史中丞을 맡게 하였다.……田況이 蜀에 있은 지 2년이 지났다.”라 하였으니, 田況이 知益州가 된 것이 慶曆 8년(1048)에서 皇祐 2년 사이의 일임을 알 수 있으며, 蘇洵이 益州에서 田況을 만난 것도 이때일 것이다.
역주15 當時之文……得以大肆其力于文章 : 聲律은 文章을 짓는 데 있어서의 글자들의 聲調와 音律에 관한 規範으로, 문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을 뜻한다. 歐陽脩의 〈古霸州文安縣主簿蘇君墓誌銘〉에, 蘇洵은 茂才異等科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지은 글 수백 편을 모아 태우고 더욱더 문을 닫고 글을 읽으며 절필하여 文辭를 짓지 않은 것이 5, 6년이었으며, 六經과 百家의 學說을 깊이 연구하여 고금의 治亂과 成敗, 聖賢의 窮達과 出處의 때를 고찰하였으며, 그 정수를 얻고 함양하고 이를 축적하였으며, 자제하면서 글을 짓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자 개연히 ‘됐다!’라 하고는 이로부터 붓을 대어 잠깐 만에 수천 言을 써내었다. 마음껏 써내고 자유롭게 드나들었는데 반드시 깊고 정미로운 경지에 이르러야 그만두었다.”라 하였다. 張方平의 〈文安先生墓表〉와 曾鞏의 〈蘇明允哀辭〉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역주16 詩人之優柔 : 詩人은 《詩經》의 작자를 가리킨다. 優柔는 여유 있고 자유스러운 것, 한가하고 自得한 모양이다.
역주17 騷人 : 《楚辭》의 작자, 서정적인 賦의 작자를 이른다.
역주18 孟韓 : 孟子와 韓愈(768~824)이다. 韓愈는 자가 退之이며 河南 河陽(지금의 河南 孟縣 남쪽) 사람으로 唐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韓昌黎集》이 있다.
역주19 遷固 : 《史記》의 작자인 司馬遷과 《漢書》의 작자인 班固이다.
역주20 孫吳 : 전국시대 兵家인 孫臏과 吳起이다. 각각 兵書로 《孫子》와 《吳子》를 남기고 있다.
역주21 董生 : 漢 武帝 때의 유학자인 董仲舒로, 《春秋繁露》의 작자이다.
역주22 晁錯 : B.C. 200~B.C. 150. 穎川 사람으로, 漢 文帝 때의 학자이자 냉혹한 정치가로 유명하다. 重農抑商과 백성을 모아 변방을 채우고, 外藩을 삭탈하여 중앙정권을 공고히 하자고 주장하여 景帝에게 받아들여졌다. 吳楚 7國의 난은 晁錯를 죽일 것을 명분으로 일어났는데, 그 영향으로 사형당하였다.
역주23 賈生 : 漢나라 초기의 賈誼이다. 文帝 때의 박사였고, 賦 작가로 유명하다.
역주24 作策二道曰 審勢審敵 : 策은 곧 對策‧策論을 말한다. 임금이 政策에 관하여 질문한 策問에 대한 응답형식으로 쓰인 글이다. 二道는 두 편이라는 뜻으로, ‘道’는 策論을 세는 단위이다. 〈審勢〉‧〈審敵〉의 두 편은 모두 賈誼가 지은 책이름을 모범으로 하여 지은 것이다.
역주25 作書十篇曰 權書 : 글 열 편은 〈心術〉‧〈法術〉‧〈攻守〉‧〈强弱〉‧〈用間〉의 5편과, 〈高祖論〉‧〈項籍論〉‧〈子貢論〉‧〈孫武論〉‧〈六國論〉의 5편이다. 權書는 臨機應變에 관한 글이란 뜻인데 兵法에 관련된 내용이다. 여기서 權은 원래 저울의 추라는 뜻인데, 저울의 눈금에 맞추기 위해서는 적당한 추를 골라서 맞추어 끼워야 한다. 그래서 이 말이 임기응변이라는 뜻으로 바뀌어 쓰인다.
역주26 : 넓이의 단 위로, 대략 1頃은 8헥타르이다.
역주27 洪範論史論十篇 : 〈上歐陽內翰書〉에서도 작자가 歐陽脩에게 보냈다고 한 글이다.
역주28 得陳於前 : 執事 앞에 벌여지게 될 것이다. 곧 집사 앞에 펼쳐져서 읽어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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