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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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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文有烟波
而以爲明하고 以易爲幽 謂聖人所以用其機權以持天下之心이니 過矣
聖人之道 得禮而信하고 得易而尊이라
信之而不可廢하고 尊之而不敢廢
聖人之道 所以不廢者
生民之初 無貴賤하고 無尊卑하고 無長幼하며 不耕而不饑하고 不蠶而不寒하니 其民逸이라
蠶而後衣하고 耕而後食하니 率天下而勞之
一聖人之力 固非足以勝天下之民之衆이라
而其所以能奪其樂而易之以其所苦하고 而天下之民亦遂肯棄逸而卽勞하여 欣然戴之以爲君師하여 而遵蹈其法制者하니 禮則使然也
有貴賤 有尊卑 有長幼 則人不相殺하며 食吾之所耕하고 而衣吾之所蠶이면 則鳥獸與人不相食이라하니라
人之好生也 甚於逸하고 而惡死也 甚於勞한대 聖人奪其逸死하고 而與之勞生이라
雖三尺竪子라도 知所趨避矣
其道之所以信於天下而不可廢者 禮爲之明也
雖然이나 明則易達이요 易達則褻이며 褻則易廢
觀天地之象以爲爻하고 通陰陽之變以爲卦하며 考鬼神之情以爲辭
探之茫茫하고 索之冥冥하며 童而習之이어늘 白首而不得其源이라
天下視聖人 如神之幽하고 如天之高하며 尊其人하니 而其敎亦隨而尊이니라
其道之所以尊於天下而不敢廢者 易爲之幽也
凡人之所以見信者 以其中 無所不可測者也 人之所以獲尊者 以其中 有所不可窺者也
是以 禮無所不可測이며 而易有所不可窺 故天下之人 信聖人之道而尊之
不然이면 則易者 豈聖人 務爲新奇秘怪以夸後世耶인저
而卜者 聽乎天而人不預焉者也
筮者 決之天而營之人者也
漫而無理者也 灼荊而鑽之하여 方功義弓이니 惟其所爲 而人何預焉이리오
聖人曰 是 純乎天技耳라하니라
技何所施吾敎 於是取筮
夫筮之所以或爲陽 或爲陰者 必自分而爲二
分而爲二 吾不知其爲幾而分之也 天也
聖人曰 是天人參焉이니 道也 道有所施吾敎矣
於是因而作易하여 以神天下之耳目이니 而其道 遂尊而不廢
聖人用其機權以持天下之心하여 而濟其道於無窮也


01. 《》에 대한 논문
문장文章기복起伏이 있다.
그리고 를 밝다고 생각하고 《》을 은밀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성인聖人이 그 기지機智권변權變을 써서 천하天下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것이라 하였는데 지나치다.
성인聖人를 얻으면서 믿게 되었고, 《》을 얻으면서 높아졌다.
믿는지라 폐할 수 없게 되었고, 높은지라 감히 폐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가 폐하여지지 않는 까닭은 가 그것을 밝게 나타나게 하였고, 《》이 그것을 은밀하게 감추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이 생겨난 처음에는 귀천貴賤도 없었고 존비尊卑도 없었고 장유長幼도 없었으며, 밭을 갈지 않아도 주리지 않았고 누에를 치지 않아도 춥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백성들은 편안하였다.
백성들이 수고하는 것을 괴로이 여기고 편안함을 즐기는 것은 물이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성인聖人이 홀로 그 군신君臣이 되어 천하天下로 하여금 한 이가 천한 자를 부리게 하고, 부자父子가 되어 천하로 하여금 높은 이가 낮은 이를 부리게 하며, 형제兄弟가 되어 천하로 하여금 연장자年長者연소자年少者를 부리게 하였다.
누에를 치고 난 다음에 입고 밭을 갈고 난 다음에 먹게 하니 온 천하가 수고롭게 되었다.
성인聖人의 힘은 실로 천하 백성의 무리를 이기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그 즐거움을 빼앗아 그 괴로움으로 바꿀 수 있었고, 천하의 백성들 또한 마침내 기꺼이 편안함을 버리고 수고로움으로 나아가 흔연히 추대하여 임금과 스승으로 삼고 그 법제法制를 준수하여 따르니, 이는 가 그렇게 한 것이다.
성인聖人이 처음 를 만들 때 말하기를 “천하天下귀천貴賤이 없고 존비尊卑가 없으며 장유長幼가 없으니 이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았고, 밭을 갈지 않고 조수鳥獸의 고기를 먹으며 누에를 치지 않고 조수鳥獸의 가죽을 입으니 이 때문에 조수鳥獸와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귀천貴賤이 있고 존비尊卑가 있으며 장유長幼가 있으면 사람들은 서로 죽이지 않으며, 내가 간 것을 먹고 내가 누에 친 것을 입으면 조수鳥獸와 사람이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편안함보다 심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수고하는 것보다 심한데, 성인聖人이 그 편안함과 죽음을 빼앗고 수고로움과 삶을 주었다.
이는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이익利益이 되니 쫓고, 손해損害가 되니 회피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 천하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서 폐할 수 없게 된 것은 가 그것을 밝게 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하나 밝으면 쉽게 이르고 쉽게 이르면 친압親狎해지며 친압해지면 쉽게 폐하여지니, 성인聖人은 그 가 폐하여져서 천하가 다시 어지럽게 될까 두려워하였고, 그런 다음에 《》을 만들었다.
천지天地을 살펴서 를 만들고, 음양陰陽변화變化에 통달하여 를 만들었으며, 귀신鬼神을 상고하여 를 만들었다.
아득히 더듬고 정성껏 찾았으며, 어려서 그것을 익혔는데 흰머리가 되도록 그 기원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서 성인聖人을 보기를 귀신鬼神이 그윽한 것처럼 하고 하늘이 높은 것처럼 하며, 그 사람을 높이니 그 가르침 또한 따라서 높아졌다.
그러므로 그 도가 천하 사람에게 존숭尊崇을 받아서 감히 폐할 수 없게 된 것은 《》이 그윽하게 했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남에게 신뢰받는 것은 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사람들에게 높임을 얻는 것은 그 속에 엿볼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없으며, 《》에는 엿볼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성인聖人를 믿고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은 성인聖人이 힘써 신기新奇하고 괴이怪異한 것을 만들어 후세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리라. 성인聖人천하天下의 지극히 신령神靈스런 것에 연유하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을 베풀 길이 없다.
복서卜筮라는 것은 천하天下에서 지극히 신령한 것이다.
그래서 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들려주는 것으로 사람이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은 하늘이 결정하지만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귀갑龜甲의 표면은 질펀하면서도 무늬가 없는 것이니 가시나무를 태우고 구멍을 뚫어 방조方兆, 공조功兆, 의조義兆, 궁조弓兆가 나타나니, 오직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일에 사람이 어찌 관여하겠는가?
성인聖人이 말하기를 “이는 순수하게 하늘의 기술일 따름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기술이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푸는가? 이에 를 취하였다.
대저 가 혹은 이 되고 혹은 이 되는 것은 반드시 자연스럽게 나누어져서 둘이 되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를 걸 때 나는 그것이 하나라는 것을 알면서 걸고, 넷으로 셀 때 나는 그것이 넷이라는 것을 알면서 세고, 남은 수를 에 돌릴 때 나는 그것이 하나이고, 둘이고, 셋이고, 넷이라는 것을 알면서 돌리니, 〈이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나누어 둘이 될 때 나는 그것이 얼마인지 모르면서 나누니, 〈이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다.
성인聖人이 말하기를 “여기에 하늘과 사람이 참여하니 이며, 에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바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이를 계기로 《》을 지어 천하天下이목耳目을 신령스럽게 하였으니, 그 도가 마침내 높아져 폐하여지지 않는다.
이는 성인聖人이 그 기지機智권변權變을 써서 천하天下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 무궁無窮함에서 그 를 이룬 것이다.


역주
역주1 易論 : 이 이하 6편은 모두 〈六經論〉에 속하는 글이다. 至和(1055) 2년에 雷簡夫는 蘇洵이 쓴 〈上歐陽內翰書〉를 처음 보고 蘇洵을 칭찬하여 “일찍이 〈六經〉과 〈洪範〉 등의 論을 지었다.”라 하였으므로, 이 일련의 문장들 또한 皇祐 3(1051), 4년에서 嘉祐 원년(1056) 봄 사이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역주2 : 여기서 禮는 특정한 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禮記》, 《周禮》, 《儀禮》 등의 禮書를 두루 가리킨다.
역주3 禮爲之明 而易爲之幽也 : 明은 神靈을 섬기고 尊卑를 변별함을 밝히는 것이다. 〈禮記正義序〉에서는 “禮가 아니면 天地의 神을 섬기고 君臣과 長幼의 지위를 변별할 도리가 없다.”라 하였다. 幽는 神明에게 점을 치는 것으로 숨겨져 보기가 어렵다. 《周易》 說卦에서는 “옛날 聖人이 易을 지을 때 가만히 神明을 도와 蓍草를 내었다.”라 하였다.
역주4 民之苦勞而樂逸也 若水之走下 : 《孟子》 〈離婁 上〉에서는 “백성이 인으로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며 짐승이 들로 달아나는 것과 같다.[民之歸仁也 猶水之就下 獸之走壙也]”고 하였으며, 또 《孟子》 〈告子 上〉에서는 “人性이 善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다.[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라 하였다.
역주5 聖人者……率天下而勞之 : 《孟子》 〈滕文公 上〉에 “堯임금 때 天下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서 洪水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氾濫하여 草木이 번창하고 무성하며 禽獸가 繁殖하였다. 五穀이 익지 못하며 禽獸가 사람을 핍박하여 짐승의 발굽과 새의 흔적이 있는 길이 中國에 교차하여 堯임금이 홀로 이를 걱정하여 舜을 들어 다스림을 펴게 하니 舜이 益으로 하여금 불을 맡게 하였는데, 益이 산과 못에 불을 놓아 태우자 禽獸가 도망가 숨었다. 禹는 九河를 흐르게 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交於中國 堯獨憂之 擧舜而敷治焉 舜使益掌火 益烈山澤而焚之 禽獸逃匿 禹疏九河]”라고 하였다. 《孔子家語》 〈問禮〉에서는 “나중에 聖人이 일어난 다음에 불의 이로움을 닦아 금속을 주조하고 흙을 합하여 臺榭와 宮室, 窓門을 만들었으며, 통째로 굽고 태우고 삶고 구워서 술을 만들었고, 삼과 실을 다스려 베와 비단을 만들었다.……君臣間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父子間을 도탑게 하고 兄弟間을 和睦하게 하고 아래위를 平等하게 하고 夫婦間에는 처할 곳이 있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福을 이은 것이다.”라 하였다.
역주6 聖人之始作禮也……則人不相殺 : 《荀子》 〈王制〉에 “權勢와 地位가 같으며 愛憎이 같은데 사물이 넉넉해질 수 없으면 반드시 다투게 된다. 다투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고, 어지러우면 궁해진다. 先王은 그 어지러운 것을 미워하였으므로 禮義를 제정하여 貧富와 貴賤의 등급이 있게 하여 서로 아울러 다스리기 편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천하를 기르는 근본이다. 《書經》 〈呂刑〉에서 말한 ‘고르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하는 것[維齊非齊]’이 이를 이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주7 聖人懼其道之廢而天下復於亂也……考鬼神之情以爲辭 : 卦는 《周易》에서 象을 살펴보기 위하여 설치한 부호로, 乾‧震‧兌‧離‧艮‧坎‧巽‧坤의 8괘가 있으며, 두 卦를 서로 겹쳐 배열하여 64괘를 얻는데 이를 重卦라고 한다. 爻는 卦를 조성하는 두 부호로 −은 陽爻로 하늘을 본떴으며, 은 陰爻로 땅을 본떴다. 3획을 중첩시키면 陰陽剛柔가 서로 推移變化하여 卦가 된다. 蘇洵의 설명은 〈說卦〉의 “陰陽에서 변화를 관찰하여 卦를 세우고, 剛柔에서 發揮하여 爻를 내고, 道德에서 和順하여 義에 理致가 부합하고, 理致를 다하고 本性을 극진히 하여 天命에 이른다.”라 한 것과, 또 〈繫辭 下〉에서 “8괘가 列을 이루니 象이 그 가운데 있고, 그것에 따라 곱하니 爻가 그 가운데 있고, 剛한 것과 柔한 것이 서로 추진하니 변함이 그 가운데 있고, 말을 거기에 붙여 명령하니 움직임이 그 가운데 있다.”라 한 것에 근본하였다.
역주8 聖人……則無所施其敎 : 聖人이 《易》을 지은 것은 곧 神을 명분으로 하여 그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繫辭 上〉에서는 “陰陽의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일러 神이라 한다.”라 하였는데, 王弼의 주석에서는 “지극히 虛하지만 잘 응하면 道라고 칭하고, 생각지도 않는데 오묘하게 살피니 神이라고 이름짓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繫辭 上〉에서 말하기를 “變化의 道를 아는 사람은 神이 하는 것을 아는가 보다.……그러므로 君子는 장차 하려는 일이 있고, 행하려는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물어 말하려 하니 그가 명령을 받을 때 響應하는 듯이 하여 멀고 가깝고 깊고 그윽함이 없이 드디어 미래의 일을 안다. 천하의 지극히 精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셋과 다섯으로 변화하며, 그 수를 錯綜하여 드디어 天地의 변화에 통달하여 모든 文彩를 이루며, 끝까지 궁구하여 드디어 천하의 모든 象을 정한다. 천하의 지극한 변화를 아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易은 생각하는 일이 없고 作爲하는 것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 천하의 일에 통한다. 천하의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역주9 卜筮者……惟其所爲 : 卜은 불로 龜甲을 지져서 그 조짐을 취하는 것이다. 《書經》 〈洛誥〉에 “내 이에 澗水의 동쪽을 점쳐보았다.[我乃卜澗水東]”라는 말이 있는데, 孔穎達의 傳에 “卜은 반드시 먼저 먹으로 거북 腹甲에 그리고 난 후에 지지는데 조짐이 순조로우면 먹을 먹는다.”라 하였다. 筮는 蓍草로 吉凶[休咎]을 점치는 것이다. 《詩經》 〈衛風 氓〉에 “그대 거북점과 그대 시초점에, 점괘에 나쁜 말 없다네.[爾卜爾筮 體無咎言]”라는 구절이 있는데, 《毛詩》의 傳에 “거북점을 卜이라 하고 蓍草占을 筮라 한다.”라 하였다. 方功義弓은 《周禮》 〈春官〉의 거북점에 나타난 네 가지의 占兆를 가리킨다. 《周禮》 〈春官〉에 “卜師는 거북의 네 가지 점조를 열어보는 것을 관장하는데, 네 가지 점조는 方兆, 功兆, 義兆, 弓兆이다.[卜師 掌開龜之四兆 一曰方兆 二曰功兆 三曰義兆 四曰弓兆]” 하였다. 方兆, 功兆, 義兆, 弓兆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역주10 掛一……吾知其爲一爲二爲三爲四而歸之也 : 《周易》 〈繫辭 上〉에 “大衍의 수가 50이요, 사용하는 것은 49이다. 이를 나누어 둘로 만들어서 天地를 상징하고,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걸어서 三才를 상징하고, 이것을 넷으로 세어 四時를 상징하고, 남은 수를 扐에 돌려 윤달을 상징한다.[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 以象兩 掛一 以象三 揲之以四 以象四時 歸奇於扐 以象閏]” 하였다. 여기서 掛는 蓍草 하나를 왼손의 작은 손가락 사이에 다는 것이고, 揲은 사이를 띄워 세는 것이고, 奇는 넷으로 세고 남은 것이며, 扐은 왼손의 가운데 세 손가락의 양 사이에 끼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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