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은 因風俗之變而用其權하고 聖人之權이 用於當世하여 而風俗之變益甚하여 以至於不可復反이라
幸而又有聖人焉하여 承其後而維之하니 則天下可以復治니라
不幸其後無聖人하여 其變窮而無所復入이니 則已矣러라
昔者
에 吾嘗欲觀古之變
이나 而不可得也
요 이나 而不詳
이러라
忠之變而入於質하고 質之變而入於文하니 其勢便也러라
及夫文之變하여는 而又欲反之於忠也어늘 是猶欲移江河而行之山也라
人之喜文하고 而惡質與忠也는 猶水之不肯避下而就高也라
嗚呼라 其後無聖人하여 其變窮而無所復入이니 則已矣라
周之後而無王焉은 固也라 其始之制其風俗也는 固不容爲其後者計也요 而又適不値乎聖人이라
當堯之時에는 擧天下而授之舜하고 舜得堯之天下하여는 而又授之禹라
方堯之未授天下於舜也에 天下未嘗聞有如此之事也며 度其當時之民에 莫不以爲大怪也라
然而舜與禹也
는 受而居之
하여 安然若天下固其所有
하고 而其祖宗旣已爲之
가 累數十世者
하며 未嘗與其民
으로 道其所以當得天下之故也
요 又未嘗悅之以利
며 而開之以
也
라
其意以爲天下之民이 以我爲當在此位也면 則亦不俟乎援天以神之며 譽己以固之也라
如曰 吾家之當爲天子久矣니 如此乎民之欲我速入商也니라
伊尹攝位三年에 而無一言以自解나 周公爲之紛紛乎急於自疏 其非簒也라
夫固由風俗之變而後에 用其權하고 權用而風俗成이면 吾安坐而鎭之리니 夫孰知風俗之變而不復反也리오
注
이 글의 식견識見은 좋고 문장文章의 구사 또한 뛰어나다.
풍속風俗의 변화變化는 성인聖人이 그렇게 하였다.
성인聖人은 풍속風俗의 변화에 따라 그 권도權道를 썼으며, 성인聖人의 권도가 당세에 쓰여져서 풍속風俗의 변화가 더욱 심하여져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또 성인聖人이 있어 그 뒤를 계승하였으니 천하天下는 다시 다스릴 수 있었다.
불행不幸히 그 뒤로 성인聖人이 없어 그 변화가 다하여 다시 더 넣을 것이 없었으니 그치게 되었다!
지난 날 내 일찍이 옛날의 변화를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었으며, 《시경詩經》에서 상商나라와 주周나라를 보았으나 상세하지 않았다.
지금 《상서尙書》를 보고 난 다음에 요순시대堯舜時代와 삼대三代가 변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나 빨랐단 말인가!
요堯임금에서 상商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는 모두 성인聖人을 얻어 이었으므로 근심이 없었다.
주周나라에 이르러 천하天下의 변화가 다하였다.
충직忠直함이 변하여 질박質朴함으로 흘러들어갔고, 질박함이 변하여 문채文彩로 흘러들어갔는데 그 형세가 편했기 때문이다.
저 문채가 변함에 미쳐서는 또한 충직함으로 되돌리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강하江河를 옮겨 산으로 가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문채를 좋아하고 질박함과 충직함을 싫어하는 것은 물이 기꺼이 아래를 피하지 않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과 같다.
저 처음에는 일찍이 문채가 없었으므로 충직하고 질박하였는데도 사양치 않았다.
지금 내가 날마다 태뢰太牢를 먹이고는 그로 하여금 다시 콩깍지를 먹이려고 하는 것인가?
아아! 그 뒤로 성인聖人이 없어서 그 변화가 끝이 나 더 넣을 것이 없으니 그치게 되었다.
주周나라 후에 왕王다운 왕이 없었음은 당연하도다! 그 처음의 풍속을 통제함에 실로 나중 사람을 위한 계책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또한 마침 성인聖人을 만나지 못하였다.
실로 당연하도다, 나중에 왕자王者가 없었음이여!
요堯임금 때는 온 천하天下를 순舜에게 주었고 순舜은 요堯의 천하天下를 얻어 또 우禹에게 주었다.
바야흐로 요堯임금이 아직 천하를 순舜에게 주지 않았을 때 천하天下에서는 일찍이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 당시의 백성들을 헤아려보건대 매우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순舜과 우禹는 그것을 받아서 차지하고는 편안하기가 천하를 원래 소유하고 있었고 그 조상들이 이미 다스린 지 수십 세는 되는 것 같이 하며, 일찍이 그 백성들에게 마땅히 천하를 얻어야 하는 까닭을 설명한 적이 없었고, 또한 일찍이 이로움으로 기쁘게 해준 적도 없었으며,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의 불초함을 설명한 일도 없었다.
그 뜻이 천하의 백성이 내가 마땅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또한 하늘을 끌어다 신격화神格化하거나 원래 그랬다고 자신을 기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탕湯이 걸桀을 칠 때는 떠들썩하게 그 죄를 짚어가며 사람들에게 알려 “저 사람에게 죄가 있어 내가 그를 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조금 있다가 또 천하의 백성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여 또 떠들썩하게 말로 그들을 회유하기를 “만방萬方에 죄가 있으면 나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고, 나 한 사람에게 죄가 있으면 그대들 만방의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오.”라 하였는데,
마치 “내가 이렇게 그대들의 임금이 되었으니 그대들은 나를 인정해야 할 따름이다.”라 하는 것 같았다.
무왕武王에 이르러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그 선조부先祖父가 모두 현저한 공을 세웠으며, 이미 〈그 아버지가〉 천명天命을 받고 죽었는데 그 대업大業을 끝내지 못해서 지금 내가 그 뜻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동쪽을 치니 동쪽 나라의 남녀가 비단을 묶어 우리를 맞이하고 주紂의 병사가 창을 거꾸로 하여 우리를 받아들였다.”고 하였다.
마치 “우리 집안이 마땅히 천자天子가 된 것이 오래되었으니 이렇게 백성들이 내가 속히 상商나라로 들어갔으면 하는구나.”라 하는 것 같았다.
이윤伊尹이 상商나라에 있었던 것은 주공周公이 주周나라에 있었던 것과 같다.
이윤伊尹은 3년간 섭정攝政을 하면서도 한마디도 스스로 해명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주공周公은 그렇게 하면서 분분紛紛히 그것이 찬탈簒奪이 아님을 스스로 알리는 데 급급하였다.
실로 풍속風俗의 변화에 말미암은 후에 그 권도權道를 쓰고, 권도를 써서 풍속이 이루어지면 내 편안히 앉아서 그것을 누를 것이니, 대개 누가 풍속이 변하는데도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