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善攻者는 不盡兵以攻堅城하고 善守者는 不盡兵以守敵衝이라
夫盡兵以攻堅城이면 則鈍兵費糧하여 而緩於成功이라
盡兵以守敵衝이면 則兵不分하니 而彼間行襲我無備라
故로 兵出於正道면 勝敗未可知也요 出於奇道면 十出而五勝矣요 出於伏道면 十出而十勝矣라
何則고 正道之城은 堅城也요 正道之兵은 精兵也라
攻正道하고 而不知奇道與伏道焉者면 其將木偶人是也요 守正道하여 而不知奇道與伏道焉者면 其將亦木偶人是也라
今夫盜之於人에 抉門斬關하여 而入者有焉이요 他戶之不扃鍵하여 而入者有焉이요 乘壞垣坎墻趾하여 而入者有焉이라
爲主人者는 宜無曰 門之固하여 而他戶墻隙之不恤焉이라
夫正道之兵은 抉門之盜也요 奇道之兵은 他戶之盜也요 伏道之兵은 乘垣之盜也라
所謂正道者
는 若秦之函谷
과 吳之長江
과 蜀之
이 是也
라
鄧艾
가 攻蜀
에 하여 攀木緣磴
하고 魚貫而進
하여 至
하여 而降馬邈
하고 至綿竹
하여 而斬諸葛瞻
하고 遂降劉禪
이라
吾觀古之善用兵者는 一陣之間에 尙猶有正兵奇兵伏兵三者하여 以取勝이온
況守一國과 攻一國은 而社稷之安危가 係焉者니 其可以不知此三道而欲使之將耶아
注
옛 전기傳記에 의거해서 기도奇道와 복도伏道를 논한 부분은 고금의 명언名言이다.
옛날 공격攻擊을 잘하는 사람은 전 병력을 동원하여 견고한 성을 공격하지 않았고, 수비守備를 잘하는 사람은 전 병력을 동원하여 적의 요충지를 수비하지 않았다.
전 병력으로 견고한 성을 공격하면, 병사들을 둔하게 하고 식량을 낭비하여 성공이 늦어진다.
전 병력으로 적의 요충지를 수비하면, 병력을 나누어 지키지 않으니 저들이 우리의 방비가 없는 곳으로 잠행潛行하여 습격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적이 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공격하지 않는 곳을 수비해야 한다.
공격攻擊에는 세 가지 길이 있고, 수비守備에도 세 가지 길이 있다.
세 가지 길이란, 첫 번째는 정도正道요, 두 번째는 기도奇道요, 세 번째는 복도伏道이다.
넓고 평탄한 길은 수레바퀴가 부딪히고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며, 나갈 때도 이 길을 통하고 돌아올 때도 이 길을 통한다.
우리가 반드시 공격해야 할 길이고 적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길을 정도正道라고 한다.
대군大軍이 적의 남쪽을 공격하면 정예병精銳兵은 적의 북쪽을 공격하고, 대군大軍이 적의 동쪽을 공격하면 정예병精銳兵은 적의 서쪽을 공격하는 것을 기도奇道라고 한다.
높은 산 험난한 계곡과 구불구불 감도는 험난한 길, 그 사이로 잠행潛行하여 징도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다가 갑자기 평야로 나와 적의 심장부로 돌진하는 것을 복도伏道라 한다.
그래서 용병을 정도正道로 나가면 승패勝敗를 알 수가 없고, 기도奇道로 나가면 열 번 나가서 다섯 번은 승리할 수 있으며, 복도伏道로 나가면 열 번 나가서 열 번을 다 이길 수 있다.
왜 그런가? 정도正道의 성城은 견고한 성城이고, 정도正道의 수비병은 정예병이다.
기도奇道의 성城은 반드시 견고한 것만은 아니고, 기도奇道의 수비병은 반드시 정예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도正道로만 공격하고 기도奇道와 복도伏道를 모른다면 그 장수는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고, 정도正道로만 수비하고 기도奇道와 복도伏道를 모른다면 그 장수 또한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다.
지금 남의 집에 도둑질을 하는데, 대문을 뜯어내거나 빗장을 부수고서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빗장이 잠겨 있지 않은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으며, 부서진 담을 넘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대문을 뜯어내거나 빗장을 부수고서 들어가는데도 주인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빗장이 잠겨 있지 않은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데 주인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는 태반이며,
부서진 담을 넘어가는데 주인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는 전부이다.
주인 된 사람은 당연히 “대문이 견고하니 다른 문이나 무너진 담은 걱정할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正道로 침입하는 군대는 대문을 뜯어내고 들어오는 도둑과 같고, 기도奇道로 침입하는 군대는 다른 문을 통해 들어오는 도둑과 같으며, 복도伏道로 침입하는 군대는 담을 넘어오는 도둑과 같다.
이른바 정도正道라는 것은 진秦나라의 함곡관函谷關, 오吳나라의 장강長江, 촉蜀나라의 검각劒閣 같은 곳이 이것이다.
옛날 육국六國이 일찍이 함곡관函谷關을 공격하였지만 진秦나라 장수들이 그들을 물리쳤고, 조조曹操가 일찍이 장강長江을 공격하였지만 주유周瑜가 그를 내쫒았고, 종회鐘會가 일찍이 검각劒閣을 공격했지만 강유姜維가 그를 막았다.
무엇 때문인가? 그들이 그곳을 수비한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비劉濞가 반란을 일으켜 대량大梁을 공격하니, 전록백田祿伯은 5만萬의 군사로 별도로 장강長江‧회하淮河를 따라 내려가 회남淮南‧장사長沙를 탈취하고 유비劉濞와 무관武關에서 만날 것을 청하였다.
잠팽岑彭은 공손술公孫述을 공격할 때에, 강주江州에서 도강都江을 거슬러 올라가 후단侯丹의 군대를 깨고, 곧장 무양武陽을 취하고, 연잠延岑의 군대 뒤를 우회하여 신속히 정예의 기병騎兵으로 광도廣都로 달려가니, 성도成都와는 불과 수십여 리였다.
이소李愬가 채주蔡州를 공격할 때에, 채주蔡州에서는 모든 정예병이 이광안李光顏에 대항하느라 이소李愬를 대비하지 않으니, 이소李愬는 문성文城에서 출발하여 장시張柴를 깨고 질풍처럼 200리를 달려 한밤중에 채주蔡州에 도착하여 날이 밝아올 무렵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았다.
한 무제漢 武帝가 남월南越을 공격할 때에, 당몽唐蒙이 〈무제武帝에게〉 청하여 야랑夜郎의 군대를 징발해서 배를 타고 장가강牂牁江을 따라 내려가 번우성番禺城 아래를 지나, 남월南越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났다.
등애鄧艾가 촉蜀나라를 공격할 때에, 음평陰平에서 출발하여 경곡景谷을 경유하여 나무를 잡고 오르고 험악한 돌길을 올라, 물고기를 꼬챙이에 꿴 듯이 앞으로 나아가 강유江油에 이르러 마막馬邈을 투항시키고, 면죽綿竹에 도착하여 제갈첨諸葛瞻을 죽이고 마침내 유선劉禪을 투항케 하였다.
전영자田令孜가 동관潼關을 지킬 때에, 동관潼關 좌측에 금곡禁谷이라는 큰 계곡이 있었지만 그곳을 지키지 않자, 임언林言과 상양尙讓이 금곡禁谷으로 들어가 동관潼關을 협공하니 동관潼關의 병사가 괴멸하였다.
내가 보기에, 옛날 용병에 뛰어난 사람들은 한 번의 전진戰陣 속에서도 오히려 정병正兵‧기병奇兵‧복병伏兵 세 가지를 운용해서 승리를 취하였는데,
하물며 한 나라를 지키고 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사직社稷의 안위安危가 거기에 달린 것이니, 어찌 이 삼도三道를 모르는 사람에게 장수를 시킬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