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老蘇 以禮爲强世之術하니 卽荀子性惡之遺
文甚縱橫而議論頗僻矣
夫人之情 安於其所常爲하니 無故而變其俗이면 則其勢必不從이라
聖人之始作禮也 不因其勢之可以危亡困辱之者其心하며 而徒欲使之輕去其舊하여 而樂就吾法 不能也
無故而使之事君하고 無故而使之事父하며 無故而使之事兄하니 彼其初 非如今之人知君父兄之不事則不可也 而遂翻然以從我者
彼爲吾君이요 彼爲吾父 彼爲吾兄이라
聖人曰 彼爲吾君父兄 何以異於我리오
於是 坐其君與其父以及其兄하고 而己立於其旁하고 且俛首屈膝於其前以爲禮하고 而謂之拜라하고 率天下之人하여 而使之拜其君父兄이라
夫無故而使之拜其君하고 無故而使之拜其父하며 無故而使之拜其兄이면 則天下之人 將復嗤笑하고 以爲迂怪而不從이라
而君父兄 又不可以不得其臣子弟之拜而徒爲其君父兄이니 於是 聖人者 又有術焉以厭服其心하여 而使之肯拜其君父兄이라
然則聖人者 果何術也 恥之而已
古之聖人 將欲以禮治天下之民하니 先自治其身하여 使天下皆信其言이라
曰 此人也 其言如是인댄 必不可不如是也라하니라
聖人曰 天下有不拜其君父兄者 吾不與之라하니 而天下之人亦曰 彼將不與我齒也라하니라
於是相率以拜其君父兄하여 以求齒於聖人이라
雖然이나 彼聖人者 必欲天下之拜其君父兄 何也 其微權也
彼爲吾君이요 彼爲吾父 彼爲吾兄이로되 聖人之拜不用於世 吾與之皆坐於此하고 皆立於此하며 比肩而行於此 無以異也하고 吾一旦而怒하여 奮手擧梃而搏逐之라도 可也
何則 彼其心常以爲吾儕也하여 不見其異於吾也
聖人知人之安於逸而苦於勞하여 使貴者逸而賤者勞하며 且又知坐之爲逸하고 而立且拜者之爲勞也 擧其君父兄坐之於上하고 而使之立且拜於下
明日 彼將有怒作於心者 徐而自思之하여 必曰 此 吾嚮之所坐而拜之하고 且立於其下者也
聖人固使之逸而使我勞 是賤於彼也
奮手擧梃以搏逐之 吾心不安焉이라하니라
刻木而爲人하여 朝夕而拜之라가 他日 析之以爲薪이면 而猶且忌之
彼其始木焉 已拜之猶且不敢以爲薪이라
聖人 以其微權으로 而使天下 尊其君父兄이요 而權者 又不可以告人이니 先之以恥
嗚呼 其事如此라야 然後 君父兄 得以安其尊而至于今이라
今之匹夫匹婦 莫不知拜其君父兄이며 乃曰 拜起坐立 禮之末也라하되 不知聖人其始之敎民拜起坐立 如此之勞也
此聖人之所慮


02. 에 대한 논문
노소老蘇를 세상을 강하게 하는 술책으로 여겼으니, 곧 순자荀子성악설性惡說의 유산이다.
문장文章기복起伏이 심하고 의론議論은 자못 편벽되었다.
대체로 사람의 은 늘 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니, 까닭 없이 그 습속習俗을 변화시키면 그 형세形勢가 반드시 따르지 않는다.
성인聖人이 처음 를 만들었을 때는 그 형세가 위망危亡하고 곤욕困辱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마음을 눌러 복종케 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가벼이 그 옛것을 버리고 즐거이 나의 으로 나아가라 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까닭 없이 임금을 섬기게 하고, 까닭 없이 아비를 섬기게 하며, 까닭 없이 형을 섬기게 하지 않았으니, 그 처음에는 지금 사람들처럼 임금과 아비, 형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번연翻然히 나를 따른 것은, 나는 ‘부끄러움’으로써 그 마음을 눌러 복종하게 한 것으로 여긴다.
저가 나의 임금이고 저가 나의 아비이며 저가 나의 형이다.
성인聖人은 말하기를 “저 나의 임금과 아비, 형은 어째서 나와 다른가?”라 하였다.
이에 그 임금과 그 아비 및 그 형을 앉히고 자기는 그 곁에 서서 또한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를 행하는 것을 ‘절[]’이라 하고, 천하의 사람들을 거느려 그들로 하여금 그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을 하게 하였다.
대체로 까닭 없이 그로 하여금 그 임금에게 절을 시키고, 까닭 없이 그로 하여금 그 아비에게 절을 시키며, 까닭 없이 그로 하여금 그 형에게 절을 시킨다면, 천하天下의 사람들은 다시 비웃고 괴상하다고 여겨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과 아비, 형은 또한 그 신하와 아들, 아우의 절을 받지 못하면서 다만 그 임금과 아비, 형이 될 수는 없으니, 이에 성인聖人이 또 술책을 가지고 그 마음을 눌러 복종시켜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은 과연 어떤 술책을 썼는가? 부끄럽게 할 따름이었다.
성인聖人로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려 하였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 자기 몸을 다스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말을 믿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분이 그 말씀이 이와 같으시니 이것은 반드시 이와 같이 아니할 수 없다.”라 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말하기를 “천하天下에 그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을 하지 않는 자는 내 그런 자를 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라 하니, 천하天下의 사람들 또한 말하기를 “저분은 나를 사람으로 치지도 않을 것이다.”라 한다.
이에 서로 이끌어 그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을 하여 성인聖人에게 사람 대접받기를 구한다.
비록 그렇지만 저 성인聖人이 반드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을 하게 한 것은 어째서인가? 그 작은 권모權謀 때문이다.
저는 나의 임금이고 저는 나의 아비이며 저는 나의 형인데, 성인의 절이 세상에 쓰이지 않았을 때는 내가 그(임금, 아비, 형)와 함께 여기에 앉고 함께 여기에 서며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곳에서 행하는 데 다른 것이 없었고, 내가 하루아침에 노하여 손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들어 그(임금, 아비, 형)를 때려서 쫓아내도 괜찮았다.
어째서인가? 저는 그 마음이 항상 우리와 같은 또래라고 생각하고 나에게서 다른 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사람들이 편안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수고로운 것을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 자는 편안하게 하고 한 자는 수고롭게 하였으며, 또한 앉는 것이 편안하고 서고 절하는 것이 수고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임금과 아비, 형을 들어 위에 앉히고 그에게는 아래에서 서고 절하게 하였다.
다음날 저가 마음에 노기怒氣가 일어나려 할 때 천천히 스스로 생각해보고는 반드시 말하기를 “이분은 내가 저번에 앉히고 절을 하고 또한 그 아래에 서서 모시던 분이다.
성인聖人이 실로 그분을 편안하게 하고 나를 수고롭게 한 것은 〈내가〉 저보다 천해서이다.
손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들어 그를 때려서 쫓아낸다면 내 마음이 불안할 것이다.”라 할 것이다.
나무를 깎아서 사람을 만들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다가, 훗날 쪼개어 땔나무로 만들려면 오히려 또한 그것이 꺼리어진다.
저것이 처음에 나무였을 때 이미 절을 하였더라도 오히려 또한 감히 땔나무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그 작은 권모權謀를 가지고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임금과 아비, 형을 높이게 하였고, 권모는 또한 남에게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앞세웠던 것이다.
아아! 그 일이 이와 같게 된 연후에야 임금과 아비, 형이 그 높은 것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금의 필부匹夫필부匹婦는 그 임금과 아비, 형에게 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이에 말하기를 “절하고 일어서고 앉고 서는 것이 의 끝이다.”라 하지만, 성인聖人이 그 처음에 백성들에게 절하고 일어서고 앉고 서는 것을 가르친 것이 이와 같은 수고로웠음은 알지 못한다.
이는 성인이 걱정한 것으로, 《》을 지어서 그 가르침을 신령스럽게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禮論 : 秦나라가 焚書한 후에 三禮(《禮記》, 《儀禮》, 《周禮》)가 세상에 전하여졌다. 漢나라 초기에는 《儀禮》를 《禮經》이라고 하였다. 그 후에는 《儀禮》와 《周禮》를 經이라고 병칭하였고, 《禮記》는 記라고 하였다. 蘇洵은 이 글에서 禮를 특정한 책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두루 가리키는 것으로, 곧 사회의 尊卑와 貴賤을 지도할 때 따라야 할 法則, 規範, 儀式을 말한다. 茅坤은 이 글이 荀子의 ‘性惡說의 유산’으로 보았으나, 실은 董仲舒의 ‘性惡相混說’에 접근한 것으로 보는 注釋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本文에서, 사람들이 ‘好逸惡勞’하고 ‘守舊畏變’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知恥趨聖’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인은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尊尊上上’하게 하며, 이를 계기로 禮를 지키게 하고, 또 그 ‘因襲守舊’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것을 서로 이어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을 ‘聖人之權’이라고 하였다.
역주2 厭(압)服 : ‘厭’은 곧 ‘壓’의 본자이다. 《廣雅》 〈釋言〉에서는 “壓은 누른다[鎭]는 뜻이다.”라 하였고, 《漢書》 〈景帝紀〉 顔師古의 주에서는 “厭은 복종[服]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역주3 吾以恥厭(壓)服其心也 : 백성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여 禮를 行하게 했다는 설은 《論語》에 근본을 두었다. 이를테면 《論語》 〈學而〉에 “공손함을 禮에 가깝도록 한다면 恥辱을 멀리할 수 있다.[恭近於禮 遠恥辱也]”라는 말이 있고, 《論語》 〈爲政〉에서는 “德으로 이끌어주고 禮로 가지런하게 한다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善에〉 이를 것이다.”라 하였다.
역주4 : 列의 뜻이다.
역주5 作易以神其敎也 : 《周易》 〈觀卦〉에 “聖人이 神道로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가 복종하였다.[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라 하였다. 위의 〈易論〉에 “이에 이를 계기로 《易》을 지어 天下의 耳目을 신령스럽게 하였으니, 그 道가 마침내 높아져 폐하여지지 않는다.[於是因而作易 以神天下之耳目 而其道遂尊而不廢]”는 말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