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로 夫善將者는 以其所不足愛者로 養其所甚愛者라
士之不能皆銳하고 馬之不能皆良하며 器械之不能皆利는 固也니 處之而已矣라
中之不足以與吾上이요 下之不足以與吾中이니 吾不旣再勝矣乎아
故로 曰 兵之有上中下也니 是兵之有三權也라하니라
夫不汲汲於其憂之所在하고 而彷徨乎其不足恤之地하니 彼蓋所以孤項氏也라
諸葛孔明은 一出其兵이면 乃與魏氏角하니 其亡宜也라
蓋一陣之間엔 必有牡牝左右니 要當以吾彊으로 攻其弱耳라
敵犯吾弱하여 追奔이 不過數十百步요 吾擊敵弱하여는 常突出自背反攻之하니 以是로 必勝이라하니라
而又曰 吾兵은 有老弱이 雜其間하여 非擧軍精銳니 以故로 不能勝이라하니라
無之면 是無以耗敵之彊兵하여 而全吾之銳鋒이니 敗可俟矣라
故로 智者는 輕棄吾弱하여 而使敵으로 輕用其强이요 忘其小喪하고 而志於大得이라
注
이 편 전체가 고인古人들이 행한 일을 가지고 입언立言하여 엮어서 문장을 만들었다.
아주 아껴야 할 것이 있음을 알고,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군사軍士를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군사를 잘 거느리는 장수將帥는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아주 아껴야 할 것을 잘 양성養成하는 자이다.
병사兵士들이 다 정예精銳일 수 없고, 말들이 다 양마良馬일 수 없으며, 무기와 기계들이 다 날카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 그것을 잘 안배할 따름이다.
병사兵士는 상上‧중中‧하下가 있으니, 용병用兵에도 세 가지 권변權變이 있다.
손빈孫臏의 말에 “그대의 하등 말로 상대방의 상등 말과 경주를 시키고, 그대의 상등 말로 상대방의 중등 말과 경주시키며, 그대의 중등 말로 상대방의 하등 말과 경주시키십시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병법兵法에 관한 설說이지, 경마競馬에 관한 설說이 아니다.
하등 말은 그의 상등 말과 족히 경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이미 그것을 포기한 것이다.
중등 말은 나의 상등 말과 경주가 되지 않고, 하등 말은 나의 중등 말과 경주가 되지 않으니, 나는 이미 두 번은 이긴 것이 아닌가?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많으니, 나는 곧 그 방법을 따르겠다.
저들의 그 상등 말은 그의 중등 말과 하등 말의 도움을 얻지 못하니, 그 혼자 〈목표를〉 완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병사兵士는 상上‧중中‧하下가 있으니, 용병用兵에도 세 가지 권변權變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세 가지 권변權變이란 한 번을 〈포기함으로써〉 세 번의 〈목표에〉 이르는 것이다.
관중管仲은 “적의 견고한 부대를 공격하면 적의 연약한 부대도 견고해지고, 적의 연약한 부대를 공격하면 적의 견고한 부대도 연약해진다.”라고 하였다.
아아! 적의 연약한 부대부터 공격하지 않으면 천하는 모두가 강적强敵이 될 것이다.
한 고조漢 高祖의 걱정거리는 오직 항우項羽에게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한 고조漢 高祖가〉 친히 그의 군대를 거느려 항우項羽와 싸운 것은 대략 몇 번도 되지 않는다.
수하隋何가 구강九江을 취하고, 한신韓信이 위魏를 취하고 대代를 취하고 조趙를 취하고 제齊를 취하고 난 다음에야, 고조高祖가 출병하여 항우項羽를 취하였다.
대저 그 걱정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급급하지 않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배회하였으니, 한 고조漢 高祖는 아마 항우項羽를 고립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진秦나라의 걱정거리는 육국六國에 있었으니, 촉蜀나라가 가장 편벽되고 가장 작았지만 가장 먼저 취하였고, 초楚나라는 가장 강하였지만 가장 뒤에 취하였다.
〈진秦의 걱정거리는〉 촉蜀나라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제갈량諸葛亮은 일단 출병出兵만 하면 바로 가장 강한 위魏나라와 겨루었으니, 그 망함은 마땅하다.
천하를 취하든 한 나라를 취하든 하나의 진지陣地를 취하든 다 이와 같다.
범려范蠡는 “무릇 포진布陣의 방법은 좌측을 강화하여 웅진雄陣으로 삼고, 우측에 약한 부대를 두어 자진雌陣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춘추春秋 때에 초楚나라가 수隋나라를 치니, 〈수隋나라〉 계량季梁이 “초楚나라는 왼쪽을 높이니, 임금은 반드시 왼쪽에 있을 것입니다.
초왕楚王과 마주치지 마시고 우선 그 우측을 공격하소서.
우측에는 정병精兵이 없으니 반드시 패배시킬 수 있을 것이고, 한쪽이 패하게 되면 주력부대도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하나의 진지陣地 속에는 반드시 〈강약强弱이 다른〉 웅자雄雌‧좌우左右가 있으니, 요컨대 당연히 우리의 강한 부대로 적의 약한 부대를 공격해야 할 따름이다.
당 태종唐 太宗은 “내가 군대를 일으키면서부터 군진軍陣의 형세를 자세히 관찰하여, 매번 싸울 때마다 적이 그 좌측을 강하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우리의 좌측을 강하게 하였고, 적이 그 우측을 약하게 하면 나도 우리의 우측을 약하게 하였다.
〈우리의〉 약한 부대로 항상 〈적의〉 강한 부대를 맡게 하고, 〈우리의〉 강한 부대로 항상 〈적의〉 약한 부대를 맡게 하였다.
적이 우리의 약한 곳을 침범해서 추격해온 것은 수십 수백 보에 불과하였고, 우리가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할 때에는 항상 〈적군의 진지를〉 돌파하여 적의 배후에서 되돌아 공격하였으니, 이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후세의 용렬한 장군들은 그 강약强弱을 제대로 안배할 수 없어 패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부대에는 노약자들이 사이에 끼어 있어 전군全軍이 정예精銳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없었다.”라고 한다.
그들은 노약한 병사들도 병가兵家에서 진실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모른다.
그들이 없으면, 이것은 적의 강병强兵을 소모시켜 우리의 예봉銳鋒을 보전할 수 없는 것이니, 패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우리의 약한 부대를 가볍게 희생해서 적이 그들의 강병强兵을 가볍게 쓰도록 하고, 그 작은 손실損失은 잊어버리고 크게 얻는 데 뜻을 둔다.
注
대략 손무孫武의 삼사三駟 속의 의논을 조술祖述한 것이다.
삼사三駟라는 것은 천금을 걸고 내기하는 방법이지 장군이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