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養奇傑之才
하여 而特挈出古者
一節
하여 以感悟當世
가 直是刺骨
이라
雖古之所謂仁與義와 信與廉者가 不止若是나 而天下之人은 亦不曰 是非仁人이요 是非義人이요 是非信人이요 是非廉人이라
在朝廷
이면 而百官肅
하고 在邊鄙
면 而四夷懼
하며 坐之於繁劇紛擾之中
이라도 而不亂
이요 投之於
奔走之地
라도 而不惑
하며 爲吏而吏
요 爲將而將
이라
若是者는 豈非天之所與하여 性之所有니 不可勉彊而能也리오
今有二人焉
하니 一人善
하고 一人善騎射
면 則人未有不以揖讓賢於騎射矣
라
然而나 揖讓者는 未必善騎射하고 而騎射者는 捨其弓以揖讓於其間이라도 則未必失容이니 何哉아
吾觀世之用人하니 好以可勉彊之道與德을 而加之不可勉彊之才之上하여 而曰 我貴賢賤能이라하니
是以로 道與德이 未足以化人이로되 而才有遺焉이라
何則
고 奇傑之士
는 常好自負
하여 疏隽傲誕
하여 不事
하고 往往冒法律
하고 觸刑禁
하여 叫號
呼
하며 以發其一時之樂
하여 而不顧其禍
하고 嗜利
하여 使氣傲物
이라가 志氣一發
이면 則
遠去
하니 不可羈束以禮法
이라
然
이나 及其一旦
에 翻然而悟
하여 折節而不爲此
하고 以留意於向所謂道與德可勉彊者
면 則何病不至
리오 奈何以
小道加諸其上哉
아
夫其不肯規規以事禮法하고 而必自縱以爲此者는 乃上之人之過也라
古之養奇傑也엔 任之以權하고 尊之以爵하며 厚之以祿하고 重之以恩하여 責之以措置天下之務하니 而易其平居自縱之心하여 而聲色耳目之欲도 又已極於外하니 故로 不待放恣而後에 爲樂이라
今則不然
이니 奇傑無尺寸之柄
하고 位
과 食斗升之祿者
가 過半
이니 彼又安得不越法
禮
하여 而自快耶
아
急之而不已하고 而隨之以刑이면 彼有北走胡요 南走越耳라
噫
라 無事之時
에 旣不能養
이라가 及其不幸
하여 一旦
에 有邊境之患
과 繁亂難治之事而後
에 以召之
하여 豐爵重祿以結之
면 則彼已憾矣
라
夫彼固非純忠者也니 又安肯黙然於窮困無用之地而已耶아
當是時
에 雖有奇傑
이라도 無所復用
이요 而其禮法風俗
이 尤復細密
하여 擧朝廷與四海之人
이 無不遵蹈
나 而其
之中
에 猶有曰議能者
온
況當今天下에 未甚至治하고 四夷未盡臣服하며 卿大夫士未皆稱職하고 禮法風俗이 又非細密如周之盛時하며 而奇傑之士는 復有困於簿書米鹽間者하니 則反可不議其能而恕之乎아
所宜哀其才而貰其過
하여 無使爲
所困
이면 則庶乎盡其才矣
라
或曰 奇傑之士가 有過得免이면 則天下之人에 孰不自謂奇傑而欲免其過者리오 是終亦潰法亂敎耳라
苟指其已成之功하여 以曉天下면 俾得以贖其過요 而其未有功者면 則委之以難治之事하여 而責其成績이면 則天下之人이 不敢自謂奇傑하리니 而眞奇傑者出矣라하리라
注
기이하고 걸출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다만 옛날의 ‘의능議能’ 한마디만을 꺼내어서 당세當世를 감동시키고 깨우치게 함이 곧장 뼛속까지 파고든다.
대저 사람이 하는 일에는 애써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애써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작은 은혜恩惠를 베푸는 것을 인仁으로 여기고, 작은 선행善行을 하는 것을 의義로 여기며, 한마디 식언食言하지 않는 것을 신信이라 여기고, 작은 이익利益을 탐하지 않는 것을 염廉이라 여긴다.
비록 고대古代에서 말한 바의 인仁과 의義 그리고 신信과 염廉이 단지 이와 같지는 않지만, 천하 사람들은 또한 “이들은 인인仁人이 아니고, 이들은 의인義人이 아니고, 이들은 신인信人이 아니며, 이들은 염인廉人이 아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에게 없더라도 애써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조정朝廷에 있으면 백관百官이 엄숙해지고, 변방邊方에 있으면 사방四方 오랑캐들이 두려워하며, 아주 번잡하고 요란함 속에 앉아 있어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긴박한 문서文書가 왕래하는 전쟁터에 나가 있어도 미혹迷惑되지 않으며, 관리가 되면 관리의 일을 하고 장수가 되면 장수의 일을 한다.
이와 같은 것은 하늘이 부여하여 본성에 있는 것이니, 애써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道와 덕德은 애써 노력하면 진전될 수 있지만, 재능才能은 애써 끌어올려도 진전될 수가 없다.
지금 여기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읍양揖讓 같은 예의에 뛰어나고 한 사람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데에 뛰어나다면, 사람들은 읍양揖讓 같은 예의를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읍양揖讓 같은 예의에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데에 뛰어나다 할 수 없고,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데에 뛰어난 사람이 그 활을 버리고 사람들 속에서 읍양揖讓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예모禮貌를 잃는다고도 할 수 없으니, 무엇 때문인가?
재능은 애써 하기 어렵지만 도덕은 노력하면 쉽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의 사람 쓰는 것을 관찰해보니, 애쓰면 할 수 있는 도道와 덕德을 애써도 할 수 없는 재능才能 위에 두는 것을 좋아하면서, “나는 어진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재능 있는 사람을 천시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도道와 덕德이 아직 사람을 교화敎化시키기에 부족한데도 오히려 재능才能 있는 사람을 버려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데에는 또한 이유가 있다.
재능이 있는 자는 일반 대중들이 애써 하는 것을 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기이하고 걸출한 사람은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겨 호탕하면서도 오만하고 기이하게 행동하기를 좋아하여, 세속世俗의 예법禮法을 따르지 않고 종종 법률法律을 어기고 금령禁令에 저촉되어도 크게 소리치고 환호하며 일시적인 쾌락을 발산하면서 거기에 따른 화禍를 돌아보지 않고, 이록利祿을 탐하면서 술에 취하여 함부로 행동하며, 성질이 나면 사람들에게 오만스럽게 대하다가 패기가 한번 발동하면 거리낌없이 멀리 떠나버리니, 예법禮法으로 그를 구속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깨우쳐서 품행을 바꾸어 예전의 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앞서 말한 애쓰면 할 수 있는 도道와 덕德에 뜻을 두면, 어찌 이르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며, 어찌 보잘것없는 작은 도리로 그 위에 가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규범規範에 따라 예법禮法을 지키려 하지 않고, 반드시 스스로 방종하며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윗사람의 잘못이다.
옛날에 기이하고 걸출한 사람을 양성할 때에는 권력權力을 주어서 그를 임용하고 작위爵位를 주어서 그를 존중하며, 그에게 봉록俸祿을 후하게 주고 은혜恩惠를 베풀어 그를 중시하여, 천하의 중요한 임무를 처리하도록 맡기니, 평소 스스로 방종하던 마음을 바꾸어, 귀와 눈을 즐겁게 하던 아름다운 음악音樂이나 여색女色에 대한 욕망도 이미 밖으로 충족되었으니, 방종한 다음에 즐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기이하고 걸출한 사람에게는 작은 권력도 없고 가장 낮은 직위와 쥐꼬리만 한 봉록을 받는 자들이 절반을 넘으니, 저들이 또한 어찌 법法과 예禮를 벗어나지 않고서 스스로 쾌락을 즐길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어찌 법으로 다그쳐서 저들로 하여금 태연히 스스로 방종할 수 없도록 하겠는가?
지금 내가 법으로 단속하는 것도 심히 다그치는 것이다.
그를 다그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형벌刑罰이 뒤따르게 되면, 그가 북쪽으로는 호족胡族에게 달아날 것이고, 남쪽으로는 월越나라에게 달아날 뿐이다.
아아! 무사無事할 때에는 양육養育하지도 않다가, 불행히도 하루아침에 변방邊方의 우환憂患이 생기거나 번잡하고 혼란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일이 생긴 뒤에야 아름답게 포장한 조서詔書를 내려 그를 불러 높은 작위爵位와 후한 봉록俸祿으로 결부시키려 한다면, 그들은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본래 순수한 충성심忠誠心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니, 또한 어찌 곤궁하고 쓸모없는 땅에 묵묵히 가고자 하겠는가?
주공周公 때에는 천하 사람들이 태평성대太平聖代라 하였다.
사방 오랑캐들이 이미 신하로 복종하고, 공경公卿‧대부大夫‧선비들은 이미 자신에 걸맞은 직책을 맡았다.
이때에 비록 기이하고 걸출한 사람들이 있어도 더 이상 쓸 곳이 없었고, 그 예법禮法과 풍속風俗이 더욱 세밀하여 모든 조정과 온 세상 사람들이 준수하지 않음이 없었지만, ‘팔의八議’ 가운데 오히려 재능 있는 자의 죄를 다루는 ‘의능議能’이라 하는 항목이 있었다.
하물며 지금의 천하는 아직 완전한 태평성대도 아니고, 사방 오랑캐들이 아직 신하로 완전히 복종하지도 않으며, 공경公卿‧대부大夫‧선비들은 자신에 걸맞은 직책을 아직 다 맡지 못하고 있고, 그 예법과 풍속 또한 주周의 태평성대만큼 세밀하지도 않으며, 기이하고 걸출한 사람들도 쌀이나 소금을 장부에 기록하는 하찮은 일에 곤욕을 당하고 있으니, 도리어 그들의 재능을 논의하지[의능議能] 않고도 그들을 관대하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 재능을 아끼고 그 죄를 사면해서, 하급관리인 도필리刀筆吏에게 곤욕을 당하지 않게 하면, 대체로 그 재능을 다 발휘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이하고 걸출한 선비가 죄가 있어도 사면될 수 있으면, 천하 사람들 가운데 누군들 스스로 걸출한 인재라 칭하면서 자신의 죄를 사면받고자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끝내 법法은 무너지고 교화敎化는 어지러워질 뿐이다.”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 또한 옳은 말이다.
그러나 걸출한 사람이 하는 일은 틀림없이 일반 사람보다 훨씬 특출할 것이다.
만약 그가 이미 이룬 공적功績을 들추어 천하 사람들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그 죄를 사면시킬 수 있을 것이고, 아직 공이 없는 자라면 다스리기 어려운 일을 그에게 맡겨 그 업적業績을 검증할 것 같으면, 천하 사람들이 감히 스스로 걸출한 인재라 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걸출한 인재가 나올 것이다.”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