蓋君子는 恥食其食而無其功하고 恥服其服而不知其事라
故로 居而不樂이면 吾有吐食脫服하야 以逃天下之譏而已耳라
今日欲適秦이라가 明日欲適越이라도 天下誰我禦리오
故로 居而不樂하고 不樂而不去는 是는 其心且不能馭其形이니 而況能以馭他人哉아
故로 其徒之欲求知於吾士大夫之間者는 往往自叛其師하여 以求容於吾하고 而吾士大夫도 亦喜其來而接之以禮라
嗚呼라 歸爾父子하고 復爾室家而後에 吾許爾以叛爾師니 父子之不歸하고 室家之不復하여 而師之叛이면 是不可以一日立于天下라
故
로 之忠於楚也
는 雖不如
之先覺
이나 而比
之貳則爲愈
라
及至蜀에 聞其自京師歸하여 布衣蔬食以爲其徒先하여 凡若干年而所居圓覺院大治라
一日爲予道其先師平潤事와 與其院之所以得名者하고 請予爲記라
院始弊不葺이러니 潤之來에 始得隙地以作堂宇하고 凡更二僧하여 而至於保聰이라
01. 팽주彭州의 원각선원圓覺禪院에 대한 기문
注
발상을 전환한 격식의 의논이 일단의 풍치가 있다.
사람이 여기에 거하는 것은 반드시 이곳에 즐거움이 있어서이다.
이 즐거움이 있는 곳에 거하다가 즐겁지 않으면 거하지 않는다.
거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도 떠나가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하늘도 속이는 것이 된다.
대체로 군자君子는 그 봉록俸祿을 먹으면서 그 공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옷을 입고 있으면서 그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거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나는 봉록을 먹은 것을 토해내고 옷을 벗어버려 천하의 비난을 피할 뿐이다.
하늘이 나에게 형체를 주어 나로 하여금 마음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오늘 진秦나라에 가고 싶어 하다가, 다음날 월越나라에 가고자 하더라도 천하에서 누가 나를 막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거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도 떠나가지 않는 것은, 이것은 마음이 또한 그 형체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니, 하물며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唐나라 이래로 천하의 사대부들이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를 배척할 것을 다투어 말하였다.
그러므로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를 배우는 무리 중에서 우리 사대부의 사이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자들은 왕왕 스스로 그들의 스승을 배반하여 우리들에게 용납되기를 구하였고, 우리 사대부들도 그들이 오는 것을 기쁘게 여겨 예禮로써 대접하였다.
영사靈師와 문창文暢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어 스스로 그들의 가르침을 끊었다.
아! 너희들의 부자간의 인륜을 회복하고 실가室家의 즐거움을 회복한 뒤에야 우리 사대부들은 너희가 너희들의 스승을 배반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으니, 부자간의 인륜을 회복하지 않고 실가室家의 즐거움을 회복하지 않으면서 스승을 배반하면 천하에 하루도 서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옛 책에 이르기를 “제후의 신하된 자는 남의 나라에 가서 사사로이 외교外交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포季布가 초나라 항우項羽에게 충성한 것은 비록 소하蕭何나 한신韓信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유방劉邦을 따른 것만은 못하나 정공丁公이 두 마음 품은 것에 비교해보면 낫다고 하겠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팽주彭州의 승려인 보총保聰이 나에게 찾아와서 사귐을 청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하였다.
촉蜀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듣자하니 그가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베옷을 입고 소찬을 먹는 것으로써 그의 무리들의 모범이 된 지 몇 년 만에 거처하던 원각원圓覺院을 크게 수리하였다고 하였다.
하루는 나에게 그의 돌아가신 스승인 평륜平潤의 일과 원각원圓覺院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까닭을 말해주고 기문記文을 지어주기를 나에게 청하였다.
나는 보총保聰이 그의 스승을 배반하여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팽주彭州 용흥사龍興寺의 승려인 평륜平潤이 《원각경圓覺經》 강론에 뛰어났기 때문에 원각원圓覺院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원각원圓覺院이 처음에는 허물어져 지붕도 잇지 못하였는데 평륜平潤이 와서 비로소 빈터를 얻어 당우堂宇를 지었고, 두 승려를 거쳐 보총保聰에 이르렀다.
보총保聰이 또 그 이웃의 절 일부분을 원각원圓覺院에 합하여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