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子貢之亂齊滅吳하고 存魯는 出於戰國傾危之習이요 決非子貢事니라
君子之道는 智信難이니 信者는 所以正其智也나 而智常至於不正이요
使夫王公大人이라도 而計出於此면 則吾未見其不旋踵而敗也라
吾聞之하니 王者之兵은 計萬世而動이요 霸者之兵은 計子孫而擧요 彊國之兵은 計終身而發이라하니 求可繼也라
故로 子貢之出也에 吾以爲魯可存也로되 而齊可無亂하고 吳可無滅하니 何也오
彼必愕而問焉이면 則對曰 田常이 遣子之兵伐魯하니 吾竊哀子之將亡也라하니라
彼必詰其故면 則對曰 齊之有田氏는 猶人之養虎也요 子之於齊에 猶肘股之於身也라
田氏之欲肉齊久矣라 然이나 未敢逞志者는 懼肘股之捍也라
因敎之 曰 子悉甲趨魯하되 壓境而止하고 吾請爲子하여 潛約魯侯하고 以待田氏之變이라가 帥其兵하여 從子入討之라하니라
爲齊人計之면 彼懼田氏之禍니 其勢不得不聽이요 歸以約魯侯면 魯侯懼齊伐이니 其勢亦不得不聽이라
因使練兵
하여 以俟齊釁
하여 誅亂臣
하고 而定新主
면 齊必德魯
니 數世之利也
라
今誠以魯之衆
으로 從高國鮑晏之師
하고 加齊之半
이면 可以
田常於都市
라
至滎陽하여 嬰이 使使諭齊와 及諸侯連和하고 以待呂氏變이라가 共誅之라
有魯以爲齊요 有高國鮑晏以爲灌嬰이어늘 惜乎라 賜之不出於此也여
注
故로 此策은 大略亦竊陳軫蘇秦之餘나 而爲計甚工이라
注
자공子貢이 제齊나라를 혼란케 하고 오吳나라를 멸망케 하였으며 노魯나라를 보존케 한 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태로운 풍습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자공子貢이 일로 삼아서가 아니다.
그러나 소순蘇洵의 이 논論은 오히려 자공子貢이 미치지 못한 것을 족히 보완해준다.
군자君子의 도道는 지모智謀와 신의信義를 〈한 번에 하기가〉 어려우니, 신의信義는 그 지모智謀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지만 지모智謀는 늘 바른 데에 이르지 않는다.
지모智謀는 그 신의信義를 통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신의信義는 늘 통하지 않음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군자는 여기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세상의 유학자儒學者들은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모두가 신의信義를 버리게 된다.
나라면 곧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다.”라고 말하겠다.
자공子貢이 〈지모智謀로써〉 제齊나라를 혼란케 하였고, 오吳나라를 멸망케 하였으며, 노魯나라를 보존케 하였는데, 나는 그것을 슬프게 생각한다.
저 자공子貢과 같은 사람은 유세遊說하는 선비니, 구차히 한때의 성공을 탐하여 지속할 수 있는 것을 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다가올 화禍를 보지 못하였다.
가령 왕공王公‧대신大臣이라도 그 계책이 지모智謀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짧은 시간에 실패하지 않은 경우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내가 듣자니, 왕자王者의 군대는 만대萬代를 계산하여 움직이고, 패자霸者의 군대는 자손子孫들을 계산하여 거병하며, 강국强國의 군대는 자신 한 대를 계산하여 움직인다 하니,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라서이다.
자공子貢과 같은 용병用兵은 명일明日이면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의 그 출사出使에서, 내 생각으로는 노魯나라는 보존할 수 있으되, 제齊나라는 혼란하지 않을 수 있었고, 오吳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어째서인가?
당시 전상田常이 제齊나라를 찬탈하려 할 때에,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노魯나라를 치게 하였다.
자공子貢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면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를 찾아가 애도를 표하는 것이 더 낳았다.
그들은 반드시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물을 것이니, 그러면 “전상田常이 그대들의 군대를 파견하여 노魯나라를 치려고 하니, 나는 그대들이 장차 망할 것을 가만히 애도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 이유를 따져 물을 것이고, 그러면 “제齊나라에 전씨田氏가 있음은 사람이 호랑이를 키우고 있는 것과 같고, 그대들은 제齊나라에서 몸의 팔다리와 같소.
전씨田氏가 제齊나라라는 고기를 욕심낸 지 오래되었소. 그러나 감히 그 마음을 아직 드러내지 못한 것은 팔다리의 반격을 두려워해서요.
지금 그대들이 노魯나라를 치려고 나가면 팔다리가 제거되는 것이니, 전씨田氏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내가 보기에 몸통이 찢어지면 팔다리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니, 그래서 애도를 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저들은 틀림없이 두려워서 나에게 계책을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틈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지도하기를 “그대들은 모든 병사들을 거느리고 노魯나라로 향하되 국경에서 멈추고, 나는 청컨대 그대들을 위하여 노魯나라 임금과 몰래 약속하고 전씨田氏의 변란을 기다렸다가, 노魯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그대들을 따라 들어가 그를 토벌할 것이오.”라고 한다.
제齊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들은 전씨田氏의 화禍를 두려워할 것이니, 그 형세상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뒤 자공子貢이 돌아가 노魯나라 임금과 약속을 하면, 노魯나라 임금도 제齊나라의 침벌을 두려워할 것이니, 그 형세상 자공子貢의 계획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틈에 〈노魯나라는〉 병사를 훈련시키고 전차를 점검하면서 제齊나라의 틈을 기다려 난신亂臣을 죽이고 신왕新王을 안정시키면, 제齊나라는 반드시 노魯나라를 은덕으로 보답할 것이니, 몇 세대에까지 이로울 것이다.
내가 보니, 공자孔子도 제齊나라 사람 중에 전상田常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노 애공魯 哀公 애공哀公에게 그를 토벌하여야 한다고 청한 것이다.
진실로 노魯나라 군대에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의 군대가 따르고 거기에 제齊나라 백성의 절반이 보태지면, 제齊나라 도성에서 전상田常을 거열형車裂刑에 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형세상 아주 쉽게 할 수 있고, 그 성공도 아주 클 것이다.
애석하도다! 자공子貢이 이런 계책을 내놓지 못함이여.
〈한대漢代의〉 제애왕齊哀王이 거병하여 여씨呂氏 일족을 죽이려 하거늘, 여씨呂氏 일족은 관영灌嬰을 장군으로 삼아 그를 막게 하였다.
형양滎陽에 이르러 관영灌嬰이 사신을 보내 제왕齊王과 다른 제후들이 연합하도록 설득하고 여씨呂氏 일족의 변란을 기다렸다가 함께 여씨呂氏 일족을 죽이고자 하였다.
지금 전상田常이 처한 형세가 어찌 이것과 다르겠는가?
노魯나라는 〈한대漢代의〉 제齊나라와 흡사함이 있고,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는 관영灌婴과 흡사함이 있었거늘, 애석하도다! 자공子貢이 이런 계책을 내놓지 못함이여.
注
소씨蘇氏 부자父子의 학문은 전국시대 종횡가縱橫家에서 나온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 책략도 대략 진진陳軫‧소진蘇秦의 여분을 훔친 것이지만, 그 계책은 심히 공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