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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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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子貢之亂齊滅吳하고 存魯 出於戰國傾危之習이요 決非子貢事니라
而老泉此論 却足以補子貢之所不及이라
君子之道 智信難이니 信者 所以正其智也 而智常至於不正이요
智者 所以通其信也 而信常至於不通이라
是故 君子愼之也
世之儒者 曰 徒智可以成也라하니라
人見乎徒智之可以成也 則擧而棄乎信이라
吾則曰 徒智可以成也 而不可以繼也라하니라
使夫王公大人이라도 而計出於此 則吾未見其不旋踵而敗也
吾聞之하니 王者之兵 計萬世而動이요 霸者之兵 計子孫而擧 彊國之兵 計終身而發이라하니 求可繼也
子貢之兵 是明日이면 不可用也
子貢之出也 吾以爲魯可存也로되 而齊可無亂하고 吳可無滅하니 何也
이라 使移兵伐魯
爲賜計者 莫若抵高國鮑晏하여 吊之
彼必愕而問焉이면 則對曰 田常 遣子之兵伐魯하니 吾竊哀子之將亡也라하니라
彼必詰其故 則對曰 齊之有田氏 猶人之養虎也 子之於齊 猶肘股之於身也
田氏之欲肉齊久矣이나 未敢逞志者 懼肘股之捍也
今子出伐魯 肘股去矣 田氏孰懼哉리오
吾見身將이면 而肘股隨之 所以吊也라하니라
彼必懼하여 而咨計於我
因敎之 曰 子悉甲趨魯하되 壓境而止하고 吾請爲子하여 潛約魯侯하고 以待田氏之變이라가 帥其兵하여 從子入討之라하니라
爲齊人計之 彼懼田氏之禍 其勢不得不聽이요 歸以約魯侯 魯侯懼齊伐이니 其勢亦不得不聽이라
因使練兵하여 以俟齊釁하여 誅亂臣하고 而定新主 齊必德魯 數世之利也
今誠以魯之衆으로 從高國鮑晏之師하고 加齊之半이면 可以田常於都市
其勢甚便하고 其成功甚大
惜乎 賜之不出於此也
至滎陽하여 使使諭齊 及諸侯連和하고 以待呂氏變이라가 共誅之
今田氏之勢 何以異此리오
有魯以爲齊 有高國鮑晏以爲灌嬰이어늘 惜乎 賜之不出於此也
蘇氏父子之學 出於戰國縱橫者多
此策 大略亦竊陳軫蘇秦之餘 而爲計甚工이라


08. 자공子貢의 계책에 대해 논함
자공子貢나라를 혼란케 하고 나라를 멸망케 하였으며 나라를 보존케 한 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태로운 풍습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자공子貢이 일로 삼아서가 아니다.
그러나 소순蘇洵의 이 은 오히려 자공子貢이 미치지 못한 것을 족히 보완해준다.
군자君子지모智謀신의信義를 〈한 번에 하기가〉 어려우니, 신의信義는 그 지모智謀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지만 지모智謀는 늘 바른 데에 이르지 않는다.
지모智謀는 그 신의信義를 통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신의信義는 늘 통하지 않음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군자는 여기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세상의 유학자儒學者들은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모두가 신의信義를 버리게 된다.
나라면 곧 “지모智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다.”라고 말하겠다.
자공子貢이 〈지모智謀로써〉 나라를 혼란케 하였고, 나라를 멸망케 하였으며, 나라를 보존케 하였는데, 나는 그것을 슬프게 생각한다.
자공子貢과 같은 사람은 유세遊說하는 선비니, 구차히 한때의 성공을 탐하여 지속할 수 있는 것을 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다가올 를 보지 못하였다.
가령 왕공王公대신大臣이라도 그 계책이 지모智謀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짧은 시간에 실패하지 않은 경우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내가 듣자니, 왕자王者의 군대는 만대萬代를 계산하여 움직이고, 패자霸者의 군대는 자손子孫들을 계산하여 거병하며, 강국强國의 군대는 자신 한 대를 계산하여 움직인다 하니,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라서이다.
자공子貢과 같은 용병用兵명일明日이면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의 그 출사出使에서, 내 생각으로는 나라는 보존할 수 있으되, 나라는 혼란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어째서인가?
당시 전상田常나라를 찬탈하려 할 때에,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치게 하였다.
자공子貢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면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를 찾아가 애도를 표하는 것이 더 낳았다.
그들은 반드시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물을 것이니, 그러면 “전상田常이 그대들의 군대를 파견하여 나라를 치려고 하니, 나는 그대들이 장차 망할 것을 가만히 애도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 이유를 따져 물을 것이고, 그러면 “나라에 전씨田氏가 있음은 사람이 호랑이를 키우고 있는 것과 같고, 그대들은 나라에서 몸의 팔다리와 같소.
전씨田氏나라라는 고기를 욕심낸 지 오래되었소. 그러나 감히 그 마음을 아직 드러내지 못한 것은 팔다리의 반격을 두려워해서요.
지금 그대들이 나라를 치려고 나가면 팔다리가 제거되는 것이니, 전씨田氏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내가 보기에 몸통이 찢어지면 팔다리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니, 그래서 애도를 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저들은 틀림없이 두려워서 나에게 계책을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틈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지도하기를 “그대들은 모든 병사들을 거느리고 나라로 향하되 국경에서 멈추고, 나는 청컨대 그대들을 위하여 나라 임금과 몰래 약속하고 전씨田氏의 변란을 기다렸다가, 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그대들을 따라 들어가 그를 토벌할 것이오.”라고 한다.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들은 전씨田氏를 두려워할 것이니, 그 형세상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뒤 자공子貢이 돌아가 나라 임금과 약속을 하면, 나라 임금도 나라의 침벌을 두려워할 것이니, 그 형세상 자공子貢의 계획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틈에 〈나라는〉 병사를 훈련시키고 전차를 점검하면서 나라의 틈을 기다려 난신亂臣을 죽이고 신왕新王을 안정시키면, 나라는 반드시 나라를 은덕으로 보답할 것이니, 몇 세대에까지 이로울 것이다.
내가 보니, 공자孔子나라 사람 중에 전상田常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노 애공魯 哀公 애공哀公에게 그를 토벌하여야 한다고 청한 것이다.
진실로 나라 군대에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의 군대가 따르고 거기에 나라 백성의 절반이 보태지면, 나라 도성에서 전상田常거열형車裂刑에 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형세상 아주 쉽게 할 수 있고, 그 성공도 아주 클 것이다.
애석하도다! 자공子貢이 이런 계책을 내놓지 못함이여.
한대漢代의〉 제애왕齊哀王이 거병하여 여씨呂氏 일족을 죽이려 하거늘, 여씨呂氏 일족은 관영灌嬰을 장군으로 삼아 그를 막게 하였다.
형양滎陽에 이르러 관영灌嬰이 사신을 보내 제왕齊王과 다른 제후들이 연합하도록 설득하고 여씨呂氏 일족의 변란을 기다렸다가 함께 여씨呂氏 일족을 죽이고자 하였다.
지금 전상田常이 처한 형세가 어찌 이것과 다르겠는가?
나라는 〈한대漢代의〉 나라와 흡사함이 있고,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포목鮑牧안어晏圉관영灌婴과 흡사함이 있었거늘, 애석하도다! 자공子貢이 이런 계책을 내놓지 못함이여.
소씨蘇氏 부자父子의 학문은 전국시대 종횡가縱橫家에서 나온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 책략도 대략 진진陳軫소진蘇秦의 여분을 훔친 것이지만, 그 계책은 심히 공교하다.


역주
역주1 子貢 : 이 글은 用兵과 관련된 政治外交 활동의 智謀와 信義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蘇洵은 일시적인 智謀로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지속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信義가 뒷받침되지 않은 智謀의 사용을 신중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
역주2 子貢之以亂齊滅吳 存魯也 : 田常이 齊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먼저 魯나라 침공을 구실로 삼으려 하였다. 이에 孔子의 제자 子貢이 齊‧吳‧越‧晉나라를 다니며 유세하여 齊나라의 침공을 저지하려 하였다. 子貢은 吳王에게 齊나라를 칠 것을 종용하고, 越王 句踐에게는 吳王이 齊나라를 쳐서 이기면 다시 晉나라를 치게 하여 吳나라 정예병이 晉나라에 묶여 있을 때, 吳나라를 습격하도록 유세하였다. 결국 子貢의 말대로 되어 吳나라는 齊나라를 쳐서 이기고 이어 晉나라를 공격했지만 패하였고, 越나라는 그 틈을 이용하여 吳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子貢은 孔子의 제자인 端木賜의 字이다. 魏나라 사람으로 孔子보다 31살이 적다. 그는 특히 言辯에 뛰어나 遊說家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고, 貿易에도 뛰어나 萬金을 쌓기도 했다.
역주3 苟以邀一時之功……不見其禍 : 子貢의 이 한 번의 出使로 齊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吳나라는 망하였으며 魯나라는 보존되었지만, 晉나라는 强國이 되었고 越나라는 霸者가 되었다. 이 다섯 나라에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고, 균형을 이루고 있던 형세가 깨지면서 천하가 혼란에 빠져들었다.
역주4 田常之將簒也 憚高國鮑晏 : 田常은 齊 簡公의 재상으로 田乞의 아들이다. 高昭子는 齊 景公을 섬겼는데, 景公이 병이 나자 高昭子와 國惠子에게 어린 아들 荼를 태자로 세울 것을 부탁하였다. 이듬해 田乞과 鮑牧이 병사를 끌고 궁중에 난입하자 高昭子는 荼를 구하려다 피살되었고, 國惠子는 田乞의 패당에게 쫓겨 莒로 달아났다가 나중에 돌아왔지만, 吳王 夫差가 齊나라를 공격할 때 포로가 되었다. 鮑牧은 田乞과 함께 난에 가담하여 公子 陽生을 세웠는데, 이 사람이 悼公이다. 그러나 悼公 4년에 鮑牧은 悼公을 죽였다. 晏圉는 安嬰의 아들로 田乞 등의 난을 피해 魯나라로 달아났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蘇洵이 여기에서 ‘憚高國鮑晏’이라 한 것은 齊 景公의 재상 田乞 때의 이야기이지, 齊 簡公의 재상 田常 때의 일이 아니다.
역주5 磔裂 : 옛날 죄인의 몸을 찢어 죽이던 형벌의 일종이다.
역주6 蒐乘 : 《嘉祐集》에는 ‘搜乘’로 되어 있다. 뜻은 다 ‘戰車를 점검하다.’는 말이다.
역주7 仲尼……請哀公討之 : 齊나라 陳恒(漢 文帝 劉恒의 이름을 피휘하여 田常이라 함)이 그의 임금인 壬을 舒州에서 피살하였다. 孔子는 3일을 제계하고 세 번이나 齊나라를 토벌하자고 청하였다. 그러나 魯 哀公은 “우리나라가 齊나라의 침략으로 쇠약한 지 오래되었다. 지금 그대가 齊나라를 치자 하니 장차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하였다. 孔子는 “齊나라 陳恒이 그 임금을 죽였으니, 齊나라 백성 중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반수는 될 것입니다. 魯나라의 많은 군사에 齊나라의 반수의 사람을 보탠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 14년》
역주8 : 형벌의 일종으로, 車裂刑이다.
역주9 齊哀王……共誅之 : 呂后가 權力을 독점한 후, 그 친척인 呂産‧呂祿 등 여러 呂氏들의 권세가 막강하였다. 呂后가 죽은 뒤, 呂氏들은 국가의 대사를 장악하고 난을 일으키려고 하였지만, 周勃‧灌嬰 같은 劉邦의 옛 신하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거동하지 못하였다. 劉氏 姓의 제후의 한 사람인 劉章이 그 소식을 듣고 그의 형인 齊哀王에게 알리고 呂氏를 토벌하고자 하였다. 齊王이 군대를 내자 당시 재상인 呂山이 灌嬰에게 명하여 그를 토벌하게 하니, 灌嬰이 군대를 거느리고 滎陽에 이르러 거기에 주둔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灌嬰은 齊王 등 劉氏 姓의 제후들과 연합하여 呂氏들이 반란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史記 呂太后本紀》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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