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運險峭之思하여 以爲鑱畫之文이라 故로 其鋒鍔不可嚮邇라
天下無事면 天子甚尊하고 公卿甚貴하며 士甚賤이라
從士而逆數之하여 至於天子면 其積也甚厚하고 其爲變也甚難이라
是故로 天子之尊至於不可指하고 而士之卑는 至於可殺이라
及其敗也에 思以千乘之國으로 與匹夫共之나 而不可得也라
人知其卒之至於如此면 則天子之尊可以慄慄於上이요 而士之卑可以肆志於下니 又焉敢以勢言哉아
故로 夫士之貴賤은 其勢在天子요 天子之存亡은 其權在士라
世衰道喪이면 天下之士는 學之不明하고 持之不堅하니 於是에 始以天子存亡之權이 下而就一匹夫貴賤之勢라
使夫上之人有失天下士之憂하고 而後에 有失一士之懼라
當今之世에 非有賢公卿이면 不能振其前하고 非有賢士면 不能奮其後라
洵從蜀來하여 明日에 將至長安하여 見明公而東이라
伏惟讀其書而察其心하여 以輕重其禮면 幸甚幸甚이니이다
注
험초險峭한 생각을 운용하여 송곳처럼 새긴 글을 지었으므로, 그 칼끝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천하天下에 일이 없으면 천자天子는 매우 높고 공경公卿은 매우 귀貴하며 선비는 매우 천賤합니다.
선비에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천자에까지 이르면 그 쌓임은 매우 두텁고 그 변함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천자天子의 높음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선비의 낮음은 죽일 만한 지경에 이릅니다.
아아! 그 편안便安함만 보고 그 위태危殆로움을 보지 못함이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위 의공衛 懿公의 죽음은 그에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鶴 때문에 거절하여 더불어 싸우지 않아서입니다.
바야흐로 아직 패하지 않았을 때는 천하天下의 선비들이 학鶴이 되기를 바랐으나 될 수가 없었습니다.
패하였을 때는 천승千乘의 나라를 필부匹夫와 함께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음을 안다면 천자天子의 존귀尊貴함으로 위에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선비의 낮음으로 아래에서 마음껏 뜻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니, 또한 어찌 감히 형세形勢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대체로 선비가 귀해지고 천해지는 것은 그 형세가 천자에게 있으며, 천자天子가 존속하거나 망하는 것은 그 권세權勢가 선비에게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쇠퇴해지고 도道가 상실되면 천하天下의 선비는 배움이 밝지 못하고 지조志操가 굳지 못하니, 이에 비로소 천자를 존속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 권리가 아래로 내려가서 한 필부를 귀하게 하고 천하게 하는 형세를 이루게 됩니다.
천금千金이 나가는 벽옥碧玉을 가지고 한 질장구와 바꾸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들어 도랑에 버리지 않겠습니까?
옛 군자君子들은 그 도道로 서로 한 무리가 되고, 그 무리를 서로 썼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여기서 쓰이지 않으면 천하天下의 선비는 서로 따라서 떠나갔습니다.
이는 대체로 위의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의 선비를 잃는 근심을 갖게 하고, 나중에는 한 선비를 잃는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지금의 군자君子들은 그 무리가 쓰이지 않음으로써 제 한 몸이 구차히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 애초에도 가벼이 쓰고 종국에도 가벼이 버립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어진 공경公卿이 아니면 앞을 떨칠 수가 없고, 어진 선비가 아니면 그 뒤를 분발시킬 수가 없습니다.
저는 촉蜀에서 와 내일 장안長安에 이르러 명공明公을 뵙고 동쪽(개봉開封)으로 가려고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그 글을 읽고 그 마음을 살피시어 그 예禮의 경중輕重을 가늠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나이다.
注
당형천唐荊川(당순지唐順之)이 말하기를 “의론議論이 기이奇異하고 높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