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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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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03. 장수將帥를 부림
老蘇論御才將以智하여 而引漢高祖待韓彭一着한대 似痛切矣
소순蘇洵재장才將기지機智로써 부려야 한다는 것을 논하면서, 한 고조漢 高祖한신韓信팽월彭越을 우대한 것을 우선적으로 인용하였는데,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獨不思宋祖御諸將 更有處分이라
다만 송 태조宋 太祖가 여러 장수를 부리는 데에 더욱 처분이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智之一字 決非至理
’ 한 자로는 결코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人君御臣 相易而將難이라
임금이 신하를 부림에, 재상宰相은 부리기 쉽고 장군將軍은 부리기 어렵다.
將有二 有賢將이요 有才將이나 而御才將尤難이라
장군에도 두 부류가 있으니, 현장賢將이 있고 재장才將이 있지만, 재장才將을 부리기가 더 어렵다.
御相以禮하고 御將以術하며 御賢將之術 以信하고 御才將之術 以智하니라
재상宰相을 부리는 데에는 로써 하고, 장군將軍을 부리는 데에는 수단手段으로써 하며, 현장賢將을 부리는 수단은 신의信義로써 하고, 재장才將을 부리는 수단은 기지機智로써 한다.
不以禮하고 不以信이면 是不爲也
로써 하지 않고 신의信義로써 하지 않으면, 이것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不以術하고 不以智 是不能也
수단으로써 하지 않고 기지機智로써 하지 않으면, 이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曰 御將難이나 而御才將 尤難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장군을 부리는 것이 어렵지만, 재장才將을 부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其初 皆獸也
여섯 종의 가축은 그 처음에는 모두가 야생동물이었다.
彼虎豹能搏能噬하고 而馬亦能蹄하고 牛亦能觸하니라
저 호랑이와 표범은 덮치고 물어뜯는 데 능하고, 말은 또 말굽으로 뒷발질하는 데 능하며, 소는 또 뿔로 들이박는 데 능하다.
先王 知能搏能噬者 不可以人力制
선왕先王들은 덮치고 물어뜯는 데 능한 짐승들은 인력人力으로 제압할 수 없음을 알았다.
殺之하고 殺之不能이면 驅之而後
그래서 그놈들을 죽였던 것이고, 죽일 수가 없으면 몰아낸 뒤에야 멈췄다.
蹄者 可馭以羈紲이요 觸者 可拘以이라
말굽으로 뒷발질하는 짐승은 굴레와 고삐로 부릴 수 있고, 뿔로 들이박는 데 능한 짐승은 뿔막이로 구속할 수가 있었다.
先王 不忍棄其材하여 而廢天下之用이라
그래서 선왕先王들은 차마 그 재주를 포기하여 천하에 유용함을 내버릴 수가 없었다.
如曰 是能蹄하고 是能觸이라하여 當與虎豹竝殺而同驅 則是天下 無騏驥하여 終無以服乘耶
만약 이 짐승은 뒷발질에 능하고 이 짐승은 들이박는 데 능하다 하여 호랑이나 표범처럼 죽이거나 몰아내었다면, 이 천하에는 준마駿馬가 없어져 끝내 아무것도 타고 다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先王之選才也 自非大奸劇惡 如虎豹之不可以變其搏噬者 未有不欲制之以術하여 而全其才하여 以適于用이온
선왕先王이 인재를 선발할 때에, 그 간사奸邪하고 극악極惡함이 호랑이와 표범처럼 덮쳐서 물어뜯는 습성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적절한 수단으로 통제하여 그 재능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쓰임에 적절하도록 하려 하지 않음이 없었다.
況爲將者 又不可責以細謹하고 顧其才何如耳
더구나 장군이라면 언행言行이 단정하고 세심하며 신중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그 재능才能이 어떠한지만 보았을 따름이다.
漢之 唐之 賢將也 漢之韓信黥布彭越 唐之 才將也
나라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조충국趙充國나라 이정李靖이적李勣현장賢將들이요, 나라 한신韓信경포黥布팽월彭越나라 설만철薛萬徹후군집侯君集성언사盛彥師재장才將들이다.
賢將旣不多有하니 得才者而任之可也
현장賢將이 많지 않으니, 재능 있는 자를 얻기만 하면 그를 임용하는 것이 옳다.
苟又曰 是難御라하여도 則是不肖者而後 可也
또 이런 사람은 부리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이는 불초不肖한 자라고 생각한 다음에 〈등용해 쓰면〉 될 것이다.
結以重恩하여 示以赤心하고 美田宅 豐飲饌 歌童舞女 以極其口腹耳目之欲하되 而折之以威하니 先王之所以御才將者也
두터운 은혜로 맺어서 진심을 보이고, 좋은 토지와 주택‧풍성한 술과 음식‧가동歌童무녀舞女로써 그 입과 배와 귀와 눈의 욕망을 극도로 만족시켜 주되, 위엄으로써 그를 굴복시켰으니, 이것이 선왕先王들이 재장才將을 부리는 방법이었다.
近之論者 或曰 將之所以畢智竭力하여 犯霜露하며 蹈白刃而不辭者 冀賞耳
근래의 논자論者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장군將軍들이 지혜智慧와 힘을 다하여 서리와 이슬을 맞아가며 시퍼런 칼날을 밟아도 피하지 않는 까닭은 을 바라서일 뿐이다.
爲國家者 不如勿先賞以邀其成功이라하고
국가를 위하는 자라면 을 앞세우지 말고 그의 성공成功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라 한다.
或曰 賞所以使人이니 不先賞이면 人不爲我用이라하니라
어떤 사람은 “상은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수단이니, 상을 앞세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다.”라 한다.
是皆一隅之說이요 非通論也
이러한 말들은 다 자신들의 일방적인 말이요, 사리事理에 통하는 말은 아니다.
將之才 固有小大하니 傑然於庸將之中者 才小者也 傑然於才將之中者 才大者也
장군의 재능에는 분명 크고 작은 것이 있으니, 용장庸將의 중간보다 뛰어난 자는 재능이 작은 자이고, 재장才將의 중간보다 뛰어난 자는 재능이 큰 자이다.
才小 志亦小 才大 志亦大 人君 當觀其才之小大하여 而爲制御之術以稱其志
재능이 작으면 뜻 또한 작고, 재능이 크면 뜻 또한 크니, 임금이라면 당연히 그 재능의 크고 작음을 살펴서, 부릴 수단을 만들어 그들의 뜻에 부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一隅之說不可用也
일방적인 말을 써서는 안 된다.
夫養騏驥者 豐其芻粒하고 潔其羈絡하며 居之新하여 浴之淸泉而後 責之千里
대저 천리마千里馬를 기르는 사람은 알곡의 사료를 배불리 먹이고, 그 굴레를 깨끗하게 해주며, 새 마구간에 머물게 하면서, 맑은 샘물로 목욕시킨 후에 천 리를 달리도록 요구해야 한다.
彼騏驥者 其志常在千里也 夫豈以一飽而廢其志哉
저 천리마는 그 뜻이 늘 천 리를 달리는 데 있으니, 어찌 한 번의 배부름 때문에 그 뜻을 버리겠는가?
至於養鷹하여는 則不然하니 獲一雉 飼以一雀하고 獲一兔 飼以一鼠
매를 기르는 데에는 그렇지 않으니, 꿩 한 마리를 잡으면 참새 한 마리를 먹이로 주고, 토끼 한 마리를 잡으면 쥐 한 마리를 먹이로 준다.
彼知不盡力於擊搏이면 則其勢無所得食하니 然後 爲我用이라
저 매는 사냥하는 데 힘을 다하지 않으면, 그 형편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뒤에야 나에게 쓰이게 되는 것이다.
才大者 騏驥也 不先賞之 是養騏驥者 饑之하여 而責其千里 不可得也
재능이 큰 것은 천리마와 같은 경우이니, 먼저 상을 주지 않으면, 이것은 천리마를 기르는 자가 굶주려놓고 천 리를 달리도록 요구하는 것이니 천 리를 달릴 수가 없다.
才小者 鷹也 先賞之 是養鷹者 飽之하여 而求其擊搏이니 亦不可得也
재주가 작은 것은 매와 같은 경우이니, 먼저 상을 주면, 이것은 매를 먹이는 사람이 매를 배불리 먹인 뒤에 사냥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니 또한 사냥을 할 수가 없다.
是故 先賞之說 可施之才大者 不先賞之說 可施之才小者 兼而用之 可也
이 때문에 먼저 상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재주를 가진 자에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이고, 먼저 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작은 재주를 가진 자에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니, 두 가지를 겸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옛날 한 고조漢 高祖한신韓信을 보자마자 상장군上將軍의 지위를 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그에게 입히고 자신이 먹는 음식을 그에게 먹였으며, 경포黥布를 만나자마자 그를 회남왕淮南王으로 삼아 그에게 제공한 용품과 음식은 왕의 것과 같았으며, 팽월彭越을 보자마자 상국相國으로 삼았다.
當是時 三人者 未有功于漢也
이때에 이 세 사람은 아직 나라에 이 없었다.
厥後 追項籍垓下 與信越期而不至어늘 損數千里之地하여 以畀之 如棄敝屣
그 후 항우項羽를 쫓아 해하垓下에 이르렀을 때에, 한신韓信팽월彭越은 약속한 기일에 이르지도 않았으나, 수천 리의 땅을 포기하여 그들에게 주기를 마치 헌신 버리듯이 하였다.
項氏未滅하고 天下未定호되 而三人者 已極富貴矣하니 何則
항우項羽는 아직 멸망되지 않았고 천하도 아직 평정되지 않았지만, 이 세 사람은 이미 극도로 부귀하였다. 어째서일까?
高帝 知三人者之志大하여 不極於富貴 則不爲我用이요 雖極於富貴라도 而不滅項氏하고 不定天下 則其志不已也
한 고조漢 高祖는 이 세 사람은 뜻이 커서 극도로 부귀하게 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위해서 쓰이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극도의 부귀를 누리더라도 항우項羽가 멸망하지 않고 천하가 평정되지 않으면 그들의 뜻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至於樊噲滕公灌嬰之徒則不然하니 拔一城陷一陣而後 增數級之爵하고 否則終歲不遷也
번쾌樊噲등공滕公관영灌嬰의 무리는 그렇지 않았으니, 하나를 뺏고 하나를 무너뜨린 뒤에야 몇 등급의 작위爵位를 더해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한 해가 다 가도록 승진시키지 않았다.
項氏已滅하고 天下已定하여 樊噲滕公灌嬰之徒 計百戰之功而後 爵之하니 夫豈高帝至此而嗇哉
항우項羽가 이미 멸망하고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번쾌樊噲등공滕公관영灌嬰의 무리에게는 백전百戰의 공을 계산한 뒤에 통후通侯의 작위를 주었으니, 어찌 고조高祖가 이토록 인색하였을까?
知其才小而志小하여 雖不先賞이라도 不怨이요 而先賞之 則彼將泰然自滿하여 而不復以立功爲事故也
그들의 재주가 작고 뜻이 작아서 먼저 상을 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먼저 그들에게 상을 주면 그들은 곧 태연자약하며 스스로 만족하면서 더 이상 공을 세우는 것을 일로 삼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方韓信之立於齊 未去也
아! 한신韓信나라 땅에서 막 자립하였을 때에는 괴통蒯通무섭武涉이 아직 설득하러 가지 않았을 때였다.
當是之時 而奪之王이면 漢其殆哉리라
바로 이때에 그에게 왕의 작위를 뺏었다면, 나라는 아마 위험했을 것이다.
夫人豈不欲三分天下하여 而自立者리오하거늘 而彼則曰 漢王不奪我齊也라하니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천하를 삼분三分하여 자립하지 않느냐 하거늘, 한신韓信은 곧 “한왕漢王이 나의 땅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齊不捐이면 則韓信不懷하고 韓信不懷 則天下非漢之有리라
그러므로 〈고조高祖가〉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한신韓信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신韓信이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천하는 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嗚呼 高帝可謂知大計矣
아아!고조高祖대계大計를 알았다 할 수 있다.
역주
역주1 御將 : 이 글은 장군을 賢將과 才將으로 나누고, 또 그 장군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크고 작음으로 나누어, 거기에 맞는 방법을 택하여 그들을 부릴 것을 강조하였다.
역주2 六畜 : 소‧돼지‧양‧말‧닭‧개의 여섯 종류의 가축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이들 모두는 원래 야생동물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3 : 뿔막이, 소가 뿔로 들이박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두 뿔에 가로 댄 나무이다.
역주4 廉隅 : 행동과 품성이 단정하여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역주5 : 衛靑(?~B.C 106)이다. 字는 仲卿, 河東 平陽 사람이다. 일곱 차례나 匈奴를 물리쳐, 관직이 大司馬‧大將軍에 이르렀다.
역주6 : 霍去病(B.C 140~B.C 117)이다. 河東 平陽 사람으로 衛靑의 누나 아들, 즉 외종생질이다. 여섯 번이나 匈奴 정벌에 나서 큰 공을 세워 驃騎大將軍이 되었다.
역주7 趙充國 : B.C 137~B.C 52. 漢나라 上邽 사람으로 武帝‧宣帝 때에 匈奴 정벌에 참여하였고, 西羌의 반란 때에는 先零을 부수고, 군대를 거느려 屯田하며 就食하였다.
역주8 李靖 : 571~649. 唐나라 三原 사람으로, 突厥과 吐谷渾을 쳐서 그 공으로 衛國公에 봉해졌다.
역주9 李勣 : 594~669. 离狐 사람으로, 唐 太宗 李世民을 도와 唐나라를 세우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幷州都督‧光祿大夫를 지냈다.
역주10 薛萬徹 : ?~653. 唐나라 汾陽 사람으로, 唐 高祖에게 귀의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李靖을 따라 突厥 토벌에 참여하여 그 공으로 統軍이 되었으나, 나중에 房遺愛와 더불어 모반하였다가 피살되었다.
역주11 侯君集 : ?~643. 唐나라 三水 사람으로 唐 太宗을 따라 遠征과 討伐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右衛大將軍‧兵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太子 承乾이 잘못을 범하여 폐위될 처지가 되자 侯君集을 끌어들여 계책을 물었는데, 이 일이 발각되어 侯君集은 피살되었다.
역주12 盛彥師 : 唐나라 虞城 사람으로, 戰功으로 葛國公에 봉해졌으나 이후 죄를 지어 살해되었다.
역주13 : 여기서는 마구간을 말한다.
역주14 漢高帝……推食哺之 : 《史記》 〈淮陰侯列傳〉에 “韓信의 군대를 징발하여 楚나라를 치게 하니, 楚나라는 이미 龍且를 잃었고 項王은 두려워하여 盱貽 사람 武涉을 시켜서 齊王 韓信을 설득하였다.……韓信은 사절하여 말하기를 ‘신이 項王을 섬겼으나 벼슬이 郎中에 불과하였고, 지위는 執戟에 불과하였습니다. 進言하여도 듣지 않았고, 계책은 채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楚나라를 배반하고 漢나라로 돌아갔습니다. 漢王은 나에게 上將軍의 印을 주었으며, 나에게 수만의 군대를 주었습니다. 자신의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히고 밥을 내려서 나에게 먹였습니다. 진언하면 들어주시고 계책은 채용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역주15 一見黥布而以爲淮南王 供具飲食如王者 : 《史記》 〈黥布列傳〉에 “劉邦이 隨何를 보내 九江王 黥布를 설득하여 楚나라를 배반하고 漢나라로 귀의하게 하여 黥布가 漢나라에 이르니, 漢王은 평상에 걸터앉아 발을 씻고 있었는데, 그대로 黥布를 불러들여 뵙게 하였다. 黥布는 매우 성을 내어 漢나라로 온 것을 후회하고 자살하고 싶었다. 나와서 宿舍에 이르니 帷帳‧飮食‧從官 등이 漢王의 거처와 같았으므로, 黥布는 자신이 바랐던 것보다 더 과분한 대우에 크게 기뻐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역주16 一見彭越而以爲相國 : 劉邦이 昌邑을 칠 때에 彭越이 그를 도왔지만 昌邑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두 사람은 흩어졌다가, 漢나라가 楚나라를 공격할 때에 彭越이 그의 3만여의 군사를 거느리고 外黃에서 漢나라로 완전히 귀의하였다. 이에 劉邦은 彭越을 魏相國으로 삼았다. 漢나라 相國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史記 魏豹彭越列傳》
역주17 通侯 : 徹侯이다. 秦‧漢 시기의 爵位 이름이다. 漢 武帝의 이름이 徹이어서 避諱하여 徹을 通으로 바꾸어 徹侯를 通侯라 하였다.
역주18 蒯通武涉之說 : 蒯通은 范陽 사람으로, 韓信에게 漢나라를 배반하고 자립하여 劉邦‧項羽와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도록 설득하였지만, 韓信은 듣지 않았다. 武涉은 盱貽 사람으로, 項羽가 그를 韓信에게 보내어 韓信이 자립하여 천하를 삼분할 것을 설득하였지만, 韓信은 또한 듣지 않았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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