洵聞之
컨대 楚人
이 高令尹子文之行
하여 曰
라하니
其爲令尹也에 楚人이 爲之喜하고 而其去令尹也에 楚人이 爲之怒하니 己不期爲令尹이나 而令尹이 自至라
知其不可以求得하고 而安其自得하니 是以로 喜怒不及其心이나 而人爲之囂囂라
脫然爲棄於人이나 而不知棄之爲悲하고 紛然爲取於人이나 而不知取之爲樂이라
人自爲棄我取我라도 而吾之所以爲我者如一이면 則亦不足以高視天下而竊笑矣哉라
하며 한대 其辯
이 如決河流而東注諸海
하고 名聲
은 四溢於中原而磅礴於戎狄之國
하니 可謂至盛矣
라
하여는 에 明公無求於人
하고 而人亦無求於明公者
라
達者는 安於逸樂而習爲高岸之節한대 顧視四海하니 饑寒窮困之士는 莫不嚬蹙嘔噦而不樂이요
窮者는 藜藿不飽하고 布褐不暖하며 習爲貧賤之所摧折하여 仰望貴人之輝光이면 則爲之顚倒而失措라
夫惟天下之習於富貴之榮하고 而狃於貧賤之辱者라야 而後可與語此라
今夫天下之所以奔走於富貴者를 我知之矣로되 而不敢以告人也라
夫天下之官은 上自三公으로 至於卿大夫하고 而下至於士니 此四者는 皆人之所自爲也요 而人亦自貴之라
天下以爲此四者가 絶群離類하여 特立於天下而不可幾近이면 則不亦大惑矣哉아
夫此四名者는 其初엔 蓋出於天下之人이 出其私意以自相號呼者而已矣니라
夫此四名者가 果出於人之私意所以自相號呼也면 則夫世之所謂賢人君子者가 亦何以異此리오
有才者爲賢人하고 而有德者爲君子니 此二名者가 夫豈輕也哉아
而今世之士
로 得爲君子者
가 一爲世之所棄
면 則以爲不若
之貴
어늘 而況以與三公争哉
리오
且夫明公昔者之伏於南海
와 與夫今者之爲
也
엔 君子豈有間於其間
이며 而明公亦豈有以自輕而自重哉
아
洵以爲明公之習於富貴之榮하고 而狃於貧賤之辱하여 其嘗之也蓋已多矣니 是以로 極言至此요 而無所迂曲이니이다
洵은 西蜀之匹夫로 嘗有志於當世나 因循不遇하여 遂至於老라
然이나 其常所欲見者가 天下之士에 蓋有五六人이라
五六人者를 已略見矣로되 而獨明公之未嘗見이 每以爲恨이라
今明公이 來朝하시고 而洵이 適在此하여 是以로 不得不見이라
注
출처出處를 논함에 기세氣勢가 기이奇異하고 우뚝한 곳이 많다.
제가 듣건대 초楚나라 사람들은 영윤令尹 자문子文의 행실을 고상하게 여겨 “세 번 영윤令尹이 되었으나 기뻐하지 않았고, 세 번 그 영윤직令尹職을 빼앗겼으나 노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영윤이 되자 초나라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기뻐하였고, 그가 영윤직에서 떠나자 초나라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노하였으니, 자신은 영윤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영윤직이 절로 이르렀습니다.
저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어찌 유독 부귀富貴를 싫어하였겠습니까?
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얻은 것을 편안하게 여겼으니, 이 때문에 희로喜怒가 그 마음에 일어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이 때문에 떠들썩하였습니다.
아아! 어찌 또한 족히 자기는 크게 보고 남은 작게 보기에 충분치 않겠습니까?
탈연脫然히 남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버림받은 것이 슬픔인 줄을 몰랐으며, 분연紛然이 남에게 취하여졌으나 취하여진 것이 즐거운 줄을 몰랐습니다.
남들이 스스로 나를 버리고 나를 취하였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이 한결같으면, 또한 족히 천하를 고상高尙하게 보기만 하였다거나 가만히 비웃기만 하였다고 볼 수만은 없을 듯하나이다.
지난날 명공明公께서는 초기에 스스로 남해南海의 바닷가에서 떨쳐 일어나 천하天下의 명경明卿이 되셨습니다.
성하였을 때는 격앙激昂되어 의분이 북받쳐 득실得失을 논하고 가부可否를 정하였으며, 좌左로는 서강西羌을 어루만지고 우右로는 거란契丹을 헤아렸으며, 천 리에 사신使臣의 직을 받들어 강하고 사나우며 꺾이지 않는 오랑캐를 탄압彈壓하였는데 그 변설辨說이 황하黃河의 흐름을 터뜨려 동으로 바다에 대는 것과 같았으며, 명성名聲이 사방으로 중원中原에 넘치고 융적戎狄의 나라에 가득 찼으니 지극히 성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중도에 이르러 그만두고 바닷가의 필부匹夫가 되었을 때는 대개 그 사이 10여 년 동안 명공明公께서는 남에게 구하지를 않았고 사람들도 명공에게 구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뒤 마침 남만南蠻이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어 만 리에 가득 차도록 아무도 그것을 구제하지 못하였는데, 명공明公께서 이에 백성의 무리 가운데서 일어나 채찍을 꺾어 그들을 치니 오래지 않아 남방이 또한 안정되었습니다.
대저 명공明公께서 어찌 추구함이 있어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때마침 사변事變을 만나 큰 공功을 이루셨고 공이 이루어져 작록爵祿이 이르렀습니다.
명공明公께서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대체로 또한 느긋하게 여유가 있었습니다.
슬프도다! 세속世俗의 사람들은 분분紛紛히 부귀富貴의 사이에서 스스로 멈출 줄을 모릅니다.
현달顯達한 자는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안주하여 고상하고 준엄한 절개에 습관이 되어 있는데, 사해四海를 돌아보니 주리고 춥고 궁곤窮困한 선비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즐겁지 않습니다.
곤궁한 자는 명아주잎과 콩잎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거친 베옷으로 따뜻이 입지 못하며, 항상 빈천貧賤에 좌절된 것에 습관이 되어 귀인貴人의 광휘光輝를 우러러 바라보면 그 때문에 전도顚倒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부귀富貴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貧賤을 편안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더불어 얘기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저들이 빈천과 부귀의 올바른 맛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다만 천하天下에서 부귀의 영화에 습관이 되어 있고, 빈천의 욕됨을 부끄러워해 본 자라야만 더불어 이러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 천하天下가 부귀富貴에 분주한 까닭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만 감히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못합니다.
부귀富貴의 극極은 천자天子의 재상宰相에서 그칩니다.
그런데 천자의 재상은 과연 누가 그 이름을 지어주었습니까? 어찌 하늘이 그 이름을 주었겠습니까?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천하의 관리官吏가 위로는 삼공三公에서 경卿‧대부大夫에 이르고 아래로는 사士에 이르니, 이 네 부류는 모두 사람들이 스스로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또한 스스로 귀하게 여깁니다.
천하天下에서 이 네 부류가 무리에서 떨어져 특별히 천하에 우뚝 서서 거의 가까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또한 크게 의혹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또한 그 근본根本으로 돌아가서 생각지 않습니까?
대저 이 네 명칭名稱은 처음에는 아마 천하의 사람들이 사사로운 뜻을 내어 서로 부른 것에서 나왔을 따름일 것입니다.
대저 이 네 명칭이 과연 사람들의 사사로운 뜻이 서로 부른 것에서 나왔다면 세상의 이른바 현인賢人과 군자君子가 또한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재주가 있는 자는 현인賢人이 되고 덕德이 있는 자는 군자君子가 되니 이 두 명칭이 어찌 가볍다 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세상의 선비로 군자가 된 자들이 한결같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는다면 일명一命의 선비의 귀함만 못하다고 생각하거늘, 하물며 삼공三公의 귀함과 다툴 수 있겠습니까?
또한 명공明公께서 지난날 남해南海에서 엎드려 계실 때와 지금 동제후東諸侯가 되신 것에는 군자君子로서의 처신에 어찌 그 사이에 구분이 있을 것이며, 명공明公께서는 또한 어찌 스스로 가벼이 여기고 스스로 중시함이 있겠습니까?
저는 명공께서 부귀의 영화에도 익숙하고 빈천의 욕됨에도 습관이 되어 이러저러한 것을 맛본 것이 이미 많을 것으로 생각하므로, 이에 극언極言이 여기까지 이르렀고 빙 둘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촉西蜀의 필부匹夫로 일찍이 당세에 뜻을 가졌으나 머뭇거리다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마침내 노년老年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늘 만나보고 싶었던 분은 천하의 선비 중에 대개 대여섯 분이었습니다.
그 대여섯 분은 이미 대략 만나뵈었습니다만 유독 명공明公만을 일찍이 뵙지 못한 것이 늘 한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지금 명공明公께서 내조來朝하시고 제가 마침 이곳에 있어 이 때문에 찾아뵙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더욱 잘 살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