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通篇이 只罪管仲不能臨沒薦賢호되 起起伏伏하여 光景不窮이라
이 相
하여 諸侯
하고 攘戎狄
하여 終其身
토록 齊國富强
하고 諸侯不敢叛
이러니
管仲死
에 이 用
하니 하고 爭立
하여 其禍蔓延
하여 訖
히 齊無寧歲
하니라
夫功之成은 非成於成之日이요 蓋必有所由起이며 禍之作은 不作於作之日이요 亦必有所由兆하니
則齊之治也
를 吾不曰管仲而曰
이라하며 及其亂也
는 吾不曰竪刁易牙開方而曰管仲
이라하노라
何則고 竪刁易牙開方三子는 彼固亂人國者어니와 顧其用之者威公也니라
夫有舜而後
에 知放
이요 有仲尼而後
에 知去
하나니 彼威公
은 何人也
오
仲之疾也
에 하니 當是時也
에 吾以仲且擧天下之賢者以對
러니 而其言
이 乃不過曰 竪刁易牙開方三子
는 非人情
이니 不可近而已
라하니라
威公聲不絶乎耳하고 色不絶乎目한대 而非三子者면 則無以遂其欲이니 彼其初之所以不用者는 徒以有仲焉耳니라
一日無仲이면 則三子者는 可以彈冠而相慶矣리니 仲以爲將死之言이 可以縶威公之手足耶아
夫齊國은 不患有三子요 而患無仲이니 有仲이면 則三子者는 三匹夫耳라
雖威公이 幸而聽仲하여 誅此三人이라도 而其餘者를 仲能悉數而去之耶아
因威公之問하여 擧天下之賢者하여 以自代면 則仲雖死라도 而齊國未爲無仲也니 夫何患三子者리오 不言可也니라
에 莫盛於威文
이니 文公之才
는 不過威公
이요 其臣
도 又皆不及仲
하며 之虐
은 不如
之寬厚
언마는
文公死에 諸侯不敢叛晉하고 晉襲文公之餘威하여 得爲諸侯之盟主者百有餘年하니라
威公之薨也에 一亂塗地는 無惑也니 彼獨恃一管仲이라가 而仲則死矣라
威公在焉에 而曰 天下不復有管仲者는 吾不信也로라
엔 有記其將死
에 論鮑叔
之爲人
하고 且各
하니 是
는 其心
에 以爲是數子者
는 皆不足以託國
이요 而又逆知其將死
하니 則其書誕謾
하여 不足信也
니라
故
로 有身後之諫
하고 且死
에 擧曹參以自代
하니 大臣之用心
이 固宜如此也
니라
一國이 以一人興하고 以一人亡하나니 賢者는 不悲其身之死요 而憂其國之衰라
故로 必復有賢者而後에 有以死하나니 彼管仲者는 何以死哉아
注
문장 전편이 오직 관중管仲이 죽음에 임하여 현자賢者를 천거하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는데, 솟구치고 가라앉고 하는 변화의 광경이 끝이 없다.
관중管仲이 제 환공齊 桓公의 재상宰相이 되어 제후諸侯들 가운데 패자霸者가 되게 하고 오랑캐들을 물리쳐서, 그가 죽을 때까지 제齊나라는 부강富强하고, 제후들은 감히 배반背反하지 못하였다.
관중管仲이 죽자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이 임용되니, 환공桓公은 혼란 중에 죽었고 다섯 명의 공자公子들이 왕위王位를 서로 다투어 그 화禍가 이어져 간공簡公에 이르기까지 제齊나라는 편안했던 해가 없었다.
대저 공로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지는 바로 그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게 된 연유가 있는 것이며, 화禍가 일어나는 것은 화禍가 일어난 바로 그날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또한 반드시 그것이 시작된 조짐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제齊나라가 잘 다스려졌던 것을 나는 관중管仲 때문이 아니라 포숙鮑叔 때문이었다 할 것이며, 제齊나라가 혼란하게 된 것은 나는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때문이 아니라 관중管仲 때문이었다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세 사람은 본시 나라를 어지럽힐 인물이었는데도 바로 그들을 임용한 자는 환공桓公이었기 때문이다.
순舜임금이 있고 난 다음에야 사흉四凶을 내칠 줄 알았던 것이고, 공자孔子가 있고 난 다음에야 소정묘少正卯를 제거할 줄 알았던 것이니, 저 환공桓公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환공桓公으로 하여금 그 세 사람들을 임용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관중管仲이었던 것이다.
관중管仲이 병이 났을 때에 환공桓公이 그에게 재상에 관하여 물었으니, 바로 그때에 나는 관중管仲이 천하의 어진 사람을 천거하여 대답할 줄 알았더니, 그는 단지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세 사람은 인정人情이 없으니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만 하였다.
아아!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이 과연 그 세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관중管仲은 환공桓公과 함께 몇 년을 지냈으니, 또한 환공桓公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환공桓公은 귀에는 음악音樂이 끊이지 않았고 눈에는 미색美色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 세 사람이 아니면 그러한 욕망을 채울 수가 없는 처지였으니, 〈그런데도〉 그가 처음에 그들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다만 관중管仲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하루에 관중管仲이 없게 되면 그들 세 사람은 〈벼슬을 하려고〉 관冠을 털면서 서로 축하할 것이니, 관중管仲은 죽음에 임박하여 한 말이 환공桓公의 수족手足을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제齊나라에서는 세 사람이 있는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관중管仲이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관중管仲이 있으면 곧 세 사람은 세 명의 필부匹夫일 따름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어찌 세 사람과 같은 무리들이 적겠는가?
비록 환공桓公이 다행히도 관중管仲의 말을 듣고서 이 세 사람을 처형하였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 사람들을 관중管仲이 모두 헤아려서 제거할 수 있었겠는가?
아아! 관중管仲은 근본根本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환공桓公의 질문에 응하여 천하의 현명賢明한 사람을 추천推薦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면, 관중管仲이 죽는다 하더라도 제齊나라에는 관중管仲이 없는 셈이 아니니, 어찌 그 세 사람들을 걱정하였는가?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오패五霸 중에 제 환공齊 桓公과 진 문공晉 文公보다 강성强盛한 사람들이 없었으니, 문공文公의 재능은 환공桓公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그의 신하도 모두 관중管仲에 미치지 못하였으며, 진 영공晉 靈公의 포악함은 제 효공齊 孝公의 관후함에 견줄 바가 못 되었건만
문공文公이 죽었어도 제후들은 감히 진晉나라를 배반하지 않았고, 진晉나라는 문공文公의 남은 위세威勢를 이어받아 제후들의 맹주盟主 노릇을 백여 년이나 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그 나라 임금은 비록 못났지만 여전히 그 나라에 노련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공桓公이 죽자 〈제齊나라가〉 단번에 혼란에 빠진 것은 의심할 나위 없었으니, 그가 오직 관중管仲 한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가 그 관중管仲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천하에 현명한 사람이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 대개 현명한 신하는 있었지만 현명한 임금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환공桓公이 살아 있을 때에 “천하는 더는 관중 같은 사람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믿지 않는다.
관중管仲의 책에는, 그가 죽음에 임박하여 포숙鮑叔과 빈서무賓胥無의 사람됨을 논하고, 아울러 각자에 대한 그들의 단점을 조목조목 진술한 기록이 있으니, 이것은 관중管仲이 마음속에 이 몇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맡기기에 부족한 인물이라 여긴 것이고, 게다가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았던 것이니, 그렇다면 그 책은 황당하고 진실되지 못하여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보건대 〈위衛나라〉의 사추史鰌는 거백옥蘧伯玉을 벼슬자리에 나아가게 하고 미자하彌子瑕를 물러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죽은 뒤에 시신으로 간함이 있었고, 〈한漢나라〉 소하蕭何는 죽음을 맞게 되자 조참曹參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도록 하였으니, 대신大臣의 마음 씀이 본래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흥성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망하기도 하나니, 현명한 사람은 그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나라의 쇠락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다시 현명한 사람이 자리에 있도록 한 뒤에야 자신이 죽을 수 있으니, 저 관중管仲이란 사람은 어찌 그렇게 죽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