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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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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通篇 只罪管仲不能臨沒薦賢호되 起起伏伏하여 光景不窮이라
하여 諸侯하고 攘戎狄하여 終其身토록 齊國富强하고 諸侯不敢叛이러니
管仲死 하니 하고 爭立하여 其禍蔓延하여 齊無寧歲하니라
夫功之成 非成於成之日이요 蓋必有所由起이며 禍之作 不作於作之日이요 亦必有所由兆하니
則齊之治也 吾不曰管仲而曰이라하며 及其亂也 吾不曰竪刁易牙開方而曰管仲이라하노라
何則 竪刁易牙開方三子 彼固亂人國者어니와 顧其用之者威公也니라
夫有舜而後 知放이요 有仲尼而後 知去하나니 彼威公 何人也
顧其使威公으로 得用三子者 管仲也니라
仲之疾也 하니 當是時也 吾以仲且擧天下之賢者以對러니 而其言 乃不過曰 竪刁易牙開方三子 非人情이니 不可近而已라하니라
嗚呼 仲以爲威公 果能不用三子矣乎
仲與威公處幾年矣 亦知威公之爲人矣乎인저
威公聲不絶乎耳하고 色不絶乎目한대 而非三子者 則無以遂其欲이니 彼其初之所以不用者 徒以有仲焉耳니라
一日無仲이면 則三子者 可以彈冠而相慶矣리니 仲以爲將死之言 可以縶威公之手足耶
夫齊國 不患有三子 而患無仲이니 有仲이면 則三子者 三匹夫耳
不然이면 天下豈少三子之徒리오
雖威公 幸而聽仲하여 誅此三人이라도 而其餘者 仲能悉數而去之耶
嗚呼 可謂不知本者矣니라
因威公之問하여 擧天下之賢者하여 以自代 則仲雖死라도 而齊國未爲無仲也 夫何患三子者리오 不言可也니라
莫盛於威文이니 文公之才 不過威公이요 其臣 又皆不及仲하며 之虐 不如之寬厚언마는
文公死 諸侯不敢叛晉하고 晉襲文公之餘威하여 得爲諸侯之盟主者百有餘年하니라
何者 其君 雖不肖 而尙有老成人焉이러라
威公之薨也 一亂塗地 無惑也 彼獨恃一管仲이라가 而仲則死矣
夫天下 未嘗無賢者 蓋有有臣而無君者矣어니와
威公在焉 而曰 天下不復有管仲者 吾不信也로라
有記其將死 論鮑叔之爲人하고 且各하니 其心 以爲是數子者 皆不足以託國이요 而又逆知其將死하니 則其書誕謾하여 不足信也니라
有身後之諫하고 且死 擧曹參以自代하니 大臣之用心 固宜如此也니라
一國 以一人興하고 以一人亡하나니 賢者 不悲其身之死 而憂其國之衰
必復有賢者而後 有以死하나니 彼管仲者 何以死哉


02. 관중管仲에 대한 논문
문장 전편이 오직 관중管仲이 죽음에 임하여 현자賢者를 천거하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는데, 솟구치고 가라앉고 하는 변화의 광경이 끝이 없다.
관중管仲제 환공齊 桓公재상宰相이 되어 제후諸侯들 가운데 패자霸者가 되게 하고 오랑캐들을 물리쳐서, 그가 죽을 때까지 나라는 부강富强하고, 제후들은 감히 배반背反하지 못하였다.
관중管仲이 죽자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이 임용되니, 환공桓公은 혼란 중에 죽었고 다섯 명의 공자公子들이 왕위王位를 서로 다투어 그 가 이어져 간공簡公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편안했던 해가 없었다.
대저 공로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지는 바로 그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게 된 연유가 있는 것이며, 가 일어나는 것은 가 일어난 바로 그날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또한 반드시 그것이 시작된 조짐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졌던 것을 나는 관중管仲 때문이 아니라 포숙鮑叔 때문이었다 할 것이며, 나라가 혼란하게 된 것은 나는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때문이 아니라 관중管仲 때문이었다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세 사람은 본시 나라를 어지럽힐 인물이었는데도 바로 그들을 임용한 자는 환공桓公이었기 때문이다.
임금이 있고 난 다음에야 사흉四凶을 내칠 줄 알았던 것이고, 공자孔子가 있고 난 다음에야 소정묘少正卯를 제거할 줄 알았던 것이니, 저 환공桓公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환공桓公으로 하여금 그 세 사람들을 임용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관중管仲이었던 것이다.
관중管仲이 병이 났을 때에 환공桓公이 그에게 재상에 관하여 물었으니, 바로 그때에 나는 관중管仲이 천하의 어진 사람을 천거하여 대답할 줄 알았더니, 그는 단지 “수조竪刁역아易牙개방開方 세 사람은 인정人情이 없으니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만 하였다.
아아! 관중管仲환공桓公이 과연 그 세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관중管仲환공桓公과 함께 몇 년을 지냈으니, 또한 환공桓公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환공桓公은 귀에는 음악音樂이 끊이지 않았고 눈에는 미색美色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 세 사람이 아니면 그러한 욕망을 채울 수가 없는 처지였으니, 〈그런데도〉 그가 처음에 그들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다만 관중管仲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하루에 관중管仲이 없게 되면 그들 세 사람은 〈벼슬을 하려고〉 을 털면서 서로 축하할 것이니, 관중管仲은 죽음에 임박하여 한 말이 환공桓公수족手足을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라에서는 세 사람이 있는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관중管仲이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관중管仲이 있으면 곧 세 사람은 세 명의 필부匹夫일 따름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어찌 세 사람과 같은 무리들이 적겠는가?
비록 환공桓公이 다행히도 관중管仲의 말을 듣고서 이 세 사람을 처형하였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 사람들을 관중管仲이 모두 헤아려서 제거할 수 있었겠는가?
아아! 관중管仲근본根本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환공桓公의 질문에 응하여 천하의 현명賢明한 사람을 추천推薦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면, 관중管仲이 죽는다 하더라도 나라에는 관중管仲이 없는 셈이 아니니, 어찌 그 세 사람들을 걱정하였는가?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오패五霸 중에 제 환공齊 桓公진 문공晉 文公보다 강성强盛한 사람들이 없었으니, 문공文公의 재능은 환공桓公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그의 신하도 모두 관중管仲에 미치지 못하였으며, 진 영공晉 靈公의 포악함은 제 효공齊 孝公의 관후함에 견줄 바가 못 되었건만
문공文公이 죽었어도 제후들은 감히 나라를 배반하지 않았고, 나라는 문공文公의 남은 위세威勢를 이어받아 제후들의 맹주盟主 노릇을 백여 년이나 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그 나라 임금은 비록 못났지만 여전히 그 나라에 노련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공桓公이 죽자 〈나라가〉 단번에 혼란에 빠진 것은 의심할 나위 없었으니, 그가 오직 관중管仲 한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가 그 관중管仲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천하에 현명한 사람이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 대개 현명한 신하는 있었지만 현명한 임금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환공桓公이 살아 있을 때에 “천하는 더는 관중 같은 사람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믿지 않는다.
관중管仲의 책에는, 그가 죽음에 임박하여 포숙鮑叔빈서무賓胥無의 사람됨을 논하고, 아울러 각자에 대한 그들의 단점을 조목조목 진술한 기록이 있으니, 이것은 관중管仲이 마음속에 이 몇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맡기기에 부족한 인물이라 여긴 것이고, 게다가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았던 것이니, 그렇다면 그 책은 황당하고 진실되지 못하여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보건대 〈나라〉의 사추史鰌거백옥蘧伯玉을 벼슬자리에 나아가게 하고 미자하彌子瑕를 물러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죽은 뒤에 시신으로 간함이 있었고, 〈나라〉 소하蕭何는 죽음을 맞게 되자 조참曹參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도록 하였으니, 대신大臣의 마음 씀이 본래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흥성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망하기도 하나니, 현명한 사람은 그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나라의 쇠락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다시 현명한 사람이 자리에 있도록 한 뒤에야 자신이 죽을 수 있으니, 저 관중管仲이란 사람은 어찌 그렇게 죽었단 말인가?


역주
역주1 管仲論 : 작자 蘇洵의 역사적인 人物論 중의 하나로, 管仲을 評價하는 작자의 독특한 견해가 날카롭다. 管仲은 살아서 齊 桓公의 宰相으로 많은 공을 세웠던 사람인데, 실은 그 공은 管仲 자신보다도 그를 桓公에게 천거하였던 鮑叔의 공로로 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管仲이 앓아누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桓公이 문병을 가서 그의 뒤를 이을 재상감에 대하여 물었다. 管仲은 竪刁 같은 간사한 자들을 멀리할 것을 진언하는 한편, 몇몇 대신들의 단점만 얘기하고 자기 후임자를 추천하지 않았다. 齊나라는 管仲이 죽은 뒤 크게 혼란에 빠졌는데, 그것은 곧 賢明한 사람을 추천하지 않았던 管仲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齊나라의 큰 功臣으로 보는 일반적인 평가를 뒤엎는 그의 〈管仲論〉은 후세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역주2 管仲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로, 이름이 夷吾, 字가 仲이다. 諡號를 敬이라 하여 敬仲이라고도 부른다. 처음엔 많은 실패를 하였으나 친구 鮑叔의 추천으로 齊 桓公의 재상이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제후들을 糾合하여 周왕실을 받들며 오랑캐들을 물리쳤다. 桓公도 그를 높이어 仲父라 불렀다.
역주3 威公 : 齊 桓公이다. 宋 欽宗의 이름인 趙桓을 피휘하여 齊 桓公을 齊 威公이라 하였다.
역주4 : 霸者가 되는 것을 말한다. 춘추시대에는 이른바 五霸가 있어 여러 제후들을 이끌며 周나라 왕실을 받들어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고 힘을 합쳐 오랑캐들을 물리쳤다.
역주5 竪刁易牙開方 : 춘추시대 齊 桓公의 內侍로, 매우 총애를 받았으나, 桓公이 죽은 뒤, 같은 내신인 易牙‧開方과 함께 많은 신하들을 죽이며 齊나라를 크게 어지럽혔다. 易牙는 뛰어난 요리사로 狄牙라고도 부르며, 桓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삶아 요리하여 올렸다고도 한다.
역주6 威公薨於亂 : 桓公은 竪刁 등의 亂中에 죽었다.
역주7 五公子 : 다섯 명의 왕자로, 춘추시대 제후들의 아들을 公子라고 하였다. 桓公의 아들은 여섯 명이었으나 그중 공자 昭는 뒤에 孝公이 되고, 나머지 다섯 공자는 공자 武孟‧공자 元‧공자 潘‧공자 商人‧공자 雍이다.
역주8 簡公 : 이름은 壬이고 悼公의 아들로, 桓公으로부터 11대 임금이다. 春秋時代 齊나라는 簡公에 이르러 혼란이 극심하였다.
역주9 鮑叔 : 鮑叔牙로 齊나라 대부였다. 젊어서부터 管仲의 친구로서 여러 가지 일로 管仲을 이해해주고 도와주었으며, 뒤에는 管仲이 公子 糾를 섬기다가 잡히자, 그를 齊 桓公에게 추천하여 재상이 되도록 밀었다.
역주10 四凶 : 舜에 의하여 추방되었던 네 惡人으로, 驩兜‧共工‧鯀‧三苗이다. 《書經 舜典》
역주11 少正卯 : 春秋時代 魯나라의 대부였는데, 孔子가 魯나라의 大司寇가 된 뒤, 그가 정치를 어지럽힌다 하여 처형했다.
역주12 公問之相 : 桓公이 그에게 재상에 관해서 물었다, 즉 재상으로 임용할 사람에 대하여 물었다는 뜻이다.
역주13 五霸 : 춘추시대의 다섯 명의 霸者로, 齊 桓公‧晉 文公‧秦 穆公‧宋 襄公‧楚 莊王이다. 秦 穆公과 宋 襄公 대신 吳 闔閭와 越 句踐을 넣기도 한다.
역주14 靈公 : 晉 文公의 손자로, 無道한 임금으로 유명하다.
역주15 孝公 : 齊 桓公의 아들로, 厚德한 임금으로 알려졌다.
역주16 仲之書 : 齊나라 管仲의 이름을 따서 지은 《管子》란 책이다. 대부분 管仲의 言行을 기록한 것이지만 淸代 사람의 考證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이 後人의 僞作으로 밝혀졌다. 그 내용은 잡다하지만 法家 사상을 위주로 하여 道家‧名家‧天文‧曆數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 서적 분류에는 法家類로 분류하고 있다.
역주17 賓胥無 : 齊나라 大夫의 이름이다.
역주18 疏其短 : 중병이 든 管仲에게 桓公이 위문을 가서 묻자, 管仲은 “鮑叔의 사람됨은 매우 정직하기는 하지만 나라를 위해 굽히지 못하고, 賓胥無의 사람됨은 매우 착하기는 하지만 나라를 위해 굽히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역주19 吾觀史鰍(鰌)以不能進蘧伯玉而退彌子瑕 : 鰍는 鰌와 同字이다. 史鰌는 史魚라고도 부르며, 衛나라 大夫였다. 衛 靈公 때 蘧伯玉을 벼슬자리에 천거하고 간사한 彌子瑕를 내치려고 여러 번 간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죽게 되자 아들에게 나라를 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禮를 갖추어 자신을 장사 지내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靈公이 조문을 와서 禮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屍身을 보고, 그 연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크게 깨닫고, 다시 蘧伯玉을 등용하고 彌子瑕를 내쳤다 한다.
역주20 蕭何 : 漢 高祖의 재상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蕭何는 죽음을 앞두고 동료인 曹參을 추천하여, 曹參이 그를 이어 재상이 되게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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