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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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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文如怒馬 奔逸絶塵하여 而不可羈制
大略老蘇之文 有此一段奇邁奮迅之氣하니 讀之往往令人心掉
聖人之道하고하고하니 是以 有民하고 有群臣하고 而又有腹心之臣이라
曰經者 天下之民 擧知之可也 曰權者 民不得而知矣 群臣知之可也 曰機者 雖群臣이라도 亦不得而知矣 腹心之臣知之可也
夫使聖人而無權이면 則無以成天下之務 無機 則無以濟이라
이나 皆非天下之民 所宜知 而機者 又群臣所不得聞이니 群臣不得聞이면 誰與議리오
然則所謂腹心之臣者 不可一日無也
後世見三代取天下以仁義하여 而守之以禮樂也하고 則曰聖人無機라하니 夫取天下 與守天下 無機不能이라
顧三代聖人之機 不若後世之詐하여 後世不得見耳
有機也라야 是以 有腹心之臣하니 禹有하고 湯有伊尹하고 武王有太公望하니라
是三臣者 聞天下之所不聞하고 知群臣之所不知하니라
禹與湯武 倡其機於上하고 而三臣者 和之於下하여 以成萬世之功이라
下而至于桓文하여 有管仲爲之謀主하고 闔廬有하고 句踐有이라
髙祖之起也 大將 任韓信黥布彭越하고 裨將 任曹參樊噲滕公灌嬰하며 游說諸侯하며 至于奇機密謀하여는 群臣所不與者하고二人하니라
唐太宗之臣 多奇才하되 而委之深任之密者 亦不過曰
夫君子爲善之心 與小人爲惡之心 一也
君子有機하여 以成其善하고 小人有機하여 以成其惡하니라
有機也 雖惡이라도 亦或濟하고 無機也 雖善이라도 亦不克하니라
是故 腹心之臣 不可一日無也
魏之賊也로되之徒하여 爲之腹心之臣하여 以濟하고 秦民之湯武也로되 無腹心之臣하여 以不克하니라
何則 無腹心之臣者 無機也 有機而泄也
夫無機 與有機而泄者 譬如虎豹食人할새 而不知設陷穽이요 設陷穽하되 而不知以物覆其上者也
或曰 機者 創業之君 所假以濟耳
守成之世 其奚事機하여 而安用夫腹心之臣이리오하니라
嗚呼 守成之世 能遂熙然如太古之世矣乎
未也 吾未見機之可去也
且夫天下之變 常伏於燕安하니 라하니라
如此等事 何世無之리오
當是之時 而無腹心之臣이면 可爲寒心哉
昔者髙祖之末 天下旣定矣로되 而又하고 武帝之末 天下旣治矣로되 而又하니 蓋天下雖有泰山之勢라도 而聖人常以累卵爲心하니라
雖守成之世라도 而腹心之臣 不可去也니라
라하니 彼冢宰者 非腹心之臣이면 天子安能擧天下之事하여 委之三年호되 而不置疑于其間邪
又曰 라하니 彼無腹心之臣한대 五載一出하여 捐千里之畿 而誰與守邪
今夫一家之中에도 必有宗老하고 一介之士라도 必有密友하여 以開心胸하여 以濟緩急하니 奈何天子而無腹心之臣乎
近世之君 抗然於上하여 而使宰相眇然於下하니 上下不接하여 而其志不通矣
臣視君 如天之遼然而不可親하고 而君亦如天之視人하여 泊然無愛之之心也
是以 社稷之憂 彼不以爲憂하고 社稷之喜 彼不以爲喜
一人譽之 則用之하고 一人毀之 則舍之하니라
宰相 避嫌畏譏 且不暇어늘 何暇 盡心以憂社稷이리오
數遷數易하여 視相府하여 百官汎汎於下하고 而天子惸惸於上하여 一旦 有卒然之憂 吾未見其不顚沛而殞越也
聖人之任腹心之臣也 尊之如父師하고 愛之如兄弟하여 握手入卧內하여 同起居寢食하여 知無不言하고 言無不盡하니라
百人譽之라도 不加密하고 百人毀之라도 不加疎하여 尊其爵하고 厚其祿하고 重其權而後 可與議天下之機하고 慮天下之變이라
太祖用하여 得其道矣
近者 亦誠其人이나이나 與之權輕하여 終以見逐하니 而天下幾有不測之變하니 然則


02. 먼 장래에 대해 생각함
이 글은 마치 성난 말이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려서 제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략 소순蘇洵의 글은 이런 일단의 기매분신奇邁奮迅(맹렬히 떨쳐 일어나는 모양)의 기세가 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으면 종종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성인聖人의 도에는 상도常道가 있고 권변權變이 있으며 기밀機密이 있으니, 이 때문에 백성이 있고 군신群臣이 있고 또 심복의 신하가 있게 된다.
상도常道라 하는 것은 천하 백성들이 그것을 다 알아야 되는 것이고, 권변權變이라 하는 것은 백성들은 알 수 없지만 군신群臣들은 알아야 되는 것이며, 기밀機密이라 하는 것은 비록 군신群臣이라 하더라도 알 수 없으나, 심복의 신하만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다.
대저 성인聖人권변權變이 없으면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없고, 기밀機密이 없으면 한 왕조의 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이 둘 다 천하 백성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는 아니요, 기밀機密은 또 군신群臣들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니, 군신群臣이 들을 수 없으면 누구와 의논할까? 의논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른바 심복의 신하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후세 사람들은 삼대三代에는 인의仁義로 천하를 취하여 예악禮樂으로 지킨 것을 보고, 곧 “성인聖人에게는 기밀機密이 없다.”라 말하니, 대저 천하를 취하고 천하를 지키는 데에 기밀機密은 없어서는 안 된다.
다만 삼대三代 성인聖人기밀機密은 후세의 속임과는 달랐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알 수가 없었을 뿐이다.
기밀機密이 있어야, 그것 때문에 심복의 신하가 있게 되니, 임금에게는 백익伯益이 있었고, 임금에게는 이윤伊尹이 있었으며, 무왕武王에게는 태공망太公望이 있었다.
이 세 신하는 천하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고, 군신群臣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임금‧임금‧무왕武王이 그 기밀機密을 위에서 주창하고 세 신하가 아래에서 화답하여 한 왕조의 을 이룰 수 있었다.
그 후대로 내려와 제 환공齊 桓公진 문공晉 文公에게는 관중管仲호언狐偃이 있어 그들의 모주謀主가 되었고, 〈나라〉 합려闔廬에게는 오원伍員이 있었고, 〈나라〉 구천句踐에게는 범려范蠡대부大夫 이 있었다.
한 고조漢 髙祖가 일어나서는 대장大將으로 한신韓信경포黥布팽월彭越을 임용하였고, 비장裨將으로 조참曹參번쾌樊噲등공滕公관영灌嬰을 임용하였고, 제후諸侯를 유세하는 데에는 역생酈生(역이기酈食其)‧육가陸賈종공樅公을 임용하였으며, 기기밀모奇機密謀를 요하는 계책에는 군신群臣들은 참여하지 못하였고, 오직 유후留侯(장량張良)와 찬후鄼侯(소하蕭何) 두 사람만 참여하였다.
당 태종唐 太宗의 신하 중에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았지만, 중임을 맡기고 기밀機密을 맡길 때에는 또한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두 사람에 불과하였다.
군자君子을 행하는 마음과 소인小人을 행하는 마음은 한가지다.
군자君子기밀機密이 있었기에 그 을 이루었고, 소인小人기밀機密이 있었기에 그 을 이루었다.
기밀機密이 있으면 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이룰 수가 있고, 기밀機密이 없으면 이라 할지라도 이룰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심복의 신하가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마씨司馬氏나라를 해친 도적이었지만, 가충賈充과 같은 무리들이 있어 그들을 심복의 신하로 삼아 성공하였고, 진승陳勝오광吳廣나라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나라 탕왕湯王나라 무왕武王과 같았지만, 심복의 신하가 없어서 성공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가? 심복의 신하가 없다는 것은 기밀機密이 없는 것이요, 기밀機密이 있어도 누설된 것이다.
기밀機密이 없거나 기밀機密이 있어도 누설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호랑이나 표범이 사람을 잡아먹어도 함정을 설치할 줄 모르거나, 함정을 설치해놓고도 그 위를 물건으로 가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기밀機密이란 창업創業의 군주가 빌려서 성공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니,
수성守成의 시대에 어찌 기밀機密을 일로 삼아 심복의 신하를 쓰겠는가?”라고 말한다.
아아! 수성守成의 시대라 해서, 저 태고의 시대처럼 바로 안락한 시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기밀機密을 버린 것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게다가 천하의 변란은 늘 안일 속에 잠복해 있으니, 전문田文이 이른바 “임금이 어리면 나라는 위험하니, 대신들이 따르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어느 시대인들 없겠는가?
바로 이러할 때에 심복의 신하가 없다면 얼마나 한심스런 일인가!
옛날 한 고조漢 髙祖 말년에는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는데도, 주발周勃혜제惠帝문제文帝에게 남겨주었고, 무제武帝 말년에는 천하가 이미 잘 다스려졌는데도, 곽광霍光소제昭帝선제宣帝에 남겨주었으니, 대개 천하가 비록 태산泰山의 모습처럼 안정되어 있더라도, 성인聖人은 늘 위험하게 쌓아놓은 계란처럼 여겼다.
그러므로 수성守成의 시대라 하더라도 심복의 신하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서전書傳》에서 “백관百官은 자신의 직무를 총괄하여 재상宰相의 명을 듣는다.” 하였으니, 저 재상宰相이라는 사람이 심복의 신하가 아니었다면, 천자가 어찌 온 천하의 일을 들어 그에게 3년 동안이나 맡겨놓고도 그 사이에 의심하지 않았겠는가?
또 “5년에 한 번씩 순수巡狩한다.”라 하였으니, 그에게 심복의 신하가 없는데도 5년에 한 번 순수巡狩하여 천 리의 기내畿內를 포기해버리면, 누가 그를 위해 지켜주겠는가?
지금 한 가문家門 안에도 반드시 장로長老가 있고, 일개 선비라도 반드시 친밀한 친구親舊가 있어 심금을 터놓고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어찌 천자에게 심복의 신하가 없겠는가?
근세의 임금은 위에 높이 앉아서 재상宰相을 아래로 하찮게 대하니, 위아래가 서로 접촉하지 않아 그들의 뜻이 통하지 않는다.
신하는 임금 보기를 아득히 먼 하늘인 양 가까이할 수 없는 것같이 하고, 임금은 또 마치 하늘이 사람을 보듯 덤덤하여 아끼는 마음이 없다.
이 때문에 사직社稷의 근심을 저들은 근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직社稷의 기쁨을 저들은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이 근심하여도 욕되게 여기지 않고, 임금이 욕을 당해도 죽지 않는다.
한 사람이 그를 칭찬하면 그를 등용하고, 한 사람이 그를 비방하면 그를 버린다.
재상은 의심을 피하고 비난을 두려워하는 데도 겨를이 없거늘, 어느 겨를에 마음을 다하여 사직社稷을 걱정하겠는가?
걸핏하면 옮기고 걸핏하면 바꾸어, 승상부丞相府 보기를 여관旅館 보듯이 해서, 백관들은 아래에서 표류하고 천자는 위에서 외로워하다가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런 우환이 생기면, 무너져 몰락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성인聖人이 심복의 신하를 임용함에 아비와 스승처럼 높이고 형제처럼 아껴서 손을 잡고 침실 안으로 들어가 침식寢食기거起居를 함께하면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말을 다하지 않음이 없다.
백 사람이 그를 칭찬해도 더 친밀할 것 없고, 백 사람이 그를 헐뜯어도 더 멀어질 것 없으며, 그 작위爵位를 높이고 그 봉록俸祿을 후하게 하고 그 권력權力을 무겁게 해준 다음에 그와 더불어 천하의 기밀機密을 의논할 수가 있고, 천하의 변화變化를 고려할 수 있다.
태조太祖께서는 조중령趙中令(조보趙普)을 등용하여 그 를 얻으셨다.
근자에 구래공寇萊公(구준寇準) 또한 진실로 그만 한 사람이지만, 그에게 준 권력이 가벼웠기 때문에 끝내 추방되어, 천하에는 거의 예측할 수 없는 변고가 생겼으니, 그렇다면 그에게 반드시 생살여탈生殺與奪의 권력을 준 뒤에야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遠慮 : 이 글은, 君主는 반드시 奇機密謀를 맡길 수 있는 심복의 신하가 있어야 萬代의 功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2 : 常道로, 不變의 道理를 말한다.
역주3 : 權變으로, 變通하여 正道에 맞는 것을 말한다.
역주4 : 寄機密謀, 즉 機密을 말한다.
역주5 萬世之功 : 한 王朝를 세우는 것을 가리켜 萬代라고 하였다.
역주6 不議 不濟 : 토론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濟는 ‘성공하다.’는 뜻이다.
역주7 : 伯益으로 嬴씨 성의 시조이다. 목축과 수렵에 뛰어나 舜임금이 虞에 임명하였고, 禹임금 때에는 禹임금을 도와 治水에 功이 있었다. 禹임금이 죽기 전 그에게 천자의 자리를 양위하려 했지만, 그는 箕山 남쪽으로 피하여 살았다.
역주8 狐偃 : 字가 子犯으로, 晉 文公의 외숙이며 文公을 따라 19년 동안 외지를 떠돌다가 귀국 후 文公을 도와 霸業을 이루었다.
역주9 伍員 : 字가 子胥로, 아버지 伍奢와 형 伍尙이 楚 平王에게 죽임을 당하자, 吳나라로 달아났다가 吳나라가 楚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도왔다.
역주10 范蠡大夫種 : 范蠡는 미녀 西施를 찾아내어 吳나라 夫差에게 바쳤고, 大夫 種은 大夫의 벼슬에 있었던 文種으로, 越나라의 寶器를 吳나라 夫差에게 바쳐 강화를 맺었다. 越나라 句踐이 이들의 도움으로 嘗膽하며 마침내 吳나라를 멸하였다.
역주11 酈生陸賈樅公 : 酈生은 酈食其로, 陳留 高陽 사람이다. 일찍이 漢나라를 위해 齊나라를 설득하여 齊나라 70여 城을 항복시켰다. 韓信이 齊나라를 공격하자 齊나라 사람들이 그가 齊나라를 속인 것을 알고 그를 삶아 죽였다. 陸賈는 楚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張良의 계책에 따라 酈食其와 함께 秦나라 장군을 설득하여 武關을 습격하여 깨뜨렸고, 南越의 尉佗를 漢나라 신하가 되도록 설득한 공으로 大中大夫가 되었다. 樅公은 劉邦이 漢王이 되었을 때 御史大夫가 되었고, 楚‧漢의 전쟁 중에 漢을 위하여 滎陽을 지키다가, 項羽의 공격으로 죽었다.
역주12 留侯鄼侯 : 留侯는 張良으로 본래는 韓나라 사람이었지만, 劉邦의 책사가 되어 천하를 평정한 공로로 留侯에 봉해졌다. 鄼侯는 沛 사람으로 蕭何이다. 楚나라와 漢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 蕭何가 關中을 지키며 군수품을 원활이 공급하여 軍中에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劉邦이 稱帝하고 論功行賞할 때에 蕭何의 공이 가장 크다 하여 鄼侯에 봉하였다.
역주13 房杜 : 房玄齡과 杜如晦를 말한다. 房玄齡은 臨淄 사람이다. 唐 太宗 李世民이 起兵하여 房玄齡을 行軍記室參軍으로 삼았다. 太宗이 稱帝하자 中書令이 되어 15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房玄齡은 계책에 뛰어나고, 杜如晦는 과단성이 있다고 하였다. 杜如晦는 杜陵 사람으로 字가 克明이다. 唐 武德 초에 秦王府兵曹參軍이 되어 機密에 참여하였다. 當世에는 杜如晦를 良相이라 하였다.
역주14 : 저본에는 ‘以’자가 없으나, 《嘉祐集》에 의해 보충하였다.
역주15 司馬氏 : 三國時代 때 魏나라의 司馬懿와 그 아들 司馬師‧司馬昭는 다 魏나라의 機密을 다루는 重臣으로 魏나라 정치를 독단하다가, 司馬昭의 아들 司馬炎에 이르러 魏나라 정권을 찬탈하여 晉나라를 세웠다.
역주16 賈充 : 平陽 襄陵 사람으로, 魏나라 때에 大將軍司馬‧廷尉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司馬氏 일가의 심복신하로 司馬炎이 魏나라 정권을 찬탈하는 것을 도왔다. 晉나라가 건국된 뒤, 그는 司馬‧侍中‧尙書令의 관직을 지냈다.
역주17 陳勝吳廣 : 여기서는 陳勝과 吳廣을 秦나라 백성을 재난 속에서 건져낸 賢人으로 보았다.
역주18 田文所謂主少國危 大臣未附 : 田文이 吳起에게 “임금이 아직 어려서 나라가 위험한데도, 대신들이 아직 따르지 않으며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 이런 때에 이 일을 그대에게 맡기겠는가, 나에게 맡기겠는가?”라고 하였다. 《史記 孫子吳起列傳》
역주19 以周勃遺惠孝文 : 高祖가 呂后에게 “周勃은 重厚하나 文飾이 적다. 그러나 劉氏를 편안하게 할 자는 반드시 周勃이다. 그를 太尉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역주20 以霍光遺孝昭孝宣 : 霍光은 字가 子孟이고, 河東 平陽 사람으로, 驃騎將軍 霍去病의 이복동생이다. 10여 세 때부터 武帝를 측근에서 섬기다가, 武帝가 죽을 무렵에는 大司馬大將軍‧博陸侯가 되었으며, 後事를 위탁받았다. 武帝가 죽자 8세로 즉위한 昭帝를 보필하였고, 昭帝가 죽은 후에는 昌邑王 劉賀를 황제로 옹립했지만, 劉賀가 荒誕하여 政事를 돌보지 않자 그를 폐위시키고 宣帝를 세웠다.
역주21 百官總己 以聽于冢宰 : 《書經》 〈商書 伊訓〉에 나온다. 《論語》 〈憲問〉에도 “諸侯가 죽으면 百官은 자신의 직무를 총괄하여 3년 동안 宰相의 명을 듣는다.[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라고 하였다.
역주22 五載 一巡狩 : 《書經》 〈虞書 舜典〉에 나온다.
역주23 君憂不辱 君辱不死 : 《吳越春秋》에 “내가 듣기에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되게 여기고,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다.[孤聞之 主憂臣辱 主辱臣死]”라는 말이 있다.
역주24 傳舎 : 옛날 行人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旅館을 말한다.
역주25 趙中令 : 中令은 中書令으로 宰相이다. 趙中令은 趙普(922~992)로 薊(지금의 天津 薊縣) 사람이다. 陳橋의 兵亂 때에 공이 있어 右諫議大夫가 되었다가, 宋 太祖 趙匡胤이 稱帝하였을 때 樞密直學士가 되었다. 趙匡胤은 그를 심복의 신하라 여겨서 재상으로 삼았다.
역주26 寇萊公 : 寇準(961~1023)이다. 字가 平仲으로, 萊國公에 봉해졌다. 宋 眞宗 景德 元年(1004)에 契丹이 침입하자 寇準은 재상으로서 眞宗이 親征하기를 독촉하였다. 澶淵에서 적을 꺾고, 澶淵의 盟을 맺어, 매년 歲幣 30만 냥을 바치기로 하였다. 그 후 王欽若‧丁謂 등에게 음해를 받아 雷州司戶參軍으로 폄적되었다. 그래서 蘇洵이 宋朝가 그에게 준 권력이 가벼워 끝내 추방되었다고 한 것이다.
역주27 其必使之可以生人殺人而後 可也 : 이 句節은 심복의 大臣에게는 반드시 生殺與奪의 권한을 주어야 大事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저본에는 ‘其’자가 없으나, 《嘉祐集》에 의해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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