議者는 常曰 將與相均이라하나 將은 特一大有司耳요 非相侔也라
國有征伐而後에 將權重이요 有征伐無征伐이라도 相은 皆不可一日輕이라
爲將者는 大槪多才나 而或頑鈍無恥하니 非皆節廉好禮不可犯者也라
故로 不必優以禮貌하되 而其有不羈不法之事라도 則亦不可以常法御하니 何則고
若夫相은 必節廉好禮者爲也요 又非豪縱不趨約束者爲也라
夫接之以禮然後에 可以重其責하니 而使無怨言이요 責之重然後에 接之以禮하여도 而不爲過니라
禮薄而責重이면 彼將曰 主上이 遇我以何禮하여 而重我以此責也하니 甚矣라하니라
故로 禮以維其心하고 而重責以勉其怠而後에 爲相者는 莫不盡忠於朝廷하고 而不恤其私라
以爲誼生文帝時
하니 文帝
가 遇將相大臣
이 不爲無禮
어늘 하니
使誼生於近世하여 見其所以遇宰相者면 則當復何如也오
夫湯武之德은 三尺豎子라도 皆知其爲聖人이어늘 而猶有伊尹太公者를 爲師友焉이라
伊尹太公
은 非賢於湯武也
어늘 而二聖人者
는 特不顧以師友之
하니 明有尊也
라
噫라 近世之君姑勿責於此나 天子御坐하여 見宰相而起者有之乎아 無矣라
天子坐殿上하고 宰相與百官趨走於下면 掌儀之官이 名而呼之가 若郡守召胥吏耳라
雖臣子爲此
가 亦不
過
나 尊尊貴貴之道
는 不若是褻也
라
夫旣不能
之以禮
면 則其罪之也
에 吾法將亦不得用
이니 何者
오
及其免相也
하여는 旣曰有某罪
라하나 而刑不加焉
하고 不過
하여 而出之
하니 此
는 其弊皆始於不爲之禮
라
夫人不我誅한대 而安忍棄其身이리오마는 此必有大愧於其君이라
故로 人君者는 必有以愧其臣하니 故로 其臣有所不爲라
하니 故
로 當天下多事
하고 朝廷憂懼之際
에 使
으로 得容於其間
하니 而無怪焉
이라
且吾聞之하니 待以禮하되 而彼不自效以報其上하고 重其責하되 而彼不自勉以全其身하고 安其祿位하여 成其功名者는 天下無有也라
彼人主傲然於上하여 不禮宰相하고 以自尊大者는 孰若使宰相自效하여 以報其上之爲利아
宰相利其君之不責하여 而豐其私者가 孰若自勉以全其身하고 安其祿位하여 成其功名之爲福이리오
옛날 남의 나라를 잘 관찰하는 자는 그 나라의 재상宰相이 어떠한 사람인지만 살펴볼 따름이었다.
평론가들은 언제나 “장군將軍과 재상宰相은 〈그 중요성이〉 똑같다.”라고 말하지만, 장군은 단지 하나의 큰 관리일 뿐이요 재상과 대등하지 않다.
나라에 정벌征伐 같은 전쟁의 일이 있고 난 뒤에야 장군의 권위는 무겁게 되고, 정벌의 일이 있건 없건 재상은 하루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재상이 어질면 모든 관리가 다 어질게 되고, 장군 또한 어질게 된다.
장군이 어질고 재상이 어질지 않다 할지라도 장군을 〈재상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장군은 단지 하나의 큰 관리일 뿐이요 재상과 대등하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재상을 임용하는 방법은 장군을 임용하는 방법과 다르다.
장군이 된 자는 대개 재주는 많지만 간혹 우둔하고 부끄러움이 없으니, 모두가 절조節操 있고 염치廉恥 있으며 예禮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모禮貌로써 우대하지는 않지만, 그가 구속에 얽매이지 않아 불법을 범하더라도 그를 일반적인 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으니, 무엇 때문인가?
강하고 방종해서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것이 또한 장군들의 일상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한 무제漢 武帝가 대장군大將軍을 대할 때 왕왕 평상에 걸터앉은 채로 대하였고, 이광리李廣利가 대완국大宛國을 쳐서 승리했을 때 많은 군졸들을 희생시킨 죄에 대해서는 들추지도 않고 불문에 붙였다.
그러나 재상과 같은 경우는 반드시 절조 있고 염치 있으며 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강하고 방종해서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천자는 재상에게 예禮를 갖추어 우대하고 책임을 엄중히 요구하는 것이다.
옛날에 재상이 천자를 알현하면 천자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고, 또 길을 가다 만나면 타고 가던 가마에서 내려 맞이했으며, 병이 나면 친히 방문하여 문병하고, 불행히 세상을 뜨면 천자가 친히 찾아가 조상하였으니, 천자가 재상을 대하는 것이 이처럼 정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재상이 죄를 저질렀을 경우엔 조금도 사정私情을 두지 않았다.
천지天地에 큰 변화가 있거나 천하天下에 큰 허물을 끼쳤을 경우엔 재상은 병상病狀에서 일어나지 못하여 〈국사를 볼 수 없다고〉 아뢰었고, 재상이 임무를 견디어낼 수 없을 경우에는 천자의 조서詔書를 받고 포의布衣로 갈아입고서 재상부宰相府를 나와 면직되었다.
재상에게 다른 과실이 있을 경우에는 암말이 끄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그 과실에 대한 반성을 하고 근신하였다.
예禮로써 재상을 우대한 다음에 책임을 엄중히 물으니 원망하는 말이 없게 될 것이고, 책임을 엄하게 묻고 난 다음에 예禮로써 대우하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禮를 차리지 않으면서 책임만 엄중히 묻는다면, 그는 “주상께서는 저를 무슨 예禮로 대우하셨기에 저를 이같이 엄하게 문책하십니까? 너무 심하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책임은 가볍고 예禮가 중하면, 그는 장차 게을러져서 자신이 할 일에 힘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禮로써 우대하여 재상의 마음을 묶어두고, 엄중한 책임으로 재상에게 게으르지 않도록 격려한 이후에야, 재상 된 자는 조정에 충성忠誠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사사로운 일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의賈誼의 글을 보다가 ‘장태식자長太息者’에 이르러 언제나 반복하여 읽으며 멈출 수가 없었다.
생각건대 가의賈誼는 한 문제漢 文帝 때에 살면서, 문제文帝가 장군將軍‧재상宰相‧대신大臣들을 대함에 무례하지 않았는데도, 다만 주발周勃을 한 번 옥에 가둔 일 때문에 가의賈誼는 결국 이런 글을 지었으니,
만약 가의賈誼가 근세에 살아서 천자가 재상을 대하는 실정을 본다면 그는 응당 또 어떻게 할까?
은 탕왕殷 湯王과 주 무왕周 武王의 덕德은 삼척동자라도 다 두 임금이 성인聖人임을 알거늘, 〈두 성인은〉 오히려 이윤伊尹‧태공太公을 사우師友로 삼았다.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보다도 현명하지 않았음에도 두 성인은 오히려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들을 사우師友로 삼았으니, 존경해야 할 사람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아! 근세의 임금에게 우선 이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로되, 천자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재상을 보고 어좌御座에서 일어난 분이 있었던가? 그런 분은 있지 않았다.
가마를 타고 가시다가 〈재상을 보고〉 그 가마에서 내리는 분이 있었던가? 또한 있지 않았다.
천자께서 어전御殿에 앉아 계시고, 재상이 여러 신하와 더불어 그 아래에서 허리를 굽히고 급히 걸어가면, 조정朝廷의 의전관이 성명을 부르는 것이 마치 군수郡守가 밑의 서리胥吏를 소집하는 것처럼 할 뿐이다.
비록 신하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이 또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존경해야 할 바를 존경하고 귀히 여길 바를 귀히 여겨야 하는 도리道理로는 이처럼 모욕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릇 재상을 예禮로써 우대하지 않으면, 그에게 벌罰을 줄 때에 천자가 정한 국법國法을 제대로 적용할 수가 없으니, 어째서인가?
예禮로써 대하는 데에는 과감하지 않고 형벌刑罰을 쓰는 데에 과감하다면, 그는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법에는 “어떤 죄를 지으면 어떤 형벌을 가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재상을 파면함에 이르러서는 이미 어떤 죄가 있다고 선언하지만 그 죄에 해당하는 형벌은 가하지 않고, 그의 관등官等을 한 등 깎아내려 큰 고을의 장관으로 내보는 데에 불과하니, 이것은 그 폐단이 다 재상을 예禮로써 우대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가의賈誼는 “중급中級의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대죄大罪를 지었을 경우에는 자결한다.”고 하였다.
무릇 다른 사람이 나를 죽이지 않는데 어찌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마는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은 군주에게 큰 부끄러움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반드시 자신의 행동으로써 그 신하를 부끄럽게 할 수 있었기에 그 신하도 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다.
한 무제漢 武帝가 때로는 관冠도 쓰지 않은 채 재상인 평진후平津侯 공손홍公孫弘을 접견하였기 때문에, 천하에 일이 많고 조정에는 근심거리가 많았을 때에 석경石慶과 같은 무능無能한 사람이 재상으로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는 재상을 대함에 반드시 예禮로써 우대한 다음에야 재상의 허물을 법대로 물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내가 듣자니, 천자가 재상을 예禮로써 우대하되 재상이 자신의 힘을 다하여 군주에게 보답하지 않거나,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묻되 스스로 힘써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 그 봉록俸祿과 작위爵位를 편안히 누리면서 그 공명功名을 이루고자 하지 않는 자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저 군주가 위에서 거만하게 군림하여 재상을 예禮로써 우대하지 않고 스스로 높고 큰 존재로만 여기는 것과, 재상이 자신의 힘을 다해 그 군주에게 보답하게 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더 이익이 될 것인가?
재상이 군주가 책임을 묻지 않음을 이용하여 자기 사욕私慾만을 크게 취하는 것과, 스스로 힘써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 그 봉록과 작위를 편안히 누리면서 그 공명功名을 이루고자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복이 될 것인가?
나는 또한 아직 이익을 버리고 손해로 나아가거나, 복을 멀리하고 화로 나아가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