洵은 布衣窮居하여 常竊自歎하고 以爲天下之人이 不能皆賢이요 不能皆不肖라 故로 賢人君子之處於世에 合必離하고 離必合이라
할새 而
하고 하고 하고 하니 方是之時
엔 天下之人
이 毛髮絲粟之才 紛紛然而起
하여 合而爲一
이라
而洵也自度其愚魯無用之身
이니 不足以自奮於其間
일새 退而養其心
하여 幸其道之將成
하여 而可以復見于當世之賢人君子
러니 이라
하여 親見其事
하고 忽忽仰天歎息
하며 以爲斯人之去
에 而道雖成
이나 不復足以爲榮也
라
旣復自思念하니 往者에 衆君子之進於朝엔 其始也에 必有善人焉推之나 今也亦必有小人焉間之라
今之世에 無復有善人也면 則已矣나 如其不然也면 吾何憂焉이리오
退而處十年
에 雖未敢自謂其道有成矣
라 然
이나 浩浩乎其胸中
하여 若與曩者異
요 而
하고 은 復相繼登於朝
하며 하시니 其勢將復合爲一
이라
喜且自賀하여 以爲道旣已粗成하여 而果將有以發之也라
旣又反而思하니 其向之所慕望愛悅之而不得見之者는 蓋有六人焉이라
今將往見之矣
로되 而六人者
에 하니 則又爲之澘然出涕以悲
라
嗚呼라 二人者는 不可復見矣로되 而所恃以慰此心者가 猶有四人也하니
則又以自解하고 思其止于四人也하니 則又汲汲欲一識其面하여 以發其心之所欲言이나
而富公
은 又爲天子之宰相
하니 遠方寒士
가 未可遽以言通於其前
이요 而
요 獨執事在朝廷間
이요 而其位差不甚貴
하니 可以叫呼扳援而聞之以言
이나 而饑寒衰老之病
이 又痼而留之
하여 使不克自至於執事之庭
이라
夫以慕望愛悅其人之心으로 十年而不得見하고 而其人已死 如范公尹公二人者니 則四人者之中에 非其勢不可遽以言通者면 何可以不能自往而遽已也리오
執事之文章은 天下之人이 莫不知之라 然이나 竊自以爲洵之知之特深하여 愈於天下之人이라
何者오 孟子之文은 語約而意盡하여 不爲巉刻斬絶之言이로되 而其鋒不可犯이요
韓子之文은 如長江大河가 渾浩流轉하여 魚黿蛟龍이 萬怪惶惑이로되
而抑遏蔽掩하여 不使自露하여 而人望見其淵然之光과 蒼然之色하고 亦自畏避하여 不敢迫視라
執事之文은 紆餘委備하여 往復百折이로되 而條達疏暢하여 無所間斷하며 氣盡語極하여 急言竭論이로되 而容與閑易하여 無艱難勞苦之態하니
惟
之文
은 其味黯然而長
하고 其光油然而幽
하며 俯仰揖讓
에 有執事之態
하고
之文
은 遣言措意
가 切近的當
하여 有執事之實
이로되 而執事之才
는 又自有過人者
라
蓋執事之文은 非孟子韓子之文이요 而歐陽子之文也라
彼不知者는 則以爲譽人以求其悅己也라 夫譽人以求其悅己는 洵亦不爲也라
雖然이나 執事之名은 滿於天下하여 雖不見其文이라도 而固已知有歐陽子矣라
而洵也不幸
하여 墮在
之中
이라가 而其知道之心
이 又近而粗成
하여 欲徒手奉咫尺之書
하여 自托於執事
하노니 將使執事
로되 何從而知之
며 何從而信之哉
아
洵은 少年不學하고 生二十五歲에 始知讀書나 從士君子遊라가 年旣已晩이요 而又不遂刻意厲行하여 以古人自期하고 而視與己同列者가 皆不勝己면 則遂以爲可矣라
其後에 困益甚하고 然後에 取古人之文而讀之하고 始覺其出言用意與己大異라
時復內顧하고 自思其才하니 則又似夫不遂止於是而已者라
由是盡燒其曩時所爲文數百篇하고 取論語孟子韓子及其他聖人賢人之文하여 而兀然端坐하고 終日以讀之者가 七八年矣라
方其始也
엔 入其中而惶然
하고 博觀於其外而駭然以驚
하고 及其久也
엔 讀之益精
하니 而其胸中
이 豁然以明
하여 若
之言
이 固當然者
라
試出而書之하고 已而再三讀之하니 渾渾乎覺其來之易矣라
噫嘻라 區區而自言을 不知者는 又將以爲自譽以求人之知己也라하리니
惟執事는 思其十年之心이 如是之不偶然也而察之하노이다
注
첫 번째 단락은 여러 군자君子의 이합離合을 차례로 서술하여 자기가 그리고 바라는 간절함을 나타냈다.
두 번째 단락은 구양공歐陽公의 글을 칭찬하여 자기가 공公을 아는 것이 깊음을 나타냈다.
세 번째 단락은 평생의 경력經歷을 자술自述함으로써 구양공歐陽公이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정사情事가 완곡婉曲하고 이리저리 감돌고 구부러짐이 많으니 얼마나 높은 의기意氣이며 얼마나 훌륭한 풍채風采인가!
저는 평민平民으로 궁하게 살면서 늘 속으로 스스로 탄식하고,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다 현명賢明할 수도 없고 모두 다 못날 수도 없으므로, 현인賢人과 군자君子들은 세상에 처신함에 합쳐졌다가는 반드시 떨어지게 되고, 떨어졌다가는 반드시 합쳐지게 되는 것이라 여겨왔습니다.
전날 천자天子께서 막 정치政治에 뜻을 두고 계실 때에는, 범중엄范仲淹 공이 참지정사參知政事로 계셨고, 부필富弼 공이 추밀부사樞密副使로 계셨으며, 집사執事와 여정余靖 공과 채양蔡襄 공이 간관諫官이 되셨으며, 윤수尹洙 공은 아래위로 뛰어다니면서 전쟁이 있는 고장에서 힘을 다하였으니, 이러한 때에는 천하 사람들이 머리털이나 실과 좁쌀 같은 재능才能을 가진 자라도 분분히 일어나서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둔하여 쓸 데가 없는 몸이니 그 사이에 스스로 분발奮發하며 나서기에는 부족하다 여겨, 물러나 마음을 보양保養하여 올바른 도道가 이루어져 다시 이 세상에서 현인과 군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으나 불행히도 올바른 도를 이루기도 전에, 범중엄 공은 서쪽으로 나가셨고, 부필 공은 북쪽으로 나가셨으며, 집사와 여정 공‧채양 공은 흩어져 사방으로 나가셨고, 윤수 공도 세력을 잃고 작은 벼슬로 바삐 뛰어다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서울에 있으면서 친히 그러한 일들을 보고서 맥없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이런 분들이 떠나간 즈음에 올바른 도가 비록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다시는 영화롭다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스스로 생각해보니, 지난날 여러 군자君子들이 조정朝廷에 나아갔던 것은 처음에는 반드시 선인善人이 그들을 추천推薦했기 때문일 것이나, 지금은 또한 반드시 소인小人이 그들을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 다시 선인善人이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가 무엇을 걱정해야 하겠습니까?
잠시 마음을 보양하면서 올바른 도가 크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면, 무슨 손실이 되겠습니까?
물러나 10년을 지내면서 비록 감히 스스로 도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슴속이 탁 트여서 옛날과는 다르게 된 것 같고, 그리고 여정 공께서는 마침 남방南方에서 공功을 이루셨고, 집사와 채양 공은 다시 연이어 조정으로 올라오시고, 부필 공은 다시 밖으로부터 들어와 재상宰相이 되셨으니, 그 형세形勢는 다시 합쳐져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또 스스로 축하하여, 올바른 도가 이미 대강 이루어져 과연 장차 그것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또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전에 흠모欽慕하고 우러러보며 사랑하고 좋아하면서도 뵐 수가 없었던 분들은 모두 여섯 분이었습니다.
지금 그분들을 찾아가 뵈려니, 여섯 분 가운데 이미 범중엄 공과 윤수 공 두 분은 돌아가셨으니, 또 그 때문에 줄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습니다.
아아! 그 두 분은 다시 뵐 수가 없게 되었지만, 의지하여 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분들이 아직도 네 분 계시니,
또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풀고 생각이 그 네 분들께 머무니, 또 서둘러 그분들의 얼굴을 한 번 뵙고서 마음속으로 말하고자 하던 것을 펴보고 싶었으나,
부필 공은 다시 천자天子의 재상宰相이 되셨으니 먼 곳의 빈한貧寒한 선비로서는 갑자기 말로써 그분 앞에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고, 또 여정 공과 채양 공은 멀리 만 리 밖에 계시며, 오직 집사만 조정 안에 계시고 그 지위의 차등도 대단히 존귀尊貴하지는 않으시니 소리쳐 부여잡고 올라가 말로써 아뢸 수가 있으나, 굶주리고 춥고 쇠약해지고 늙은 병이 또한 고질痼疾로 남아 있어, 스스로 집사 댁 마당으로 갈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흠모하고 우러러보며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10년 동안이나 뵙지를 못하고 범중엄 공과 윤수 공 두 분처럼 이미 작고한 이들도 있으니, 나머지 네 분 중에 그 형세가 황급히 말로써 뜻을 통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어찌 스스로 가지 않고 갑자기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집사執事의 문장文章은 천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나, 저 스스로는 제가 거기에 대하여 아는 것이 특히 깊어서 천하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맹자孟子의 글은 말은 간략簡略하면서도 뜻이 깊어 날카롭고 예리한 말이 아니지만 그 뾰족함을 범할 수가 없습니다.
한유韓愈의 글은 마치 장강長江과 황하黃河가 질펀히 흐르며 돌아 물고기와 큰 자라와 교룡과 용 등이 너무도 기괴하고 정신 못 차리게 하지만,
그것들을 억누르고 막고 가리고 덮어서 스스로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어, 사람들이 그 깊숙한 빛과 푸른 색깔을 바라보고는 또한 스스로 두려워하고 피하면서 감히 가까이 가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집사의 글은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왔다갔다 하며 무수히 꺾이되, 조리條理가 통하여 거침이 없고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없으며, 기운氣韻을 다하고 말을 다하여 다급히 표현하며 이론理論을 다 펴되, 여유餘裕가 있고 한가閑暇한 듯하여 힘들고 애쓴 것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이 세 분들은 모두가 틀림없이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룬 문장입니다.
오직 이고李翶의 글은 그 맛이 은은하면서도 길고, 그 빛은 빛나는 듯하면서도 그윽하며, 그 점잖은 움직임에는 집사의 자태姿態가 있습니다.
육지陸贄의 글은 말의 사용과 뜻의 표현이 정확하고 확실하여 집사의 내용이 있으나, 집사의 재능은 또한 스스로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집사의 글은 맹자孟子나 한유韓愈의 글이 아니라 구양수歐陽脩 자신의 글인 것입니다.
남의 훌륭함을 얘기하기 좋아하지만 그것이 아첨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진실로 이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여 자신을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라 여기나, 남을 칭찬함으로써 그가 자기를 좋아하도록 바라는 짓은 저 역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사의 밝게 빛나는 성대한 덕을 얘기함에 있어서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까닭은, 또한 집사께서 〈사람들이〉 집사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라서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집사의 이름은 천하에 가득 차서 비록 집사의 글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구양수歐陽脩란 분이 계시다는 것은 본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행하여 초야草野의 진흙 속에 떨어져 지내오다가 올바른 도道를 알려는 마음이 또한 근래에야 대략 이루어져서, 맨손으로 짧은 편지를 받쳐 들고 스스로 집사께 의탁하려는 것이오니, 집사로 하여금 어찌하면 그런 뜻을 알게 하고 어찌해야 이를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젊어서는 공부를 못하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었으나, 선비들을 따라 노닐다가 나이가 이미 들게 되었고, 또 끝내 뜻을 세워 행실行實을 닦아 옛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한 것이 아니고, 자기와 같은 대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보다 더 낫지 않음을 보기만 하면 마침내 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 뒤로 곤경困境이 더욱 심해졌고 그런 뒤에 다시 옛사람들의 글을 가져다 읽어보고는 비로소 그분들이 하신 말씀과 의도意圖가 나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안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재능을 생각해보니 또한 여기서 그치고 말 것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지었던 글 수백 편을 모두 태워버리고, 《논어論語》‧《孟子》‧《한유문집韓愈文集》과 그 밖의 성인聖人과 현인賢人들의 글을 갖다놓고는 꼿꼿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하루 종일 그것들을 읽기를 7, 8년을 하였습니다.
막 그렇게 시작할 때에는 그 속에 들어가서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고, 그 밖을 널리 보고서는 깜짝 놀랐고, 그렇게 하기를 오래하여 그것들을 더욱 꼼꼼히 읽자 가슴속이 탁 트이며 밝아져서, 그러한 사람들의 말이 진실로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감히 스스로 자기의 말을 꺼내지는 못했습니다.
시일時日이 더 오래 지나자, 가슴속에 하고자 하는 말이 날로 더욱 많아져서, 자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험 삼아 이를 밖으로 꺼내어 쓰고, 얼마 후 재삼 그것들을 읽어보니, 깊고 커서 글 짓는 일이 쉬워졌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감히 옳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근래 지은 〈홍범론洪範論〉‧〈사론史論〉 등 7편篇을 집사께서 보아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아! 구구하게 제 스스로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한 스스로를 칭찬함으로써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부디 집사께서는 10년의 마음이 이와 같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생각하여 살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