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一篇議論은 由戰國策縱人之說來나 却能與戰國策相伯仲이라 當與子由六國論幷看이라
曰 不賂者도 以賂者喪하니 蓋失彊援하여 不能獨完이라하니라
思厥先祖父면 暴霜露하고 斬荊棘하여 以有尺寸之地어늘 子孫視之不甚惜하고 擧以與人을 如棄草芥하니 今日割五城이요 明日割十城然後에 得一夕安寢이라
然則諸侯之地는 有限이요 暴秦之欲은 無厭이니 奉之彌繁하고 侵之愈急이라
齊人
이 未嘗賂秦
이나 終繼五國遷滅
하니 何哉
아 與
하여 而不助五國也
라
燕趙之君은 始有遠略하여 能守其土하고 義不賂秦이라
且燕趙
는 處秦
之際
하여 可謂智力孤危
하니 戰敗而亡
은 誠不得已
라
向使三國으로 各愛其地하고 齊人이 勿附于秦하고 刺客不行하고 良將猶在하여 則勝負之數와 存亡之理를 當與秦相較면 或未易量이니라
嗚呼라 以賂秦之地로 封天下之謀臣하고 以事秦之心으로 禮天下之奇才하여 幷力西嚮이면 則吾恐秦人食之不得下咽也리라
悲夫라 有如此之勢나 而爲秦人積威之所劫하여 日削月割하여 以趨於亡하니 爲國者는 無使爲積威之所劫哉리라
夫六國은 與秦으로 皆諸侯니 其勢弱於秦이나 而猶有可以不賂而勝之之勢라
苟以天下之大로 而從六國破亡之故事면 是又在六國下矣라
注
이 한 편의 의론議論은 《전국책戰國策》의 합종合縱을 주장하던 사람의 설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전국책戰國策》과 서로 쌍벽을 이루니, 당연히 소철蘇轍의 〈육국론六國論〉과 함께 보아야 한다.
육국六國이 파멸한 것은 병기兵器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니요, 싸움을 잘못하여서도 아니며, 그 폐단이 진秦나라에 땅을 뇌물賂物로 바친 데에 있다.
진秦나라에 땅을 뇌물로 바쳐서 그 국력國力이 결핍된 것이 멸망의 길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육국六國이 서로 망한 것은 모두가 진秦나라에 땅을 뇌물로 바쳐서인가?”라고 하니,
“땅을 뇌물로 바치지 않았던 나라도 뇌물을 바친 나라 때문에 망하였으니, 대개 강력한 원조를 잃어 홀로 자기 나라를 완전하게 보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폐단이 진秦나라에 땅을 뇌물로 바친 데에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진秦나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해서 빼앗은 것 이외에, 〈뇌물을 통해〉 작게는 읍邑을 얻고 크게는 성城을 얻었다.
진秦나라가 뇌물로 얻은 땅을 비교해보면 전쟁에서 이겨 얻은 땅보다 실제로 백 배나 되었다.
제후들이 〈진秦나라에 바쳐서〉 잃은 땅이 전쟁에 져서 잃은 땅보다 실제로 또한 백 배나 되었다.
그렇다면 진秦나라의 큰 욕심이 제후들의 큰 걱정거리였지, 사실 전쟁에 있지 않았다.
그들 선조先祖와 부모父母를 생각해보면 서리와 이슬을 맞고 가시덤불을 쳐내어서 이 작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거늘, 그 자손子孫들은 그런 땅을 보고 심히 아깝게 여기지 않고, 〈그 땅을〉 들어 다른 이에게 주기를 마치 지푸라기를 내버리듯 하였으니, 오늘은 다섯 개의 성을 떼어주고, 내일은 열 개의 성을 떼어준 뒤에야 겨우 하루저녁의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그리고 일어나 사방을 살펴보면, 진秦나라의 군대가 또 쳐들어온다.
그러니 제후들의 땅은 한계가 있고, 포악한 진秦나라의 욕심은 만족함이 없으니, 진秦나라에 바치는 땅은 더욱더 많아지고, 진秦나라의 침략은 갈수록 급박해진다.
그러므로 싸워보지도 않고서 강약强弱과 승패勝敗가 이미 판가름이 나고 말았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는 것은 이치상 당연하였다.
옛사람이 “땅을 떼어주면서 진秦나라를 섬기는 것은 마치 나무를 껴안고 불에 뛰어들어 불을 끄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탈 나무가 다 없어지지 않으면 불은 꺼지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이치에 꼭 맞는 말이다.
제齊나라 사람은 진秦나라에 뇌물로 땅을 떼어준 적도 없었지만, 끝내 다섯 나라의 뒤를 이어 멸망하였으니, 어째서인가? 〈제齊나라가〉 진秦나라의 편이 되어 다른 다섯 나라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 나라가 이미 멸망하였으니, 제齊나라 또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연燕나라와 조趙나라의 임금은 처음엔 원대한 계략이 있어, 각자의 땅을 잘 지킬 수 있었고, 의리를 지키며 진秦나라에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燕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다른 나라보다〉 뒤에 망했던 것이니, 이는 용병用兵으로 저항한 효과이다.
〈연燕나라의 태자太子〉 단丹이 형가荊軻를 〈자객刺客으로 삼아 진秦나라 임금을 시해하려고〉 계획하니 비로소 화禍를 재촉하고 말았다.
조趙나라는 일찍이 다섯 번 진秦나라와 싸워 두 번 지고 세 번 이겼다.
그 후 진秦나라는 두 번이나 조趙나라를 공격하였지만 〈조趙나라의 장수〉 이목李牧이 연달아 진군秦軍을 물리쳤다.
이목李牧이 모함에 걸려 처형되자,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은 〈진秦나라의 한〉 군郡이 되고 말았으니, 무력武力으로 끝까지 맞서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게다가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는 진秦나라가 〈제후 국가들을〉 거의 멸망시켜 갈 무렵에 처해서 그들의 지혜와 힘이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 할 만했으니, 싸움에 패하여 망하는 것은 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령 〈한韓‧위魏‧초楚〉 세 나라가 각자의 땅을 아끼고, 제齊나라가 진秦나라의 편에 붙지 않고, 〈형가荊軻를〉 자객으로 보내지 않고, 좋은 장수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승부勝負의 운수運數와 존망存亡의 이치理致를 진秦나라와 서로 겨루어보았더라면 아마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아! 진秦나라에게 뇌물로 바친 땅을 천하의 지모智謀가 뛰어난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고, 진秦나라를 섬기는 마음으로 천하의 기재奇才를 예우하여, 힘을 합쳐 서쪽 〈진秦나라에〉 대항했더라면, 내 생각으로는 아마 진秦나라 사람들이 밥조차 목으로 넘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 슬프도다! 이와 같이 좋은 형세形勢가 있었으나 진秦나라 사람의 누적되어 온 위세威勢에 겁먹어, 날마다 땅이 깎이고 달마다 땅을 떼어주어 멸망의 길로 나아갔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누적되어 온 위세에 겁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저 그 육국六國은 진秦나라와 함께 다 제후의 나라이니, 그 세력이 진秦나라보다는 약하였지만, 오히려 진秦나라에 뇌물을 주지 않고도 그를 이길 수 있는 형세形勢가 있었다.
만약 천하의 강대함을 가지고서도 육국六國이 걸은 파멸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것은 또한 육국六國보다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