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翰侍郎執事아 洵以無用之才로 久爲天下之棄民하여 行年五十에 未嘗見役於世러니
執事獨以爲可收하여 而論之於天子하여 再召之試로되 而洵亦再辭나 獨執事之意가 丁寧而不肯已라
朝廷雖知其不肖
나 不足以辱士大夫之列
하여 而重違執事之意
하여 譬之巫醫卜祝
에 特捐一官以
之
라
自顧無分毫之功有益於世
나 而王命至門
에 不知辭讓
하고 하여 朋友之譏
나 而苟以爲榮
이라
然君子之相從은 本非以求利며 蓋亦樂乎天下之不知其心이나 而或者之深知之也라
洵은 不以身之進退出處之間으로 有謁於執事요 而執事도 亦不以稱譽薦拔之라 故로 有德於洵이러이다
再召而辭也를 執事不以爲矯하고 而知其恥於自求로라
其去不追며 而其來不拒하고 其大不榮이나 而其小不辱이라
不然
이면 其將與奔走之吏同
이 此洵所以深自憐也
니이다
내한시랑內翰侍郎 집사執事께. 저는 쓸모없는 재주로 오래도록 천하의 버려진 백성이었으며, 나이 50이 되도록 일찍이 세상의 부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집사께서 유독 거둘 만하다고 생각하시어 천자天子께 논하시어 거듭 불러 시험해보고자 하셨는데 제가 또 거듭 사양하였습니다만, 유독 집사의 뜻이 정중하시어 그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정朝廷에서 비록 그 불초不肖함을 알지만 사대부士大夫의 반열을 욕보이기에는 부족하다 하여 거듭 집사의 뜻을 어기어, 무의巫醫와 복축卜祝에 비유하면서 특별히 관직 하나를 내주게 하였습니다.
스스로 돌아보니 세상을 유익하게 한 조금의 공도 없으면서 왕명王命이 문에 이르자 사양할 줄도 모르고 이 간서簡書를 두려워하지도 않아 벗들이 나무랐으나 실로 영광榮光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집사께 매우 부끄러워 오래도록 〈집사의〉 대문에 이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러나 군자君子가 상종相從함은 본래 이익利益을 추구함이 아니며, 대개 또한 온 천하가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는데도 혹자或者는 그것을 깊이 알아주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집사께서는 저에 대해 일면식一面識도 없으면서 그 문장文章을 보시고는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뵙자마자 그 말을 들으시고는 그 평생을 믿으셨습니다.
저는 몸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계제라 여기지 않고 집사께 아뢰었고, 집사께서도 칭찬하여 추천하고 뽑지 않으셨기 때문에 제게 덕을 베푸셨습니다.
거듭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한 것을 집사께서는 가식假飾이라 생각지 않으셨고, 제 스스로 구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긴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한 번 〈나라에서〉 명을 내림에 받은 것을 집사께서는 탐욕貪慾이라 생각지 않으셨고, 그 하고자 하지 않음이 〈딴 사람들과는〉 다름을 아셨습니다.
떠난 것은 쫓지 않고 오는 것은 막지 않으며, 큰 것을 영화롭게 여기지 않고 작은 것을 욕되이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마음속으로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이며, 집사께서도 모두 그렇게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무릇 구구區區히 〈집사의〉 대문에 이르는 것을 이 때문에 사절하였습니다.
《예기禮記》에서 말하기를 “벼슬을 하면서도 아직 국록國祿을 받지 않는 자에게 임금이 음식을 보내는 것을 ‘헌獻(드린다)’이라고 하며, 사자使者로 나갔을 때는 ‘과군寡君’이라 하나, 나라를 떠나서 임금이 죽으면 그 장례葬禮에는 복服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의 군자君子들이 그 몸이 신하臣下가 되는 것을 중히 여긴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자사子思와 맹가孟軻의 무리가 이 나라에 이르렀을 때 임금이 사람을 시켜 음식을 보내주면서 말하기를 “과군寡君께서 아무개로 하여금 종자從者에게 바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포의지사布衣之士의 존귀尊貴함이 이에 이르렀으나 다만 그 녹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이미 이부吏部에 이름이 올라간 관리官吏가 되었으나 집사께서는 아마도 저를 도道를 같이하는 사람으로써 취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오히려 빈객賓客의 신분으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장차 분주한 관리들과 함께 집사의 아래에서 쫓아다니는 것, 이것이 제가 깊이 스스로 가련히 여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