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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傳義(上)

주역전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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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習坎 序卦 物不可以終過 故受之以坎하니 坎者 陷也라하니라 理无過而不已하고 過極則必陷이니 坎所以次大過也 謂重習이니 他卦雖重이나 不加其名이어늘 獨坎加習者 見其重險이니 險中復有險하여 其義大也 卦中一陽이요 上下二陰이니 陽實陰虛하여 上下无據하여 一陽 陷於二陰之中이라 故爲坎陷之義 陽居陰中則爲陷이요 陰居陽中則爲 凡陽在上者 止之象이요 在中 陷之象이요 在下 動之象이며 陰在上 說之象이요 在中 麗之象이요 在下 巽之象이니 陷則爲險이라 重也 如學習溫習 皆重複之義也 陷[一作險]也 卦之所言 處險難之道 水也 一始於中하여 有生之最先者也 故爲水 水之體也
29. 坎 ䷜
習坎 有孚야 維心亨이니면 有尙이리라
[傳] 陽實 在中하니 爲中有孚信이라 維心亨 維其心誠一이라 故能亨通이라 至誠 可以通金石, 蹈水火하니 何險難之不可亨也리오 行有尙 謂以誠一而行이면 則能出險하여 有可嘉尙이니 謂有功也 不行則常在險中矣리라
彖曰 習坎 重險也ㅣ니
流而不盈며 行險而不失其信이니
[傳] 習坎者 謂重險也 上下皆坎 兩險相重也 初六云坎窞이라하니 坎中之坎이니 重險也 水流而不盈 陽動於險中而未出於險하니 乃水性之流行而未盈於坎이니 旣盈則出乎坎矣 行險而不失其信 陽剛中實 居險之中하니 行險而不失其信者也 坎中實 水就下 皆爲信義, 有孚也
維心亨 乃以剛中也ㅣ오
[傳] 維其心可以亨通者 乃以其剛中也일새라 中實 爲有孚之象이니 至誠之道 何所不通[一作亨]이리오 以剛中之道而行이면 則可以濟險難而亨通也
行有尙 往有功也ㅣ라
[傳] 以其剛中之才而往이면 則有功이라 故可嘉尙이니 若止而不行이면 則常在險中矣[一作也]리라 以能行爲功이라
天險 不可升也ㅣ오 地險 山川丘陵也ㅣ니 王公 設險야 以守其國니 險之時用 大矣哉
[傳] 高不可升者 天之險也 山川丘陵 地之險也 王公君人者 觀坎之象하여 知險之不可陵也 故設爲城郭溝池之險하여 以守其國하고 保其民人하니 是有用險之時 其用甚大 故贊其大矣哉 山河城池 設險之大端也 若夫尊卑之辨 貴賤之分으로 明等威, 異物采하여 凡所以杜絶陵僭, 限隔上下者 皆體險之用也
象曰 水 洊至 習坎이니 君子야 常德行며 習敎事니라
[傳] 坎爲水 水流仍洊而至 兩坎相習 水流仍洊之象也 水自涓滴으로 至於尋丈하고 至於江海하여 洊習而不驟[一作讓]者也 其因勢就下 信而有常이라 故君子觀坎水之象하여 取其有常이면 則常久其德行하나니 人之德行 不常則僞也 故當如水之有常이라 取其洊習相受 則以習熟其敎令之事하나니 夫發政行敎 必使民熟於聞聽然後能從이라 故三令五申之하나니 若驟告未喩 遽責其從이면 雖嚴刑以驅之[一无之字]라도 不能也 故當如水之洊習이라
初六 習坎 入于坎窞이니니라
[傳] 初以陰柔[一无柔字] 居坎險之下하여 柔弱无援而處不得當하니 非能出乎險也 唯益陷於深險耳 坎中之陷處 已在習坎中이어늘 更入坎窞이면 其凶可知
象曰 習坎入坎 失道ㅣ라 凶也ㅣ라
[傳] 由習坎而更入坎窞 失道也 是以凶이니 能出於險이라야 乃不失道也
九二 有險나 小得리라
[傳] 二當坎險之時하여 陷上下二陰之中하니 乃至險之地 是有險也 然其剛中之才 雖未能出乎險中이나 亦可小自濟하여 不至如初 益陷入于深險하니 是所求小得也 君子處險難而能自保者 剛中而已 剛則才足自衛 中則動不失宜니라
象曰 求小得 未出中也라
[傳] 方爲二陰所陷하여 在險之地로되 以剛中之才 不至陷於深險하니 是所求小得이나 然未能出坎中之險也
六三 來之 坎坎며 且枕야 入于坎窞이니 勿用이니라
[傳] 六三 在坎陷[一作險]之時하여 以陰柔而居不中正하니 其處不善하여 進退與居 皆不可者也 來下則入于險之中하고 之上則重險也 退來與進之皆險이라 故云來之坎坎이라하니 旣進退皆險而居亦險이라 謂支倚 居險而支倚以處 不安之甚也 所處如此하니 唯益入於深險耳 故云入于坎窞이요 如三所處之道[一无之道字] 不可用也 故戒勿用하니라
象曰 來之坎坎 終无功也이라
[傳] 進退皆險하고 處又不安하니 若用此道 當益入于險이니 終豈能有功乎 以陰柔 處不中正하니 雖平易之地라도 尙致悔咎어든 況處險乎 險者 人之所欲出也로되 必得其道라야 乃能去之 求去而失其道 益困窮耳 故聖人 戒如三所處 不可用也시니라
六四 樽酒 簋貳 用缶고 納約自牖ㅣ면 終无咎리라
[傳] 六四陰柔而下无助하니 非能濟天下之險者로되 以其在高位 故言爲臣處險之道하니라 大臣 當險難之時하여 唯至誠見信於君하여 其交固而不可間이요 又能開明君心이면 則可保无咎矣[一作也] 夫欲上之篤信인댄 唯當盡其質實而已 多儀而尙飾 莫如燕享之禮 故以燕享喩之하니 言當不尙浮飾이요 唯以質實이라 所用一樽之酒 二簋之食 復以瓦缶爲器 質之至也 其質實如此 又須納約自牖 納約 謂進結於君之道 [一有有字]開通之義 室之暗也 故設牖하니 所以通明이라 自牖 言自通明之處 以況君心所明處 하니 亦開通之謂[一作義] 人臣以忠信善道 結於君心인댄 必自其所明處라야 乃能入也 人心 有所蔽하고 有所通하니 所蔽者 暗處也 所通者 明處也 當就其明處而告之하여 求信則易也 故云納約自牖 能如是 則雖艱險之時라도 終得无咎也 且如君心 蔽於荒樂 唯其蔽也故爾 雖力詆其荒樂之非라도 如其不省 必於所不蔽之事 推而及之 則能悟其心矣 自古 能諫其君者 未有不因其所明者也 故訐直强勁者 率多取忤하고 而溫厚明辯者 其說多行이라 且如漢祖愛戚姬하여 將易太子하니 是其所蔽也 群臣爭之者衆矣 嫡庶之義 長幼[一作少長]之序 非不明也로되 如其蔽而不察 四老者 高祖素知其賢而重之하니 此其不蔽之明心也 故因其所明而及其事 則悟之如反手이리오 然而不從彼而從此者 由攻其蔽與就其明之異耳 又如 故其聽也如響이라 非惟告於君者如此 爲敎者亦然이라 夫敎 必就人之所長이니 所長者 心之所明也 從其心之所明而入然後 推及其餘 是也
象曰 樽酒簋貳 剛柔際也라
[傳] 象 只擧首句하니 如此比多矣 樽酒簋貳 質實之至 剛柔相際接之道能如此 則可終保无咎 君臣之交 能固而常者 在誠實而已 剛柔 指四與五 謂君臣之交際也
九五 坎不盈이니 면 无咎ㅣ리라
[傳] 九五在坎之中하니 是不盈也 盈則平而出矣 宜音柢 抵也 復卦云 无祗悔라하니라 必抵於已平則无咎어니와 旣曰不盈이면 則是未平而[一无而字]尙在險中이니 未得无咎也 以九五剛中之才 居尊位 宜可以濟於險이나 然下无助也 二陷於險中하여 未能出하고 餘皆陰柔하여 无[一作非]濟險之才하니 人君雖才 安能獨濟天下之險이리오 居君位而不能致天下出於險이면 則爲有咎 必祗旣平이라야 乃得无咎
象曰 坎不盈 未大也ㅣ라
[傳] 九五 剛中之才而得尊位하니 當濟天下之險難이나 而坎尙不盈하니 乃未能平乎險難이니 是其剛中之道 未光大也 險難之時 非君臣協力이면 其能濟乎 五之道未大 以无臣也 人君之道 不能濟天下之險難이면 則爲未大 不稱其位也
上六 야 寘于叢棘야 三歲라도 不得이니니라
[傳] 上六 以陰柔而居險之極하니 其陷之深者也 以其陷之深으로 取牢獄爲喩 如係縛之以徽纆하여 囚寘於叢棘之中하니 陰柔而陷之深하여 其不能出矣 故云 至于三歲之久라도 不得免也라하니 其凶可知니라
象曰 上六失道 凶三歲也리라
[傳] 以陰柔而自處極險之地하니 是其失道也 故其凶 至于三歲也 三歲之久而不得免焉하니 終凶之辭也 言久 有曰十, 有曰三하니 隨其事也 陷于獄하여 至于三歲 久之極也 他卦 以年數言者 亦各以其事也 如三歲不興, 十年乃字 是也
역주
역주1 : 리
역주2 : 착
역주3 시운천지유민(詩云天之牖民)……모공훈유위도(毛公訓牖爲道) : 모공(毛公)은 《시경(詩經)》을 주해(註解)한 모장(毛萇)을 가리키는 바, 위의 내용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에 보인다.
역주4 사노인지력(四老人之力)……숙여주창숙손통(孰與周昌叔孫通) : 네 노인(老人)은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진(秦)나라 말기 상산(商山)에 은둔하여 살던 네 노인(老人)인 바, 곧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동원공(東園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른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은 적처(嫡妻)인 여후(呂后)의 아들 혜제(惠帝)를 처음에 태자(太子)로 세웠으나 척부인(戚夫人)을 사랑하여 그녀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이에 주창(周昌)과 숙손통(叔孫通) 등은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고조(高祖)는 듣지 않았다. 고조(高祖)는 일찍이 상산사호(商山四皓)의 뛰어난 인품을 사모하여 여러 차례 이들을 초청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숨고 나오지 않았었다. 이때 장량(張良)은 태자(太子)인 혜제(惠帝)로 하여금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초빙하여 태자궁(太子宮)에 두고 태자(太子)를 모시게 하였다. 그 결과, 고조(高祖)는 이들이 태자(太子)를 따라 보필하는 것을 보고 태자(太子)를 교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여 혜제(惠帝)가 즉위할 수 있었다.
역주5 조왕태후(趙王太后)……인기명이도지이장구지계(因其明而導之以長久之計) : 조왕(趙王)의 태후(太后)는 혜문왕(惠文王)의 후비(后妃)인 위후(威后)를 가리킨다. 혜문왕(惠文王)이 죽고 효성왕(孝成王)이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조(趙)나라는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급하였으므로 제(齊)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제(齊)나라에서는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며 태후(太后)의 막내아들인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야만 원병(援兵)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王)과 대신(大臣)들은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태후(太后)는 나이어린 막내아들을 사랑하여 이를 듣지 않았다. 이에 좌사(左師)인 촉룡(觸龍)은 태후(太后)를 찾아 뵙고 자신의 막내아들을 태후(太后)에게 부탁하여 태후(太后)의 마음을 회유하는 한편 장안군(長安君)이 장구(長久)하게 부귀(富貴)를 누리려면 이러한 기회에 인질로 나가 국가에 크게 공헌해야 함을 넌지시 말하였다. 이에 태후(太后)는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인질로 보냈으며, 그 결과 제(齊)나라의 원병(援兵)이 출동하여 진군(秦軍)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와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모두 보이는데 《전국책(戰國策)》에는 촉섭(觸讋)으로 되어 있다.
역주6 맹자소위성덕달재(孟子所謂成德達才) : 성덕(成德)은 덕을 이루는 것이고 달재(達才)는 재능을 발달시키는 것인 바,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에 “군자지소이교자오(君子之所以敎者五) 유여시우화지자(有如時雨化之者) 유성덕자(有成德者) 유달재자(有達財者)”라고 보인다. 재(財)는 재(材)‧재(才)와 통하는 바, 달재(達才)는 상대방의 장점을 따라 가르침을 이른다.
역주7 주례대제삼이(周禮大祭三貳) : 《주례(周禮)》 〈천관(天官) 주정(酒正)〉에 “대제삼이(大祭三貳) 중제재이(中祭再貳) 소제일이(小祭壹貳)”라고 보인다.
역주8 육씨석문본(陸氏釋文本) : 육씨(陸氏)는 당(唐)나라 고조(高祖) 때의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육덕명(陸德明)을 가리키며, 석문본(釋文本)은 그가 지은, 경전(經典)의 음독(音讀)을 풀이한 《경전석문(經典釋文)》을 가리킨다.
역주9 지기평(祗旣平) : 앞의 복괘(復卦) 초구(初九) 효사(爻辭)의 《정전(程傳)》역주(譯註)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0 계용휘묵(係用徽纆) : 사계(沙溪)는 “휘(徽)는 삼규승(三糾繩)[세 겹으로 꼰 노]이고 묵(纆)은 양고삭(兩股索)[두 가닥으로 꼰 새끼줄]이다.” 하였다.

주역전의(상)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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