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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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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二十五日某白하노라
嚴生足下
得生書 言爲師之說하고 怪僕所作師友箴與答韋中立書하여 欲變僕不爲師之志하고 而屈己爲弟子하니
凡僕所爲二文 其卒果不異
僕之所避者 名也 所憂者 其實也 實不可一日忘이라
僕聊歌以爲箴하고 行且求中以益己하여 慄慄不敢暇하며 又不敢自謂有可師乎人者耳
若乃名者 方爲薄世笑罵 僕脆怯하여 尤不足當也니라
內不足爲하고 外不足當이니 衆口雖懇懇見迫이라도 其若吾子何리오
實之要 二文中皆是也 吾子其詳讀之하라
僕見解不出此니라
吾子所云仲尼之說 豈易耶
仲尼可學不可爲也
學之至 斯則仲尼矣니라
未至而欲行仲尼之事 仲尼豈易言耶
今世固不少章句師하니 僕幸非其人이라
吾子欲之 其有樂而望吾子者矣리라
言道講古窮文辭以爲師 則固吾屬事
僕才能勇敢不如韓退之 故又不爲人師
人之所見有同異하니 吾子無以韓責我하라
若曰僕拒千百人 又非也
僕之所拒 拒爲師弟子名하여 而不取當其禮者也니라
若言道講古窮文辭하여 有來問我者 吾豈嘗瞋目閉口邪
吾所信愛
今不得見其人이나 又不敢廢其言이라
吾子文甚暢遠하니 恢恢乎其闢大路將疾馳也리라
攻其車하고 肥其馬하며 長其策하고 調其六轡하여 中道之行大都하라
捨是又奚師歟
亟謀於知道者而考諸古하면 師不乏矣리라
幸而亟來하여 終日與吾子言이면 不敢倦하고 不敢愛하며 不敢肆하리라
苟去其名하고 全其實하며 以其餘易其不足이면 亦可交以爲師矣리라
如此無世俗累而有益乎己하리니 古今未有好道而避是者니라
宗元白하노라


12. 사도師道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엄후여嚴厚輿에게 답한 편지
25일에 아무개는 고하네.
풍익馮翊 엄생嚴生 족하足下는 읽어보게.
그대의 편지를 받아보니, 스승이 되는 것에 대한 말을 언급하면서 내가 지은 〈사우잠師友箴〉과 〈답위중립논사도서答韋中立論師道書〉를 괴이하게 여기고 스승이 되지 않으려는 나의 뜻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기를 굽혀 제자가 되려고 하였네.
내가 쓴 두 편의 글은 그 내용이 결국 다르지 않네.
내가 피하는 것은 이름이고 염려하는 것은 그 내실이니, 내실은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되네.
나는 그저 그 내실을 노래로 만들어 잠언箴言으로 삼고, 장차 중용中庸의 도를 구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게 하자는 의도로 자나 깨나 전전긍긍할 뿐이며, 또한 감히 스스로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점이 있다고 여기지 않네.
이름 같은 것은 바야흐로 각박한 세상으로부터 조소嘲笑매도罵倒만 당하니, 나는 본디 여리고 겁이 많아 더더욱 감당하지 못하네.
안으로는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부족하고 밖으로는 세상의 조소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니, 많은 사람들이 비록 간절하게 강요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요청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실의 요점은 두 편의 글에 담긴 내용이 전부이니, 그대는 자세히 읽어보기 바라네.
내 견해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네.
그대가 말한 중니仲尼에 관한 설은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중니仲尼는 배울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그처럼 행할 수는 없네.
그를 배우기를 완전하게 하면 이에 곧 중니仲尼가 될 것이네.
배우기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고서 중니仲尼의 일을 행하려 하는 것은 마치 양공襄公패자霸者가 되기를 좋아하다가 나라를 망치고 마침내 화살에 맞아 죽은 것과 같으니, 중니仲尼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마융馬融정현鄭玄 두 사람 같은 경우는 단지 장구章句의 스승일 따름이네.
지금 세상에는 장구章句의 스승은 사실 적지 않은데 나는 다행히 그런 사람은 아니네.
그대가 장구章句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필시 그것을 좋게 여겨 그대에게 기대를 거는 자가 있어서일 것이네.
를 말하고 옛 을 강론하고 문사文辭를 탐구하는 일로 스승이 되는 것은 진정 우리에게 딸린 일이네.
나는 재능과 용기가 한퇴지韓退之만 못하기 때문에 또한 한퇴지韓退之처럼 남의 스승이 되지 않으려 하네.
사람의 견해는 서로 다를 수도 있으니, 그대는 한퇴지韓退之의 예를 들어 나에게 요구하지 말기 바라네.
그러나 내가 천백 명을 모두 거절한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잘못이네.
내가 거절하는 것은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사제간師弟間의 형식적인〉 예를 차리는 일을 멀리하자는 것이네.
만약 도를 말하고 옛 법을 강론하고 문사文辭를 탐구하는 문제를 가지고 찾아와 내게 묻는 자가 있다면, 내가 어찌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입을 다물고만 있겠는가.
경숙敬叔은 내가 믿고 아끼는 사람이네.
지금은 그 사람을 볼 수 없으나 또한 감히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네.
그대의 글은 매우 유창하니 큰 길을 활짝 열고 장차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이네.
수레를 단단히 손질하고 말을 살찌운 다음 채찍을 길게 하고 여섯 고삐를 고르게 잡고서 중앙의 길을 통해 큰 도회지로 달려가기 바라네.
이것을 버리고 또한 무엇을 스승으로 삼으려는가.
를 아는 자에게 자주 묻고 옛 을 살펴보면 스승이 적지 않을 것이네.
혹시 나를 자주 찾아와 종일토록 그대와 말하게 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고 감히 아끼지 않을 것이며 감히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네.
만일 사제간師弟間이란 이름을 버리고 그 내실을 온전히 지키면서 그 남는 것을 가지고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면, 이 역시 서로 사귀며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이와 같이 하면 세속의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에겐 유익한 점이 있을 것이니,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도를 좋아하면서 이 방법을 피한 사람은 없었네.
종원宗元은 고하네.


역주
역주1 答嚴厚輿論師道書 : 《柳河東集》에는 〈答嚴厚輿秀才論爲師道書〉로 되어 있다. 연보에 의하면 元和 8년(813)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편지이다. 嚴厚輿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본문에 ‘嚴生’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작자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로 사료된다. 〈答韋中立論師道書〉‧〈答袁君陳秀才避師名書〉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스승이라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말하였다.
역주2 馮翊 : 唐나라 때의 郡 이름으로, 지금의 陝西 大荔이다. 여기서는 嚴厚輿의 고향이므로 거론한 것이다.
역주3 宋襄公好霸而敗國 卒中矢而死 : 宋 襄公이 齊나라의 혼란을 안정시키고 齊 孝公을 군주로 세운 뒤에 거만해져 제후의 霸者가 될 야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河南省 柘城縣 북쪽의 泓水에서 무리하게 강적 楚나라와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고 자신은 허벅지에 화살을 맞아 이듬해에 죽었다. 여기서는 허황된 욕심을 부렸다가는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예로 든 것이다. 《春秋 僖公 22년》
역주4 馬融鄭玄者 二子獨章句師耳 : 馬融(79~166)은 자가 季長이며 東漢시대의 經學家이다. 《孝經》‧《論語》‧《詩經》‧《易經》‧《尙書》‧三禮 등에 주를 달았다. 鄭玄(127~200)은 자가 康成이며 馬融의 문인으로, 漢代 經學을 집대성한 東漢시대의 經學家이다. 《周易》‧《尙書》‧《毛詩》‧《儀禮》‧《論語》 등에 주를 달았다. 章句는 章節과 句讀의 약칭인데, 여기서는 章句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章句之學을 말한다. ‘者’와 ‘二子’는 순서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역주5 敬叔 : 《柳河東集注》 권34 ‘敬叔’의 주에 “呂恭의 자가 敬叔이다.”라고 되어 있다. 呂恭은 河中 사람으로, 呂渭의 아들이자 呂溫의 아우이다. 節槪를 중시하고, 論辯으로 利害를 진술하는 縱橫術과 孫武‧吳起의 병법을 좋아하였다. 殿中侍御史와 嶺南道府判官를 지냈다. 그의 字가 《新唐書》 권160의 〈呂恭列傳〉에는 ‘恭叔’으로 되어 있고, 《氏族大全》 권14 呂氏條에는 ‘敬叔’으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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