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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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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유주柳州동정東亭에 관한 기문
出州南하여 左行二十六步 有棄地在道南이라
유주성柳州城의 남쪽 초문譙門을 나와 왼쪽으로 26보를 가면 길 남쪽에 버려진 땅이 있었다.
南値江하고 西際傳置하며 東曰東館이라
그 남쪽으로는 유강柳江에 닿고 서쪽으로는 수양垂楊역참驛站과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동관東館이 있다.
其內草木猥奧하고 有崖谷하여 傾亞缺圮하니 豕得以爲囿하고 蛇得以爲藪하여 人莫能居하니라
이 땅 안에는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고 또 산비탈과 골짜기가 있어 지형이 경사지고 함몰되었거나 허물어졌으므로, 멧돼지가 이곳을 제 놀이터로 삼고 뱀들이 이곳을 제 소굴로 삼아 사람은 거주할 수 없었다.
至是始命披刜蠲疏하여 樹以竹箭松檉桂檜柏杉하고
나는 이번에 비로소 명을 내려 길을 트고 가시나무를 베어내며 잡초를 제거하고 물길을 소통시킨 뒤에, 신우대와 소나무 그리고 위성류ㆍ계수나무ㆍ노송나무ㆍ측백나무ㆍ삼나무 등을 심었다.
易爲堂亭하며 峭爲杠梁하니
평탄한 곳에는 가옥家屋정자亭子를 짓고 가파른 곳에는 크고 작은 다리를 놓았다.
下上徊翔하고 前出兩翼이라
그 결과 높고 낮은 구조물들이 위아래서 허공을 나는 듯하고 앞을 향해 새가 두 날개를 펼친 것만 같았다.
馮空拒江하면 江化爲湖하고 衆山橫環 嶛闊瀴灣이라
허공에 의지해 강물을 주시하면 강이 호수로 변한 것 같고, 많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강물이 드넓어 아련하였다.
當邑居之劇이로되 而忘乎人間하니 斯亦奇矣
번잡한 성안에 있으면서도 인간 속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乃取館之北宇하여 右闢之以爲夕室하고 取傳置之東宇하여 左闢之以爲朝室하며
그리하여 동관東館의 북쪽 방을 취하여 그 오른쪽을 터서 석실夕室로 삼고, 역참驛站 동쪽 방을 취하여 그 왼쪽을 터서 조실朝室로 삼았다.
又北闢之以爲陰室하여 作屋于北牖下하여 以爲陽室하고
또 북쪽을 향해 한 칸을 터서 음실陰室로 삼고, 그 북쪽 창 아래에 집을 지어 양실陽室로 삼았다.
作斯亭于中하여 以爲中室하니라
그리고 이 정자를 그 중앙에 지어 중실中室로 삼았다.
朝室以夕居之하고 夕室以朝居之하고 中室日中而居之하고 陰室以違溫風焉하고 陽室以違凄風焉하며
조실朝室에서는 저녁을 지내고, 석실夕室에서는 아침을 지내고, 중실中室에서는 낮을 지내며, 음실陰室에서는 더운 바람을 피하고, 양실陽室에서는 찬바람을 피하게 하였다.
若無寒暑也하니라
만약 추위나 더위가 없을 때는 조실朝室석실夕室이 제 이름을 되찾게 하였다.
旣成 作石于中室하여 書以告後之人하노니 庶勿壞하라
건물을 다 지은 뒤에 중실中室에 비석 하나를 세우고 이 기문을 새겨 후인에게 고하노니, 부디 이 건축물을 헐어버리지 말라.
元和十二年九月 柳宗元記하노라
원화元和 12년 9월 모일에 유종원柳宗元은 기록한다.
역주
역주1 : 柳州刺史로 있을 때인 원화 12년(817)에 쓴 작품이다. 永州에서 10년간의 폄적생활을 마치고, 43세 때인 元和 10년(815) 1월에 長安으로 소환되었다가, 3월에 다시 柳州刺史로 폄적되어 6월에 부임하였다. 柳州의 관아 소재지는 지금의 廣西 柳州이고, 東亭은 柳州城 남쪽에 있던 정자로 작자가 재직시에 세운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버려져 있던 땅에 정자를 세우고 정원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활동하는 장소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역주2 譙門 : 망루가 있는 성문이다.
역주3 垂楊 : 地名이다.
역주4 朝夕復其號 : 그 명칭에 걸맞게 아침에는 朝室에서 지내고, 저녁에는 夕室에서 지낸다는 뜻이다.
역주5 某日 : 《文苑英華》에는 ‘三日’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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