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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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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調不入史漢이나 而氣韻亦勁이라
有唐貞臣汝南周氏 諱某字某
以諫死하여 葬於某
貞元十 柳宗元立碣於其墓左
在(天寶)[開元]年 有以諂諛至相位하고 賢臣放退
公之死 而佞者始畏公議
於虖 古之不得其死者
若公之死 志匡王國하고 氣震姦佞하여 動獲其所하니 斯蓋得其死者歟인저
公之德之才 洽於傳聞하되 卒以不試하고 而獨申其節이나
猶能奮百代之上하여 以爲世軌
而存不及興王之用하고 沒不遭聖人之歎하니 誠立志者之所悼也
故爲之銘하노라
銘曰
忠爲美하여
道是履하고
諫而死하니
佞者止
史之志하고
石以紀하니
爲臣軌兮


04. 어사御史 주군周君묘갈명墓碣銘
격조는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의 수준에 들지 못하나 풍격과 운치는 힘이 있다.
의 곧은 신하 여남汝南 주씨周氏는 이름이 아무개요, 자가 아무개이다.
바른말로 간했다가 죽어 모처에 장사 지냈다.
정원貞元 12년에 유종원柳宗元이 그 무덤 좌측에 묘비를 세웠다.
천보天寶 연간에 어떤 자가 아첨으로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어진 신하는 내몰렸다.
공은 어사御史로 있으면서 과감하게 이 일에 대해 항의했다가 궁궐 뜰에서 죽으니, 사관史官이 이를 기록했다.
공이 죽고 나서야 아첨하는 자가 비로소 공론을 두려워했다.
아, 예로부터 마땅히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공의 죽음 같은 경우는 그 의지가 왕과 나라를 바로잡고 그 기개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떨게 하여 곧장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었으니, 이는 죽어야 할 때 죽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공의 덕행과 재능은 온 세상에 자자했으나 끝내 시험해보지 못하고 단지 그 절의만 세웠다.
그러나 능히 유구한 역사에서 그 유래를 보기 드물게 우뚝 일어나 세상의 모범이 되었다.
만약 공이 나라 정공定公애공哀公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공자孔子도 “나는 강직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후에 태어났더라면 고조高祖가 “어떻게 용사를 얻을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서는 왕업王業을 일으킬 수 있게 등용되지 못하고 죽어서는 성인聖人의 감탄을 받지 못했으니, 참으로 뜻있는 사람이 애도할 일이다.
이 때문에 명문銘文을 짓는다.
명문銘文은 다음과 같다.
충성을 미덕으로,
도리를 실천하고,
간하다 죽었으니,
간신들 뜨끔했네.
사관史官이 기록하고,
빗돌에 새기나니,
신하의 모범일레.


역주
역주1 : 작자의 나이 24세 때인 貞元 12년(796)에 쓴 작품이다. 周君은 唐 京兆 사람으로, 이름은 子諒이다. 玄宗 開元 무렵에 監察御史를 지냈다. 碣은 비석을 말한다. 저본에는 ‘故’가 ‘侍’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2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3 在(天寶)[開元]年……得死於墀下 : 唐 玄宗 開元 24년(736) 겨울에 재상 張九齡과 侍中 裴耀卿이 李林甫의 참소로 인해 좌천되고, 牛仙客이 工部尚書ㆍ同中書門下三品ㆍ知門下省事가 되었다. 그 이듬해 여름에 監察御史로 있던 周子諒이 御史大夫 李適之에게, 능력도 없는 牛仙客이 재상자리에 앉아 있는데 당신은 御史大夫로서 어찌 그 일을 방관하고 있느냐고 따졌다. 이 말을 들은 李適之가 그대로 玄宗에게 아뢰자, 玄宗이 크게 노하여 궁궐 뜰에서 곤장을 쳐 죽였다. 《舊唐書 권107 牛仙客列傳》 ‘天寶’는 開元 이후의 연호이므로 《舊唐書》의 사실에 근거하여 ‘開元’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多)[衆] : 저본에는 ‘多’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衆’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第令生於定哀之間 : 第令은 ‘가령, 만약’이란 뜻의 복합어이다. 定哀는 孔子가 생존했을 때의 魯나라 군주인 定公과 哀公을 가리킨다.
역주6 孔子不曰未見剛者 : 《論語》 〈公冶長〉에 “孔子께서 ‘나는 강직한 자를 보지 못했다.’ 하자,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申棖이 있습니다.’ 하였다. 孔子께서 ‘申棖은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직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였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역주7 秦楚 : 秦은 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했을 때의 나라를 말하고, 楚는 項羽가 秦나라를 멸망시키고 西楚霸王이라 자칭한 데서 생긴 西楚를 가리킨다. 모두 劉邦이 漢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나라들이다.
역주8 漢祖不曰安得猛士 : 漢祖는 漢 高祖 劉邦을 가리킨다. 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그의 고향인 沛縣에 들러 잔치를 열고 즉석에서 〈大風歌〉를 지어 부르기를 “큰 바람 몰아치자 구름 날아 흩어졌네. 천하에 위엄 떨치고 고향 돌아왔노라. 어떻게 용사 얻어 사방을 지킬 건고.”라고 하였다. 《漢書 권1 高帝紀》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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