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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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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고무담鈷鉧潭을 유람한 기문
기묘하다.
鈷鉧潭在西山西
고무담鈷鉧潭서산西山의 서쪽에 있다.
其始蓋冉水自南奔注 抵山石하고 屈折東流
그 근원은 남쪽에서 세차게 흘러오는 염계冉溪인데 시냇물이 산 바위에 부딪친 뒤에 물길이 꺾여 동쪽으로 흐른다.
勢峻하고 盪擊益暴하여 齧其涯
상류와 하류의 기세가 거세며 밀치고 때리는 힘이 더욱 사나워 물가를 끊임없이 침식하였다.
故旁廣而中深하여 畢至石乃止
이 때문에 이 못의 둘레가 넓고 중앙의 수심이 깊어 흘러내리던 시냇물이 바위로 형성된 못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멈춘다.
流沫成輪하고 然後徐行하니
못으로 쏟아지는 물이 거품을 일으키면서 여러 개의 수레바퀴와도 같은 소용돌이를 형성한 뒤에 또 느긋하게 흘러간다.
其淸而平者且 有樹環焉하고 有泉懸焉하니라
맑고 잔잔한 못은 크기가 10여 남짓한데 사방에 수목樹木이 둘러 서 있고 샘물 하나가 높은 곳에서 쏟아진다.
其上有居者하니 以予之亟游也 一旦款門來告曰 不勝官租私券之委積하여 旣芟山而更居하니
못 위쪽에 거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자주 돌아다니며 노니는 것을 보고, 하루는 나를 찾아와 고하기를 “관아의 조세와 개인 빚이 쌓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이미 산전山田을 개간하여 그곳으로 이사하였습니다.
願以潭上田으로 貿財以緩禍라하니라
못 위의 한 뙈기 밭을 팔아 돈을 마련하여 빚을 줄이고 싶습니다.” 하였다.
予樂而如其言하여 則崇其臺하고 延其檻하며 行其泉於高者墜之潭하니 有聲潨然이라
나는 기꺼이 그의 간청을 들어주어 〈그 땅을 사들였다.〉 나는 높은 곳의 토대를 더 높이고 토대 가의 난간을 더 길게 뺀 다음, 높은 곳의 샘물줄기를 그쪽으로 돌려 못 속으로 떨어지게 했더니 콸콸콸 듣기 좋게 쏟아져 내렸다.
尤與中秋觀月爲宜하니 於以見天之高 氣之逈이라
이곳의 경관은 무엇보다 중추절仲秋節 달밤에 달구경하기에 적격이니, 이곳을 통해 끝없이 높은 허공과 무한한 대자연의 기운을 엿볼 수 있다.
孰使予樂居夷而忘故土者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변방에 사는 것이 즐거워 고향을 잊게 한단 말인가?
非玆潭也歟
그것은 이 맑고 깊은 못물이 아니겠는가.
역주
역주1 : 永州八記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元和 4년(809) 10월 6일에 쓴 것이다. 鈷鉧潭은 零陵縣 서쪽 柳侯祠 부근의 愚溪 속에 있다. 鈷鉧는 다리미를 말하는데 못의 형태가 다리미처럼 보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옛날에 사용하는 다리미의 모양은 뚜껑 없는 둥근 주발처럼 생겼는데, 중앙이 숯을 담을 수 있도록 비어 있으며 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역주2 顚委 : 首尾와 같은 말로, 상류와 하류를 가리킨다.
역주3 十畝 : 畝는 토지 면적의 단위이다. 시대에 따라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다. 周나라 제도에는 6尺을 1步로 잡아 가로 1步, 세로 100步가 1畝였고, 秦나라 이후는 5평방 尺을 1평방 步로 하고 240평방 步를 1畝로 하였다. 1尺을 20센티미터로 기준할 때 1步는 1평방미터이며 10畝는 2,400평방미터인데, 鈷鉧潭이 시냇물의 중간에서 긴 타원형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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