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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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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부재符載를 막부 관리로 초빙한 강릉윤江陵尹 조종유趙宗儒를 축하하는
某啓하노라
아무개는 를 올립니다.
伏聞以符載爲記室 天下立志之士 雜然相顧하고 繼以歎息이라하니
삼가 듣자 하니, 무도武都부재符載기실記室로 임명하시자 포부를 가진 천하 인물들이 놀라 웅성거리면서 서로 돌아보았고 뒤이어 감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知爲善者得其歸嚮하고 流言者有所間執이라
이로 인해 을 행한 사람은 돌아갈 곳을 얻게 되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은 그 입을 닫아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直道之所行이요 義風之所揚으로 堂堂焉實在荊山之南矣 幸甚幸甚이라
이는 바른 도리가 행해진 것이고 정의正義의 기풍이 일어난 것으로서 당당하게 형산荊山 남쪽에서 이루어졌으니, 너무나도 다행입니다.
夫以符君之藝術志氣 爲時聞人이로되 才位未會하여 盤桓固久라가
대체로 부군符君의 재능과 기개는 당대에 이름이 났으나, 재능과 자리가 걸맞지 않아 실로 오랫동안 하릴없이 배회하였습니다.
이나 與時偃仰하여 不廢其道어늘 而爲見忌嫉者橫致唇吻이라
그러다가 중간에 간교한 자의 농간으로 인해 위험한 입장에 처했으나, 변하는 주변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하여 정도正道를 잃지 않았는데도 그를 시기 질투하는 자가 함부로 입을 놀려 공격하였습니다.
以高節特立하여 聞之於朝하고 以淸議自任하여 辨之於外
그러자 방급사房給事는 세속에 구애됨이 없이 신념대로 행동하여 그의 억울함을 조정에 보고하였고, 왕이부王吏部는 공정한 말을 하는 것을 자기의 책무로 삼아 조정 밖에서 그의 억울함을 변호하였습니다.
然猶小人浮議 困在하니之欲得符君者 城聯壤接이로되 而惑於騰沸하여 環視相讓하여 莫敢先擧라가
그러나 오히려 소인小人들의 근거 없는 비난이 조정에 난무하니, 부군符君을 기용하고 싶어하는 각처의 지방장관들이 줄을 이었건만 비등하는 구설수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해 돌아보고 서로 양보하며 감히 먼저 기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及受署之日하여는 則皆開口垂臂하여 悵望悼悔
그러다가 임명받는 날이 오자, 모두 허탈한 나머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팔이 축 늘어져 서글프게 쳐다보고 후회하였습니다.
譬之求珠於海하여 而徑寸先得이면 則衆皆怏然罷去하니 知奇寶之有所歸也
이는 마치 바다에서 진주를 찾다가 남이 먼저 한 치나 되는 큰 것을 얻으면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섭섭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진기한 보물은 갈 곳이 따로 있음을 알겠습니다.
嗚呼 巧言難明이요 下流多謗하니 自非大君子出世之氣 則何望焉이리오
아,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은 진실을 가리기 어렵고 하류下流 사람들은 남을 헐뜯는 경우가 많으니, 세상에 뛰어난 기개를 지닌 대군자大君子가 아니면 그들에게 휩쓸리지 않을 것을 어찌 기대하겠습니까.
贍望淸風 若在天外하니 無任感激欣躍之至로다
고결한 품격을 우러러 바라볼 제 마치 천상에 계시는 분 같으니, 깡충깡충 뛸 듯이 기쁜 희열을 가눌 수 없습니다.
輕瀆陳賀하니 不勝戰越이라
경망스럽게 실례를 무릅쓰고 축하 말씀을 드리자니,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不宣이라
이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賀趙江陵宗儒辟符載啓 : 趙宗儒(746~832)는 鄧州 穰縣 사람으로, 자는 兼文이다. 代宗 大曆 연간(763~779)에 進士에 급제하였다. 檢校禮部尙書‧判東都尙書省事‧禮部尙書‧戶部尙書를 역임하고, 元和 4년(809)부터 6년까지 檢校吏部尙書‧守江陵尹과 兼御史大夫‧荊南節度使‧營田觀察使 등을 거친 뒤에 조정으로 들어가 刑部尙書가 되었다. 符載(760~?)는 자가 厚之로, 蜀郡 사람이며 自號를 廬山山人이라 하였다. 代宗 大曆 말에 靑城山에 은거하여 楊衡‧王簡言‧李元象과 독서에 전념하였고, 建中(780~783) 초에 또 이들과 함께 廬山에 은거하여 세상에서 山中四友라 불렀다. 貞元 8년(792)에 山南東道節度使 樊澤에게 의지하였고, 貞元 19년(803)에는 西川節度使 韋皋에게 의지해 있다가, 元和 4년에 荊南節度使 趙宗儒의 記室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사적에 의해 이 啓文은 작자가 元和 4년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것으로 추측된다.
역주2 武都 : 武都郡으로, 符載의 고향인 蜀郡을 가리킨다.
역주3 中間因緣 陷在危邦 : 因緣은 여기서는 불량한 자에게 농락을 당한다는 뜻이고, 危邦은 본디 위태로운 나라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위험한 지방, 나아가 위험한 처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永貞 원년(805)에 西川節度使 韋皋가 죽자, 그의 推官으로 있던 劉闢(?~806)이 스스로 節度留後로 앉아 반란을 일으켰다가 관군에게 패하여 長安으로 끌려와 처형되었다. 이 당시 劉闢과 함께 韋皋의 막료로 있던 符載는 劉闢의 요청으로 다시 그의 막료가 되었는데 劉闢이 역적으로 처형되자, 그 또한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역주4 房給事 : 給事中 房式(?~812)을 가리킨다. 처음에 符載와 함께 韋皋의 막료로 있다가 給事中이 되었는데 符載의 억울함을 변호하였다.
역주5 王吏部 : 吏部員外郞 王仲舒(762~823)를 가리킨다. 幷州 祁縣 사람으로, 자는 宏中이다. 효자로 학문을 좋아하고 많은 명사들과 교제하였으며, 德宗 때 賢良方正科에 높은 등수로 급제하고 左拾遺를 거쳐 禮部考功員外郞을 지냈다. 王仲舒가 이때 吏部員外郞으로 지방에 나가 刺史를 겸하고 있으면서 符載의 억울함을 변호하였다.
역주6 交戟 : 사병을 두고 수비하는 곳으로, 여기서는 궁정, 곧 조정을 가리킨다.
역주7 諸侯 : 여기서는 각처의 지방장관, 곧 節度使와 觀察使 등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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