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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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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안자춘추晏子春秋》에 관한 논변論辯
而莫知其所以爲書
사마천司馬遷이 《안자춘추晏子春秋》를 읽고 이 책을 매우 중시하였으나 그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몰랐다.
或曰 晏子爲之而人接焉이라하고 或曰 晏子之後爲之라하니
어떤 사람은 “안자晏子가 썼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이어 완성하였다.” 하고, 어떤 사람은 “안자晏子의 후세 사람이 쓴 것이다.”라고 한다.
皆非也
그러나 이는 모두 옳지 않다.
吾疑其墨子之徒有齊人者爲之라하노라
나는 묵자墨子문도門徒 가운데 나라 사람이 썼을 것으로 의심한다.
묵자墨子는 검소를 좋아했고 안자晏子도 검소로 세상에 이름났다.
故墨子之徒 尊著其事하여 以增高爲己術者
이 때문에 묵자墨子의 문도가 안자晏子를 존경하여 그와 관련된 사적을 기록하여 묵가墨家의 학설을 제고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자춘추晏子春秋》의 취지가 백성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일하는 것을 숭상하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할 것을 주장하고, 예악禮樂의 작용을 부정하고, 지출을 줄일 것을 주장하고, 호화로운 장례와 상복 입는 기간을 오래 끄는 것을 반대하는 부분이 많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묵자墨子》에서 나왔다.
하고 하니 非儒明鬼 又出墨子
공자孔子유가儒家를 비평하고 귀신에 관한 일을 언급하기를 좋아하였으니, 유가儒家를 비평하고 귀신을 밝히는 사상 또한 《묵자墨子》에서 나왔다.
尤怪誕이라
안자춘추晏子春秋》 속에 경공景公안자晏子에게 대추나무가 꽃만 피고 열매를 맺지 않는 이유를 물은 일과, 안자晏子 경공景公에게 고야자古冶子 등 세 용사를 제거할 것을 권한 일들이 실려 있는데, 이와 같은 말은 더욱 황당무계하다.
하니 此甚顯白者니라
묵자墨子안자晏子의 학설을 듣고 칭찬했다는 것을 여러 번 제기하였으니, 이는 《안자춘추晏子春秋》가 《묵자墨子》로부터 나왔음을 밝혀주는 가장 확실한 자료이다.
父子皆錄之儒家中하니 甚矣 數子之不詳也
유향劉向유흠劉歆반표班彪반고班固 등 부자가 모두 《안자춘추晏子春秋》를 유가류儒家類의 서목으로 기록하였으니, 이들 학자들이 너무도 자세히 고찰하지 못했다.
蓋非齊人不能具其事 非墨子之徒 則其言不若是
대체로 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일을 자세히 알 수 없을 것이고, 묵자墨子문도門徒가 아니라면 그 말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後之錄諸子書者 宜列之墨家
후세에 자서子書를 분류하는 사람은 마땅히 묵가류墨家類에다 배치해야 할 것이다.
非晏子爲墨也 爲是書者 墨之道也니라
이것은 안자晏子묵가墨家라는 말이 아니라, 이 책을 쓴 사람이 해놓은 말이 묵가墨家의 학술이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 晏子는 晏嬰(? ~B.C. 500)으로, 자는 平仲이다. 지금의 山東 高密 지방인 齊나라 夷維 사람이다. 齊나라 靈公ㆍ莊公ㆍ景公 세 조정의 卿相을 지내면서 치적이 있었다.
《晏子春秋》는 그의 사적과 말을 기술한 책이다. 《漢書》 〈藝文志〉 儒家類에 《晏子》 8편이 있다고 했으며, 《隋書》 〈經籍志〉 子部 儒家類에는 《晏子春秋》 7권이라 적혀 있고 齊나라 大夫 晏嬰이 편찬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晏嬰이 세상을 떠난 뒤에 뒷사람이 晏嬰의 유사를 기술한 것으로, 그 소재는 《齊春秋》 등 고서나 민간의 전설에서 나온 것이다. 작자는 《晏子春秋》가 이루어진 시대와 저자 및 그 관점을 진지하게 고증하고, 이 책은 儒家에 귀속시킬 것이 아니라 마땅히 墨家로 분류해야 한다고 하였다.
역주2 司馬遷讀晏子春秋 高之 : 司馬遷의 《史記》 〈管晏列傳〉에, 太史公이 말하기를 “내가 管仲의 〈牧民〉‧〈山高〉‧〈乘馬〉‧〈輕重〉‧〈九府〉 등 문장과 《晏子春秋》를 읽어보니, 그 속에 해놓은 말들이 매우 자세하였다.”라고 하였으므로 하는 말이다.
역주3 墨好儉 : 《墨子》에 〈節用〉ㆍ〈節葬〉ㆍ〈非樂〉ㆍ〈明鬼〉ㆍ〈非儒〉 등의 편이 있는데 각 편에서 절약과 검소를 제기하였고, 〈辭過〉편에서는 “절약하고 검소하면 번창하고 쾌락에 빠지면 망한다.” 하였다.
역주4 晏子以儉名於世 : 《禮記》 〈禮器〉에 “晏平仲은 그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올린 돼지 다리가 작아 제기를 채우지 못했고, 매번 조회에 참여할 때는 여러 번 세탁을 거친 낡은 옷과 갓을 착용하였다.” 하였고, 《晏子春秋》 속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기록한 부분이 많다. 〈內篇 雜下〉에 田桓子가 말하기를 “조정 신하의 벼슬이 당신보다 높은 자가 없고 봉록도 당신보다 많은 자가 없는데, 당신은 검은 베옷과 거친 갖옷을 입고 대나무를 얽어맨 수레에 앉아 절룩거리는 말을 몰고 入朝하니, 이는 임금이 주신 상을 의미 없게 만든 것입니다.” 하였고, 또 “晏子가 밥을 먹고 있을 때 景公이 보낸 사자가 왔다. 먹던 음식을 나누어 그를 먹였더니 사자가 배가 부르지 않고 晏子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역주5 其旨多尙同兼愛非樂節用 非厚葬久喪者 : 《墨子》에 〈尙同〉ㆍ〈兼愛〉ㆍ〈非樂〉ㆍ〈節用〉ㆍ〈節葬〉 등의 편이 있다. 《晏子春秋》 〈內篇 問上〉에 “슬기로운 군주는 도의를 닦고 실천하여 백성과 함께 풍습을 따라 지킨다.”는 말은 ‘尙同’의 취지이고, 〈內篇 雜下〉에 “晏嬰이 임금께 하사받은 것으로 三族에게 혜택을 입히고 벗들에게까지 미쳤으며 나아가 백성을 진작시켰다.”는 말은 ‘兼愛’의 취지이고, 〈外篇〉에 덕행이 없는 군주를 말하는 부분에서 “높은 누대를 세우고 깊은 못을 파며 음악을 연주하고 미녀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백성의 힘을 소진시키고 백성이 저축한 재물을 빼앗는다.”는 말은 ‘非樂’의 취지이다. 그리고 기타 여러 편에서 晏子가 景公에게 행락ㆍ궁실ㆍ의관 등에 관해 간한 일은 모두 ‘節用’의 취지이다. 〈外篇〉에 “세상에 누를 끼치고 국력을 소진하여 죽은 자를 받들거나 喪禮에 장기간 곡하고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죽은 자에게 도움이 될 게 없고 살아 있는 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곧 ‘호화로운 장례와 상복 입는 기간을 오래 끄는 것을 반대한다.’는 취지이다.
역주6 非孔子 : 《晏子春秋》 〈外篇〉에 孔子를 비평하기를 “그들은 널리 배웠어도 세상 사람들이 따를 법이 될 수 없고 생각을 수고롭게 했어도 백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수명이 갑절로 늘어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을 다 배울 수 없고 중년에 이르러도 그들의 예의를 다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7 好言鬼事 : 《晏子春秋》 〈內篇 雜下〉에, 齊 景公이 宋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泰山을 지나갈 적에 꿈속에서 두 남자가 서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이 있고, 같은 편에, 齊 景公이 사냥을 나가 야영할 적에 잠시 앉아 졸고 있는데 꿈속에서 다섯 남자가 그가 머물고 있는 행궁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귀신에 관한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8 其言問棗及古冶子等 : 問棗는 《晏子春秋》 〈外篇〉에 “景公이 晏子에게 묻기를 ‘동해바다 가운데 붉은빛의 물이 있고 그 안에 대추나무가 있는데 꽃만 피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하자, 대답하기를 ‘옛날 秦 穆公이 용을 타고 천하를 다스릴 적에 찐 대추를 누른빛의 천에 싸가지고 동해로 가서 그것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천이 터져 물빛이 붉은색으로 변했고 대추는 익혔기 때문에 꽃만 피고 열매는 맺지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라고 한 내용을 가리킨다.
古冶子에 관한 내용은 《晏子春秋》 〈內篇 諫下〉에 실려 있다. 古冶子는 公孫接ㆍ田開疆과 함께 勇力이 뛰어난 齊나라 신하이다. 晏子가 景公에게 이들이 勇力만 있을 뿐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청하여, 이들에게 복숭아 2개를 주고 공이 많은 자가 먹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서로 자기 공이 더 크다고 하면서 다투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모두 자살하였다.
역주9 往往言墨子聞其道而稱之 : 《晏子春秋》 〈內篇 問上〉과 〈內篇 雜下〉에 모두 晏子가 景公에게 잘못된 정사를 개혁할 것을 권한 일이 있는데, 墨子가 그 소식을 듣고 晏子가 도리를 안다고 칭찬했다는 내용이 있다.
역주10 劉向歆 : 劉向(B.C. 77~B.C. 6)과 劉歆(B.C. 53~A.D. 23)이다. 劉向은 西漢 沛邑 사람으로, 본명은 更生이고 자는 子政이다. 楚 元王 劉交의 4대손이자, 劉歆의 아버지이다. 중국 최초로 도서의 분류목록인 《別錄》을 편찬하였다. 劉歆의 자는 子駿이다. 《別錄》을 보완하여 《七略》을 편찬하였는데, 이 두 책은 다 유실되고 없다. 다만 班固의 《漢書》 〈藝文志〉는 《七略》을 근거로 작성되었다.
역주11 班彪固 : 班彪(A.D. 3~A.D. 54)와 班固이다. 班彪는 扶風 安陵 사람으로, 자는 叔皮이며 班固의 아버지이다. 東漢 초년에 徐縣令을 지내다가 그만둔 뒤에 《史記》의 기록이 漢 武帝 太初 연간에서 끝난 것을 보충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널리 채집하여 《西漢史後傳》을 65편까지 편찬하던 중에 죽었다. 그의 아들 班固와 딸 班昭가 뒤를 이어 완성하였는데, 지금의 《漢書》가 그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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