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將爲穹谷嵁巖淵池於郊邑之中이면 則必輦山石하고 溝澗壑하여 凌絶嶮阻하고 疲極人力이라야 乃可以有爲也
然而求天作地生之狀 咸無得焉이라
逸其人하고 因其地하여 全其天 昔之所難이로되 今於是乎在하니라
永州 實惟九疑之麓이니 其始度土者 環山爲城이라
有石焉翳于奧草하고 有泉焉伏于土塗
蛇虺之所蟠이며 狸鼠之所游 茂樹惡木 嘉葩毒卉 亂雜而爭植하여 號爲穢墟
韋公之來旣逾月 理甚無事할새 望其地且異之하여
始命芟其蕪하고 行其塗하니 積之丘如하고 蠲之瀏如
旣焚旣釃 奇勢迭出하니 淸濁辨質하고 美惡異位
視其植則淸秀敷舒하고 視其蓄則溶漾紆餘
怪石森然하여 周于四隅하니 或列或跪하고 或立或仆
竅穴逶邃하고 堆阜突怒
乃作棟宇하여 以爲觀游하니 凡其物類 無不合形輔勢하여 效伎於堂廡之下하고 外之連山高原 林麓之崖 間厠隱顯이라
邇延野綠하고 遠混天碧하여 咸會於譙門之內하니라
已乃延客入觀하고 繼以宴娛하니
或贊且賀曰
見公之作 知公之志로다
公之因土而得勝 豈不欲因俗以成化
公之擇惡而取美 豈不欲除殘而佑仁이며
公之蠲濁而流淸 豈不欲廢貪而立廉이며
公之居高以望遠 豈不欲家撫而戶曉리오
夫然則是堂也 豈獨草木土石水泉之適歟 山原林麓之觀歟
將使繼公之理者 視其細 知其大也리라
宗元請志諸石 措諸하여 以爲二千石楷法하노라


05. 영주永州신당新堂에 관한 기문
만약 들판이나 고을 안에 인위적으로 깊은 계곡과 가파른 암벽, 그리고 깊디깊은 못을 조성하려 한다면 반드시 산골 바위를 운반해 오고 시냇물과 골짜기를 파내느라 극도의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많은 인력人力을 투입하여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연의 모습대로 만들어내는 일은 누구도 불가능하다.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지세地勢에 따라 자연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는 일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이었으나 지금 이곳에는 그러한 곳이 있다.
영주永州는 사실 구의산九疑山 기슭에 있는데 처음에 지세를 살펴본 자가 산을 빙 둘러 성을 축조했다.
바위는 우거진 풀 속에 가려져 있고 샘은 진흙 속에 숨겨져 있었다.
뱀들이 서려 있고 삵과 들쥐가 뛰노는 곳이었으며,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아름다운 꽃과 독초毒草가 어지럽게 뒤섞여 자라 황무지로 치부되는 곳이었다.
위공韋公이 부임한 지 한 달이 넘어 공무에 별 일이 없자 이곳 땅을 바라보면서 특이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비로소 명을 내려 잡초를 베어내고 막힌 진흙을 긁어내니 베어낸 것은 언덕만큼 쌓이고 흙탕물이 맑아졌다.
거친 잡초를 태우고 샘물을 흐르게 하자 기이한 모습이 끊임없이 나타나니, 맑고 혼탁한 본질이 가려지고 아름답고 추악한 지위가 달라졌다.
그 자라는 수목樹木을 살펴보면 수려하여 가지가 쭉쭉 뻗었고, 깊어진 샘물을 살펴보면 여유롭게 넘실거렸다.
괴석怪石들이 빽빽이 사방에 둘러섰는데, 어떤 것들은 줄을 서고 어떤 것들은 무릎을 꿇고, 어떤 것들은 서고 어떤 것들은 엎드렸다.
동굴은 꾸불꾸불 깊고 언덕은 높이 솟아 있었다.
이에 건물을 지어 유람을 위한 장소로 삼으니, 각종 경관이 모두 지형과 조화를 이루어 처마 아래에서 재주를 뽐내고, 건물 밖에 서로 이어진 산봉우리와 높은 언덕, 수목으로 덮인 산자락이 서로 섞이어 숨었다 보였다 하였다.
가깝게 푸른 들판과 이어지고 멀게 푸른 하늘과 섞이어 모든 경관이 성문 누각 안에 모여 들었다.
이윽고 손님을 맞아들여 구경시키고 이어 연회를 열었다.
어떤 사람이 한편으로 칭송하고 한편으로 축하하며 말하였다.
“공께서 지으신 것을 보니 공의 뜻을 알겠다.
공께서 지세地勢에 순응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얻었으니 어찌 이 고장의 풍속에 맞춰 교화하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공께서 추악한 것을 제거하고 아름다운 것을 골라 취했으니 어찌 포악한 이를 제거하고 어진 이를 도우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탁한 물을 제거하여 맑은 물이 흐르게 하였으니 어찌 탐관을 폐하고 청렴한 이를 세우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공께서 높은 곳에 위치하여 멀리 바라보시니 어찌 가가호호家家戶戶 보살핌을 받고 나아가 공의 지향을 이해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건물이 어찌 단지 초목草木토석土石과 샘물의 아취를 즐기고 산봉우리와 구릉, 수목樹木으로 덮인 산자락을 구경하는 기능만 있겠는가.
장차 공의 뒤를 이어 이 고장을 다스리는 관료로 하여금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알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종원宗元은 이 내용을 바위에 기록하여 한쪽에 세워둠으로써 이천석二千石 지방관의 본보기가 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역주
역주1 永州新堂記 : 永州司馬로 있던 元和 7년(812)에 쓴 작품이다. 永州刺史 崔簡의 후임으로 부임한 韋彪가 永州城 안에서 황폐한 山水를 다듬고 정리하여 본연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하고 건물을 지어 그 경관을 구경할 장소로 삼은 것을 서술한 뒤에, 그가 황폐한 산수를 정리하는 과정을 관리가 정사를 행하는 것과 결부시켜 차원 높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역주2 (壁編)[屋漏] : 저본에 ‘壁編’으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屋漏’로 바로잡았다.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여 생긴 오류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