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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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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담계자覃季子묘지명墓誌銘
跌宕이라
자유분방하다.
覃季子 其人生愛書
담계자覃季子는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했다.
貧甚하되 尤介特하여 不苟受施
매우 가난하였으나 성품이 강직하고 범상치 않아 남이 베풀어주는 것을 구차하게 받지 않았다.
讀經傳하여 言其說數家하고
그는 많은 경전을 읽고 여러 유가儒家가 경전에 관해 말한 내용을 설명하였다.
下到今 橫堅鉤貫하며 又且數十家 通爲書하여 號覃子史纂이라
그리고 태사공太史公반고班固의 책에서부터 오늘날의 역사서까지 다각도로 연구하고 수십 명의 학설을 이해한 다음, 〈자기의 주관을 형성하여〉 책을 저술하고 그 이름을 《담자사찬覃子史纂》이라 하였다.
又取下到今하니 其術自으로 至於이라
또한 《육자鬻子》‧《노자老子》‧《관자管子》‧《장자莊子》‧《자사자子思子》‧《안자춘추晏子春秋》‧《맹자孟子》 이후 오늘날의 제자서諸子書까지 취하여 검토하였는데, 그 학술의 범위가 유가儒家묵가墨家명가名家법가法家에서부터 개‧돼지와 풀‧나무 등 동식물에 관한 것까지 포함되었다.
凡有益於世者 爲子纂하니 又百有若干家
이는 모두 세상에 유익한 것들로서 이것을 엮어 《담자자찬覃子子纂》이라 했으니, 여기에 또 백여 종의 제자諸子가 수록되었다.
篤於하고 不以仕爲事
그는 학문에 치중하고 세상에 나가 벼슬을 얻는 데에는 힘쓰지 않았다.
取其書以氏名聞하여 除太子校書
출척사黜陟使가 그의 저서를 가져가 조정에 이름을 알림으로써 태자교서太子校書라는 직함을 제수하였다.
某年月日死永州祁陽縣某鄕하니라
모년 모월 모일에 영주永州 기양현祁陽縣 모향某鄕에서 죽었다.
將死 歎曰 寧有聞而窮乎 將無聞而豐乎
죽을 때 그가 탄식하기를 “차라리 명예가 있고 곤궁한 게 나을까, 아니면 명예가 없고 풍족한 게 나을까?
寧介而躓乎 將溷而遂乎아하니라
차라리 강직하여 쓰러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세상과 뒤섞여 편히 사는 게 나을까?” 하였다.
葬其鄕이라
그가 살았던 고장에 장사 지냈다.
後若干年 柳先生來永州하여 戚其文不大於世하여 求其墓以石銘하니라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유선생柳先生영주永州에 와서 그의 글이 세상에 크게 이름나지 못한 것이 서글퍼 그의 묘를 찾아와 돌에 명문銘文을 새긴다.
銘曰
명문銘文은 다음과 같다.
困其獨하고
곤궁困窮강직剛直과 짝을 이루고
豐其辱하니라
부귀富貴치욕恥辱이 뒤따른다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을 때 覃季子에 관한 사적을 듣고 쓴 墓誌銘이다. 굳은 절개와 남다른 이상을 지닌 사람은 언제나 빈곤하고, 세파와 어울려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은 부귀를 누리는데, 覃季子가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고 숭고한 절개와 이상을 견지하며 산 것을 찬양하였다.
역주2 太史公班固書 : 司馬遷이 쓴 《史記》와 班固가 쓴 《漢書》를 가리킨다.
역주3 鬻老管莊子思晏孟 : 鬻은 《鬻子》를 가리킨다. 西周 鬻熊이 지었다는 책으로, 모두 22편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老는 《老子》로, 《道德經》이라고도 부르며 春秋 때 老聃이 지은 것이다. 管은 《管子》로, 春秋 때 齊나라 재상 管仲이 지은 것이다. 莊은 《莊子》로 戰國 때 莊周가 지은 것이다. 子思는 《子思子》로, 孔子의 손자 孔伋이 지은 것이다. 《漢書》 〈藝文志〉에 23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오래 전에 없어졌다. 晏은 《晏子春秋》로, 春秋 때 齊나라 재상 晏嬰이 지었다고 한다. 孟은 《孟子》로, 戰國 때 孟軻의 문인들에 의해 편찬되었다.
역주4 儒墨名法 : 先秦의 諸子百家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儒는 孔子가 창시한 것으로 子思‧荀子‧孟子 등이 계승 발전하였고, 墨은 墨翟이 창시한 것으로 兼愛主義와 非攻擊을 주장하였는데 秦나라 이후 차츰 쇠퇴하였다. 名은 戰國 때 생긴 학파로 名詞 개념의 同異를 분석하는 데에 치중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惠施와 公孫龍子 등이 있다. 法은 戰國 때 생긴 학파로 法治를 사상의 핵심으로 하였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商鞅과 韓非가 있다.
역주5 狗彘草木 : 동물과 식물을 대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역주6 (聞)[文] :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 있으나, 淸나라 陳景雲(1670~1747)의 《柳集點勘》에 “聞은 마땅히 文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黜陟使 : 관명으로,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관리의 치적을 조사하는 일을 맡은 임시직이다. 德宗 建中 원년(780) 2월에 黜陟使 10명을 천하 각지로 파견하여 순행하게 하였는데, 이때 湖南 지역에 黜陟使로 나온 戶部侍郞 趙贊이 瀟湘 지방에서 覃季子를 발견하고 조정에 천거하였다. 《文苑英華 권723 送譚正字之上都序》 《文苑英華》에서는 ‘譚子’라고 했는데, 이는 ‘覃子’의 오류로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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