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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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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補闕執事
宗元聞之컨대 重遠輕邇하고 賤視貴聽 所由古矣
切(竊)以宗元 幼不知恥하고 少又躁進하여 拜揖長者 自于幼年이라
是以簉俊造之末跡하고 厠牒計之下列하여 賈藝求售 闃無善價
載文筆而都儒林者 匪親乃舊 率皆攜撫相示하고 談笑見昵하여 喔咿逡巡하여 爲達者嗤
無乃覩其者 鄙其成하고 狎其幼者 薄其長耶
將行不拔異하고 操不砥礪하며 學不該廣하고 文不炳燿하여 實可鄙而薄耶
充朝로되 而獨于執事者 特以顧下念舊하고 收接儒素 異乎他人耳
敢問厥由하노니 庶幾告之하여 俾識去就 幸甚幸甚이라
今將慷慨激昂하여 奮攘布衣하여 縱談作者之筵하고 曳裾名卿之門하며 抵掌峩弁하여 厚自潤澤이나
進越無恧하여 汙達者之視聽 狂狷愚妄 固不可爲也
復欲俛黙惕息하여 疊足榻翼하여 拜祈公侯之閽하고 跪邀賢達之車하여 竦魂慄股하고 兢恪危懼 榮者倦之하여 彌忿厥心하리니 又不可爲也
若愼守其常하고 確執厥中 固其所矣
則又色平氣柔하고 言訥性魯하여 無特達之節하고 無推擇之行하여 瑣瑣碌碌하여 一孺子耳 孰謂其可進이며 孰謂其可退리오
抑又聞之컨대 不鼓踴이면 無以超泥塗하고 不曲促이면 無以由險艱하고 不守常이면 無以處明分하고 不執中이면 無以趨夷軌라하니
今則鼓踴乎 曲促乎 守其常而執厥中乎 浩不知其宜矣로라
進退無倚 宵不遑寐하여 乃訪于故人而咨度之하니 其人曰
補闕權君 著名踰紀
行爲人高하고 言爲人信하며 力學掞文하여 儕稱雄이라
拜之 足以發揚하리라
對曰
하고 秪取誚耳 曷予補乎
其人曰
跡之勤者 情必生焉하고 心之恭者 禮必報焉이어든
況子之文 不甚鄙薄者乎
苟或勤以奉之하고 恭以下之 則必勗厲爾行하고 煇燿爾能하리라
言爲建瓴하여 晨發夕被하여 聲馳而響溢하고 風振而草靡하여
可使尺澤之鯢 奮鱗而縱海하고 密網之鳥 擧羽而翔霄하리니 子之一名 何足就矣리오
庶爲終身之遇乎인저
曷不擧馳聲之資하고 挈成名之基하여 授之權君이리오
然後退行守常執中之道斯可也라하니라
愚不敏以爲信然이라
是以有前日之拜로이다
又以爲色取象恭 大賢所飫 朝造夕謁 大賢所倦이요 性頗疎野하여 竊又不能일새 是以有今玆之問이라
仰惟覽其鄙心而去就之하라
潔誠齋慮 不勝至願이라
謹再拜


08. 권덕여權德輿 보궐補闕에게 온권溫卷을 올린
보궐집사補闕執事에게 올립니다.
종원宗元은 듣건대, 먼 것을 중시하고 가까운 것을 경시하며 보는 것을 경시하고 듣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어릴 때 부끄러운 줄을 몰랐고 조금 자라서는 또 경솔하게 나서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드리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뛰어난 인재들의 말석에 끼어들고 방문객 명부의 아랫줄에 이름을 올리고서 재능을 팔고 값을 구했지만 제값을 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필文筆의 재능을 지니고 유림儒林을 주도하는 자들이 저의 친척이 아니면 친지였기에 모두 저를 이끌어주고 서로 보살펴줌으로 인해, 이들과 담소談笑를 나누고 친하게 지내면서 비위를 맞추고 어리광을 부렸던 것이 높은 자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웃는 것은〉 어찌 상대가 서툴고 거친 것을 보았던 자는 그가 잘 다듬어진 뒤에도 천하게 여기고, 상대가 어릴 적에 친하게 지냈던 자는 그가 어른이 된 뒤에도 얕잡아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제가〉 행실이 남달리 뛰어나지 않고 행동을 제대로 갈고 닦지 않았거나 학문이 넓지 않고 문장이 빛나지 않아 실제로 거칠고 하찮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조정에 관원이 많은데 유독 집사執事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만 아랫사람을 보살피고 옛정을 생각하며 선비들을 거두시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일 뿐입니다.
감히 그 연유를 묻고자 하오니, 말씀을 해주시어 저로 하여금 거취를 알게 해주시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이제 장차 비분강개하여 미천한 신분으로 떨치고 일어나 문필가文筆家의 연석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고 이름난 고관高官의 문하를 분주히 다니며 사대부들을 만나 손뼉 치고 담소談笑를 나누면서 제 자신을 크게 부풀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참람하게 행동하여 높은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더럽혀드리는 일은 저처럼 기준이 없고 어리석고 경망한 자가 참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또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이고서 쪼작쪼작 걸어다니고 날개를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공후公侯의 집 문지기에게 절하면서 싹싹 빌고 현달賢達한 자의 수레를 무릎 꿇고 영접하면서 두려워 다리를 덜덜 떨며 극도로 삼가고 조심한다면 영달한 자가 권태로워 그 마음에 화가 더 팽배할 것이니, 이 또한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상도常道를 신중히 지키고 중용中庸을 굳게 취하는 것이야말로 본래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또 기색이 평온하고 부드러워지며 말이 어눌하고 성질이 무뎌져서 특별하고 뛰어난 절의節義가 없으며 추천하고 선택할 만한 품행이 없어 그저 옹졸하고 용렬한 일개 젊은이일 뿐이니, 어느 누가 이리 오라 하고 어느 누가 저리 가라 하겠습니까.
또 듣자 하니 높이 뛰지 않으면 진흙탕 길을 넘을 수 없고, 몸을 굽히지 않으면 험난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없고, 상도常道를 지키지 않으면 분명하게 처신할 수 없고, 중용中庸을 지키지 않으면 평탄한 길을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높이 뛰어야 할지, 몸을 굽혀야 할지, 아니면 상도常道를 지키고 중용中庸을 지켜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해 밤에도 제대로 잠을 못 이루다가 마침내 벗을 찾아가 자문하였더니, 그가 말하였습니다.
권보궐權補闕께서는 세상에 명성이 자자한 지 12년이 넘었다.
행실行實을 사람들이 높이 사고 언동言動을 사람들이 신임하고 학문에 힘쓰고 문장이 뛰어나서 이 시대의 인물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네.
그대가 자주 찾아가 인사하면 충분히 그대를 키워줄 것이네.”
제가 대답하였습니다.
연석燕石을 품고 현포玄圃를 찾아가고, 고기 눈알을 가지고 큰 바다를 돌아다니는 격이라 단지 책망만 받을 것이니, 어찌 내게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자 그가 말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찾아오는 자에게는 이 반드시 생기고 마음이 공손한 자에게는 로써 반드시 보답해주는 법이네.
더구나 그대의 글 솜씨가 그렇게 천박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부지런히 받들어 모시고 공손하게 자기를 낮춘다면 반드시 그대의 행실을 격려해주고 그대의 능력이 환히 빛을 발하게 해주실 것이네.
그분의 말이면 마치 높은 지붕 위에서 물병의 물을 쏟는 것처럼 막힘이 없어서 아침에 말씀을 하시면 저녁에 널리 퍼져서 소리가 거세게 퍼져 메아리가 크게 울리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풀이 눕듯 할 것이네.
그리하여 작은 못의 도롱뇽이 지느러미를 흔들며 바다로 가게 하고, 촘촘한 그물에 걸린 새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게 할 것이니, 그대 한 사람의 명성쯤이야 어찌 충분히 이루게 하지 못하겠는가.
아마 종신토록 만나기 어려운 기회인 듯하네.
그러니 어찌 소리를 크게 내줄 만한 바탕과 명예를 이뤄줄 만한 자료를 권보궐權補闕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다음 물러나 상도常道를 지키고 중용中庸을 지키는 도를 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저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찾아뵈었던 것입니다.
또 생각해보니, 외양으로 공손한 것은 대현大賢께서 싫어하시고, 아침저녁으로 찾아뵙는 것도 대현大賢께서 물리실 것이며, 게다가 제 성품이 매우 거칠어서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제 이 마음을 살피시어 거취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진실하고 순수한 심정으로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삼가 재배 드립니다.


역주
역주1 上權德輿補闕溫卷啓 : 權德輿(759~818)는 天水 略陽 사람으로, 자는 載之이다. 4세 때 시를 지었고, 15세 때 《童蒙集》 10권을 저술하여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德宗 때 太常博士‧起居舍人‧兼知制誥‧中書舍人을 역임하고, 貞元 말에 禮部侍郞이 되어 세 번 貢擧를 맡아 훌륭한 인재를 뽑았다는 평판이 있었다. 憲宗 元和 초기에 兵部와 吏部侍郞을 거쳐 禮部尙書‧同中書門下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다. 溫卷은 科擧시험 응시자가 시험 전에 시험관에게 제출하는 자기 작품이다. 이 글은 작자의 나이 18세 때인 貞元 6년(790)에 쓴 것이다.
역주2 :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아직 배우거나 수련하지 않아 서툴고 거친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역주3 鴛鷺 : 원추리와 해오라기인데, 모습이 단정하고 여러 마리가 움직일 때 질서가 있다 하여 조정에 늘어선 百官의 반열에 비유한다.
역주4 (朋)[時] : 저본에는 ‘朋’으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時’로 바로잡았다.
역주5 : 기
역주6 衷燕石而履玄圃 : 燕石은 지금의 河北 玉田縣 일대의 산인 燕山에서 나는 품질이 낮은 玉石을 말하고, 玄圃는 崑崙山 정상의 신선이 산다는 곳인데 황금으로 된 臺가 다섯 곳이고 옥으로 된 누각이 열두 채가 있다 한다. 곧 좋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진기한 물건이 있는 곳에 가면 천대를 받는다는 뜻이다.
역주7 帶魚目而游漲海 : 魚目은 물고기 눈알이다. 漲海는 珍珠가 나는 큰 바다를 말한다. 모양만 둥근 물고기 눈알을 가지고 진주가 나는 곳에 가서 값을 쳐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비유한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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