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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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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고중산대부故中散大夫 검교檢校 국자좨주國子祭酒 겸안남도호兼安南都護 어사중승御史中丞 충안남본관경략초토처치등사充安南本管經略招討處置等使 상주국上柱國 무성현개국남武城縣開國男 식읍삼백호食邑三百戶 장공張公묘지명墓誌銘 서문 포함
하고 하니 理隨德成하고 功與時幷하니라
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중흥했을 때 마원馬援은 먼 지역에서 큰 뜻을 펼쳤고, 나라 무제武帝가 통일했을 때 도황陶璜은 풍속이 다른 곳에서 은택을 베풀었으니, 치적은 그의 은덕과 함께 이루어지고 공적은 융성한 시운時運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하여 丕冒海隅하니 時惟公祗復厥績하여 하니라
지금 황제께서 즉위하시어 멀리 해변에까지 교화가 미치니, 이때 공이 그 업적을 다시 이루어 교지交趾를 다스리는 일이 옛사람의 뒤를 계승하게 되었다.
公諱某 字某 某郡人也
공의 는 아무요, 자는 아무요, 아무 사람이다.
曾祖彦師 朝散大夫尙書駕部郞中이요 祖瑾 懷州武德縣令이요 考淸 朝議郞試大理寺丞 贈右贊善大夫
증조부 언사彦師조산대부朝散大夫 상서가부랑중尙書駕部郞中을 역임했고, 조부 회주懷州 무덕현령武德縣令을 역임했으며, 선친 조의랑朝議郞 시대리사승試大理寺丞을 역임하고 우찬선대부右贊善大夫에 추증되었다.
咸有懿美하여 積爲餘慶이라
모두 아름다운 덕이 있었는데 이것이 쌓이고 쌓여 훗날의 복이 되었다.
公以忠肅循其中하고 以文術昭於外하며 推經旨以飾吏事하고 本法理以平人心이라
공은 충성과 공경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문장과 학술이 밖으로 드러났으며, 경전經典의 뜻을 미루어 정사를 처리하고 법치法治를 근간으로 삼아 인심을 화평하게 하였다.
始命蘄州 蘄春主簿하여 句會敏給하여 厥聲顯揚이라
처음에는 기주蘄州기춘현주부蘄春縣主簿에 임명되었는데 재정의 회계가 정확하고 민첩하여 그 명성이 드러났다.
仍以左領軍衛兵曹爲安南經略巡官하여 申固扞衛하여 有聞彰徹이라
이어서 좌령군위병조左領軍衛兵曹로 있다가 안남경략순관安南經略巡官이 되어 공고하게 변방을 지켜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轉金吾衛判官하고 三歷御史하여 績用弘大하여 揚於天庭이라
금오위판관金吾衛判官으로 전보된 뒤에 세 차례 어사御史를 역임하면서 이룬 공적이 커 황제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다.
加檢校尙書禮部員外郞하고 換山南東道節度判官이라가 復轉郞中이라
검교檢校 상서예부원외랑尙書禮部員外郞으로 승진되고 산남동도절도판관山南東道節度判官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예부낭중禮部郞中으로 전직되었다.
爲安南副都護하여하고 充經略副使
안남부도호安南副都護가 되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고, 경략부사經略副使로 충원되었다.
遷檢校太子右庶子 兼安南都護 御史中丞하여 充本管經略招討處置等使하니라
검교태자우서자檢校太子右庶子 겸안남도호兼安南都護 어사중승御史中丞로 옮겨 본관경략초토처치등사本管經略招討處置等使로 충원되었다.
公自爲吏 習於海邦하고 凡其比較勤勞하여 利澤長久
공은 안남安南의 관리가 되면서부터 해변지역의 특성을 익히고 비교적 정성을 다해 다스렸으므로 이익과 혜택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去之則稱亂하고 復至而寇攘順化러니 及受命專征하여 得陳嘉謨하여는 誓拔禍本하고 納於夷軌
공이 그곳을 떠나면 이료夷獠가 난을 일으키고 공이 다시 오면 도적들이 복종하여 순하게 변했는데, 군대 운영의 전권을 위임받아 훌륭한 계책을 펼칠 수 있게 되자, 화의 근원을 뽑아버리고 평탄한 길로 바꿔놓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乃命一其貢奉하고 平其斂施
이에 조정에 바치는 공물을 통일하고 조세의 징수를 공평히 할 것을 명했다.
牧人盡區處之方하고 이라
백성을 다스릴 때는 조처하는 방도를 빠짐없이 강구하고, 고을의 구역을 획정할 때는 지형에 따라 세부 구조를 만드는 법을 갖추었다.
道阻而通百貨하고 地偏而具하며 儲偫委積하여 師旅無하고 繕完板榦하여 控帶兼
도로는 험난해도 온갖 물자가 유통되고 지역은 궁벽해도 다섯 관리가 구비되었으며, 비축된 물자가 풍부하여 군대에는 굶주림을 호소하는 소리가 없었고, 성벽을 보수하고 증축하여 지형이 험난한 변방을 수비하는 책무를 다했다.
怙力背義하니 公於是陸聯長轂하고 海合艨艟하여 再擧而克殄其徒하고 廓地數하여 以歸於我理하니라
문단국文單國환왕環王이 세력을 믿고 의리를 저버리자, 공이 이에 육지에서는 전차를 줄 세우고 바다에서는 전함을 한곳으로 모아, 두 번 군사를 출동하여 그 무리를 토벌하고 영토 수천 리를 확장하여 우리나라의 치하로 귀속되게 하였다.
酋帥 負險蔑德하니 公於是外申皇威하고 旁達明信하여 一動而悉朝其長하고 取州二十하여 以被於華風이라
그리고 오만烏蠻의 수령이 험준한 지형을 믿고 부덕한 짓을 행하자, 공이 이에 밖으로는 황제의 위엄을 펼치고 곁으로는 분명한 신의를 전달하여, 한 번 출동으로 그 수령을 항복받고 20를 취하여 중화中華의 풍속이 퍼지게 하였다.
以冠帶하고 化姦宄爲誠敬하여 皆用周禮하고 率由漢儀
갖옷과 풀로 만든 옷을 관대冠帶 차림으로 바꾸게 하고, 간교한 심술을 성실한 마음으로 변하게 하여, 모두 나라의 예법을 쓰고 나라의 의식을 따르게 했다.
公患浮海之役 可濟可覆하여 而無所恃하여 乃刳하여 以闢坦途
공은 바다로 다니는 일이 제대로 건널 수도 있지만 뒤집어질 수도 있어 믿을 수 없음을 염려하여, 연오連烏를 깎아 평탄한 길을 열었다.
鬼工來幷하고 人力罕用하여 束成通溝하고 摩霄之阻 硩爲高岸하여 而終古蒙利
솜씨 좋은 장인들을 불러 모으고 일반인은 적게 동원하였는데, 큰 바다가 좁혀져 툭 트인 도랑으로 변하고 하늘을 찌르던 험한 벼랑이 허물어져 약간 높은 언덕이 됨으로써 앞으로 영원히 그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公患하여 乃復銅柱 爲正制하여 鼓鑄旣施 精堅是立이라
공은 변방의 경계선에 관한 기준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일정치 않은 것을 염려한 나머지, 동주銅柱를 복구해 그 기준을 확고하게 정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구리를 주조하여 단단한 기둥을 세웠다.
固圉之下 明若白黑하여 易野之守 險逾丘陵이나 而萬世無虞
변방을 튼튼히 한 동주銅柱 아래에 경계가 흑백처럼 분명해졌으므로, 평야를 지키는 것이 험난한 구릉을 지키는 것보다 어렵다고는 하나 만세토록 걱정할 일이 없게 되었다.
奇琛良貨 溢於하고 殊俗異類 盈於하니 優詔累旌其忠良하고 太史嗣書其功烈이라
진기한 보물과 값진 재물이 옥부玉府에 넘쳐나고 풍속이 다른 지역의 이민족이 고가藁街에 가득하게 되자, 황제께서는 치하하는 명을 내려 여러 차례 그 충성과 재능을 표창하였고 태사太史는 역사서에 연이어 그 업적을 기록했다.
就加國子祭酒하고三百戶하니라
그리하여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승진되고 무성남武城男에 봉해졌으며, 식읍食邑 300호를 받았다.
凡再하여 至上柱國하고 三增秩至中散大夫
재차 책훈策勳하여 상주국上柱國에 이르고 세 번 승진되어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이르렀다.
某年月薨於位하니 年若干이라
모년 모월 재직 중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약간 년이다.
天子震悼하여 傷辭有加
천자께서 애도하고 상심과 위로의 말씀이 있었다.
明年 其孤某官與宗人號奉裳帷하여 率其家老하고 咨於叔父延唐令某하여 卜宅於潭州某原이라
이듬해에 공의 아들 아무가 종친들과 통곡하며 상여를 모시고 와서 집안 어른들을 인솔하고 숙부 연당령延唐令 아무에게 물어, 담주潭州 아무 언덕에 장지를 정했다.
葬用某月某日하니 人謀皆從하고 龜兆襲吉이라
모월 모일 안장하니,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좋다고 하였고 점괘도 길한 것으로 나왔다.
乃刻玆石하여 著公之閥하여 以志於丘竁하여 以告於幽明이라
이에 이 돌을 새겨 공의 공적을 드러내고 묘지에 부장하여 저승과 이승에 고한다.
銘曰
명문銘文은 다음과 같다.
周限하고
때는 이 국경이더니,
秦開하며
에 와서 백월百粵을 개척하였고,
交州之治
교주交州의 지방장관 머무는 관청,
是設하니
나라 때 비로소 설치했는데,
德大來服하고
덕이 크면 찾아와 복종을 하고,
道消自絶이라
도 없으면 관계가 절로 끊겼지.
伏波南征하니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남쪽을 정벌,
漢威載烈하고
의 위엄 비로소 당당해졌고,
宛陵北附하니
완릉후宛陵侯도황陶璜이 북방에 귀의,
晉政爰發하니
의 정사 마침내 일어났는데,
我唐流澤하여
우리 은 은택을 널리 입히어,
바다 밖 멀리까지 빛이 났다네.
皇帝中興하여
지금 황제 새로이 중흥하시어,
武城授鉞하니
무성武城에게 군대의 전권을 주니,
肅肅武城
엄숙하신 무성남武城男 장공張公께서는,
惟夫之哲이라
장부 중에 뛰어난 인물인지라,
更歷毗贊하여
보좌하는 관직을 역임하면서,
顯揚彰徹이라
그 명성 찬란하게 드러났다네.
旣受休命하여
거룩한 황제의 명 받고 난 뒤에,
秉玆峻節하고
고상한 기풍 절조 고이 지니고,
度其謀猷하며
다스릴 계획 계책 헤아려가며,
守以廉潔이라
바른 도 청렴결백 굳게 지켰네.
厚農薄征하여
농민 대우 후하고 징세는 적어,
도 아니게 적절히 하고,
通商平貨하여
물자를 공평하게 유통시키자,
有來胥悅이라
백성들이 몰려와 기뻐했다네.
踐山跨海하고
산 오르고 바다를 건너다니며,
堅其하며
진영의 방어체제 튼튼히 하고,
制器足兵하여
무기를 제조하고 병사 충원해,
潰玆蟻結이라
개미 무리 도적 떼 무너뜨렸네.
烏蠻屈服하고
오만烏蠻을 무릎 꿇려 복종시키고,
文單剪滅이라
문단文單을 공격하여 전멸시킨 뒤,
柔遠開疆하니
먼 지역 회유하고 강토 넓히자,
會朝天闕이라
사신 보내 조정에 조회 왔다네.
銅柱乃復하고
동주銅柱를 다시 세워 경계 정하고,
環山以硩하니
둘러싼 산도 깎아 길을 다듬자,
海無遘迕하고
바다엔 일으키는 반란이 없고,
寇罔踰越이라
도적들도 경계선 넘지 않았네.
琛賮之獻
귀한 보물 공물로 바치는 일이,
周於하니
황무지 변방까지 이루어지니,
帝嘉成德하고
이룬 덕 황제께서 칭찬하시고,
載旌茂閥하여
마침내는 큰 업적 표창하시어,
增秩策勳하고
벼슬을 올려주고 책훈策勳을 하며,
土封斯裂이라
식읍食邑을 떼어주고 에 봉했네.
지위는 원후元侯까지 도달 못하고,
나이는 대질大耋까지 살지 못하니,
邦人號呼하고
나라 사람 목 놓아 통곡을 하고,
夷裔悽咽이라
변방 백성 서글퍼 오열하였네.
卜葬長沙하여
장사長沙에 장례 치를 터를 잡아서,
連岡啓穴할새
봉우리 연이은 곳 묘혈을 열 제,
書銘薦辭하니
돌에다 명문銘文 새겨 바쳐 올리니,
德音罔缺하리라
좋은 명예 영원히 보전하리라.
唐荊川曰 라하니라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일종의 특별한 격조로 분류할 만한 문장으로 육조체六朝體이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던 元和 6년(811)에 쓴 것이다. 張公은 곧 張舟(?~約810)로, 吳郡 사람이다. 德宗 때의 명재상 張鎰의 친족이다. 元和 원년(805) 4월에 安南經略副使로 安南都護‧本管經略使가 되었다. 4년 8월에 環王國이 安南을 침입했을 때 적군 3만여 명을 물리쳤는데, 이때 코끼리와 무기를 노획하고 王子 59명을 사로잡았다. 5년 7월에 馬總이 후임자로 부임하였다. 《舊唐書 권14 憲宗紀》 《新唐書 권222下 南蠻 下》
역주2 漢光中興 馬援雄絶域之志 : 漢光은 漢나라 光武帝 劉秀(B.C. 6~A.D. 57)를 가리킨다. 南陽 蔡陽 사람으로, 자는 文叔이다. 漢 高祖의 9대손이다. 王莽 말기에 도처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建武 원년(25)에 황제가 되어 도읍을 洛陽에 정했다. 그 뒤에 赤眉軍과 公孫述‧隗囂 등을 차례로 평정하여 전국을 통일하였으며, 각종 정치개혁을 단행해 漢나라를 중흥시켰다. 馬援(B.C. 14~A.D. 49)은 光武帝 때의 명장이다. 扶風 茂陵 사람으로, 자는 文淵이다. 建武 16년(40)에 交趾에서 徵側‧徵貳 자매가 반란을 일으켜 왕으로 자처하자, 이듬해에 光武帝가 馬援을 伏波將軍으로 삼아 가서 토벌하게 하였으며, 馬援이 임무를 완수한 뒤에 銅柱를 세워 변방지역의 경계를 표시하였다. 《後漢書 권1 光武帝紀》 《後漢書 권24 馬援列傳》
역주3 晉武一統 陶璜布殊俗之恩 : 晉武는 곧 司馬炎으로, 晉나라 武帝(236~290)를 가리킨다. 魏 咸熙 2년(265)에 그의 아버지 司馬昭의 뒤를 이어 晉王‧丞相이 되어 曹奐을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호를 晉이라 하고 도성을 洛陽에 정했다. 咸寧 6년(280)에 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하였다. 陶璜은 丹陽 秣陵 사람으로, 자는 世英이다. 처음에 吳나라에서 벼슬하여 蒼梧太守를 지냈다. 晉 武帝 泰始 7년(271)에 交趾가 배반하여 晉나라에 투항하자, 吳나라 장수로 출병하여 진압하고 交州刺史가 되었다. 또 武平‧九德‧新昌 등 변방을 진압하고 武昌都督이 되었다. 晉 武帝가 吳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그를 본직에 복구시키고 宛陵侯에 책봉하였다. 交趾에서 재직한 30년 동안 어진 정사를 펴 치적을 이루었다. 《晉書 권3 武帝紀》 《晉書 권57 陶璜》
역주4 今皇帝載新景命 : 今皇帝는 唐 憲宗 李純(778~820)을 가리키고, 景命은 제왕의 지위를 내려준 하늘의 큰 명으로 왕위를 뜻한다. 永貞 1년(805) 8월에 즉위하였다.
역주5 交趾之理 續於前人 : 交趾는 漢 武帝가 설치한 13개 刺史部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廣東‧廣西 대부분과 越南 承天 이북의 여러 省이 그에 해당된다. 東漢 建安 8년(203)에는 交州라고 불렀다. 唐 武德 4년(621)에 交州總管府를 두었고, 永徽 2년(651)에 安南都督府로 바꿨다가, 至德 2년(757)에 鎭南都護府로 바꿨으며, 大曆 3년(768)에 節度經略使를 두었고, 貞元 6년(790)에 招討處置使로 승격하였다. 이때의 관할구역은 지금의 越南 河內 부근에 국한되었다. 이 구절은 張舟가 漢나라 馬援과 晉나라 陶璜의 뒤를 이어 郊趾를 다스렸다는 것을 말한다.
역주6 紫金魚袋 : 紫는 붉은 관복이고 金魚는 황금으로 장식한 물고기 모양의 부절[魚符]로 3품 이상의 관료에게 해당하고, 袋는 魚符를 넣는 작은 자루이다. 唐나라 제도에 5품 이상의 관료에게 魚符를 허리에 차도록 하였는데, 5품 이상은 은으로 장식하였다. 거기에 성명을 새긴 것은 관직을 그만둘 때 조정에 반납하고 성명을 새기지 않은 것은 후임자에게 물려줬다. 《唐會要 권31 魚袋》
역주7 夷獠 : 고대에 中原에서 서남지역의 소수민족을 부르던 호칭이다.
역주8 制國備刑(形)體之法 : 《周禮》 〈地官 司徒 下〉에 “縣과 鄙를 조성할 때는 지형에 따라 세부 구조를 만드는 법을 따른다.[造縣鄙 形體之法]”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國은 여기서는 ‘지방고을’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形은 지형이고, 體는 마을‧고을‧도랑‧도로 등 세부 구조를 뜻한다.
역주9 五人 : 《周禮》 〈地官 司徒〉에 나오는 遺人‧均人‧調人‧質人‧廛人 등의 관리를 가리킨다. 遺人은 물자를 축적해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제공하는 일을 맡고, 均人은 부역을 공평하게 관리하는 일을 맡고, 調人은 백성의 분규를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일을 맡고, 質人은 시장의 물가를 조정하는 일을 맡고, 廛人은 상점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맡는다. 본디 중앙조정에 배치한 周나라 때의 관직명이지만, 규모가 작은 각 지방 관아에도 각각의 직무를 맡은 관리를 배치하였다.
역주10 庚癸之呼 : 春秋 때 吳王 夫差가 晉‧魯 등의 군주와 회합한 자리에서 吳의 대부 申叔儀가 魯의 대부 公孫有山氏에게 식량을 빌려달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좁쌀은 없지만 잡곡은 있습니다. 만약 首山으로 올라가 ‘庚癸야!’라고 외치면 대답할 것입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군영에 식량이 바닥났기 때문에 隱語를 사용해 식량을 달라고 한 것이다. 干支의 天干에서 庚은 서방으로 곡식을 상징하고, 癸는 북방으로 물을 상징한다. 《春秋左氏傳 哀公 13년》
역주11 戊己之位 : 戊己는 戊己校尉의 약칭으로, 漢나라 때 西域의 屯田 사무를 관장한 관명이다. 天干에서 甲‧乙‧丙‧丁‧庚‧辛‧壬‧癸는 모두 정해진 방위가 있으나, 戊‧己는 중앙의 土로서 각 방위에 붙어 있기 때문에 여러 지역, 특히 西域의 각 지역을 총괄하는 校尉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후대에는 일반적으로 변방의 군대를 통솔하는 長官을 가리킨다. 《漢書 권19上 百官公卿表 顔師古 注》
역주12 文單環王 : 文單은 지금의 캄보디아 지역으로, 陸眞擸‧婆鏤라고도 한다. 環王은 文單國의 왕을 말한다. 環王은 林邑이라 불리는 나라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 구절에 나오는 酋帥의 대칭으로서 文單國의 왕을 가리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역주13 : 토지면적의 단위로, 사방 천 리이다.
역주14 烏蠻 : 지금의 雲南과 四川 남부, 貴州 서부에 분포해 있던 소수민족이다.
역주15 皮(弁)[卉] : 저본에는 ‘卉’가 ‘弁’으로 되어 있으나, 《文苑英華》에 ‘弁’이 ‘卉’로 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皮는 皮服으로 짐승 갖옷이고, 卉는 卉服으로 풀로 만든 옷이다. 중국 남방 미개인의 복장이다.
역주16 連烏 : 남방의 산 이름인 듯하다.
역주17 沃日之大 : 沃日은 晉나라 木華의 〈海賦〉에 “수평선에서는 구름이 피어나고 찬란한 태양은 물결 위에 일렁인다.[蕩雲沃日]”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큰 바다를 뜻한다.
역주18 疆埸之制……而不可常 : 《春秋左氏傳》 昭公 元年에 “국경의 城邑은 어떤 때는 이 나라로 붙었다가 어떤 때는 저 나라로 붙곤 하니, 무슨 일정한 기준이 있겠는가.[疆埸之邑 一彼一此 何常之有]”라고 한 데서 나온 구절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邑을 ‘기준, 원칙’을 의미하는 ‘制’자로 바꾸어 변방 국경의 경계선이 분명치 않아 변동이 많다는 뜻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역주19 玉府 : 보물을 보관하는 관청을 가리킨다.
역주20 藁街 : 漢나라 때 長安에 있던 건물로, 외국과 변방 소수민족의 관원이 도성에 왔을 때 묵던 집이다.
역주21 武城男 : 武城縣開國男의 약칭이다.
역주22 食邑 : 卿大夫의 封地이다. 그곳의 조세를 거두어 먹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역주23 策勳 : 업적을 서책에 기록하고 그 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역주24 荊衡 : 荊山과 衡山이다. 荊山은 湖北 南漳縣 서쪽에 있고, 衡山은 五岳 가운데 하나인 南岳으로 湖南省에 있다.
역주25 百粤 : 百越과 같다. 五嶺 이남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26 炎劉 : 劉邦이 세운 漢 왕조를 가리킨다. 漢나라는 오행에서 火에 속하고 火는 곧 炎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27 光於有截 : 有截은 《詩經》 〈商頌 長發〉에 “바다 밖 멀리까지 정연해졌네.[海外有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곧 바다 밖까지 唐나라의 은택이 미쳐 잘 다스려짐으로써 빛이 났다는 뜻을 요약해 쓴 것이다.
역주28 匪貊匪桀 : 백성에게 조세를 적정하게 부과했다는 말이다. 《孟子》 〈告子 下〉에 “堯舜의 도보다 가볍게 하려고 하는 자는 大貊에 小貊이고, 堯舜의 도보다 무겁게 하려고 하는 자는 大桀에 小桀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할 때 소득의 10분의 1을 부과하는 것은 堯舜의 도로써 매우 이상적인 비율이다. 따라서 孟子가, 그 비율이 이보다 많으면 폭군인 桀의 부류이고, 비율이 이보다 적으면 국가 운영에 돈을 거의 쓸 일이 없는 貊國의 부류이므로, 모두 옳지 않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역주29 鶴列 : 하늘을 날아가는 학의 대오로, 대오를 형성한 군대를 비유한 말이다.
역주30 窮髮 : 본디 워낙 추워 풀이 자라지 않는 먼 북방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저 먼 변방의 뜻으로 쓴 것이다.
역주31 位厄元侯 : 元侯는 제후의 5등급 작위 가운데 서열이 가장 높은 公의 지위에 있는 제후를 가리킨다. 張舟의 작위는 開國男으로, 男爵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역주32 年虧大耋 : 耋은 80세, 혹은 70세의 나이를 말하는 것으로, 大耋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張舟가 그만큼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주33 備一格六朝體 : 六朝體는 晉‧宋‧齊‧梁‧陳‧隋 시대에 유행하던 문체이다. 이 시기의 문장은 오로지 騈儷, 곧 대구를 맞추고 수사적인 어휘를 강구하며, 聲韻을 중시하여 형식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다. 작자는 韓愈와 함께 六朝體의 격식을 탈피하자 하여 古文運動을 창도하였는데, 이 작품은 예외적으로 六朝體로 썼다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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