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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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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이윤伊尹이 다섯 번이나 에게 찾아간 일에 관한 찬문贊文
尹之五就桀處 尹知之 吾不能言之
이윤伊尹이 다섯 번 에게 찾아갔던 이유는 이윤伊尹 본인만 아는 것으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然而子厚揣摩하니 亦綽有入思緻處
하지만 유자후柳子厚는 이리저리 따져보았으니, 사색을 치밀하게 한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伊尹五就桀 或疑曰
이윤伊尹하걸夏桀에게 다섯 번이나 찾아갔던 일에 대해 어떤 사람이 의문을 품어 말하였다.
之仁 聞且見矣 桀之不仁 聞且見矣어늘
이 어질다는 것은 세상 사람이 다 보고 들어 알고, 하걸夏桀이 어질지 않다는 것도 세상 사람이 모두 보고 들어 아는 사실이다.
夫胡去就之亟也오하여늘
그런데 어찌하여 이윤伊尹은 그처럼 자주 을 떠나 하걸夏桀을 찾아갔단 말인가?”
柳子曰
이에 유자柳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是吾所以見伊尹之大者也
“아, 그 점이 곧 내가 이윤伊尹을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는 부분이다.
彼伊尹 聖人也
이윤伊尹성인聖人이다.
聖人出於天下하여 不夏商其心하고 心乎生民而已
성인聖人은 천하를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단순하게 그저 나라 혹은 나라를 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천하 백성에게 마음이 있을 뿐이다.
曰 孰能由吾言
이윤伊尹이 일찍이 말하기를 ‘어떤 군주가 내 말을 따를 것인가?
由吾言者爲堯舜하고 而吾生人堯舜人矣라하고
내 말을 따른다면 같은 성군이 될 것이고, 천하 백성들은 시대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고,
退而思曰 湯誠仁이라 其功遲하고 桀誠不仁이나 朝吾從而暮及於天下可也라하여 於是就桀이라
자기 처소로 물러나 여러 모로 생각한 뒤에 말하기를 ‘은 분명히 어진 군주이지만 〈그의 세력이 크지 않아 내가 그를 보좌하더라도〉 거두는 효과가 비교적 더딜 것이고, 하걸夏桀은 분명히 어질지 못한 군주이지만 〈 왕조의 판도가 크니〉 만약 어느 날 아침 내가 그를 설복시켜 그가 나의 정치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날 저녁에 그 영향력이 천하에 미칠 것이다.’라고 하며, 에게로 달려갔다.
桀果不可得일새 反而從湯하니라
그러나 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그저 또 에게로 돌아왔다.
旣而又思曰 尙可十一乎
이윤伊尹은 재삼 헤아려본 뒤에 말하기를 ‘그래도 열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使斯人蚤被其澤也리라하여 又往就桀하니라
천하 백성들에게 빨리 그 은택을 입게 하자.’ 하고, 다시 하걸夏桀에게 찾아갔다.
桀不可 而又從湯하니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또다시 에게 돌아왔다.
以至於百一千一萬一토록
이윤伊尹이 모두 다섯 번이나 하걸夏桀에게 달려간 것은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혹시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그는 쉽사리 그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卒不可할새
그러나 끝내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乃相湯伐桀하여
그래서 이윤伊尹은 마음을 정하고 을 보좌하여 군대를 동원해 하걸夏桀을 정벌하였다.
俾湯爲堯舜하고 而人爲堯舜之人하니
그리하여 상탕商湯으로 하여금 처럼 되게 하였고, 천하 백성들을 시대의 백성이 되게 하였다.
是吾所以見伊尹之大者也니라
이 점이 내가 이윤伊尹을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는 부분이다.
仁至於湯矣로되 四去之하고 不仁至於桀矣로되 五就之하니
이윤伊尹은 지극히 어진 에 대해 네 번 그의 곁을 떠났고, 어질지 못한 하걸夏桀에 대해 다섯 번이나 그에게로 달려갔다.
大人之欲速其功如此
이를 통해 위대한 인물이 공을 빨리 이루기 위해 이처럼 행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不然이면 湯桀之辨 一恒人盡之矣리니 又奚以憧憧聖人之足觀乎
중에 누가 어질고 누가 어질지 않은가를 구분하는 일은 보통 사람도 모두 할 수 있는데, 성인聖人이윤伊尹이 무엇 때문에 그런 줄을 몰라 그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겠는가.
吾觀聖人之急生人 莫若伊尹하고 伊尹之大 莫若於五就桀이니라
내가 본 바로는, 성인聖人 중에 백성에게 은혜 베풀기를 다급하게 여긴 사람은 이윤伊尹보다 더한 이가 없고, 이윤伊尹의 위대한 점은 에게 다섯 번이나 달려가 〈의 임용을 얻어내려고 한 일보다〉 더한 것이 없다.”
作伊尹五就桀贊하니라
이에 느낀 점이 있어 〈이윤오취걸찬伊尹五就桀贊〉을 지었다.
聖有伊尹하니
성인聖人 중에 한 사람 이윤伊尹이 있어,
思德於民이라
백성에게 은덕을 베풀기 위해,
往歸湯之仁하니
어진 군주 성탕成湯을 찾아갔었네.
曰仁則仁矣
성탕成湯은 어진 덕을 지녔다지만,
非久不親이라
기간 짧아 백성과 친하지 않아,
退思其速之道하니
물러나 빠른 길을 생각해보니,
宜夏是因이라
하걸夏桀을 따르는 게 마땅하였네.
就焉不可할새
그래 찾아갔으나 뜻 못 이루고,
復反이라
다시 또 박읍亳邑으로 돌아왔다네.
猶不忍其遲하여
그래도 더딘 것을 참지 못하여,
亟往以觀하니
서둘러 찾아가 의중 살피니,
庶狂作聖이면
미친 자도 깨달아 성군이 되면,
一日勝殘이라
잔악함을 그날로 고치는 거라,
至千萬冀一이나
천이나 만에 하나 기대했건만,
卒無其端이라
끝내 결국 그 낌새 볼 수 없었네.
五往不疲하여
다섯 번을 연이어 찾아간 뒤에,
其心乃安이라
그 마음이 비로소 가라앉았네.
遂升自陑하여
마침내 이산陑山에서 출정해서는,
하걸夏桀을 정벌하고 을 받드니,
遺民以完이라
이로 인해 유민遺民들 무사해졌네.
大人無形하여
대인大人 행위 일정한 형적이 없고,
與道爲偶
도리와 더불어서 짝을 이루지.
道之爲大
도리란 무엇보다 위대하기에,
爲人父母
그것을 실현한 자 백성 부모라.
大矣伊尹이여
위대하다 그 인물 이윤伊尹이시여,
惟聖之首
여러 성인聖人 중에서 으뜸이시니,
旣得其仁하고
이미 어진 군주를 만나시고도,
猶病其久
정사 기간 짧다고 탓하였다네.
恒人所疑
일반인은 누구나 의문 품지만,
我之所大
나는야 위대하게 여기는 바네.
嗚呼遠哉
아, 그 시대 우리와 워낙 멀지만,
志以爲誨
기록하여 가르침 삼을까 하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을 당시 쓴 작품이다. 伊尹은 본디 有莘氏의 딸이 湯에게 시집올 때 따라왔던 노복이었는데, 뒤에 湯을 보좌하여 夏桀을 멸망시키고 商 왕조를 세웠으며 국정을 맡아 태평한 세상을 이룩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湯이 세상을 떠난 뒤에 湯의 손자 太甲을 천자로 즉위시키고 계속 국정을 보좌하였다.
《孟子》 〈告子 下〉에 “다섯 번 商에게 찾아가고 다섯 번 桀에게 찾아간 사람은 伊尹이다.” 하였는데, 작자는 오로지 천하를 구제할 일념으로 폭군 밑에서 벼슬하는 것조차 감수하려 했던 伊尹의 행동에 공감하여 찬양하는 뜻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이다. 작자는 伊尹이 폭군인 桀을 다섯 번이나 찾아간 이유는 그 당시 桀이 湯보다 세력이 큰 천자였으므로 桀이 자기를 등용해주면 쉽게 공을 세워 도탄에 허덕이는 천하 백성을 빨리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贊은 문체의 하나로, 어떤 인물이나 일을 칭송하는 문장이다. 산문체로 짓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四言으로 된 韻文이 많다. 앞 부분에 서문을 두어 그 글을 짓게 된 경위를 서술하기도 하는데, 이 문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역주2 : 成湯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름은 履이다. 商族의 수령이었다. 伊尹을 임용하여 선정을 베풀면서 葛ㆍ韋ㆍ顧ㆍ昆吾 등 부족국가를 잇달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에 夏桀을 멸망시키고 商나라를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지금의 河南 商丘 일대인 亳에 도읍하였다가 뒤에 지금의 河南 偃師縣인 西亳으로 옮겼다.
역주3 亳殷 : 亳은 商나라 개국시조인 湯이 도읍으로 정한 곳이고, 殷은 商나라 제20대 왕인 盤庚이 새로 옮긴 도읍의 이름이다. 商나라가 도읍을 殷으로 옮긴 뒤에 국명을 殷이라 불렀다. 여기서 ‘亳殷’이라 한 것은 운자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는 ‘殷’은 포함되지 않고 ‘亳’만을 가리킨다.
역주4 遂升自陑 黜桀尊湯 : 《尙書》 〈湯誓〉에 “伊尹이 湯을 도와 桀을 정벌할 적에 陑山에서 출정 길에 올라 마침내 桀과 鳴條 들판에서 싸웠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孔安國의 주에 “桀의 도읍은 安邑에 있고 陑山은 河曲의 남쪽, 安邑의 서쪽에 있다. 湯이 亳邑에서 安邑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陑山에서 출정하여 상대방의 허를 찔렀던 것이다.” 하였다. 陑山은 河東縣의 雷首山의 옛 이름이라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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