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曰 冉氏嘗居也라 故姓是溪曰冉溪라하고 或曰 可以染也일새
今余家是溪하되 而名莫能定하고 土之居者猶齗齗然하니 不可以不更也라
愚溪之上에 買小丘爲愚丘하고 自愚丘東北行六十步하여 得泉焉하여 又買居之하니 爲愚泉이라
遂負土累石塞其隘하여 爲愚池하고 愚池之東은 爲愚堂이요 其南爲愚亭이며 池之中爲愚島하니라
嘉木異石錯置하여 皆山水之奇者어늘 以余故咸以愚辱焉하니라
蓋其流甚下하여 不可以灌漑요 又峻急多坻石하여 大舟不可入也며
無以利世하여 而適類於余하니 然則雖辱而愚之라도 可也니라
는 智而爲愚者也
요 는 睿而爲愚者也
니 皆不得爲眞愚
라
溪雖莫利於世
나 而
하여 能使愚者喜笑眷慕
하고 樂而不能去也
하나니
余雖不合於俗이나 亦頗以文墨自慰하니 漱滌萬物하며 牢籠百態하여 而無所避之라
以
歌愚溪
면 則茫然而不違
하고 昏然而同歸
하여 超
하고 混
하여 寂寥而莫我知也
리라
자후子厚의 문집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관수灌水의 북쪽에 시내가 있는데 이 시내가 동쪽으로 흘러 소수瀟水로 들어간다.
혹자는 말하기를 “염씨冉氏가 일찍이 이곳에 거주하였으므로 이 시내에 그 성을 붙여 염계冉溪라 한다.” 하고, 혹자는 “이 물로 염색染色을 할 수가 있다.
그 기능을 가지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염계染溪라 한다.” 하였다.
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죄를 범하여 소수瀟水 가로 폄적貶謫되었다.
나는 이 시내를 사랑하여 2, 3리를 더 들어가 경치가 특별히 좋은 곳을 찾아서 거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시냇가에 거주하면서도 이름을 확정하지 못하였고, 이 고장에 사는 자들 또한 〈시내 이름에 대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이름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계愚溪의 위쪽에 작은 언덕을 사서 우구愚丘를 만들고, 우구愚丘로부터 동북쪽으로 60보를 가서 샘물을 얻었기에 또 이곳을 사들여 우천愚泉이라 이름하였다.
우천愚泉은 샘구멍이 모두 여섯 개로 모두 산 아래 평지에 있으니, 이 물은 분명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샘물이 합류하여 구불구불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이곳을 우구愚溝라 불렀다.
마침내 흙을 져오고 돌을 쌓아 그 좁은 곳을 막아 우지愚池를 만들었으며, 우지愚池의 동쪽에는 우당愚堂을 세우고, 그 남쪽에는 우정愚亭을 세우는가 하면, 못 중앙에는 우도愚島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수목樹木과 기이한 돌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어 모두 보기 드문 산수의 경물인데, 나로 인해 모두 ‘우愚’라는 이름자로 모욕을 당하게 되었다.
물은 지혜로운 자가 좋아하는 것인데, 지금 이 시내만 유독 ‘우愚’라는 이름으로 모욕을 당했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이 시내는 그 수위水位가 매우 낮아서 관개灌漑에 이용할 수 없고, 또 흐름이 빠른데다가 도처에 솟아나온 돌이 많아 큰 배가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지역이 외지고 물길이 좁고 얕아서 교룡이 눈 안에 들지 않음으로써 이 물을 이용해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만들지 못한다.
이 시내는 이처럼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하여 마침 나와 비슷하니, 그렇다면 비록 모욕하여 그를 어리석다 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영무자甯武子가 나라가 도道가 없으면 어리석었던 것은 지혜로우면서 어리석음을 위장한 자이고, 안자顔子가 종일토록 상반된 의견을 제기하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과 같았던 것은 이 또한 밝으면서 어리석음을 위장한 자이니, 이들은 모두 진정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나는 태평한 세상을 만났으면서도 〈나의 언행言行이〉 도리를 어기고 일을 잘못 처리하였으므로 이 세상에 나만큼 어리석은 자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시내를 차지하기 위해〉 세상 사람 중에 나와 서로 다툴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 오직 나만이 이 시내를 독차지하여 어리석다는 글자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내가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기능은 만물의 형상을 잘 비추고, 본질은 맑고 밝고 투명하며, 흘러 내려가는 소리는 종鍾과 석경石磬처럼 곱고 낭랑하여, 능히 나처럼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기뻐서 웃고 사모하게 하고, 즐거워 떠나가지 못하게 한다.
내 비록 세속에 적응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문장을 지어 나 자신을 위로하니, 각종 사물의 때를 헹궈내고 천태만상千態萬象을 포착하여 기피하는 일이 없다.
나의 어리석은 말로 우계愚溪를 노래한다면 〈서로의 구분이〉 모호하여 어긋나지 않고 혼연히 한 덩어리가 되어서는 자연의 원기元氣를 초월하고 아무런 인식이 없는 경지와 융합함으로써, 공허하고 적막하여 더 이상 나 자신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나는 〈팔우시八愚詩〉를 지어 시냇가의 돌 위에 새겼다.
돌연 새로운 격식을 창출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마치 그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