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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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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逸調
太史公嘗言 世之學孔氏者 則黜老子하고 學老子者 則黜孔氏하니 라하되
余觀老子 亦孔氏之異流也 不得以相抗이어든 又況之說 其迭相訾毁하니 牴牾而不合者 可勝言耶
然皆有以佐世
太史公沒하고 其後有釋氏하니 固學者之所怪駭舛逆其尤者也니라
今有河南元生者하니 其人閎曠而質直하여 物無以挫其志하고 其爲學恢博而貫統하여 數無以躓其道
悉取向之所以異者하여 通而同之하여 搜擇融液하여 與道大適하며
咸伸其所長하고 而黜其奇衺하니 要之與孔子同道하여 皆有以會其趨
而其器足以守之하고 其氣足以行之하여
不以是道求合於世하고 常有意乎古之하니라
及至是邦하여 以余道窮多憂하되 而嘗好이라하여 留三旬有六日하여 陳其大方하여 勤以爲諭하니
余始得其爲人이라
今又將去余而南하여하여하고하여하고 以臨大海하니
則吾未知其還也
黃鵠一去 靑冥無極하리니 安得不하여 以寄聲於寥廓耶


10.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산인山人 원십팔元十八을 송별하는 서문
속기俗氣를 초탈한 문장이다.
태사공太史公이 일찍이 말하기를 “세상에서 공자孔子를 배우는 사람은 노자老子를 배척하고 노자老子를 배우는 사람은 공자孔子를 배척하니, 이는 가 같지 않아서 서로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살펴보니, 노자老子공자孔子와 전혀 다른 부류여서 서로 겨룰 수 없는데 하물며 양주楊朱묵적墨翟신불해申不害상앙商鞅형명刑名종횡縱橫 등의 학설이 서로 번갈아가며 헐뜯으니, 모순되어 합치되지 않는 정도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태사공太史公이 죽고 그 뒤에 불교佛敎가 나왔는데, 이것은 참으로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보이고 비위에 거슬리는 대상이었다.
지금 하남河南 원생元生이란 자가 있는데 사람됨이 활달하고 정직하여 사물이 그의 뜻을 좌절시킬 수 없고, 그의 학문은 해박하면서도 조리가 있어 운명이 그 도를 넘어뜨릴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각기 다른 학설들을 남김없이 취해 그 논리를 알고 똑같이 취급하여, 서로 다른 것을 가려내고 같은 것을 융합하여 와 대체적으로 어울리게 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학설에 대해〉 그 장점은 드러내고 바르지 못한 점은 배척하였으니, 요컨대 공자孔子와 도가 동일해져서 모두 그 취지에 맞게 할 수 있었다.
그 재능은 족히 그것을 지킬 수 있었고, 그 기운은 족히 그것을 행할 수 있었다.
이 도를 가지고 세상에 부합되기를 구하지 않았고 항상 옛사람이 유약한 태도로 처세했던 것에 뜻을 두었다.
그는 이 지방에 이르러 내가 앞길이 막혀 근심이 많은데도 언제나 사문斯文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36일간 머물면서 그의 대도大道를 나에게 설명하고 부지런히 깨우쳐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비로소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또 나를 떠나 남으로 가서 영도營道를 지나 구의산九疑山을 둘러보고 나수灕水를 따라 내려가 남월南越 땅 끝까지 가서 큰 바다에 다다르려고 한다.
그러니 나는 그가 언제 돌아올는지 모른다.
황곡黃鵠이 한번 길을 나서면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니, 어찌 풍륭豐隆에게 의지하고 비렴蜚廉에게 호소하여 〈날아가면서〉 광활한 하늘에 낭랑한 울음소리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送元十八山人南遊序 : 元十八은 元集虛를 가리킨다. 어릴 적에 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儒‧佛‧仙 三敎를 두루 알았으며, 協律郞을 지냈다. 廬山에 자리 잡고 살다가 憲宗 元和 9년(814)에 남쪽 桂州로 여행을 가던 길에 永州에 들러 작자를 만나 36일 동안 함께 지내다가 떠났다. 이때 작자가 이 서문을 통해 각 학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고 아울러 元集虛가 각 학파의 학설을 융합하여 그 장점은 취하고 바르지 않은 것은 배척하는 학문정신을 칭찬하였다. 말미에 자기가 元集虛와 함께 지내게 된 이유를 말하고 남으로 떠나는 그의 앞길을 축복해줬다. 山人은 벼슬하지 않고 산중에 은거한 사람이란 뜻이다. 元集虛는 桂州를 여행한 뒤에 다시 廬山으로 돌아가 五老峯 밑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白居易와 수시로 어울리고 韓愈와도 시를 지어 주고받았다.
역주2 道不同不相爲謀 : 《史記》 〈老子韓非列傳〉에는 이 구절 뒤에 ‘豈謂是邪’가 있다. 이 구절을 연결하면 “……‘도가 같지 않아서 서로 도모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번역하여야 하나, 여기서는 생략된 저본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3 楊墨申商 : 모두 戰國 때 사상가들이다. 楊은 楊朱로, 楊子‧陽生‧陽子居라 부르기도 한다. 老子에게 도를 배워 철저하게 자기 일신의 안녕만 추구하였으므로 孟子가 “〈몸에 난〉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는다.”고 비평하였다. 墨은 墨翟으로, 宋나라 公族 目夷氏의 후손이다. 박애주의를 추구하는 墨家사상의 창시자이다. 申은 申不害로, 15년 동안 韓 昭侯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그의 사상은 黃老에 근간을 두고 刑名, 곧 法治를 주장하였는데, 무엇보다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는 ‘術’을 중시하였다. 商은 商鞅으로, 衛鞅‧公孫鞅이라고도 한다. 秦 孝公 밑에서 法制‧田制‧稅制 등을 크게 개혁하여 秦나라를 융성시켰다.
역주4 刑名縱橫 : 刑名은 法家의 별칭이다. 春秋 때 管仲‧子産에게서 기원하여, 戰國 때 李悝‧商鞅‧申不害‧愼到 등에 의해 발전하였고, 戰國 말 韓非가 집대성하였다. 法治로 禮治를 대체할 것을 주장하고 귀족의 특권을 반대하여 신흥 지주계급의 이익을 대표하였다. 縱橫은 縱橫家로, 戰國 때에 燕‧齊‧楚‧韓‧魏‧趙 등 여섯 나라가 縱的으로 연합하여 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合縱策을 주장하던 說客과, 秦나라가 여섯 나라와 橫的으로 화평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連橫策을 주장하던 說客을 가리킨다.
역주5 守雌 : 《老子》 제28장에 “雄性이 강한 것을 알아 〈추구하는 것보다는〉 雌性의 유약함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수용하는〉 천하의 계곡이 된다.[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역주6 斯文 : 《論語》 〈子罕〉에 “하늘이 장차 이 文[斯文]을 없애려고 했다면 뒤에 죽는 내가 이 文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본디 禮樂敎化와 典章制度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孔子의 도를 중심으로 한 儒學을 가리킨다.
역주7 營道 : 縣 이름으로, 唐나라 때 道州의 관아 소재지이다. 지금의 湖南 道縣 일대이다.
역주8 九疑 : 九疑山을 가리킨다. 蒼梧山이라도 부르며, 지금의 湖南 寧遠縣 남쪽에 있다.
역주9 灕水 : 灕江, 혹은 桂江이라 부르기도 한다. 근원이 廣西省 興安縣 陽海山에서 나와 湘水와 합류한 뒤에, 湘水는 동북쪽으로 흘러 洞庭湖로 들어가고, 灕水는 서남쪽으로 흘러 桂林으로 들어간다.
역주10 南越 : 南粵로 표기하기도 한다. 지금의 廣東‧廣西 지역이다. 秦始皇이 南越 지역을 취하여 桂林‧南海‧象郡을 두었다.
역주11 馮豐隆 愬蜚廉 : 豐隆은 신화에 나오는 구름의 신이고, 蜚廉은 飛廉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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