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史公嘗言 世之學孔氏者
는 則黜老子
하고 學老子者
는 則黜孔氏
하니 라하되
余觀老子
는 亦孔氏之異流也
라 不得以相抗
이어든 又況
之說
은 其迭相訾毁
하니 牴牾而不合者
를 可勝言耶
아
太史公沒하고 其後有釋氏하니 固學者之所怪駭舛逆其尤者也니라
今有河南元生者하니 其人閎曠而質直하여 物無以挫其志하고 其爲學恢博而貫統하여 數無以躓其道라
悉取向之所以異者하여 通而同之하여 搜擇融液하여 與道大適하며
咸伸其所長하고 而黜其奇衺하니 要之與孔子同道하여 皆有以會其趨라
及至是邦
하여 以余道窮多憂
하되 而嘗好
이라하여 留三旬有六日
하여 陳其大方
하여 勤以爲諭
하니
今又將去余而南
하여 歷
하여 觀
하고 下
하여 窮
하고 以臨大海
하니
黃鵠一去
에 靑冥無極
하리니 安得不
하여 以寄聲於寥廓耶
아
10.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산인山人 원십팔元十八을 송별하는 서문
태사공太史公이 일찍이 말하기를 “세상에서 공자孔子를 배우는 사람은 노자老子를 배척하고 노자老子를 배우는 사람은 공자孔子를 배척하니, 이는 도道가 같지 않아서 서로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살펴보니, 노자老子도 공자孔子와 전혀 다른 부류여서 서로 겨룰 수 없는데 하물며 양주楊朱‧묵적墨翟‧신불해申不害‧상앙商鞅‧형명刑名‧종횡縱橫 등의 학설이 서로 번갈아가며 헐뜯으니, 모순되어 합치되지 않는 정도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태사공太史公이 죽고 그 뒤에 불교佛敎가 나왔는데, 이것은 참으로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보이고 비위에 거슬리는 대상이었다.
지금 하남河南 원생元生이란 자가 있는데 사람됨이 활달하고 정직하여 사물이 그의 뜻을 좌절시킬 수 없고, 그의 학문은 해박하면서도 조리가 있어 운명이 그 도를 넘어뜨릴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각기 다른 학설들을 남김없이 취해 그 논리를 알고 똑같이 취급하여, 서로 다른 것을 가려내고 같은 것을 융합하여 도道와 대체적으로 어울리게 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학설에 대해〉 그 장점은 드러내고 바르지 못한 점은 배척하였으니, 요컨대 공자孔子와 도가 동일해져서 모두 그 취지에 맞게 할 수 있었다.
그 재능은 족히 그것을 지킬 수 있었고, 그 기운은 족히 그것을 행할 수 있었다.
이 도를 가지고 세상에 부합되기를 구하지 않았고 항상 옛사람이 유약한 태도로 처세했던 것에 뜻을 두었다.
그는 이 지방에 이르러 내가 앞길이 막혀 근심이 많은데도 언제나 사문斯文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36일간 머물면서 그의 대도大道를 나에게 설명하고 부지런히 깨우쳐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비로소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또 나를 떠나 남으로 가서 영도營道를 지나 구의산九疑山을 둘러보고 나수灕水를 따라 내려가 남월南越 땅 끝까지 가서 큰 바다에 다다르려고 한다.
황곡黃鵠이 한번 길을 나서면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니, 어찌 풍륭豐隆에게 의지하고 비렴蜚廉에게 호소하여 〈날아가면서〉 광활한 하늘에 낭랑한 울음소리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