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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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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어부漁夫지백智伯과 대화하는 상황을 가정해 쓴 글
諷貪得而招敵者하고 而文亦極力摹寫
이득을 탐닉하여 적을 불러들인 자를 풍자하였고, 문장 내용도 온 힘을 다해 그 정황을 묘사하였다.
智氏旣滅 志益大하여 合韓魏圍趙하고 이라
지백智伯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를 섬멸한 뒤에 야심이 더욱 커져 한강자韓康子위환자魏桓子와 연합하여 진양晉陽에서 조양자趙襄子를 포위하고 진양성晉陽城 안으로 강물을 흘려보냈다.
智伯瑤乘舟以臨趙하고 且又往來觀水之所自하여 務速取焉하니라
지백요智伯瑤는 배를 타고 높은 갑판 위에서 조양자趙襄子의 사정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또 이리저리 오가며 강물이 흘러드는 위치를 살펴보면서 빨리 승리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群漁者有一人坐漁하니
물가에 한 무리의 어부漁夫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앉아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智伯怪之하여 問焉이라
지백智伯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曰 若漁幾何오하니
“너는 얼마 동안이나 고기를 잡았느냐?”
어부가 대답했다.
臣始漁於河中하고 漁於海라가
“신이 처음에는 황하黃河에서도 잡았고 근래에는 바다에서 잡았습니다.
今主大玆水할새 臣是以來로라
지금 주군께서 이곳에 큰 물을 조성하셨다 하기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지백智伯이 다시 물었다.
若之漁何如오하니
“이전에 네가 잡은 고기들은 어떤 고기였느냐?”
그러자 어부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臣幼而好漁
“신은 어려서부터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始臣之漁於河 有魦鱮鱣鰋者하니 不能自食하고 以好臣之餌하여 日收者百焉이나
처음에 신이 황하黃河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모래무지‧연어‧드렁허리‧메기를 잡았는데, 이놈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고 신의 낚시에 매달린 미끼를 좋아하였기에 하루에도 백여 마리를 잡았습니다.
臣以爲小
하지만 신은 이 고기들이 너무 하찮다고 생각되었습니다.
去而之之下하여 伺大鮪焉이라
그래서 황하黃河를 떠나 용문龍門 밑으로 가서 큰 철갑상어를 기다렸습니다.
夫鮪之來也 從魴鯉數萬하니 垂涎流沫 後者得食焉이라
큰 철갑상어가 올라올 때는 수만 마리의 방어와 잉어가 그 뒤를 따르는데, 큰 철갑상어가 지쳐서 침을 흘리고 거품을 내뿜으면 뒤따르는 놈들이 그 침과 거품을 먹습니다.
然其饑也에는 亦返呑其後
그러나 큰 철갑상어가 배가 고프면 거꾸로 뒤따르는 작은 놈들을 삼켜버립니다.
愈肆其力하여 逆流而上하여 慕爲이라
그런 다음 다시 온 힘을 다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及夫抵大石하고 亂飛濤하여는 折鰭禿翼하여 顚倒頓踣하고 順流而下 宛委冒懵하여 環坻溆而不能出하니
그러다가 큰 암벽에 부딪히고 허공에서 거센 물살이 내리치면 등지느러미가 부러지고 양 옆의 지느러미도 깎여나가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왼쪽으로 쓰러지면서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내려오는데, 기운은 빠지고 정신도 몽롱하여 물속의 작은 언덕 주위를 맴돌면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嚮之從魚之大者 幸而啄食之하고 臣亦徒手得焉이나
그러면 앞서 큰 철갑상어의 뒤를 따르던 작은 고기들은 행운이라 여기면서 그놈을 뜯어먹고 신 또한 맨손으로 그놈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猶以爲小
하지만 오히려 이놈도 하찮다고 생각되었습니다.
聞古之漁有하니 其得益大
그러다가 옛날 어부 중에 임공자任公子라는 자가 더 큰 것을 잡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於是去而之海上하여 北浮於하여 求大鯨焉이라
그래서 용문龍門을 떠나 바닷가로 가서는 북으로 갈석산碣石山까지 떠다니며 큰 고래를 잡을 생각을 했습니다.
臣之具未及施 見大鯨驅群蛟逐肥魚於之尾하니
그런데 신이 고래를 잡을 도구를 미처 설치하기 전에 큰 고래가 상어 떼를 몰아 발해渤澥의 해안에서 살진 고기를 뒤쫓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震動大海하고 簸掉巨島하여 一啜而食若舟者數十이라
큰 고래가 바다를 진동시키고 큰 섬을 흔들어대면서 배만큼 큰 고기 수십 마리를 한입에 삼켰습니다.
勇而未已하여 貪而不能止라가 北蹙於碣石하여 槁焉이라
그 뒤에도 그놈은 용맹이 줄어들지 않고 탐욕이 멈추지 않더니 결국에는 북쪽 갈석산碣石山에서 난관에 부딪혀 말라죽어버렸습니다.
嚮之以爲食者 反相與食之하고 臣亦徒手得焉이나
그러자 앞서 이놈의 먹이가 되었던 작은 고기들이 반대로 달려들어 이놈을 먹었고 신 또한 맨손으로 이놈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猶以爲小
하지만 오히려 이놈도 하찮다고 생각되었습니다.
聞古之漁有하니 其得益大하여 釣而得文王이라하니
그러다가 또 옛날 어부 중에 강태공姜太公이라는 자가 더 큰 것을 잡아 문왕文王을 낚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於是舍而來로라
그래서 발해渤澥를 떠나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智伯曰
지백智伯이 말했다.
今若遇我也如何오하니
“지금 너는 나를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느냐?”
漁者曰
어부가 대답했다.
嚮者臣已言其端矣
“방금 전에 신이 이미 그 단초를 말했습니다.
始晉之侈家 若 以貪晉國之利而不見其害
지난날 나라의 대가大家난씨欒氏기씨祁氏각씨卻氏양설씨羊舌氏 등 십여 집안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자신을 보존하지 못한 이유는 나라에서 얻는 이익만 탐내고 그 속에 잠재한 해로운 점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니 是無異魦鱮鱣鰋也
주군과 오경五卿이 그들을 찢어 나누어 먹었으니, 그들은 모래무지‧연어‧잉어‧메기와 다를 게 없습니다.
腦流骨腐於主之故鼎하니
주군의 옛 솥 안에서 그들의 뇌가 터져 흐르고 뼈가 썩었습니다.
可以懲矣로되 然而猶不肯寤
이는 교훈으로 삼을 만한데도 주군께서는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又有大者焉하니
또 더 큰 경우가 있습니다.
若范氏中行氏 貪人之土田하고 侵人之勢力하여 慕爲諸侯而不見其害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는 남의 토지를 탐내고 남의 세력을 침범하여 제후가 되기만 바라면서 그 속에 잠재한 해로운 점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니 脫其鱗하고 鱠其肉하며 刳其腸하고 斷其首而棄之
주군과 삼경三卿이 그들을 찢어 나누어 먹었으니, 그 비늘을 벗기고 그 살을 치며 그 창자를 가르고 그 머리를 잘라 던져버렸습니다.
鯤鮞遺胤 莫不備俎豆하니 是無異夫大鮪也
그리고 그 뱃속의 곤이와 알을 그릇에 담아 제물이나 잔치음식으로 썼으니, 이는 큰 철갑상어의 경우와 다를 게 없습니다.
可以懲矣로되 然而猶不肯寤
이 또한 교훈으로 삼을 만한데도 주군께서는 여전히 깨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又有大者焉하니
또 더 큰 경우가 있습니다.
呑范中行以益其肥하고 猶以爲不足하여 力愈大而求食愈無饜일새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를 삼켜 더욱 배를 살찌우고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驅韓魏以爲群鮫하여 以逐趙之肥魚하고 而不見其害
그래서 한씨韓氏위씨魏氏를 몰아 상어 떼로 삼아서 조씨趙氏의 살진 고기를 쫓아가고 그 속에 잠재한 해로운 점은 보지 못했습니다.
貪肥之勢 將不止於趙리니 臣見韓魏懼其將及也하여 亦幸主之蹙於晉陽이라
살진 고기를 탐내는 추세가 조씨趙氏를 먹은 뒤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니, 신이 보기에 한씨韓氏위씨魏氏가 장차 자신들에게 그와 똑같은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주군이 〈고래가 갈석산碣石山에서 난관에 부딪혀 죽은 것처럼〉 진양晉陽에서 곤경을 당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어늘 而主乃慠然하여 以爲咸在機俎之上이라하여 方磨其舌이라
그들이 불안하여 눈알을 굴리며 〈반격을 꾀하고 있는데도〉 주군께서는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면서 모두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고 한창 입맛을 다시고 계십니다.
抑臣有恐焉하니
이외에 신은 또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지금 보과輔果지씨智氏와 관계를 끊어 지씨智氏와 함께 화를 당하지 않으려 하고, 단규段規는 주군에게 모욕을 당한 것에 원망이 깊어 주군을 해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主之不寤하니 臣恐主爲大鯨하여 首解於하고 鬛摧於하고 胸披於하고 尾斷於之外하며 而腸流於하여 爲鱻薧하여 以充三家子孫之腹하니
그런데도 주군께서 깨닫지 못하시니, 신이 염려하는 것은, 주군께서 큰 고래의 경우가 되어 머리는 한단邯鄲에서 잘리고 지느러미는 안읍安邑에서 꺾이며, 가슴은 상당上黨에서 갈라지고 꼬리는 중산中山 밖에서 잘린 뒤에 창자는 대륙大陸으로 흘러들어가 생고기와 말린 포가 되어서는 한씨韓氏조씨趙氏위씨魏氏 세 집안 자손들의 배를 채우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臣所以大懼
이것이 신이 크게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不然이면 主之勇力强大 於文王何有리오
만약 그렇게만 되지 않는다면 주군 같은 강대한 용맹과 역량으로 문왕文王과 같은 인물이 되는 데에 무슨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智伯不悅이나 終以不寤
지백智伯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으나 끝내 깨닫지 못했다.
於是韓魏與趙合滅智氏하고 其地三分하니라
그리하여 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와 연합하여 지씨智氏를 멸망시키고 그의 토지를 셋으로 나눠 가졌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작품이다. 智伯은 荀躒의 손자 荀瑤이다. 智伯瑤‧智襄子라 불리기도 한다. 晉나라 六卿의 하나로 세력이 가장 강성하였다. 周 貞定王 11년(B.C. 458)에 韓康子‧趙襄子‧魏桓子와 연합하여 范氏와 中行氏를 소멸시킨 뒤에 탐욕을 끝없이 부리며 大臣을 깔보고 사람들을 억압하였다. 그 뒤 B.C. 453년에 趙襄子에게 땅을 떼어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韓氏와 魏氏를 협박하여 이들과 함께 趙襄子가 있는 晉陽을 포위하고 晉水의 제방을 허물어 강물을 성안으로 주입시켰는데,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솥을 공중에 매달아놓고 밥을 지어 먹으면서도 항복하지 않았다. 趙襄子가 밤중에 張孟談을 성 밖으로 내보내 韓氏와 魏氏를 회유하여 반대로 智伯을 공격하게 하였고, 智伯은 이들과 싸우다가 결국 패하여 죽었다. 그 뒤 周 威烈王 23년(B.C. 403)에 趙‧魏‧韓 세 집안이 晉나라를 3등분하여 나눠가짐으로써 전국시대의 효시가 되었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역사사실을 소재로 한 寓言이다. 智伯이 韓氏‧魏氏와 연합하여 趙氏를 섬멸하기 위해 晉陽을 물바다로 만든 대목을 적출하여 그 물에서 고기를 잡는 漁夫를 등장시켰으며, 어부가 한 말을 통해 智伯이 자제할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을 그렸다. 모래무지‧다랑어‧고래 등은 智伯에게 견준 것이고, 智伯은 中唐 이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탐욕을 부리는 지방관과 환관 및 권세가들의 前身이라 할 수 있다.
역주2 范中行 : 范은 范昭子 吉射이고, 中行은 中行文子 荀寅이다.
역주3 水晉陽 : 晉水의 둑을 터 그 물을 晉陽으로 주입시켰다는 말이다. 晉陽은 지금의 山西 太原市 일대이다.
역주4 〈今〉 : 저본에는 ‘今’이 없는데,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龍門 : 곧 禹門口로, 지금의 山西 河津市 서북쪽과 陜西 韓城市 동북쪽에 있다. 黃河의 최상류 지역으로 양쪽에 높은 절벽이 마주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문처럼 보이고, 황하를 거슬러 올라온 잉어가 이곳에 이르러 뛰어 올라가면 용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6 螭龍 : 뿔이 없는 용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용이란 뜻으로 쓰였다.
역주7 任公子 : 곧 任父이다. 《莊子》 〈外物〉에 의하면, 그가 큰 낚싯바늘과 비단실 낚싯줄로 낚시도구를 만들어 소 50마리를 미끼로 달고는 會稽山 위에 걸터앉아 동해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거대한 고기 한 마리가 걸려들어 그것을 끌어내는데, 꼬리와 지느러미를 거세게 흔들어대니 흰 물결이 산더미처럼 일어나고 주변 천 리가 진동하였다. 任公子는 그 고기의 배를 갈라 말려서 포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먹였다고 한다.
역주8 碣石 : 산 이름으로, 지금의 河北 昌黎縣 북쪽에 있다. 바다와 가까이 접해 있다.
역주9 渤澥 : 渤海와 같다.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의 內海이다.
역주10 太公 : 呂尙으로, 姜太公‧太公望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渭水 가에서 낚시로 소일하고 있었는데, 周 文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渭水 북쪽에서 그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수레에 태워 돌아와서는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史記 齊太公世家》
역주11 欒氏祁氏郤氏羊舌氏以十數 不能自保 : 欒氏는 晉 靖侯의 손자 欒賓 집안으로, 6대손 欒盈 때 멸족되었다. 祁氏는 晉나라 大夫 祁奚 집안으로, 손자 祁盈 때 멸족되었다. 羊舌氏는 晉나라 大夫 羊舌職 집안으로, 증손 羊舌食我 때 멸족되었다.
역주12 主之家與五卿 嘗裂而食之矣 : 五卿은 范氏‧中行氏‧韓氏‧魏氏‧趙氏를 가리킨다. 晉 頃公 12년(B.C. 514)에 六卿이 법에 따라 公族인 祁氏와 羊舌氏를 죽인 뒤에, 그들의 邑을 10개 縣으로 나누고 자기들의 친족을 그 縣의 大夫로 삼아 관장하게 하였다. 晉나라 왕실이 이때부터 더 허약해졌다.
역주13 主與三卿又裂而食之矣 : 三卿은 韓氏‧魏氏‧趙氏를 가리킨다. 晉 定公 22년(B.C. 490)에 晉나라가 范氏와 中行氏를 공격하여 패배시키자 이들이 齊나라로 도망갔으며, 出公 17년(B.C. 458)에 智伯이 趙氏‧韓氏‧魏氏와 함께 范氏‧中行氏의 토지를 나누어 자기들의 邑으로 만들었다.
역주14 其目動矣 : 目動은 《春秋左氏傳》 文公 12년에 “使者가 눈알을 굴리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우리를 두려워해서이다. 곧 도망갈 것이다.[使者目動而言肆 懼我也 將遁矣]”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마음이 불안할 때 하는 동작이다.
역주15 輔果舍族而退 不肯同禍 : 輔果는 곧 智果로, 晉나라 大夫이다. 그의 동족인 智宣子가 智伯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자, 智果는 智伯이 뛰어난 장점을 다섯 가지나 지녔으나 덕행이 좋지 않아 장차 종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면서 만류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智氏와 관계를 끊고 姓을 輔氏로 바꿨다. 뒤에 智氏 일족이 멸망할 때 輔果 한 집만 보존되었다. 《國語 권15 晉語》
역주16 段規怨深而造謀 : 段規는 韓康子의 참모이다. 智伯이 鄭나라를 정벌하고 衛나라에서 돌아와 三卿과 함께 藍臺에서 연회를 벌이는 자리에서 段規에게 모욕을 준 일이 있었다. 段規가 이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智伯이 晉陽을 포위하고 성안으로 강물을 주입할 적에, 韓康子에게 智伯을 배반할 것을 건의하고 강물을 도리어 智伯의 진영으로 주입하게 함으로써, 智伯을 생포하고 智氏 일족을 멸족시켰다. 《國語 권15 晉語》
역주17 邯鄲 : 春秋 때 趙나라 도성으로, 지금의 河北 邯鄲市이다.
역주18 安邑 : 지금의 山西 夏縣이다.
역주19 上黨 : 郡 이름으로, 戰國 때 韓나라가 설치하였다. 뒤에 趙나라 관할로 들어갔으며 郡의 관아소재지는 지금의 山西 長治市이다.
역주20 中山 : 春秋 때 白狄의 別族이 세운 나라로, 鮮虞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河北 正定 동북쪽에 있다. 戰國 초기에 지금의 河北 定縣인 顧에 도읍을 세웠고 뒤에 趙나라에 멸망당했다.
역주21 大陸 : 옛날 큰 못 이름으로, 巨鹿澤 혹은 廣阿澤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河北 隆堯‧巨鹿‧任縣 등 세 縣의 사이에 있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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