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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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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여공呂恭에게 보낸 편지
中亦有佳處
내용 중에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荊川云學이라하니라
형천荊川은 “좌씨외전左氏外傳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宗元白하노라
종원宗元은 고하네.
하여 得弟書 甚善이요 諸所稱道具之
원생元生이 나를 찾아와 전해준 아우의 편지를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았고, 여러 가지 거론한 내용을 모두 잘 알았네.
元生又持者所得石書하여 模其文示余 云若將聞於上이라하니 余故恐而疑焉하노라
원생元生은 또 아우의 관할지역에서 아버지 무덤가에서 시묘살이하던 자가 발굴한 석각石刻의 글씨를 모사模寫한 것을 내게 보여주며, 장차 황제에게 보고할 생각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걱정되고 의심스러웠네.
僕蚤好觀古書하여 家所蓄晉魏時尺牘甚具하고 又二十年來 徧觀長安貴人好事者所蓄하여 殆無遺焉이라
나는 어릴 적부터 옛 글씨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여 집안에 소장한 시대 척독尺牘이 매우 많았고, 또 20년 전부터 장안長安귀인貴人호사가好事家들이 소장한 것을 거의 빼놓지 않고 두루 보았네.
以是善知書하여 雖未嘗見名氏라도 望而識其時也하니라
이로 인해 글씨체를 잘 알아 글씨를 쓴 자의 성명을 모르더라도 보기만 하면 그 시대를 알아보았네.
又文章之形狀 古今特異어늘 弟之精敏通達 夫豈不究於此
그리고 문장의 형식은 고금古今이 서로 다른 법인데 아우처럼 영리하고 무엇이든 환히 아는 사람이 어찌 이 점을 따져보지 않았는가.
今視石文하니 署其年曰라하되 其書則今田野人所作也
지금 석각石刻의 글씨를 살펴보니, 그 연도는 영가永嘉로 표기되어 있으나 서체書體는 지금 촌부村夫들이 쓴 것이었네.
雖支離其字 尤不能近古하니
비록 그 글자가 떨어져나가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옛날의 서체와 비슷하지 않네.
爲其永字等頗效이나 皆永嘉所未有 辭尤鄙近하여 若今所謂律詩者하니 晉時蓋未嘗爲此聲이라
그중 ‘’자 등 필법筆法왕씨王氏변법變法을 상당히 본떴으나 〈이와 같은 서체가〉 영가永嘉 때에는 없었으며, 글의 내용은 더더욱 조잡해서 마치 지금의 이른바 율시律詩라는 것과 비슷하니, 나라 때에는 이런 시체詩體가 없었네.
大謬妄矣로다
대단히 허황된 것이네.
又言植松烏하여 怪而掘其土得石이라하니 尤不經하여 難信이라
또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던 도중 까마귀가 그 소나무를 쪼아 꺾으므로 이상하여 그 아래 흙을 팠더니 석각石刻이 나왔다고 한 말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아 그 말을 믿기 어렵네.
或者得無姦爲之乎
혹시 농간을 부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
커든 況廬而居者 其足尙之哉
그리고 옛날에 “이란 곧 감춘다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흙으로 봉분封墳을 쌓고 무덤가에 나무를 심는 행위에 대해 군자君子이의異議를 제기했었는데, 더군다나 여막廬幕을 짓고 그 안에서 지내는 자를 과연 추켜세울 수 있겠는가.
聖人하여 過則爲辟이라
성인聖人이 제도를 수립하고 법령을 제정하여 지나치면 죄를 물었네.
故立 不尙異하고 敎人者欲其誠이니 是故惡夫飾且僞也니라
그러므로 대중大中를 세우는 자는 괴이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상대방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하니,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가식假飾위선僞善을 미워하는 것이네.
過制而不除喪이면 宜廬於庭이니 而矯於墓者 大中之罪人也
복상服喪의 기간이 지났는데 탈상脫喪을 하지 않으려면 집안의 뜰에 여막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니,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것은 대중大中의 죄인이라 할 수 있네.
況又出怪物 詭神道하여 以奸大法하여 而因以爲利乎
그런데 더구나 또 괴이한 물건을 내놓고 신명神明의 도를 속임으로써 나라의 큰 법을 범하고 이로 인해 이익을 챙기려 한단 말인가.
夫僞孝以奸利 誠仁者不忍擿過 恐傷於敎也
를 거짓으로 꾸며 이익을 취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진 자가 차마 그 잘못을 적발하지 못하니, 이는 교화에 손상이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네.
然使僞可爲而利可冒 則敎益壞하나니
그러나 거짓을 행할 수 있고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하면 교화는 더더욱 무너질 것이네.
若然者 勿與知焉可也 伏而不出之可也니라
그와 같은 것은 간여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옳으며, 또 〈알더라도〉 덮어두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네.
이어늘 而吾子贊焉하여 固無闕遺矣
대부大夫치적治績이 훌륭하였는데 그대가 그를 도와 참으로 미진한 점이 없었네.
하고 하며 去比竹茨草之室하고 而垍土大木陶甄梓匠之工備하여 孽火不得作하고
동쪽 외성外城에 제방을 쌓고 시장 점포를 따로 설치하였으며, 대나무를 잇대고 띠풀을 엮어지은 집들을 없애고는 흙을 뭉치고, 굵은 나무를 다루고, 기와와 벽돌을 굽고, 가재도구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대거 양성하여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 〈집을 짓도록 하였네.〉
化惰窳之俗하며 絶偸浮之源하여之力用하고 寬徭嗇貨均賦之政起하니 其道美矣
그리고 백성들의 고식적이고 나태한 습속을 변화시키고 몰인정하고 경박한 근원을 제거하여 뽕잎 따고 누에 치며 밭 갈고 김매는 일에 힘을 쏟게 하고, 부역賦役을 관대하게 하고 물자를 아끼고 과세課稅를 고르게 하는 치적을 일으켰으니, 그 방법이 훌륭하였네.
慮善善之過而莫之省이면 誠慤之道少損이라 故敢私言之하노라
〈하지만 시묘살이하는 자가 석각石刻을 발굴한〉 이 일에 대해서는 그대가 선행善行을 표창하기를 지나치게 하는데도 살펴주지 않는다면, 벗을 충정忠情으로 대하는 도리에 다소 손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감히 은근히 이처럼 말하는 것이네.
夫以淮濟之淸 有玷焉若秋毫 固不爲病이나
대체로 회수淮水제수濟水의 맑은 물에 털끝만 한 오점이 있는 정도는 사실 문제거리가 되지 않네.
然而萬一眇然睨之 不若無者之快也
그러나 만일 이루자離婁子가 눈을 지긋이 감고 살펴본다면 아예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유쾌한 것보다는 못할 것이네.
想黙已其事하고 無出所置書 幸甚이라
부디 이 일을 조용히 덮어두고 석각石刻 글씨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다면 매우 좋겠네.
宗元白하노라
종원宗元은 고하네.
역주
역주1 與呂恭書 : 《柳河東集》에는 〈與呂恭論墓中石書書〉로 되어 있다. 呂恭(?~813)은 河中 사람으로, 呂渭의 아들이자 작자의 벗 呂溫의 아우이다. 山南西道節度使掌書記‧長安主簿‧江南西道都團練使參軍‧桂管都防禦副使를 역임하고, 嶺南道節度判官으로 재임 중에 죽었다. 자는 敬叔, 혹은 恭叔이라 하기도 한다. 이 편지는 작자의 나이 38세 때인 元和 5년(810)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呂恭은 이때 桂管都防禦副使로 있었다. 呂恭의 어머니 柳氏는 작자의 고모이고, 나이도 자기보다 어렸기 때문에 그를 아우라고 불렀다. 이 당시 桂管 지방에서 아버지의 무덤가에 廬幕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던 어떤 사람이 하늘이 자기의 효성에 감동하여 500년 전 명필인 王羲之가 쓴 石刻을 발굴하게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呂恭이 그 말을 믿고 石刻의 書體를 모사한 것을 元生이란 사람을 통해 작자에게 보여주면서 황제에게 그 사실을 보고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그것이 가짜임을 밝히고, 아울러 부모의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것은 聖人이 만든 禮法에는 없는데, 일부 간교한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지극한 효자라는 평판을 얻어내려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는 취지로 말함으로써, 시묘살이를 하다가 石刻을 발굴했다고 한 사람이 간교한 술책을 부린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2 左氏外傳 : 《國語》의 다른 이름이다.
역주3 元生 : 작자가 永州에서 알게 된 元克己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역주4 部中 : 관할지역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呂恭이 벼슬살이하는 지역인 桂管, 곧 桂州 관내를 가리킨다. 桂州는 지금의 廣西 桂林이며, 桂管都防禦使가 관장하는 지역은 桂州를 포함하여 梧‧賀‧連‧柳‧富‧昭‧蒙‧嚴‧環‧融‧古‧龔 등 州이다.
역주5 (墓父)[父墓] : 저본에 ‘墓父’로 되어 있는데,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6 永嘉 : 晉 懷帝의 연호로, 307년부터 312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하였다.
역주7 王氏變法 : 王羲之(303~361)의 書法을 가리킨다. 王羲之는 東晉 瑯邪 臨沂 사람으로. 자는 逸少이다. 右軍將軍을 지냈다 하여 王右軍이라 불린다. 처음에 衛夫人에게 글씨를 배운 뒤에 여러 서예가의 장점을 취해 서체를 정밀하게 연구하였다. 草書는 張芝를 배우고 正書는 鍾繇를 배워 당시까지 유행하던 漢‧魏시대의 古拙한 書風을 크게 바꾸어 새로운 서체를 창조하였다. 후세에 書聖으로 추앙받는다.
역주8 (擢)[摧] : 저본에는 ‘擢’으로 되어 있는데, 章士釗의 《柳文指要》에 “다른 本에는 ‘擢’이 ‘摧’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摧’로 바로잡았다.
역주9 古之言葬者……而君子以爲議 : 《禮記》 〈檀弓 上〉에, 齊나라 대부 國子高가 말하기를 “葬이란 곧 감춘다는 뜻이다. 감추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壽衣는 충분히 몸을 가릴 만큼 크게 하고, 內棺은 능히 壽衣를 쌀 만큼 크게 하며, 外棺은 능히 內棺을 쌀 만큼 크게 한다. 그런데 도리어 흙을 쌓아 封墳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무덤임을 드러낸단 말인가.”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축약하여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君子는 國子高를 가리킨다.
역주10 有制度 有法令 : 여기서 말하는 制度와 法令은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3년 동안 喪服을 입고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11 大中 :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中庸의 도를 말한다.
역주12 大夫之政良 : 大夫는 呂恭이 앞서 상관으로 모셨던 洪州刺史 兼江南西道觀察使 韋丹(753~810)을 가리킨다. 韋丹은 자가 文明이며 京兆 萬年 사람이다. 외조부 顔眞卿에게 수학하였다. 明經科에 급제하여 殿中侍御史‧中書舍人을 지낸 뒤에 容州刺史로 부임하여 백성에게 농사짓는 법과 길쌈하는 법을 가르치고 학교 교육을 활성화하여 교화가 크게 행해졌다. 諫議大夫로 있을 때 劉辟을 주벌하라고 청한 일로 憲宗의 치하를 받고 劍南東川節度使로 제수되었다가 江南西道觀察使로 전보되었다. 이때 백성들에게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도록 유도하고 제방을 쌓아 강물의 범람을 막는 등 선정을 베풀어 당시 지방관의 치적평가에서 으뜸을 차지하였다. 德宗 貞元 16년(800) 6월 新羅 昭聖王이 죽었을 때 위문사절로 신라를 다녀가기도 하였다.
역주13 作東郛 : 韋丹이 지금의 江西 南昌 지방인 洪州의 동쪽 外城에 제방을 쌓아 수재를 방비한 일을 가리킨다. 郛는 外城이다.
역주14 改市廛 : 韋丹이 洪州에 별도의 시장을 설치하여 군사와 백성들이 편리하게 무역할 수 있게 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15 條桑浴種 深耕易耨 : 條桑浴種은 뽕잎을 따고 누에알을 물에 담근다는 뜻으로 부녀자가 맡는 길쌈하는 일이고, 深耕易耨는 밭을 깊이 갈고 김을 맨다는 뜻으로 장정이 맡는 농사짓는 일이다. 浴種은 浴蠶이라고도 한다. 누에알을 소독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자연 온도와 물 온도가 거의 같은 11월 상순부터 12월 중순 사이에 누에알에 붙어 있는 병원균, 나방오줌, 먼지 등을 씻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편의상 누에 치는 일이라고 번역하였다.
역주16 於斯也 : ‘이 일에 대하여’라는 뜻으로, 아버지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하던 자가 石刻 글씨를 얻었다고, 呂恭이 황제에게 보고하려고 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7 離婁子 : 상고 때 눈이 밝기로 이름난 사람으로, 《孟子》 〈離婁 上〉에 나온다. 離朱라고도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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