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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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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승려 호초浩初를 송별하는 서문
亦澹宕이라
산뜻하고 자유분방하다.
韓退之與余善하니 嘗病余嗜하고 訾余與浮圖遊러니
유가儒家를 신봉하는 한퇴지韓退之는 나의 좋은 벗인데, 그는 일찍이 내가 불가佛家의 학설을 좋아하는 것을 지적하고 내가 승려들과 교유하는 것을 책망하였다.
하고 且曰 見 不斥浮圖라하니라
최근에 농서隴西 이초李礎동도東都 낙양洛陽으로부터 이곳에 왔는데 퇴지退之는 또 그의 편에 편지를 보내와 나를 탓하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송원생서送元生序〉를 보았는데 불가佛家를 배척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浮圖誠有不可斥者하니 往往與易論語合하여
불가佛家의 학설 중에는 분명히 배척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가끔 《역경易經》‧《논어論語》와 부합되기도 한다.
誠樂之하니 其於性情奭然 不與孔子異道
그래서 진심으로 그것을 좋아하니 사람의 성정性情을 담박하게 순화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공자孔子와 그 가 다르지 않다.
退之好儒未能過揚子
퇴지退之유가儒家 학설을 좋아하는 정도는 양웅揚雄을 넘어설 수 없다.
揚子之書於莊墨申韓皆有取焉하니 浮圖者 反不及莊墨申韓之怪僻險賊耶
그런데 양웅揚雄이 쓴 책에는 장자莊子묵자墨子신불해申不害한비자韓非子에 대하여 모두 취한 바가 있으니, 불가佛家의 학설이 오히려 괴벽하고 사악한 장자莊子묵자墨子신불해申不害한비자韓非子보다 못하단 말인가.
曰 以其夷也니라
〈그렇지 않은데도 배척하는 이유는〉 외지의 오랑캐 지역에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果不信道而斥焉以夷인댄 則將友하고 而賤
〈만약 겨우 외지의 오랑캐 지역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도를 믿지 않고 배척한다면 내지의 악래惡來도척盜跖을 벗으로 사귀고 외지의 계찰季札유여由余를 천시하자는 것인가?
非所謂去名求實者矣로다
이것은 사람들이 표방하는 ‘허명虛名을 버리고 실제實際를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다.
吾之所取者 與易論語合하니 雖聖人復生不可得而斥也니라
내가 취하는 것은 《역경易經》‧《논어論語》의 도리와 서로 부합되는 점이니, 성인聖人이 다시 나온다 해도 불가佛家의 도를 배척할 수 없을 것이다.
退之所罪者其跡也
퇴지退之가 문제를 삼는 것은 그 겉모습이다.
曰 髡而緇하고 無夫婦父子하며 不爲耕農蠶桑而活乎人이라하니
그는 “승려는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으며 부부와 부자간의 인륜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밭을 갈거나 누에를 치는 일이 없이 남들에게 의지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若是 雖吾亦不樂也
이와 같은 것은 나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退之忿其外而遺其中하니 是知石而不知韞玉也
그러나 퇴지退之는 그 겉모습에 대해 분개하고 그 내면의 본질은 돌아보지 않으니, 이는 돌덩이란 것만 알 뿐 그 안에 들어 있는 보석寶石은 모르는 것이다.
吾之所以嗜浮圖之言以此 與其人游者 非必能通其言也니라
내가 불가佛家의 말을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니, 불교도들과 교유하는 것도 내가 반드시 불가佛家의 학설을 모두 잘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且凡爲其道者 不愛官하고 不爭能하며 樂山水而嗜閑安者爲多
그리고 대체로 불교佛敎를 신봉하는 사람은 벼슬을 좋아하지 않고 능력을 다투지 않으며 산수山水를 좋아하면서 한가하고 편안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吾病世之逐逐然唯印組爲務以相軋也하니 則舍是其焉從이리오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오직 벼슬을 추구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삼고 서로 배척하는 작태를 유감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 불가佛家의 가르침을 버리고 그 무엇을 따르겠는가.
吾之好與浮圖游以此니라
내가 승려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今浩初閑其性하고 安其情하며 讀其書하여 通易論語하고 唯山水之樂 有文而文之
지금 호초浩初는 심성이 차분하고 정서가 안정되었으며 책 읽기를 좋아하여 《역경易經》‧《논어論語》에 통달하였는가 하면, 오직 산수山水를 감상하는 것을 흥취로 삼고 문장으로 이와 같은 산수를 찬미하였다.
又父子咸爲其道하여 以養而居하여 泊焉而無求하니
그리고 이들 부자父子가 모두 불교佛敎를 신봉하여 심성을 수양하면서 지내고 담박하여 〈공명功名봉록俸祿을〉 추구하는 일이 없다.
則其賢於爲莊墨申韓之言하여 而逐逐然唯印組爲務以相軋者 其亦遠矣로다
그러니 장자莊子묵자墨子신불해申不害한비자韓非子의 학설을 신봉하여 오직 벼슬을 추구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삼고 서로 배척하는 자들과 견주어볼 때 그들보다 훨씬 낫다고 하겠다.
李生礎與浩初又善하니
이초李礎호초浩初의 좋은 벗이다.
今之往也 以吾言示之하고
이제 〈이초李礎가 있는 곳에〉 가거든 내 이 서문을 그에게 보여주기 바란다.
因北人寓退之하여
그리고 북쪽 낙양洛陽으로 가는 인편을 통해 이 서문을 퇴지退之에게 부쳐줬으면 한다.
視何如也
그가 이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지 보고 싶다.
역주
역주1 送僧浩初序 : 元和 6년(811)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浩初는 潭州 사람으로, 長沙 龍安寺에 머물던 海禪師의 제자이다. 작자와 韓愈는 서로를 인정하는 절친한 벗이었다. 다만 佛敎에 관해서는 상반된 견해를 지녀 오랫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韓愈의 모순된 주장을 지적하여 비평하고 불교의 교리가 儒家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견해를 서술하였다.
역주2 儒者 : 儒家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韓愈와 佛敎를 믿는 자가 서로 다른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쓴 것이다.
역주3 浮圖言 : 佛家의 교리나 학설을 가리킨다. 浮圖는 붓다, 곧 佛陀의 音譯이다. 浮屠로 표기하기도 한다. 후세에는 佛家, 佛敎, 승려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되었다.
역주4 近隴西李生礎自東都來 退之又寓書罪余 : 隴西는 郡名으로, 지금의 甘肅省 동남 일대이다. 東都는 西都 長安의 대칭으로 洛陽을 가리킨다. 李生礎는 李礎를 말하는데, 湖南從事로 재임하던 중 元和 6년에 휴가를 받아 洛陽에 가서 그의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이 당시 洛陽에서 都官員外郞으로 있던 韓愈가 李礎를 통해 작자에게 편지를 보내 佛家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 것을 비판하였다. 韓愈의 문집에 이 편지는 들어 있지 않다.
역주5 送元生序 : 작자가 元和 6년에 쓴 〈送元暠師序〉를 가리킨다. 이 글은 元暠의 孝行을 찬양하고 佛家의 교리가 人倫의 도리와 어긋나지 않고 儒家의 학설과 부합된다고 인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역주6 惡來盜跖 : 惡來는 商 紂王의 大臣이다. 맨손으로 호랑이와 물소를 잡아 찢을 정도로 장사였는데, 賢人을 모함하는 참소를 잘하여 武王이 紂를 정벌할 때 그의 아버지 蜚廉과 함께 죽었다. 盜跖은 전설에 나오는 黃帝 때의 큰 도적이다. 그의 졸개 9천 명이 천하를 횡행하면서 제후들을 침범하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하여 후세에 惡人을 지목할 때 흔히 인용된다.
역주7 季札由余 : 季札은 春秋 때 吳王 壽夢의 막내아들로,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로도 불린다. 어질고 재능이 뛰어나 그의 아버지 壽夢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뒤에 諸樊과 餘祭 등 형들이 계속 왕이 되라고 권하였으나 끝까지 사양하였다. 由余는 春秋 때 본디 晉나라 사람으로, 오랑캐 부족인 戎으로 망명했다가 뒤에 秦 穆公을 보좌하여 서방의 霸主가 되게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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