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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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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굴원屈原을 추모하는 글
文不如賈誼所弔屈原者之賦하고 而詞亦矘朗이라
문장 수준이 가의賈誼가 쓴 〈조굴원부弔屈原賦〉보다 못하고, 가사歌詞의 의미도 모호하다.
後先生蓋千祀兮
선생께서 떠나고 천 년이 지난 뒤에,
余再逐而浮湘이라
내가 다시 쫓겨나 상강湘江에 이르렀네.
求先生之汨羅兮
선생께서 투신한 멱라수汨羅水를 찾아서,
以薦芳이라
족두리풀 향초로 제향을 올린다네.
願荒忽之顧懷兮
어렴풋한 가운데 부디 저를 보시어,
冀陳辭而有光이라
말씀 듣고 이 충정 환히 알아주소서.
先生之不從世兮
선생께선 세속을 따르지 않으시고,
惟道是就
오로지 바른 도리 꿋꿋이 지켰는데,
支離搶攘兮
당신이 처한 조국 쇠퇴하고 혼란해,
遭世孔疚로다
위태하고 어려운 시대를 만났었네.
華蟲薦壤兮
임금은 꿩 문양의 귀한 예복禮服 버리고,
進御羔褏로다
양 가죽 천한 옷이 좋다고 입었으며,
牝雞咿嚘兮
암탉들 의기양양 어지러이 떠들고,
孤雄束咮로다
외론 수탉 밀려나 울지를 못하였네.
哇咬環觀兮
저속한 노랫소리 둘러서서 들으며,
蒙耳로다
아름다운 음악은 모두 귀를 닫았네.
以爲羞兮
오두烏頭 오훼烏喙 독초를 맛좋다고 여기고,
焚棄稷黍로다
기장쌀 좋은 곡식 불태우고 버렸네.
犴獄之不知避兮
감옥에 갇히는 일 피할 줄 알지 못해,
궁전에서 마침내 거처하지 못했네.
陷塗藉穢兮
진흙탕에 빠지고 오물 깔고 앉아서,
榮若繡黼로다
고운 예복禮服 입은 듯 영광으로 여겼고,
榱折火烈兮
서까래 부러지고 불길이 거센데도,
娛娛笑舞로다
쾌락에 빠져서는 웃으며 춤추었네.
讒巧之嘵嘵兮
재잘재잘 교묘히 참소하는 소리를,
惑以爲咸池로다
고상한 신선神仙 음악 함지咸池로 여기었고,
便媚鞠恧兮
부드러운 얼굴로 굽실대는 소인小人이,
美逾西施로다
아름답기 저 옛날 서시西施보다 낫다나.
謂謨言之怪誣兮
나라 위한 계책을 괴담怪談으로 알고는,
反寘瑱而遠違로다
도리어 귀를 막고 저 멀리 피했다네.
匿重痼以諱避兮
고질병을 숨기고 치료받길 꺼리니,
進兪之不可爲로다
유부兪跗 진완秦緩 명의도 어찌할 수 없었네.
何先生之凜凜兮
선생 기풍 어쩌면 그리도 늠름한지,
침석鍼石을 준비하여 병자 찾아 나섰네.
但仲尼之去魯兮
공자孔子도 부모나라 나라를 떠날 때,
내 걸음 더디다고 일찍이 말했었고,
柳下惠之直道兮
수용되기 어려운 유하혜柳下惠의 곧은 도,
또 어디 가 그 도를 행할 수 있겠는가.
今夫世之議夫子兮
선생 대해 논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曰胡隱忍而懷斯
왜 공격 참으면서 연연했나 말하니,
惟達人之卓軌兮
사리를 통달하신 위인의 높은 자취,
固僻陋之所疑
진실로 저속한 자 알 수 없는 거라네.
委故都以從利兮
고국을 버리고서 이익을 따르는 건,
吾知先生之不忍이라
나는 안다, 선생이 차마 하지 못함을.
立而視其覆墜兮
우두커니 선 채로 나라 멸망 보는 건,
又非先生之所志
이 또한 선생께서 뜻하는 바 아니네.
窮與達固不渝兮
궁하든 현달하든 마음 변치 않았고,
夫唯服道以守義로다
오직 도를 따르고 의리를 지키셨네.
矧先生之悃愊兮
더욱이 선생께선 충성심 지극하여,
滔大故而不貳로다
차라리 죽을망정 두 마음 안 품었네.
沈璜瘞佩兮
물에 잠긴 이며 땅에 묻힌 고운 ,
孰幽而不光
깊숙이 있다 한들 어찌 아니 빛나고,
荃蕙蔽匿兮
가려지고 숨겨진 향기 좋은 난초가,
胡久而不芳이리오
세월이 묵었다고 향기롭지 않으랴.
先生之貌不可得兮
선생의 얼굴 모습 지금 뵐 수 없지만,
猶髣髴其文章이라
그래도 문장文章 통해 짐작할 수 있다네.
託遺編而歎喟兮
남기신 글 접할 제 탄식 절로 나오니,
渙余涕之盈眶이라
눈에 가득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네.
일월日月 향해 외치고 신령神靈께 따졌으나,
夫孰救於崩亡
그 누가 나라 멸망 구제할 수 있을까.
何揮霍夫雷電兮
어이해 천둥 번개 몰고서 다닌다고,
믿지 못할 황당한 그런 말씀 했을까.
耀姱辭之矘朗兮
화려한 그 문장이 이해하기 어려워,
世果以是之爲狂이라
세상에선 마침내 미쳤다고 여겼네.
哀余衷之坎坎兮
이 점을 생각하니 내 마음 안절부절,
獨蘊憤而增傷이라
울분이 쌓여가고 슬픔만 더해가네.
諒先生之不言兮
선생께서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면,
後之人又何望
후인後人 어찌 당신을 원망할 수 있으랴.
忠誠之旣內激兮
충성심이 속에서 그처럼 솟구치니,
抑銜忍而不長
어찌 오래 참고서 말을 하지 않으랴.
미씨芈氏 일파 굴씨屈氏들 그 수효 얼마인가.
胡獨焚其中腸
어찌해 혼자서만 속마음 태우셨나.
吾哀今之爲仕兮
오늘날 벼슬한 자 그 풍조 애달프니,
庸有慮時之否臧이라
시국의 좋고 나쁨 그 누가 염려할꼬.
食君之祿畏不厚兮
받아먹는 녹봉이 많지 않다 꺼리고,
悼得位之不昌이라
차지한 벼슬자리 높지 않다 슬퍼해.
退自服以黙黙兮
나는야 물러나서 침묵할 따름이니,
曰吾言之不行이라
내 말이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라네.
旣媮風之不可去兮
냉혹한 세상 풍조 제거할 도리 없어,
懷先生之可忘이라
선생을 추모하며 번뇌를 잊으려네.
역주
역주1 : 永貞 원년(805) 9월 永貞革新이 실패했을 때 작자가 邵州刺史로 내쫓겨 부임하던 도중, 다시 永州司馬로 폄적되었다. 그래서 永州 유배지로 가기 위해 남쪽을 향해 湘江을 따라 올라가다가 汨羅水 입구에 이르러 戰國 때 그곳에 몸을 던져 죽은 楚나라 충신 屈原을 회상하고 이 문장을 쓴 것이다.
屈原은 楚나라 왕족으로, 왕에게 법도를 바로잡고 덕과 재능이 있는 인재를 등용하며 누적된 폐단을 개혁하고 齊나라와 연합하여 秦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인의 모함과 군왕의 우매함으로 인해 두 번이나 축출되었고, 秦나라 군대가 楚나라 도성을 공격하여 무너뜨리자 〈懷沙〉를 지어 절의를 위해 죽는 심정을 드러낸 뒤에 돌을 가슴에 품고 汨羅水에 투신하였다. 屈原의 그와 같은 정신과 행적이 작자와 같은 점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를 동정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문장의 형식은 屈原이 쓴 〈離騷經〉의 체제이고, 그 정신도 〈離騷經〉과 비슷하며, 風格도 같다.
역주2 蘅若 : 향초인 杜蘅과 杜若의 약칭으로, 족두리풀이다.
역주3 大呂 : 고대 음악인 12율 가운데 두 번째로, 고상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가리킨다.
역주4 堇喙 : 堇은 烏頭이고, 喙는 烏喙로, 독성이 강한 독초이다.
역주5 犴獄之不知避兮 宮庭之不處 : 楚 懷王이 욕심에 눈이 멀어 화를 자초한 일을 가리킨다. 秦나라 사자 張儀가 楚 懷王에게 齊나라와 절교하면 秦나라가 가져갔던 商於 땅 600리를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陳軫이 그 말을 듣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그 땅에 욕심이 난 懷王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秦나라에 속은 뒤에 화가 나서 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군대를 잃고 땅을 빼앗겼으며, 秦 昭王이 즉위한 뒤에 秦나라 변방인 武關에서 그와 회합했다가 구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3년 뒤에 秦나라 땅에서 죽었다. 犴獄은 감옥이다. 《史記 권40 楚世家》
역주6 : 戰國 때 명의인 兪跗와 秦緩을 가리킨다. 兪跗는 외과수술로 병을 치료한 사람으로, 피부절개는 물론 개복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역주7 厲鍼石而從之 : 鍼石은 금속 침과 돌 침으로 모두 고대의 의료기구인데, 여기서는 세상의 병폐를 치유할 재능을 가리킨다. 屈原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세상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조정에 들어가 요직에 앉았다는 것이다.
역주8 但仲尼之去魯兮 曰吾行之遲遲 : 《孟子》 〈萬章 下〉에 “孔子께서 齊나라를 떠날 때는 밥을 지으려고 물에 담갔던 쌀을 건져 바쁘게 길을 떠나셨고, 魯나라를 떠날 때는 말씀하시길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걸음이여.’ 하셨으니,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의 도리이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이는 孔子가 魯나라에서 도를 행할 수 없자, 다른 나라로 갈 적에 부모의 나라를 떠난다는 미련 때문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천천히 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孔子가, 魯나라가 부모의 나라임에도 도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떠난 그 사실에 치중하여, 屈原도 楚나라가 자신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孔子의 경우처럼 楚나라를 단념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는 屈原이 왜 楚나라에 버림을 받고서도 끝까지 충성을 바치려고 했을까 하는 일반 사람들의 의문을 대변하는 말이다.
역주9 柳下惠之直道兮 又焉往而可施 : 柳下惠는 魯나라의 賢人으로, 聖人의 덕 가운데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和’의 덕을 지녔다고 한다. 《論語》 〈微子〉에 “柳下惠가 獄官을 맡았을 때 세 번이나 파면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당신은 魯나라를 떠날 수 없는가?’ 하자, ‘正道로 군주를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여러 번 파면되지 않겠으며, 만약 바르지 않은 도로 군주를 섬긴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는 정도를 견지한 柳下惠가 아첨 잘하는 신하를 좋아하는 군주의 총애를 받지 못해 계속 쫓겨났듯이, 屈原도 柳下惠와 같은 정도를 지녔으므로 어디를 가더라도 도를 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행해질 수 없는 도를 굳이 행하려고 시도했던 屈原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서 한 말이다.
역주10 呵星辰而驅詭怪兮 : 屈原의 작품인 〈天問〉에 대해 漢나라 王逸이 쓴 서문에 “屈原이 조정에서 추방된 뒤에 山澤을 방황하다가 楚나라 선대의 왕을 모신 사당과 이전 公卿들을 모신 사당의 벽에, 天地‧山川의 신령들의 황홀하고 기괴한 모양 및 옛 聖賢들의 이상한 모습이며 그들이 행했던 일들이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하여 그 밑에서 쉬다가 그림을 올려다보며, 그 벽에 天‧地‧人에 관한 의문을 쓰고 천지신명에게 큰소리로 물어봄으로써 울분과 시름을 토로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 글에서 語源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11 何揮霍夫雷電兮 苟爲是之荒茫 : 揮霍은 지휘한다는 뜻이고, 荒茫은 현실과 괴리되어 황당하다는 뜻이다. 屈原의 〈離騷經〉에 “달의 신령 望舒는 앞길을 인도하고, 바람 신령 飛廉은 뒤따라 붙게 했네. 봉황새는 날 위해 후환에 대비하고, 천둥 신은 나에게 준비 안 됐다 하네.[前望舒使先驅兮 後飛廉使奔屬 鸞皇爲余先戒兮 雷師告余以未具]” 하였고, 〈東君〉에 “용이 끄는 수레로 천둥에 올라타니, 수레 위 구름 깃발 저 멀리 펄럭이네.[駕龍輈兮乘雷 載雲旗兮委蛇]”라고 하였다.
역주12 芈(미)爲屈之幾何兮 : 屈原의 친족들이 그 숫자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芈는 楚나라 왕의 성씨이고, 屈은 그 일파이다. 屈原의 조상인 屈瑕는 楚 武王 熊通의 아들인데, 그가 屈邑에 봉해졌기 때문에 屈을 성씨로 삼았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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