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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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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황계黃溪를 유람한 기문
北之하고 西適하며 東極하고 南至 其間名山水而州者以百數 永最善이라
북쪽으로 , 서쪽으로 , 동쪽으로 , 남쪽으로 옛날 나라와 나라가 인접한 일대까지는 이 중간에 산수로 이름난 가 백여 개나 되는데, 그중에 영주永州의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環永之治百里 北至于하고 西至于하며 南至于하고 東至于黃溪 其間名山水而村者以百數 黃溪最善이라
그리고 영주永州의 관아를 둘러싼 백 리 안에서 북쪽으로 오계浯溪, 서쪽으로 상수湘水의 발원지, 남쪽으로 농천瀧泉, 동쪽으로 황계黃溪동둔東屯까지는 이 중간에 산수로 이름난 마을이 백여 개나 되는데, 그중에 황계黃溪의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黃溪距州治七十里
황계黃溪영주永州 관아까지의 거리가 70리이다.
由東屯南行六百하여 至黃神祠
동둔東屯에서 남쪽으로 600보를 가면 황신사黃神祠에 도달한다.
祠之上 兩山牆立하고 如丹碧之華葉騈植하여 與山升降하고 其缺者爲崖峭巖窟이요
황신사黃神祠 위쪽에는 두 산이 장벽처럼 높이 서 있고 단사丹砂벽옥碧玉과도 같은 붉은 꽃과 푸른 잎들이 함께 어우러져 산 모양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화초가 없는 곳은 깎아지른 절벽이거나 동굴이다.
水之中 皆小石平布
시냇물 속에는 온통 조약돌이 깔려 있다.
黃神之上 揭水八十步하여 至初潭하니 最奇麗하여 殆不可狀이라
황신사黃神祠 위쪽으로 옷을 걷고 물을 건너 80보를 가면 첫 번째 못에 이르는데, 그곳은 경치가 가장 신기하고 아름다워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其略若剖大甕하여 側立千尺하니
못의 대체적인 모양은 거대한 항아리를 갈라놓은 것 같은데, 항아리의 사방 언저리는 수직으로 높이 솟아 천 자나 된다.
溪水積焉하여 黛蓄膏渟이라
시냇물이 그 안에 담겨 있는데 깊이 잠긴 검푸른 물이 기름인 양 반짝인다.
來若白虹하되 沈沈無聲하고 有魚數百尾하여 方來會石下
흘러드는 물길은 흰 무지개처럼 빛나는데 수심이 워낙 깊어 소리가 없고 수백 마리나 되는 고기들이 바위 밑으로 모여들었다.
南去又行百步하여 至第二潭하니 石皆巍然하여 臨峻流하여 若頦頷齗齶이라
남쪽으로 또 100보를 가면 두 번째 못에 이르는데, 못 주변에는 바위들이 다 거대하고 급류 위에 늘어서 있어 그 모양이 마치 튀어나온 턱과 움푹 들어간 잇몸 같았다.
其下大石離列하여 可坐飮食이라
그 아래에는 큰 바위가 어지러이 늘어섰는데 그 위에 앉아 음식이라도 먹을 만했다.
有鳥赤首烏翼 大如鵠하여 方東嚮立이라
붉은 머리에 검은 날개를 한 새가 크기는 고니만큼 큰 놈이 막 동쪽을 향해 서 있었다.
自是又南數里 地皆一狀이나 樹益壯하고 石益瘦하며 水鳴皆鏘然이라
그곳에서 다시 남으로 몇 리를 가니 지세는 모두 같으나 수목樹木은 더 굵고 바위는 더 뾰족하였으며 좔좔 흐르는 물소리가 모두 듣기 좋았다.
又南一里하여 至大冥之川 山舒水緩하고 有土田하니
또 남으로 1리를 가서 대명천大冥川에 이르니 산세가 완만하고 물길이 더딘 곳에 논밭이 있었다.
始黃神爲人時 居其地하니라
황신黃神이 생존시에 그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曰 黃神王姓이니 之世也
황신黃神의 전설을 소개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황신黃神은 성씨가 으로 왕망王莽의 친족이다.
莽旣死 神更號黃氏하고 逃來하여 擇其深峭者潛焉이라하니라
왕망王莽이 죽은 뒤에 은 성을 황씨黃氏로 바꾸고 이곳으로 도망하여 저 깊고 험한 곳을 택해 숨었다.”고 하였다.
始莽嘗曰 余黃虞之後也 故號其女曰라하니라
당초에 왕망王莽이 일찍이 “나는 황제黃帝우순虞舜의 후손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의 딸의 봉호를 ‘황황실주黃皇室主’라고 불렀다.
黃與王聲相邇하고 而又有本하니 其所以傳言者益驗이라
은 음이 비슷하고 왕망王莽의 말도 근거가 있으므로 황신黃神에 관한 전설이 더욱 믿음이 간다.
神旣居是 民咸安焉하니 以爲有道라하여 死乃俎豆之하고 爲立祠
황신黃神이 여기서 거주한 뒤에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였으므로 도를 지닌 사람으로 여겨, 그가 죽자 제사를 지내고 사당을 세운 것이다.
後稍徙近乎民하여 今祠在山陰溪水上이라
그 후에 사당이 점점 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가까이 옮겨져서 지금의 사당은 산 북쪽 시냇가에 있다.
元和八年 旣歸爲記하여 以啓後之好游者하노라
원화元和 8년 5월 16일 유람하고 돌아온 뒤에 이 내용을 기술하여 장래 유람을 좋아하는 자들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을 때인 元和 8년(813) 5월에 쓴 작품이다. 黃溪는 永州 경내의 작은 시내이다. 寧遠縣 陽明山 뒤쪽 龍洞에서 발원하여 零陵과 祁陽을 경유한 뒤에 白水와 합류하여 湘江으로 들어간다. 이해에 永州에 가뭄이 들어 刺史 韋宇가 祈雨祭를 지내기 위해 永州 관아로부터 70리 거리에 있는 黃神祠에 갈 적에 작자가 그의 요청으로 그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때 유람한 黃溪 산수의 절경을 사실적이며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작자가 永州에 거주하는 기간에 쓴 9편의 유람기 가운데 가장 뒤에 쓴 것으로, 중국 역대 산수기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黃神祠는 西漢 말 王莽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王莽의 친족 가운데 한 사람이 화를 피해 성명을 바꾸고 이 지역에 은거하여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였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黃神은 그의 고친 성명이다.
역주2 : 지금의 山西 지역이다.
역주3 : 옛 나라이름으로, 지금의 陝西 甘肅의 邊境이다.
역주4 : 지금의 江西ㆍ江蘇ㆍ安徽 일대이다.
역주5 楚越之交 : 兩湖ㆍ兩廣 및 浙ㆍ閩 일대를 가리킨다.
역주6 浯溪 : 祁陽縣의 서남 5리에 있으며 永州城과의 거리는 백여 리이다. 祁陽 松山의 雙井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湘江으로 유입한다. 浯溪 일대는 세 군데의 절벽이 서 있어 절경을 이루는데, 唐나라 때 그 시냇가에 거주하던 元結이 ‘浯溪’라고 이름을 짓고, 유명한 서예가 顔眞卿에게 요청하여 그곳의 암벽에 큰 글씨로 〈大唐中興頌〉을 써서 새긴 일로 인해 천하에 유명해졌다.
역주7 湘之源 : 湘江의 발원지이다. 廣西 興安에서 발원한다. 여기서는 永州의 속현인 湘源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廣西 全州이다.
역주8 瀧泉 : 瀟水의 靑口에서 瀧泊까지의 구간으로, 그 길이는 70리이다. 永州城과의 거리는 60리이다. 瀧泉은 물살이 거세고 협곡이 이어져 있어 절경이라고 한다.
역주9 東屯 : 黃溪 가의 한 촌락이다.
역주10 : 길이의 단위이다. 1步는 周나라 제도에는 6尺, 秦나라 이후에는 5尺이었다.
역주11 傳者 : 黃神에 관한 전설을 소개하는 사람이다.
역주12 : 곧 王莽(B.C. 45~A.D. 23)을 가리킨다. 西漢 말 濟南 東平陵 사람이다. 孝元皇后의 조카로 A.D. 8년에 平帝를 죽이고 황제가 되어 국호를 新이라 하고 이듬해에 연호를 ‘始建國’으로 바꾸었다. 제도개혁이 실패하고 민심을 잃은 결과, 樊崇이 이끄는 赤眉軍과 王匡ㆍ王鳳이 이끄는 綠林軍의 반란이 일어나 건국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역주13 黃皇室主 : 漢 平帝의 황후가 된 王莽의 딸이다. 平帝가 죽자 王莽이 섭정을 하면서 그의 딸을 황태후로 높였고, 王莽이 新 왕조를 세운 뒤에 딸의 호칭을 安定公太后라고 바꾸었으며, 또 黃皇室主로 바꾸어 漢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한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역주14 五月十六日 : 《文苑英華》에는 “10월 5일에 들어갔다가 6일에 돌아왔다.[十月五日入六日歸]”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과 동시에 지은 오언절구 〈入黃溪聞猿〉의 본집 주석에 “元和 8년 10월에 지었다.”라고 한 것과, 오언장편 고시 〈韋使君黃溪祈雨見召從行至祠下口號〉의 “골짝어귀 찬 시내 맑기도 하고, 숲속 사당 고목은 듬성듬성해. 향 피울 제 가을 이슬 촉촉이 젖고, 玉 올릴 제 새벽빛 밝아오누나.[谷口寒流凈 叢祠古木疎 焚香秋霧濕 奠玉曉光初]”라고 한 내용으로 볼 때 5월이 아닌 10월이 맞을 것으로 사료된다. 저본에 따라 “元和 8년 5월 16일 유람하고 돌아온 뒤에 이 내용을 기술하여”라고 번역하였으나, 70리나 되는 먼 거리를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당일에 다녀온다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저본의 “丹砂‧碧玉과도 같은 붉은 꽃과 푸른 잎[如丹碧之華葉]”이라는 표현은, 아무리 남부지방이라 하더라도 그 시기를 10월로 보기에는 또한 무리이므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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