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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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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이라
讀詩禮春秋하되 莫能言說하고 其容貌充充然하되 而聲名不聞傳於世 豈天下廣大多儒而使然歟
將晦其說하고 諱其讀하여 不使世得聞傳其名歟
抑處於遠하고 仕於遠하여 不與通都大邑豪傑角其伎而至於是歟
不然이면 無顯者爲之倡하여 以振動其聲歟
今之世 不能多儒可以蓋生者하고 觀生亦非晦諱其說讀者 然則餘二者爲之決矣
生北遊 必至通都大邑이요 通都大邑必有顯者 由是其果聞傳於世歟
苟聞傳必得位하리니 得位而以詩禮春秋之道施於事하고 及於物하여 思不負孔子之筆舌하라
能如是 然後可以爲儒 儒可以說讀爲哉


07.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서종사徐從事를 송별하는 서문
호탕하다.
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를 읽고서도 능히 학설을 내놓지 못하거나, 용모에 충실한 기풍이 넘치는데도 명성이 세상에 퍼지지 않는 것은 혹시 천하가 광대하여 다른 유자儒者들이 많으므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본인이〉 그의 학설을 숨기고 그가 읽은 것을 말하기를 꺼리어 세상으로 하여금 그 명성이 퍼지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게 아니면 먼 지방에 처해 있고 먼 곳에서 벼슬살이를 하느라 큰 도회지, 큰 고을의 호걸과 그 기예를 겨루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현달한 자가 그를 위해 앞장서서 그 명성을 일으켜주는 일이 없어서인가?
지금 세상에 많은 유생儒生이 있다고 해도 서생徐生을 덮어 가릴 수는 없고, 살펴보면 서생徐生 또한 그의 학설과 그가 읽은 것을 숨기려는 사람이 아니니,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서생徐生이 북쪽으로 가면 반드시 큰 도회지와 큰 고을에 이를 것이고, 큰 도회지와 큰 고을에는 반드시 현달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결국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겠는가.
만약 이름이 나면 반드시 벼슬자리를 얻을 것이니, 벼슬을 얻게 되면 《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의 도를 정사에 시행하고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능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비로소 유자儒者가 될 수 있으니, 유자儒者가 그저 학설을 말하고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 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送徐從事北遊序 : 徐從事가 어떤 판본에는 徐生으로 되어 있다. 從事는 從事官의 약칭으로 지방수령에게 딸린 관리이다. 이 글은 永州司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는 것 이외에 그 저술 시기나 徐從事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徐從事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네 가지의 가설을 제기한 뒤에, 앞의 두 가지는 부정하고 다음 두 가지로 논리를 세워,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면 명성이 세상에 자자하고 진정한 儒者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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