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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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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學問의 가치
4. 學問의 가치
有客曰:
어떤 사람이 내게 따져 물었다.
“吾見, 誅罪安民, 以取公侯者有矣;文義, 匡時富國, 以取卿相者有矣。
“나는 강한 쇠뇌와 긴 창으로 죄인을 주살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공후公侯의 작위를 얻은 이들도 있고, 법도를 탐구하고 관리의 길을 익혀 시절을 바로잡고 나라를 부유하게 함으로써 경상卿相의 지위를 얻은 이들도 있는 것을 보았소.
學備古今, 才兼文武, 身無祿位, 妻子飢寒者, 不可勝數, 安足貴學乎?”
그러나 학문學問으로는 고금古今을 갖추고 재주로는 문무文武를 겸비하고서도 녹봉과 지위가 없어 처자를 굶주리고 헐벗게 한 이들이 이루 다 셀 수가 없으니, 어찌 배움이 귀하다 할 수 있겠소?”
主人對曰:
내가 대답해주었다.
“夫命之窮達, 猶金玉木石也;
“무릇 운명으로 궁벽해지거나 현달하게 되는 것은 〈그 재질이〉 금옥金玉이나 목석木石과 같습니다.
脩以學藝, 猶雕刻也。
학문學問기예技藝를 배우는 것은 〈이들을〉 광택 나게 하거나 〈저들을〉 조각하는 것과 같지요.
金玉之磨瑩, 自美其鑛璞;木石之段塊, 自醜其雕刻。
을 광택 나게 하면 그것이 광석일 때보다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것이지만, 나무나 돌을 토막 나고 쪼개진 채로 두면 그것이 조각되었을 때보다 스스로 추해지는 것이지요.
安可言木石之雕刻, 乃勝金玉之鑛璞哉?
어찌 조각된 목석木石이 광석인 채로의 금옥金玉보다 본래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는지요?
不得以有學之貧賤, 比於無學之富貴也。
〈그러니〉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의 빈천貧賤함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의 부귀富貴함에다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且負甲爲兵,
筆爲吏, 身死名滅者如牛毛, 角立傑出者如芝草;
게다가 갑옷을 입고 병사가 되거나 붓을 입에 물고 벼슬아치가 되었다가 몸이 죽으면서 이름도 〈같이〉 묻혀버릴 이는 쇠털같이 많으나 〈기린麒麟의〉 뿔처럼 우뚝 솟을 인물은 영지 풀처럼 귀합니다.
, 吟道咏德, 苦辛無益者如, 逸樂名利者如:豈得同年而語矣。
책을 읽고 를 읊조리고 을 노래하면서 수고를 하는데도 아무런 이익도 없을 이들은 일식日蝕과 같이 적고, 명리名利에 탐닉하는 이들은 가을철 씀바귀처럼 많으니, 어찌 이들을 나란히 말할 수가 있을지요?
또한 듣자하니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라 합디다.
所以學者, 欲其多知明達耳。
〈글을〉 배우는 이유는 많이 알고 훤히 통달하고자 해서일 따름이지요.
必有天才, , 爲將則闇與同術, 執政則之敎, 雖未讀書,
반드시 하늘이 내린 인재가 있을 터이어서 무리 가운데서 뛰어날 것이니 장수가 되었다면 암암리에 손무孫武오기吳起와 병법이 같았을 터이고, 위정자가 되었다면 일찌감치 관중管仲자산子産의 가르침을 얻었을 터인즉, 비록 〈그들이〉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여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배운 이라고 말할 것이오.
今子卽不能然, 不師古之蹤跡, 。”
지금 그대들은 그리할 수 없으면서도 고대 성현들의 발자취를 스승 삼지도 않으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것과 같을 따름이지요.”
역주
역주1 : 꼬치꼬치 캐묻다. 혹은 추궁하다.[역자]
역주2 主人 : 顔之推가 자신을 일컬은 말이다.[盧文弨]
역주3 彊弩 : 《說文解字》에 “쇠뇌[弩]란 활에 자루[臂]가 달린 것이다.[弩 弓有臂者]”라고 하였다.[盧文弨]
彊弩는 쇠뇌 중에서도 화살 10발을 1,200m(1,000보) 거리에 있는 갑옷에 동시에 쏘아 뚫을 수 있는 규격의 대형 쇠뇌이다. 中弩는 6, 7발의 화살을 360~480m(3, 4백 보) 거리에 있는 갑옷에 동시에 쏘아 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小弩는 화살 3, 4발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쇠뇌이다.[역자]
역주4 長戟 : 《周禮》 〈冬官 考工記〉의 鄭玄 注에 “戟은 지금의 三鋒戟이다.[戟 今三鋒戟也]”라고 하였다.[盧文弨]
長戟이란 대개 미늘창[戟] 가운데서도 자루가 특히 긴 미늘창을 가리킨 말이다. 수비용 창은 좀 더 길어서 세 길[丈]에 이르는 것도 있다. 미늘창[戟]이란 ‘戈’와 ‘矛’를 결합시킨 兵器로 漢나라 이전에는 十字形의 미늘창이 많았으나 漢나라 때는 騎兵의 作戰 운용상 ‘內’를 없애고 ‘勾’만을 남긴 卜字形의 미늘창이 많이 쓰였다. 전체 길이는 226~250㎝로 전투병기로서뿐만 아니라 儀仗兵器로서도 많이 쓰이던 것이다. 《漢書》 〈東方朔傳〉에 “武帝가 未央宮의 前殿에 앉자 東方朔은 미늘창을 들고 侍立하였다.[武帝坐未央前殿 東方朔持戟立]”고 하였다.[역자]
역주5 習吏 : 《大戴禮記》 〈保傅〉篇에 “벼슬아치[吏] 되려고 〈따로〉 익히지 말고, 이미 이루어진 일들을 보아라.[不習爲吏 視已成事]’는 문장은 한편으로는 ‘習吏’가 ‘習史’로도 쓰이는데 그래도 뜻이 통하니 ‘史書를 익힘[習史書]’을 말한 것이다.[盧文弨]
역주6 磨瑩 : 《說文解字》 玉部에 “瑩이란 옥의 빛이다.”라고 하였다. 段玉裁는 이에 대하여 “옥이 빛나는 모양을 일컫던 데서 ‘광택을 낸다.[磨瑩]’는 파생의로도 쓰인다.”라고 하였다. 《劉子》 〈崇學章〉에 “거울은 쇠에서 나왔으나 쇠보다 밝으니 ‘빛나도록 닦아서[瑩]’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7 咋(색)筆 : 붓을 깨물다. 혹은 붓을 잡다. 글을 구상하다 보면 곧잘 입으로 붓대를 깨물므로 일컬은 말이다.[역자]
역주8 : 색
역주9 握素披黃 : 옛날 서적은 하얀 絹紗에다 글을 썼다. 《太平御覽》 606에서는 《風俗通》을 인용하며 “劉向은 孝成皇帝를 위하여 10여 년간 서적을 교감하면서 먼저 竹簡에다 이를 쓴 다음 교정을 마치고 원고를 확정, 출간할 때 잘 쓰인 글은 ‘흰 명주[素]’에다 올렸다.”라고 하였다. 黃은 黃卷을 말한 것이다. 옛날에는 책은 모두 두루마리[卷軸]로 만들어져서 말고 펼 수가 있었는데, 雌黃을 입힌 것은 좀이 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盧文弨]
책을 읽다.[역자]
역주10 日蝕 : 항상 있는 것이 아님을 비유한 것이다.[盧文弨]
역주11 秋荼 : 씀바귀[荼]는 가을철이 되면 더욱 무성해지므로, 그것이 많음을 비유한 것이다.[盧文弨]
역주12 生而知之者上 學而知之者次 : 《論語》 〈季氏〉篇에 “孔子가 말하기를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상등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요,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 애써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나,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데도 배우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하등이니라.’ 하였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3 拔群出類 : 《孟子》 〈公孫丑 上〉에서는 “같은 부류에서 벗어났고 같은 무리에서 빼어났다.[出於其類 拔乎其萃]”고 하였으며, 《梁書》 〈劉顯傳〉에서는 “총명함이 유독 두드러져서 같은 무리 가운데에서 유독 뛰어났다.[出類拔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4 孫武吳起 : 《史記》 〈孫子吳起列傳〉에 “孫子 武는 齊나라 사람이다. 兵法으로 吳王 闔廬의 눈에 띄어 闔廬가 장군으로 삼자 서쪽으로는 강력한 楚나라를 무찌르고 郢으로 쳐들어갔으며, 북쪽으로는 齊나라와 晉나라를 위협하여 諸侯 가운데서 이름을 드날렸다. 吳起는 衛나라 사람으로 군대를 잘 운용하여 魏 文侯가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吳起는 병졸들 중 위계가 가장 낮은 이들과 같이 입고 먹을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는 요를 깔지도 않았고, 행군하면 말을 타지 않은 채 친히 식량을 싸서 짊어지고 병졸들과 함께 수고하며, 군대를 운용함에 청렴하고 공평하였으므로 무사들이 마음으로 따랐다. 나중에 楚나라로 들어가 남쪽으로 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陳‧蔡를 倂呑하고 三晉을 물리쳤으며 서쪽으로는 秦나라를 정벌하였으나 마침내 貴族들에게 모함을 받았다.”라고 하였다.[盧文弨]
역주15 : 본편의 11에서도 “일찌감치[懸] 배척하였다.”고 하였으며, 《金樓子》 〈立言〉篇에서도 “사람을 살펴보면 선한지 악한지를 미리[懸] 안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쓰인 ‘懸’자는 뜻이 같다. 劉淇의 《助字辨略》 2에서는 “懸은 預와 뜻이 같다. 무릇 미리 예측하고 멀리 추리하는 것을 모두 ‘懸’이라고 하는 것은 ‘懸’이란 물건을 매달리게 한 것을 일컫는 말인데 물건이 매달리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데다, 미리 예측하고 멀리 추리한다는 것이 채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를 띠므로 이 때문에 ‘懸’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6 管仲子産 : 《史記》의 〈管晏列傳〉에 “管仲 夷吾는 潁上 사람으로 齊나라의 정무를 맡아서 桓公이 이 때문에 霸王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循吏列傳〉에 “子産은 鄭나라의 列大夫이니 鄭나라에서 재상이 된 지 26년 만에 죽자 장정들이 통곡을 하고 노인들이 아이처럼 울부짖었다.”고 하였다.[盧文弨]
역주17 吾亦謂之學矣 : 《論語》 〈學而〉篇에 “비록 채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할 것이다.[吾必謂之學也]’”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8 猶蒙被而臥耳 : 한 가지도 살펴 아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盧文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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