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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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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림도 餘技일 뿐
6. 그림도 여기餘技일 뿐
畫繪之工, 亦爲妙矣。自古名士, 多或能之。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 또한 오묘한 일이다. 예로부터 명사들 중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吾家嘗有手畫蟬雀白團扇及馬圖, 亦難及也。
우리 집에 일찍이 양 원제梁 元帝가 손수 매미와 참새를 그린 흰색의 둥근 부채와 말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역시 따라가기 힘든 솜씨이다.
, 坐上賓客, 點染, 卽成數人, 以問童孺, 皆知姓名矣。
무열태자武烈太子는 유독 인물 초상에 능하여, 좌중의 빈객들을 되는 대로 쓱쓱 그리면 바로 몇 사람의 그림이 이루어졌는데, 그걸 가지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그 이름을 알아맞혔다.
、劉靈, 並文學已外, 復佳此法。翫閱古今, 特可寶愛。
소분蕭賁, 유효선劉孝先, 유령劉靈 등은 다들 문학 외에 그림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고금古今의 그림들을 즐겨 보다 보면 특별히 보물로 간직하고 아끼고 싶은 것들이 있다.
若官未通顯, 每被公私使令, 亦爲
만약 벼슬이 높지 않으면 늘 공사公私로 부림을 당하므로, 〈그림 그리는 일은〉 역시 잡된 일이다.
吳縣顧士端湘東王國, 後爲鎭南府刑獄參軍,
오현吳縣고사단顧士端상동왕湘東王 번국藩國시랑侍郎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뒤에 진남부鎭南府에서 형옥참군刑獄參軍이 되었고,
有子曰庭, 中書舍人, 父子並有, 尤妙丹靑, 常被元帝所使,
아들 강릉江陵 정권의 중서사인中書舍人이었는데, 부자父子가 모두 거문고와 글씨에 능한 데에다 특히 그림을 잘 그려서 늘 원제元帝에게 부림을 당하며, 매번 부끄럽고 후회하는 마음을 품었다.
彭城 劉岳, 橐之子也, 仕爲, 才學快士, 而畫絶倫。
팽성彭城유악劉岳유탁劉橐의 아들로서 표기부驃騎府의 문서담당과 평지현령平氏縣令을 지냈는데, 재주와 학식이 뛰어난 선비였고 그림이 비할 데가 없었다.
뒤에 무릉왕武陵王을 따라 으로 들어갔다가 하뢰下牢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결국 육법화陸法和를 위해 지강사支江寺의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 여러 화공畫工들과 뒤섞여 기거했다.
向使都不曉畫, 直運, 豈見此恥乎?
만약 앞에 나온 세 사람이 다들 그림 그릴 줄을 모르고 늘 해오던 일이나 했더라면, 어찌 이러한 치욕을 당했겠는가?
역주
역주1 梁元帝 : 《歷代名畫記》 7에서 “梁 元帝 蕭繹은 字가 世誠이고 武帝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애꾸눈이었지만 총명하고 슬기롭고 당당하고 활달했으며, 技藝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書畫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처음에는 湘東王에 봉해졌고, 뒤에 황제로 즉위하였을 때 나이가 마흔일곱이었으며, 追號는 元帝, 廟號는 世祖였다. 일찍이 高僧을 그렸는데, 武帝가 친히 贊을 써주었다. 荊州刺史를 맡았던 시절에 蕃客入朝圖를 그렸는데, 武帝가 잘 그렸다고 크게 칭찬하였다. 또 職貢圖를 그리고 그 序를 썼는데, 외국에서 공물을 바치러 온 일을 잘 그렸다. 姚最가 말하기를 ‘湘東王은 천성이 生知의 자질을 갖고 태어나서, 사물의 본질과 외양을 속속들이 다 파헤쳤고, 마음은 造化를 스승으로 삼아, 특히 사람의 모습을 그려냄에 있어 神妙함을 다하였는데, 마음이 민첩하게 손을 놀리면 점을 안 찍고도 제대로 다스려내었다. 聽訟하는 사이 여러 가지 기예들을 익히는 여가에, 수시로 붓을 놀리면 天地造化가 깜짝 놀랐으니, 荀勗‧衛協으로 하여금 붓을 던지게 하고, 袁蒨‧陸綏로 하여금 붓을 감추게 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했다.” 하였다.[王利器]
역주2 武烈太子偏能寫眞 : 《歷代名畫記》 7에서 “梁 元帝의 장남 方等은 字가 實相이다. 특히 초상화에 능하여 좌중의 빈객들을 마음 가는 대로 쓱쓱 그리면 바로 몇 사람의 그림이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누군지 알아보았다. 뒤에 전란으로 죽었는데 나이가 스물둘이었다. 侍中中軍將軍, 揚州刺史에 追贈되었고, 諡號는 忠莊太子라 하였다.”라 하였다. 《南史》 〈梁元帝諸子傳〉에서 “元帝가 즉위하자 諡號를 武烈太子로 바꾸었다.”라 하였다. ‘寫眞’이란 초상화를 말한다.[王利器]
역주3 隨宜 : ‘隨意’라고 하는 것과 같다. 元稹의 〈開元觀閑居酬吳士矩侍御四十韻〉에서 “책상은 되는 대로 펼쳐놓고, 詩書는 편한 대로 집어 든다.[几案隨宜設 詩書逐便拈]”라 하였는데, 여기서 ‘隨宜’는 ‘逐便’과 對偶를 이루면서 뜻도 같다.[王利器]
역주4 蕭賁(분) : 《南史》 〈齊竟陵王子良傳〉에서 “蕭子良의 아들이 昭曹이고, 昭曹의 아들이 賁인데, 賁은 字가 文奐으로 키는 6자가 안 되었지만 뛰어난 식견에 굳은 지조를 지녔다. 어릴 적에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글재주가 있었으며, 글씨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는데, 부채 위에 山水를 그리면 좁은 화폭 속에서 만 리 먼 곳까지 느낄 수 있었다. 긍지를 가졌지만 신중하여, 남에게 전하지 않았고 혼자서 즐길 뿐이었다.”라 하였다. 《歷代名畫記》 7에도 같은 평이 나와 있다.[徐鯤]
역주5 劉孝先 : 《梁書》 〈劉潛傳〉에서 “劉潛의 일곱 번째 동생 孝先은 武陵王 蕭紀의 法曹主簿였다. 武陵王이 益州로 옮겨가자 藩府로 따라가서 安西記室에 전보되었다. 承聖 연간에 형 孝勝과 함께 武陵王 蕭紀를 따라 峽口로 나갔다가, 싸움에서 패하고 江陵으로 오자, 世祖가 黃門侍郞에 임명하였고 또 侍中으로 옮겼다. 형제가 모두 五言詩를 잘 지어 세인들의 존중을 받았지만, 文集은 전란을 만나 지금은 모두 남아 있지 않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6 猥役 : 猥는 ‘뒤섞여 잡되다[並雜]’는 뜻이다.[趙曦明]
역주7 出身 :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서다.[역자]
역주8 侍郎 : 官名이다. 《隋書》 〈百官志〉에서 “王國에는 中尉侍郎과 執事中尉를 두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9 西朝 : 江陵을 가리킨다. 梁 元帝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본서 제3 〈兄弟〉편 6에서 江陵을 西臺라고 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王利器]
역주10 琴書之藝 : 거문고를 잘 타고 글씨를 잘 쓰는 技藝, 즉 거문고 솜씨와 書藝를 말한다. 琴書는 대개 거문고와 책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 書는 書藝로 보는 것이 좋다.[역자]
역주11 每懷羞恨 : 唐初에 재상이었던 閻(염)立本이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역시 이런 부끄럽고 원통한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다.[郝懿行]
역주12 驃騎府管記 : 驃騎將軍의 官府에서 문서를 담당하는 직책을 말한다.[역자]
역주13 平氏(지)縣令 : 《宋書》 〈州郡志〉에서 “南義陽太守가 통할하는 縣은 둘인데, 平氏令은 漢代의 舊名으로서 南陽에 속한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4 後隨武陵王入蜀 : 《南史》 〈梁武帝諸子傳〉에서 “武陵王 紀는 字가 世詢(순)이며 武帝의 여덟 번째 아들이다.……天監 13년에 武陵王에 봉해졌다.……大同 3년에 都督 겸 益州刺史가 되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15 下牢(뢰)之敗 : 下牢는 梁代 宜州에 속하던 옛 지역이다.[王利器]
下牢는 지금의 湖北省 宜昌市 서북쪽, 長江이 三峽을 빠져나온 곳에 있던 큰 여울이다. 承聖 2년(553)에 蜀 지역에 있던 武陵王이 擧兵하여 동쪽으로 元帝를 쳤지만 패배하였다.[역자]
역주16 爲陸護軍畫支江寺壁 : 《梁書》 〈元帝紀〉에서 “大寶 3년 8월 武陵王 蕭紀가 巴‧蜀의 대군을 이끌고 배를 이어 동쪽으로 내려오자, 護軍將軍 陸法和를 보내어 巴峽에 주둔하여 막도록 하였다.……承聖 2년 가을 7월에 蕭紀의 군사들은 크게 무너지고, 蕭紀는 病死했다.”라 하였다. 《嘉慶一統志》 〈荊州府〉에 “枝江의 옛 성은 지금의 枝江縣 동쪽에 있다.”라 하였고, 또 “陸法和의 집이 枝江縣 동쪽에 있다.”라 한 것으로 보아, 支江은 아마도 南郡에 속하는 枝江縣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周法高]
顔之推는 〈觀我生賦〉에서 “王僧辯이 서린 용처럼 버티어 막아낸 일이 훌륭하고, 護軍將軍이 번개처럼 적들을 쓸어버린 일이 기이하다.[奇護軍之電掃]”라 하였고, 또 自注에서 “護軍將軍 陸法和가 赤亭湖에서 任約을 깨뜨리자, 侯景은 퇴각하며 크게 허물어졌다.”라 했다.[王利器]
포로가 되어 陸法和를 위해 支江寺 벽에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다. 陸護軍은 陸法和를 가리킨다.[역자]
역주17 三賢 : 앞에 나온 顧士端, 顧庭, 劉岳 등 3人을 가리킨다.[역자]
역주18 素業 : 평소 해오던 일이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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