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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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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三輔決錄》의 ‘果’
30. 《삼보결록三輔決錄》의 ‘
云:“范仲公, 。” “果”當作之“顆”。
삼보결록三輔決錄》에 이르기를 “전대대부前隊大夫 범중공范仲公은, 〈청렴하여〉 된장[염시鹽豉]과 통마늘[산과蒜果]을 한 대통에 같이 넣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산과蒜果(통마늘)의〉 ‘’자는 응당 위과魏顆라는 이름자의 ‘’자가 되어야 한다.
, 改爲一顆, 蒜顆是俗間常語耳。
북방北方 지역에서는 통상 물건 1를 부를 때 1라 고쳐 말하므로, 산과蒜顆란 항간에 쓰이는 상용어常用語일 뿐이다.
曰:“頭如, 目似椒。”
그래서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은 〈요작부鷂雀賦〉에서 “머리는 통마늘[과산果蒜] 같고, 눈은 쪼개진 산초[벽초擘椒] 같다.”고 하였으며,
云:“合口誦經聲, 眼中淚出珠子。” 其字雖異, 其音與義頗同。
도경道經》에서도 “입 모아 경을 외니 소리는 중얼중얼[쇄쇄璅璅], 눈에는 눈물 떨어지니 구슬이 방울방울[].”이라 하였으니, 비록 글자는 서로 다르나 그 소리와 뜻은 자못 같다.
, 不知謂爲顆。
강남江南에서는 산부蒜符라고만 부를 뿐, 산과蒜顆라고도 말한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學士相承, , 言鹽與蒜共一苞裹, 內筩中耳。
학자들이 서로 따라서 〈를〉 과결裹結(싸매다)의 자로 읽어 〈‘염시산과공일통鹽豉蒜果共一筩’이란〉 ‘소금과 마늘을 함께 싸서[] 같은 대통에 넣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 것이나,
정사삭번正史削繁》에서 산과蒜顆이독음異讀音고과반苦戈反(과)이라고 했던 것 등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역주
역주1 三輔決錄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三輔決錄》 7권은 漢의 太僕 趙岐가 편찬하고 摯虞가 주석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책은 지금 망실되었으나 張澍(주)와 茆(묘)泮林의 輯本이 전한다.[王利器]
역주2 前隊(수)大夫 : 林思進에 의하면 “《漢書》 〈王莽傳〉에 ‘河東, 河內, 弘農, 河南, 潁川, 南陽은 六隊(수)郡으로 大夫를 두었는데 그 직책이 太守와 같다.’고 하였다.”고 하였다.[周法高]
《漢書》 〈王莽傳〉의 顔師古 주석에 의하면 “隊는 독음이 遂(수)이다.”라고 하였다. 또 《漢書》 〈地理志 上〉에 의하면 “南陽郡을 王莽은 前隊(수)라고 불렀다.”고 하였다.[王利器]
南陽郡의 大夫이다. 《穆天子傳》에 보이는 郭璞의 주석에 의하면 “隊(수:隧)란 계곡 사이로 난 험한 길을 가리킨다.”고 하였다.[역자]
역주3 鹽豉(시)蒜果共一筩 : 그의 청렴함과 검소함을 말한 것이다.[王利器]
鹽豉란 소금에 버무린 메주[豆豉]이므로, 곧 청국장이나 된장이다.[역자]
역주4 魏顆 : 춘추시대 晉나라 때의 大夫로, 《春秋左氏傳》 宣公 15년의 기사에 보인다.[趙曦明]
역주5 北土通呼物一凷(괴) : 凷는 독음이 塊(괴)이다.[趙曦明]
郝懿行에 의하면 “물건 한 덩이[凷]를 ‘一顆’라고 부르는 것은, 《漢書》 〈賈山傳〉의 주석에 보이는 晉灼의 말을 빌자면 ‘東北 사람들이 흙덩이[土塊]를 〈무덤이라는 뜻의〉 쑥대덩이[蓬顆]라고 부른다.’는 말과 같다. 顔師古의 말을 빌자면, 顆는 흙덩이[土塊]를 일컬은 말로, 쑥대덩이[蓬顆]란 흙덩이[塊] 위에 쑥대가 자랐음을 말한 것일 뿐이다. 여기서 塊를 顆라고 부른 것은 북방인의 통용어인바, 顆는 塊와 같은 소리에서 ‘소리를 통한 轉注[聲轉]’가 일어난 결과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6 陳思王鷂(요)雀賦 : 陳思王은 三國時代 魏나라 詩人 曹植(192~232)으로 그의 자는 子建이다. 〈鷂雀賦〉는 새매[鷂]가 참새[雀]를 잡으며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쓰인 賦이다.[역자]
역주7 果蒜 : 《太平御覽》에는 ‘蒜果’로 되어 있다.[王利器]
통마늘이다.[역자]
역주8 : 갈라지다. 쪼개지다.[역자]
역주9 道經 : 《老子化胡經》을 말한다. 《老子化胡經》은 老子가 인도[天竺]로 건너가 부처로 화신하여 胡人들을 교화시키고 佛教를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교가 불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지은 책이라는 설도 있고, 불교 측에서 토착화를 위해 조작한 僞書라는 설도 있다.[역자]
역주10 璅(소)璅 : 程小銘의 《顔氏家訓全譯》(貴陽:貴州人民出版社, 1995)에서는 璅를 瑣(쇄)와 같은 글자로 보고, 瑣瑣는 가늘게 부서지는 소리[細碎]의 의성어로 풀이했다.[역자]
역주11 䂺(와) : 《玉篇》에 의하면 “䂺(와)는 독음이 烏火反(와)이다.” 하였다.[盧文弨]
程小銘의 《顔氏家訓全譯》에서는 顆와 같은 글자로 보고, 顆粒의 뜻으로 풀이했다.[역자]
역주12 江南但呼爲蒜符 : 顆를 蒜蒲라고도 말하므로, 아마 위에서 符라고 된 것은 苻로 되었어야 옳을 것이다. 苻에는 蒲와 같은 讀音이 있기 때문이다. 《春秋左氏傳》에서 萑苻(추부)라 한 것이 이것이다.[盧文弨]
《春秋左氏傳》 昭公 20년에서도 ‘萑蒲’로 되어 있을 뿐, ‘萑苻’로 되어 있지는 않다.[王利器]
王利器가 본 것은 또 다른 판본이었을 뿐이다. 萑苻란 곧 萑蒲의 다른 이름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20년조에서, 杜預는 “萑苻란 못[澤] 이름이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符는 防無切(부)의 독음뿐이나, 苻에는 《集韻》에 의하면 防無切(부)의 독음과 함께 蓬逋切(포)의 異讀音도 있으므로, 盧文弨는 蒜蒲의 뜻으로 쓰였다면 본문의 蒜符가 蒜苻(산포)로 쓰였어야 옳을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한자음에서는 蓬逋切의 독음도 여전히 ‘부’로 수용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萑苻(추부)로 음역을 하였다.[역자]
역주13 讀爲裹(과)結之裹 : 《廣韻》에 의하면 裹는 독음이 古火切(과)로 顆(苦果切:과)와 같이 ‘果’韻에 속해 있는 同音字이다. 顔之推는 강남의 학자들이, 서로 同音字인데도 덩이[顆]인 줄은 모르고 싸다[裹]의 뜻인 줄로만 여기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역자]
역주14 正史削繁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正史削繁》 94권은 阮孝緖가 편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5 又音蒜顆爲苦戈反 : 지금 사람들은 顆를 모두 苦戈切(과:kē)로 발음한다.[盧文弨]
《廣韻》 34의 ‘果’韻에 “顆는 독음이 苦果反(과:kě)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현대 漢語에는 名詞 ‘흙덩이’의 뜻으로는 苦果切(과:kě)로 읽히며, 量詞 ‘덩이’의 뜻으로는 苦戈切(과:kē)로 읽혀 聲調 상의 分化가 일어났으나, 顔之推는 量詞 ‘덩이’의 뜻으로서도 ‘苦果切(과:kě)’로만 읽어, 量詞 ‘덩이’의 뜻으로서의 독음 苦戈切(과:kē)이 分化되기 시작한 발음습관을 옳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聲調 상의 分化로 말미암아 달라진 독음의 문제임을 살펴보기 위하여 ‘kě’ 등 현대 한어의 병음표기법 상 독음을 附記한 것이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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